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아이들
Hijos de la medianoche , Midnight’s Children , 2012

당시 인도를 지배하던 국가는 영국이었다. 그러나 1947년, 영국이 분열된 인도를 떠나면서 인도는 바야흐로 독립을 맞았다. 그러나 자치정부에 의한 독립이 아닌 이상, 인도가 완전히 독자적인 정부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치열한 공방을 거쳐야 했다.

살만 루시디 <한밤의 아이들>
<자정의 아이들>이라는 제목으로 더 익숙한 살만 루시디의 소설 <한밤의 아이들>이 이 작품의 원작이다. 살만 루시디는 매년 영국연방 국가에서 영어로 쓰인 소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작품에 수여하는 ‘부커상’을 무려 세 번이나 수상한 작가로, 대표작으로는 <그리무스>와 <수치심>이 있다. 소설 분야에만 국한된 작가가 아니라 아동문학, 수필 등 폭넓은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그 중 부커상 중에서도 ‘최고’라 손꼽히는 ‘부커 중의 부커’로 선정된 <한밤의 아이들>은 1947년, 인도의 독립이라는 시대적 상황을 바탕으로 범상치 않은 1001명의 아이들의 탄생을 그리고 있다.

독립의 순간에 태어난 아이들
이 아이들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바로 초능력이다. 하지만 <어벤져스>처럼 판타지적인 요소는 그렇게 많지 않다. 왜냐하면 <한밤의 아이들>에서 주체가 되는 것은 인도의 독립과 역사라는 시대적 배경이지, 초능력을 가진 등장인물 개개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아이들은 특별한 능력을 가졌다고 해서 특별한 삶을 살지는 않는다. 물론 그 능력으로 인해, 살아온 환경 차이로 인해, 각각의 캐릭터는 다르지만 작품 전체를 놓고 보면 밋밋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초능력을 가진 아이들’이라는 설정에 초점을 놓고 본다면 더욱 그렇다.
‘초능력’하면 떠오르는 수많은 작품들이 있다. 대부분의 주인공들은 특별한 삶을 산다. 그들의 말과 행동은 일반인들과 다르고, 수많은 시선과 스포트라이트가 따라온다. 많은 사람들이 지지하는 영웅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초능력자들도 있다. <한밤의 아이들>에 등장하는 아이들이 그렇다.
초능력을 지나치게 미화하거나 판타지스럽게 표현하지 않은 점은 좋다. 하지만 그들의 삶이 능력을 가진 것치고는 지나치게 밋밋하다고 느껴진다. 이 아이들이 뭔가를 해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기 때문이다. 평범한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어떤 일들. 예컨대 국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놓인 자국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한다든가.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아이들은 일반인과 같은 삶을 산다. 초능력으로 인해 그들의 삶이 극단적으로 바뀌지 않는다. 능력을 가진 1001명의 아이들이라는 주제에 초점을 맞췄다면 실망스럽게 느껴질 수 있는 부분이다.

사람의 인생에서 빠뜨릴 수 없는 중요한 요소가 있다. 그것은 바로 사랑이다. 사랑은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더라도 필연적으로 찾아온다. 그래서 삶은 더욱 드라마틱해진다. <한밤의 아이들>의 작중 배경 또한 평화롭지는 않다. 강대국으로부터 독립했으나, 아직 정권이 확립되지 못해 내전 중이라고 봐야 한다. 그런 복잡한 시대를 살아가며 누군가를 만나고, 그를 사랑하고, 미래를 약속하는 과정은 그 어떤 세계관과 만나더라도 빛이 난다.
주인공 살림은 자신과 같은 초능력자 중 한 명인 파르바티에게 도움을 받은 것을 계기로 그녀와 사랑에 빠진다. 물론 혼란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그들의 사랑은 평탄하지 않다. 오해와 갈등, 미움이 존재하며 그것을 이해와 용서로 포용한다.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은 괴로움이기도 하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괴로움을 견뎌내야 한다. 그렇게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면서 사람은 더욱 성숙해져 간다.

<한밤의 아이들>에서는 인도와 파키스탄의 독립 문제를 비롯하여, 무너진 경제상황 속 심각한 빈부격차, 다양한 인종 층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폭넓게 그려냈다. 말하자면 한 시대를 스크린 안에 담아냈다.
그 시대에 있었던 일들, 흔히들 ‘역사’라고 말하는 것, 그 역사 속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자리에 존재하는 것은 언제나 희망이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용기를 잃지 말라.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라. 빤하다면 빤하고, 흔하다면 흔한 교훈이지만 탄탄한 줄거리와 구성 덕분에 한층 더 뜻 깊게 다가온다.

확실히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상매체는 원작에 비해 부족하다는 느낌을 준다. 한정된 시간 안에 많은 걸 보여주기 어려운 탓이다. 자칫하다가는 지나치게 어렵고, 지루한 분위기로 흘러갈 수 있어 완급 조절도 필요하다. 그렇게 해서 불명예를 뒤집어쓴 작품들이 한둘이 아니다. 하지만 <한밤의 아이들>은 원작의 분위기와 속뜻을 나름대로 잘 표현해냈다. 원작의 명성에 부끄럽지 않은 작품이다.

영국과 인도, 방글라데시와 파키스탄이 엮인 작중 배경에 대해 자세하게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어째서 끊임없이 전쟁은 계획되며, 갈등과 오해의 폭은 깊고 넓어질까? 그건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데에 있었다.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각자가 더 낫다, 옳다는 생각을 가지고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한밤의 아이들>에 등장하는 주인공 셋의 복잡한 인간관계 또한 그것의 본보기가 된다. 하지만 그들은 결국 받아들이고, 용서하고 이해한다. 그렇게 해서 하나로 융합된다. 비록 한 세대에서는 끝마칠 수 없는 과제다. 하지만 조금씩, 조금씩 서로에게 용기를 내어 다가선다면 언젠가는 모두가 다치지 않는 세상이 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