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립 투 이탈리아
The Trip to Italy , 2014

<트립 투 이탈리아>는 코미디언이자 배우인 스티브 쿠건과 롭 브라이든이 옵저버 지의 의뢰로 이탈리아의 6개 레스토랑을 리뷰하기 위해 6일간의 여행을 떠나는 내용을 담고 있다. 2010년 영국 북부지방을 같은 맥락에서 여행하는 과정을 담은 <더 트립>의 속편이다. 원래는 BBC에서 6부작의 드라마로서 만들어졌는데, 이를 2014년 선댄스 영화제에서 조금 짧게 편집하여 영화로 상영하면서 전 세계 관객들과 만나게 되었다.
이탈리아의 레스토랑을 리뷰한다는 목적으로 시작되는 여행이지만 단순히 먹방만으로 가득한 영화는 아니다. 영화를 보면 먹방보다는, 월~토요일마다 다른 장소로 이동하면서 보여주는 이탈리아의 웅장한 자연 풍광과 역사 깊은 도시의 이국적인 모습에 더욱 감탄할 일이 많다. 또 토크쇼를 보는 것 같은 두 남자의 쉴새 없는 수다와 성대모사, 블랙코미디가 정신을 쏙 빼놓기도 한다. 한편으론 중년의 위기와 고독, 죽음에 대한 두려움, 인생의 무상함까지 잘 버무려져 있다. 관객들을 당장 이탈리아로 날아가서 삶의 낭만에 흠뻑 취하고 싶게 만드는 <트립 투 이탈리아>로 떠나보자.

이탈리아, 이보다 좋을 순 없다
옵저버 지의 의뢰로 6번의 이탈리아 식사를 리뷰하기 위해 4년만에 다시 뭉친 스티브 쿠건과 롭 브라이든. 실제로도 동갑내기 절친이자 라이벌이기도 한 쉰 살쯤의 두 아저씨는 이 의뢰로 인해 둘이서 6일동안의 짧은 이탈리아 여행을 떠나게 된다. 두 사람은 차를 한대 렌트해서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각 요일 별로 이탈리아의 피에몬테, 리구리아, 토스카나, 로마, 캄파니아, 카프리 등지를 여행한다. 덕분에 관객은 보물 같은 산 정경과 정겨운 시골 마을, 광활한 바다와 감탄을 자아내는 기암 절벽, 과거와 현재가 뒤섞여 혼잡한 도시 등 다채롭고 생생한 이탈리아와 만날 수 있다.
또 여행의 목적을 잊지 않으려는 듯 매 요일마다 두 사람이 식사하는 씬이 등장하면서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음식인 파스타나 라비올리, 럭셔리한 코스 요리, 해산물 요리에 군침을 꼴깍거리게 만든다. 단순히 요리를 맛있게 먹는 장면만 나오는 게 아니라 음식이 조리되고 있는 주방의 모습과 서버가 음식을 내오는 모습, 두 사람이 음식에 대해 수다를 떠는 모습들이 함께 나오면서 먹는 즐거움은 배가 되고 풍미는 더욱 깊어진다.

두 아저씨의 빛나는 케미스트리
이렇게 이탈리아에 흠뻑 취하다가 정신을 차려보면 이번엔 두 아저씨가 보여주는 ‘케미’에 빠져들게 된다. 50살 정도 먹은 영국 신사 아저씨들이라면 왠지 우아하고 심오한 대화를 나누면서 격조 있는 여행을 즐길 것 같은데 실상은 전혀 다르다. 코미디언의 사명 때문인지 혹은 원래 그런 성격인 건지 롭은 식사하는 자리에서도 마치 코미디 프로그램이라도 진행하는 듯 배트맨의 알프레드, 브루스 웨인, 대부의 말론 브란도, 알파치노, 노팅힐의 휴그랜트 등 각종 인물들의 성대모사를 완벽하게 해내고, 스티브는 얼굴에 미소 한번 띄우지 않고 시니컬한 농담을 팍팍 날려준다. 예를 들어 조난당해서 먹을게 없다면, 스티븐 호킹의 다리보다는 롭의 다리, 롭의 다리보다는 올림픽 메달리스트의 다리를 뜯어먹겠다는 살벌한 농담을 하는 식이다.
이렇게 정신 없이 주고 받는 농담 뒤에는 두 유명인이 느끼는 개인적인 쓸쓸함과 외로움이 숨겨져 있다. 둘은 밖에서는 스포트 라이트를 받으며 인정받는 배우지만, 집안에서 롭은 그저 애를 돌보는데 별 도움이 안 되는 귀찮은 존재쯤으로 여겨지고, 스티브는 부족한 것 없이 당당해 보이지만 이혼한 아내와 지내는 아들 근처에 집을 얻고 싶어하는 외로운 중년 아저씨이다. 두 사람은 처음에는 투닥거리기도 하다가 점차 즐거운 시간과 웃음, 아름다운 풍경, 훌륭한 음식을 함께 나누며 마음한구석 서로의 이런 빈자리를 채워가는 우정을 보여준다.

스티브와 롭이 영화에서 자기자신을 연기하지만, 영화는 현실과 허구의 경계선쯤에 놓여있기 때문에 사실 이것이 두 사람의 실제 모습이나 삶을 반영하는지는 알기 어렵다. 하지만 두 아저씨가 아무 거리낌없이 익살스럽거나 괴짜스럽거나 부담스럽기도 한 서로의 성격과 속내를 드러내며 북 치면 장구치 듯 끊임없이 이어가는 이야기와 농담, 성대모사, 꽁트들은 관객의 혼을 쏙 빼놓으며 영화에 확실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바이런과 셸리의 자취를 좇다
이탈리아에서 벌어지는 먹방과 눈 시린 아름다운 풍경, 두 아저씨의 끊임없는 대화에 더불어 곁들여 지는 것은 삶의 낭만과 허무감에 대한 상념들이다. 우선 낭만적인 삶에 대한 동경은 영화에서 주인공들이 계속해서 언급하는 낭만파 시인 ‘바이런’과 ‘셸리’을 매개체로 드러난다. 스티브와 롭은 이탈리아 여행 내내 이 시인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이들이 살던 곳과 무덤을 방문한다. 바이런과 셸리는 영국에서 이탈리아로 망명한 낭만파 작가로 당시의 인습과 기성 체제를 비판하며 새롭고 이상적인 세계와 자유를 꿈꾸던 자들이다. 특히나 바이런은 도덕적인 규율과 관습에 대해 반항아적인 면모를 보이며 방탕한 사생활로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던 인물이다.

바이런처럼 삶을 낭만과 자유, 유희와 즐거움으로 가득 채우며 의무나 책임에서 벗어나 거리낄 것 없이 세상을 떠돌고 싶은 욕구는 누구나 한번쯤 갖곤한다. 그러나 웬만한 성인이라면 자신이 쌓아 올린 이미지나 사회적 지위, 인간관계를 버리고 무작정 낭만주의자의 삶을 추구하는 게 쉽지 않다.
이런 인생의 달콤함만을 좇기에 영화 속 두 주인공이나 우리는 지킬 것도 따져야 할 것도 많다. 롭은 바이런과 자신의 이름이 한 글자만 다르다며 바이런을 은근히 닮고 싶어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데, 스티브는 공통점은 그것뿐이고 둘은 성미도 다르고 롭은 바이런이 될 수 없다고 딱 잘라 말하며 이 점을 드러낸다.

그래도 달콤한 인생
그렇다고 아무 낭만이나 즐거움 없이 금욕적이고 현실적으로만 살기에 인생은 너무 씁쓸하기도 하다. 스티브와 롭은 폼페이 유적, 해골로 가득한 지하묘지, 셸리의 무덤 등을 다니면서 현재 생명력을 부여 받아 살고 있더라도 언젠가 필멸할 인간의 허망한 운명을 떠올린다. 죽고 나서 그 뒤에 자신이 어떻게 기억될지, 누가 울어줄지 물음을 던지기도 하고, 언젠가 영안실에 차갑게 죽어있을 자신을 떠올려 보라는 롭의 말에 거부반응을 보이거나 농담과 성대모사로 우울함이 덮쳐오는 순간을 무마하기도 하면서.
인생의 이런 씁쓸한 부분들은 그냥 먹기에는 너무 진하게 내린 에스프레소와 같다. 우유를 타거나 시럽을 넣어서 그 씁쓸한 맛을 중화시키지 않고는 속을 버린다. 팍팍한 인생에도 우유나 시럽 같이 달콤함과 부드러움을 더해줄 요소가 필요하다. 바이런처럼 극단적 낭만주의자로 살수는 없더라도, 여행을 떠나 일상에서 날 괴롭히던 멍에를 잠시 집어 던지고 낭만을 즐기고 모험을 시도해보거나, 마음 맞는 친구와 실없더라도 즐거운 재담과 유머를 한껏 쏟아내거나, 그저 아침에 일어나 살랑 부는 바람 속에서 단순하게 차려낸 아침식사를 시간을 들여 천천히 음미하는 정도의 달콤함 말이다.

두 주인공처럼 누구나 나이 들어가며 세월이 할퀸 주름에 한숨 쉬고, 자신이 언젠가 완전히 세상에서 사라질 거라는 사실에 두려워하는 일이 점차 늘어난다. 그래도 풍요롭고 생명력 넘치는 이탈리아는 여전히 너무나 아름답고, 옆에 있는 친구는 날 웃게 만들며, 좋은 사람들과 나누는 식사와 이야기는 마음을 풍족하게 채운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태양은 저물어 수평선에 삼켜지지만 바다는 영롱한 금빛 자태를 뽐내며 발하는 모습은, 인생의 이렇게 씁쓸하면서도 찬란한 면모를 잘 담아낸다. 이 이중적이고 애증적인 인생의 묘미 속에서 어쨌거나 삶을 이어가기 위해 때로는 내 맘속 낭만의 나라 어딘가로 떠나 보면 어떨까. 이 영화는 관객을 그 달콤한 여행으로 안내할 좋은 가이드가 되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