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소처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잠자리에 든 두 사람. 한밤중에 깬 폴은 베아가 사라졌음을 알고 그녀를 찾아 나선다.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여자 혼자 어디에 갔을까. 불안감에 떨던 폴은 마침내 베아를 찾아낸다. 그러나 베아의 몸 상태는 심각했다. 폴이 없는 동안 숲속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수많은 가설이 떠오르고, 그에 준하는 증거들이 속속 드러난다. 베아가 보여주는 행동들은 예전의 그녀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극단적이고 당황스럽다. 폴은 점점 베아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아무도 없는 숲속, 한적한 길, 오직 두 사람만이 함께 있는 공간에는 조금씩 불행의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전체적인 스토리의 완결성이 부족하게 느껴지는 작품이다. 신혼부부를 소재로 그들의 행복한 일상이 파괴되어가는 과정을 드러내려고 한 시도는 좋았으나, 불행의 원인이 되는 ‘제3자’를 명확하게 정의하지 않음으로서 관객들에게 혼선을 줬다.
여러 해석이 가능하게 하기 위함이라는 이유를 댈 수도 있겠으나, 개인적으로는 공포/스릴러 장르의 ‘열린 결말’은 좋아하지 않는다. 어디에서 공포감과 긴장을 느껴야 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공포영화야말로 감독의 의도나 역량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장르다. 처음부터 끝까지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하나의 장치에 모든 복선과 전개를 쏟아 부어 최종적인 ‘결말’을 남겨야지만 관객은 공포는 느낀다.
등장인물과 그들을 둘러싼 관계가 전부 이에 포함된다. 하지만 <허니문>은 그 역할을 충분이 수행하지 못했다. 등장인물은 주인공 단 두 사람이고, 그들은 외부와 차단된 숲속에 갇혀 있으며, 여주인공에게 일어난 불행한 사건은 끝까지 풀리지 않는다. 거기에 충격적인 후반 전개가 쏟아짐으로서 관객은 소위 ‘멘붕’상태에 빠져버린다.

그래도 아예 의미가 없는 작품은 아니다. <허니문>에서는 ‘결혼’에 대한 새로운 시각으로 다소 놀라움을 유발한다. 결혼은 마냥 행복한 것이 아니다. 연애시절에는 몰랐던 서로의 모습을 알 수 있고, 그에 실망하거나 놀라워하고, 심지어 공포를 느끼기까지 한다.
베아의 극단적인 변화에 대한 폴의 의심과 공포가 그렇지 않을까 한다. 베아 또한 남편에 대한 지나친 집착을 보여줌으로서 점차 과거의 자신을 잃어간다. 영화를 보는 내내 ‘결혼은 무덤이다’라는 우스갯소리가 떠올랐다.

현대에 이르러서 ‘결혼’은 두 사람의 행복한 결합이라기보다 보여주기식 허례, 금전적인 부담 등으로 상당히 부정적인 뉘앙스를 띄고 있다. 안타까운 현상이다. 그렇게 힘든 시기를 거쳐 하나가 된 부부들도 각종 사회문제에 떠밀려 힘겨운 일상을 보내고 있다. 때문에 현대사회의 젊은이들에게서는 결혼을 기피하고, 결혼한다 하더라도 출산을 미루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개인적인 해석이지만 <허니문>에서의 ‘밝혀지지 않은 제3자’는 그러한 사회적 분위기가 아닐까 한다. 결혼 후 여자는 임신과 출산에 대한 불안감으로 떨고,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남자 또한 마찬가지다. 이제부터 한 가정을 책임져야 한다는 무게가 양어깨를 무겁게 내리누른다. 서로를 생각하고 위하면서 그 힘든 시기를 이겨내야 하지만, 그러지 못한 부부는 더 큰 불행에 빠져든다. <허니문>의 폴과 베아는 힘든 시기를 이겨내지 못한 부부의 대표적인 모습이다. 서로를 의심하고, 집착하며, 결과적으로 양쪽 모두 불행해지고 만다.
대놓고 원한을 품은 귀신이나, 살인마가 등장하며 등장인물들을 쫓는 공포영화는 아니다.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미지의 존재 때문에 공포를 느낄 수 있는 장르를 ‘오컬트’라고 한다. <허니문>또한 굳이 따지자면 오컬트에 속한다. 그러나 오컬트 작품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미스터리함과 음산함이 없다. 때문에 <허니문>은 주연배우들의 열연에도 불구하고 B급 공포영화라는 틀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