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 단팥 인생 이야기
あん, An, 2015

최근 TV에서 쿡방, 먹방이 유행하면서 음식은 실패하지 않는 미디어 소재로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영화중에도 <식객>, <아메리칸 셰프> 등 다양한 음식이 선을 보이면서 관객들의 새로운 감각을 깨워주고 있다. 그리고 여기 어쩌면 소박하지만, 누군가에게는 특별할 수 있는 음식을 가지고 만든 영화가 있다. 바로 가와세 나오미 감독의 일본 영화 <앙: 단팥 인생 이야기>이다.

일본에는 빙수, 떡 외에도 팥을 넣어 만든 맛있는 디저트들이 아주 많다. 영화 <앙: 단팥 인생 이야기>에 나오는 것은 바로 ‘도라야키’이다. 도라야키는 밀가루, 계란, 설탕 등을 섞은 반죽을 둥글고 납작하게 구워서 두 쪽을 맞붙인 사이에 팥 앙금을 넣은 화과자의 일종이다. 원래는 한 면으로만 이루어진 빵에 앙금을 올려 반으로 접는 방식이었다고 한다. ‘도라야키’라는 이름은 타악기인 징과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해진다.
영화 전반부는 조용한 동네의 구석에 위치한 도라야키 가게의 풍경을 주로 보여준다. 도라야키 가게를 운영하는 주인 센타로는 파리만 날리는 가게의 현실에 어두운 표정으로 담배만을 줄곧 피워낸다. 손님이라고는 도라야키를 한 개씩 시켜놓고 종일 수다만 떠는 여중생들이 전부인 센타로의 가게에서 그는 그냥 하루하루를 지낼 뿐이다. 센타로는 매일 이 가게에 들리는 가정 형편이 어려운 소녀 와카나에게 모양이 삐뚤어져 팔 수 없는 도라야키를 나눠주는 일상을 계속해간다.

그러던 어느 날 센타로의 가게에 일을 하고 싶다며 찾아오는 손님이 있다. 바로 도쿠에라는 할머니였다. 센타로는 도쿠에 할머니가 아르바이트 하겠다는 것을 거절하지만, 그녀가 만들었다는 팥 앙금을 먹어본 후 그 맛에 반해서 그녀를 고용하게 된다. 도쿠에 할머니는 팥 앙금 덕분에 센타로 가게의 도라야키는 유명해서 금새 팔려 나가고, 영화가 진행되면서 센타로의 얼굴도 밝아지기 시작한다.
영화에서 아주 자세하게 나오는 팥 앙금 만드는 방법을 보면 그것은 마치 사람의 인생과 닮아있다는 것을 느낀다. 대충 만들면 제대로 된 맛이 나오질 않는 그 앙금은 하나하나 그 과정에 정성을 들여야 제대로 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밤새 불려서 색을 뺀 팥을 한 번 삶은 후, 떫은 맛이 나지 않도록 헹궈서 뭉근히 끓인다. 빨간색의 고운 팥물이 올라오면 다시 한 번 헹궈서 설탕을 넣고 팥이 설탕과 친해질 시간을 준다. 그리고 다시 끓이다 물엿을 넣고 한번더 끓여내는 일련의 과정들 중에도 주걱을 꼿꼿이 세워서 눌어붙지 않게 천천히 저어줘야하는 정성이 들어가야 비로소 잘 된 팥 앙금이 만들어진다.

마치 팥 앙금은 인생을 보는 것과 같다. 작은 실수 하나로도 딱딱해지고 눌어붙는 팥 앙금처럼 인생의 과정 과정은 정성과 마음을 다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전해준다. 그래야 떫지도 않고 깊은 맛이 우러나는 팥소를 만들 수 있다. 가와세 나오미 감독은 도쿄 교외의 나병 환자 요양소에 위치한 도서관에서 시나리오 작업에 매진했다고 할 정도로 영화에 많은 공을 들였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에 좀 더 현실감을 불어넣을 수 있지 않았나 생각된다.
이야기의 중심을 이끌어가는 도쿠에 할머니는 영화를 만들기 3년 전 세상을 떠난 가와세 나오미 감독의 양어머니를 떠올리며 완성했다고 전해진다. 감독은 영화 속 도쿠에 할머니 역은 일본의 국민 여배우인 키키 키린만이 소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시나리오 작업을 계속해갔고, 영화 스토리에 감명을 받은 키키 키린이 흔쾌히 출연을 허락했다고 한다. 영화 속에서 가난한 소녀로 나오는 와카나는 실제 키키 키린의 손녀라고 하니 다른쪽으로도 영화는 의미를 갖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가와세 나오미 감독은 자연스러운 연출을 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50년이 넘는 세월동안 다양한 연기를 해온 키키 키린에게도 그녀와의 작업은 시선한 경험이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 속에서 키키 키린을 포함한 배우들의 연기는 매우 자연스러워서 마치 실제 생활을 살짝 엿보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센타로가 손에 물엿이 잔뜩 묻어 어쩔줄 몰라하자 슬쩍 웃음 짓는 도쿠에 할머니의 모습이나 단팥이 너무 귀여워서 단팥에게 말을 건네는 장면들 또한 이런 자연스러운 연출에서 베어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은 항상 벽에 부딪히게 된다. 누구도 알지 못했던 도쿠에 할머니의 비밀이 밝혀지면서 영화는 겉잡을 수 없는 현실로 치닫게 된다. 하지만 그런 과정속서도 순간의 실수로 감옥살이를 해야 했던 센타로와 가난과 외로움 속에서 밝게 살아가는 와카나를 통해 우리는 도쿠에 할머니의 현실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마치 팥 앙금을 만드는 과정처럼 은근히 다가가서 조심스럽게 서로를 안아 그 상처를 치료해주게 된다. 영화의 반전이 되는 도쿠에 할머니의 비밀은 영화 속에서 직접 찾아내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