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책상 위의 천사
An Angel At My Table, 1990

<내 책상 위의 천사>는 뉴질랜드의 가장 유명한 작가이자 시인 중 한 명인 자넷 프레임(1924-2004)의 어린 시절부터 작가 시절에 이르는 삶의 여정을 제인 캠피온 감독 특유의 서정적인 화면과 섬세한 묘사로 담아낸 수작이다.
제인 캠피온은 자넷 프레임이 1980년대에 출판한 세 권의 자전적 소설을 바탕으로 먼저 3부작의 TV시리즈를 만들었고, 이것을 합쳐 1990년에 영화로 개봉했다. 이 영화는 그 해 뉴질랜드에서는 물론, 토론토 국제 필름 페스티벌 국제 비평가 상, 베니스 영화제에서 은곰상 등 각종 상을 휩쓸며 작품성을 높이 인정받았다.

영화의 구성은 자넷 프레임의 소설과 마찬가지로 크게 3부작으로 나뉘며 순차적인 시간의 흐름을 따른다. 1부에서는 어린 시절에 처음 시와 문학의 세계로 빠져들게 된 계기부터 집을 떠나 교원대학에 입학하는 시점까지를 담고 있으며, 2부에서는 심리학 교수의 잘못된 진단으로 인해 정신병원에 가게 된 와중에도 소설을 출판하며 작가가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마지막 3부에서는 정신병원에서 나와 문학 장학금으로 영국과 프랑스, 스페인 등지로 여행을 다니며 글을 쓰는 삶을 그린다.

이렇게 자넷 프레임의 유년기에서 장년기에 이르는 평범한 듯 독특하고, 사소하지만 인상 깊은 삶의 궤적들은 눈 앞에 파노라마 사진처럼 지속적으로 펼쳐진다. 영화는 마치 어떤 역사보다도 개인적인 인간사가 가장 중요하며 모든 인간사는 돋보기를 대고 탐구할 가치가 있다는 듯, 그녀 삶의 구석 구석을 빠짐없이 섬세하게 표현한다.
예를 들어 유년기 시절 친구들의 인기를 얻기 위해 아버지의 돈을 훔쳐 껌을 사서 나눠주다가 도둑이라고 손가락질 받는 바람에 더욱 수줍어하며 자신의 세계로 빠져들게 되는 모습, 대학교로 가면서 노트에 자신의 사인을 연습하며 동경과 꿈에 부풀어 있는 모습, 선생님이 된 뒤 장학사가 방문하자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뛰쳐나가 어린아이처럼 우는 모습 등.

긴 러닝 타임 중에 그냥 무심히 넘겨 버리기 쉬운 이야기들도 많지만, 사실 영화는 한 장면도 버릴 것이 없다. 영화 속에서 발생하는 굵직한 사건부터 아주 사소한 사건들까지 모두 자넷의 자아형성과 삶의 방향에 있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감독은 섬세한 관찰력과 표현력으로 이 모든 일들을 담아낸다.
이로써 관객들은 그녀의 지나친 수줍음으로 인한 고립과 시와 문학의 세계로의 도피, 그 안에서의 자기 발견에 더해, 사람들의 무책임한 호의가 품게 하는 동경, 무감각한 잔인함이 만든 상처, 무지한 참견이 가져오는 시련들이 어떻게 그녀의 자아와 삶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지에 대해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된다.

영화는 타고난 예술성과 천재성을 갖춘 작가에 대한 우상화나 이상화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녀의 심한 수줍음과 우울에 대한 비난도 아닌 아닌 담담한 시선으로 그녀의 삶을 말한다. 따라서 한 인간의 내밀한 개인사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진다.
과장 없는 디테일하고 담담한 이런 영화의 화법 덕분에 관객들은 진실을 알게 된다. 그녀는 주변 사람들이 말하듯 정신분열증이 아니라, 그저 자의식은 강하지만 자신감은 결여되어있기에 지나치게 수줍어하고, 어린 시절 소중한 사람들을 잃어버린 탓에 신경증과 우울증을 겪고 있으며 사교적 기술이 부족한 것 말고는 별 문제가 없다. 다만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에 서투르면서도 사랑 받고자 하는 갈망이 너무 큰 나머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오해하고 이용하게 내버려 두는 것이 문제일 뿐이다.

한편 포레스트 교수나 콜린, 프랭크, 미국인 시인 등 그들의 거만함이나 무지함, 이기심이 어떻게 그녀를 절망에 빠지게 하는지도 드러나 있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원망이나 이들로 인해 초래되는 상처에 대해 신파조로 읊으려는 의도 또한 보이지 않는다. 영화에는 위와 같은 그녀 자신의 나약함과 타인의 어리석음이 모두 가감 없이 드러나 있다.
그토록 남과의 교류를 꺼리고 자신을 내보이려 하지 않았던 그녀의 개인적인 경험과 감정이 소설과 영화를 통해서 모조리 전달되는 것은 아이러니 하다. 그러나 그로인해 관객은 특유의 수줍고 예민한 내면과 주변 사람들 덕분에 상처와 시련을 겪지만 문학에 대한 열정과 순수가 훼손되지 않은 그녀를 만나게 되고 어느새 사랑에 빠진다.

담백하고 솔직한 화법, 영화가 그리는 몽환과 우울의 색채감과 섬세한 묘사에 집중하다 보면 금새 영화에 몰입하게 된다. 그 안에는 재능이 출중하지만 자신의 거대한 자의식과 예민한 감각, 주변 사람들의 제멋대로의 판단과 오해로 인해 고통 받았던 예술가의 수줍은 미소 띈 자화상이 그려져 있다. 소녀에서 여인, 작가로 성장해 가는 한 인간의 내밀한 내면과 만나면서 관객들은 자기 스스로의 삶과 상처, 자아와 꿈을 발견하며 공감하고, 굴곡진 삶 속에서도 굴복하지 않는 인간 정신을 보여주는 자넷의 모습에 용기와 감동을 얻는다.
자넷을 정상이라고 진단한 정신과 의사는 정신병원에 갇혀 있었던 암울한 시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그녀에게 자서전을 써보라고 권유한다. 하지만 아무리 힘들고 잊고 싶은 시절이었다 해도 현재의 나와 완전히 분리해서 버려 버릴 수는 없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그 시절을 담은 책은 인생이라는 책장에서 점차 빛이 바래가겠지만, 그 책이 책장에서 사라지는 일은 없다. 과거의 모든 시절을 견디고 살아내었기에 한 단계 성장하여, 현재 눈 앞에 펼쳐져 있는 삶에 기뻐하며 웃고 춤추며 문득 생각난 아름다운 문장 한 줄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는 것이다. 자넷의 자전적 소설과 이 영화는 잊고 묻어 버리고 벗어나기 위해서가 아닌, 과거를 품고 기억하면서도 웃어 보일 수 있는 강인함과 훼손 되지 않는 영혼이 우리 안에 있다는 사실을 밝히기 위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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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캠피온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
과장없는 연출력과 섬세한 묘사가 돋보이는 영화를 찾는 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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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소로우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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