자신의 의식이 만들어 낸 견고한 세계가 무너질 때 인간은 충격과 좌절에 휩싸인다. 하지만 인간은 또 다른 세계를 만드는 타인과 더불어 사는 이상 그와 같은 고통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윈터 슬립>은 영화 속 인물들이 각자 믿고 있는 의식의 세계가 충돌할 때 생기는 형언 불가한 진동을 스크린에 담는데 성공한다. 장장 3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을 채우는 수많은 대화는 그 진동의 파열음이다. 자신이 이제껏 누구보다 엄격한 선을 행해 왔다 믿는 아이딘은 한 소년이 난데없이 던진 돌멩이 하나에 자신을 되돌아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자신을 위선자라 명하는 네즐라, 니할과 맹렬한 담론을 나누며 서서히 붕괴되어 간다. <윈터 슬립>은 아이딘 뿐만 아니라 네즐라, 니할의 인식이 무너지는 순간도 함께 그린다. 노동하지 않는 네즐라는 아이딘과 대립하고, 적선을 베풀고자 한 니할은 자신의 행동에 따른 예상치 못한 결과에 힘겨워한다. 노동 계급의 현실을 외면한 채 정의와 선을 부르짖던 아이딘이 도덕적 양심으로 인해 자기 인식의 고통을 경험하는 과정은 러시아를 대표하는 여러 작가들의 문학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인상을 준다.
2015년 4월 30일 목요일 | 글_최정인 기자 (jeongin@movis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