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 더 쎄임 문
La Misma Luna, Under The Same Moon, 2007

<언더 더 쎄임 문>은 돈을 벌기 위해 미국으로 밀입국한 엄마를 그리워하던 소년이, 엄마를 찾기 위해 자기가 살던 멕시코를 떠나 LA로 향하는 기나긴 여정을 담고 있는 영화이다.
재능이 출중한 아역배우 아드리안 알론소와 멕시코의 국민배우 케이트 델 카스틸로가 아들과 엄마로 출연하여 자연스럽고 실감나는 연기를 보여주었으며, 드라마 <어글리 베티>의 베티로 잘 알려진 아메리카 페레라, 그래미 상을 타기도 했던 멕시코의 밴드 로스 티그레스 델 노르테가 까메오로 출연하며 영화에 친근함과 흥겨움을 더해주기도 한다.

멕시코에서 외할머니와 함께 단둘이 살고 있는 까를리토스는 미국 LA에서 매주 일요일 아침 10시에 걸려오는 엄마 로사리오와의 통화를 손꼽아 기다린다. 벌써 4년째 엄마와 떨어져 지내고 있지만, 밀입국한 엄마가 자기를 보러 올 수는 없으니 엄마와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은 국제전화와 편지뿐이다. 생일을 앞두고 걸려온 엄마의 전화를 반갑게 받았지만 수화기 너머 엄마의 온기를 느끼기에는 너무나 짧은 순간만이 허락된다.

까를리토스의 생일잔치가 열린 날, 할머니는 불청객도 맞이한다. 로사리오가 매달 미국에서 보내주는 돈을 노리고, 까를리토스를 자기들이 돌보겠다며 소년의 삼촌과 숙모가 찾아온 것이다. 할머니는 그들을 쫓아내고 까를리토스를 안심시키지만 지병이 악화된 탓에 얼마 안가 소년을 두고 숨을 거두고 만다. 삼촌에게 보내질까 두려웠던 까를리토스는 친구에게 편지를 남기고 집을 떠나 엄마를 만나기 위해 LA로 향한다.

이렇게 시작된 멕시코판 엄마 찾아 삼만리의 여정은 역시나 결코 순탄치 않다. 까를리토스는 미국으로 밀입국하기 위해 미국 시민권자라는 생초보 브로커에게 여태 모은 돈을 맡기고 국경을 넘으려고 한다. 하지만 문제가 생겨 차량을 압수당하는 바람에 도망을 치고, 마약쟁이의 차를 얻어 탔다 팔아 넘겨질 위기에 처하기도 하고, 일을 하러 토마토 농장에 갔다가 이민국에 쫓기는 등 9살 소년이 겪기에는 너무나 스펙타클하면서도 현실적인 일들에 휩쓸린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떠나온 많은 이민자들의 고된 삶은 이러한 까를리토스의 여정과 로사리오가 생활하는 모습을 통해 드러난다. 그들은 소위 3D업종에서 일하면서 입에 풀칠하기도 힘겨워 하고, 밀입국자이다 보니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참아내야 한다.
언제 이민국이 들이닥칠지 모른다는 불안 속에서 살아가다가 그들에게 붙잡히면 묻지도 따지지도 못하고 강제 추방된다. 운좋게 빠져 나갔더라도 가족과 한참 떨어진 곳에서 의지할 곳도 없이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가고, 그래도 그들과 같은 하늘아래 같은 달을 보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만을 위안 삼는다. 이들에게 생존 그 이외의 다른 욕구나 감정은 사치에 가깝다.

그런데 까를리토스는 이 모든 현실을 겪으면서도 엄마를 찾겠다는 희망을 포기하질 않는다. 현실이 멕시코로 돌아가라고 아무리 얘기해도 소년은 앞으로만 전진하려 한다. 까를리토스는 이민국의 습격으로부터 함께 도망친 동료(?) 엔리께 아저씨와 LA로 갈 돈을 벌기 위해 접시를 닦으며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하고, 히치하이킹을 해서 만난 마리아치 아저씨들에게 여태 겪은 모든 일들이 가치 있는 일이라며 엄마를 만나기 위해선 뭐든지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마치 신앙처럼 굳건히 엄마를 만날거라고 믿으며 또랑한 눈망울로 어른들을 바라보는 소년을 통해 감독은 이민자들, 불법체류자들, 이주 노동자들의 삶을 위로한다. 특히 자기 자신보다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더 나은 삶을 만들어주기 위해서 고된 삶을 선택한 사람들을 말이다.

소년의 순수한 사랑과 바람은 아무리 현실이 고통을 주더라도 그 고통은 결코 헛되지 않을 거라는 희망, 지금은 떨어져 지내더라도 언젠가 사랑하는 이들과 결국 함께 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어른들에게 전한다. 저기 어디엔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사랑하는 사람은 삶의 등불이고 삶의 의지를 북돋아주는 존재들이다.
가진 것이 낡은 청바지와 얼룩진 티셔츠뿐이더라도 그 사람들의 존재를 떠올리면 마음만은 풍요로울 수 있을 것이다. 영화는 그러니 지금 지쳐 쓰러질 것 같더라도 그 사람들의 얼굴을 달에 그리며 버티자고 말한다. 희망의 내일은 그것을 믿는 사람에게 다가 올거라면서.

아직 아이다운 여린 마음도 가지고 있지만, 어려운 일을 겪어도 굴하지 않는 능동적이고 생활력 강한 소년의 캐릭터는 이와 반대로 현실에 치여 수동적이고 의기소침하게 행동하는 로사리오를 비롯한 어른들과 대비되며 강한 인상을 남긴다.
사실 스토리는 다소 짐작 가능하고 살짝 빈틈이 보이지만, 다수의 영화에서 감초 정도의 역할만 하는 아이 캐릭터가 능동적으로 영화를 이끌어가며 관객들과 어른들을 감화시키는 것은 보기 드문 매력이다.

또한 영화 속 “슈퍼맨도 불법체류자”라는 재치 있는 노래나, “도전 없는 삶은 의미 없지. 사랑을 위해 모든 역경을 넘을 수 있네”와 같은 마리아치들의 노래, 그 외에도 다양한 멕시코 밴드들의 노래와 멕시코 라디오 프로그램 등이 심심할뻔했던 영화에 활기를 더해준다.
현실적인 스토리 탓에 보여주지 못했던, 우리나라 못지 않게 흥겨움으로 충만한 나라 멕시코의 특성을 이렇게 OST를 통해 엿볼 수 있다는 점도 또 다른 재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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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소년의 엄마 찾기 여정이 궁금한 사람
멕시코나 멕시코 음악에 친근함을 느끼는 사람
삶에 굳은 의지나 희망이 필요한 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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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소로우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 <저작권자 ⓒ 원하는 모든것 파일조 filejo.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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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도대체 요 녀석을 어찌하란 말인가. 마음을 사로잡은 것도 모자라 감동까지 보너스 트랙으로 선사한 깜찍한 9살 소년. 혀 안에서 경쾌하게 꼬부라지는 까를리토~스(아드리안 알론소)라는 이름을 가지고, 엄마 찾아 멕시코에서 L.A까지 삼만 리 하는 어린 혈기. 간만에 정말 괜찮은 녀석 만난 것 같아 콩닥거리는 이내 마음 어찌할 바 없다.멕시코에서 외할머니와 단둘이 사는 까를리토스. 일요일마다 L.A로 돈을 벌기 위해 떠난 엄마(케이트 델 가스틸로)와의 전화통화가 유일한 희망이자 기쁨이다. 통화마다 엄마가 서있는 곳의 위치를 사진을 보듯 설명해 달라고 조르고, 마지막에 가서는 엄마를 향한 어린 아이의 그리움으로 눈물을 훔친다. 이런 상황에서도 꿋꿋했던 어린 소년은 갑작스런 할머니의 죽음으로 엄마가 있는 L.A에 가기위해 숨 막히는 자동차 뒷좌석 시트 아래 몸을 눕힌다. 시간은 오직 일주일 뿐. 하지만 그의 희망은 엄마와 함께 살고 싶다는 소박한 꿈이 어렵듯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가진 돈을 전부 잃고 겨우겨우 자신과 같은 이민자들의 도움을 받게 된 소년. 하지만 그는 엄마가 주었던 용기처럼 자신을 어린아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특유의 친근함과 절대긍정 마인드로 어른들의 세상에 들어선다. 우여곡절 끝에 동행하게 된 엔리께 아저씨(유지니오 다베즈)와 엄마를 찾는 여정은 그에게 세상을 보는 또 다른 눈과 이민자로서의 아픔. 그리고 진정한 어른이 되어가는 희망의 시간으로 변화한다. <언더 더 쎄임 문>은 멕시코 이민자들의 현실을 담고 있다. 많은 멕시코 인들이 국경을 넘어 미국으로 가고 있지만 무사히 국경을 넘는다 하여도 이들의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들은 생활이 어려운 노동자로 전락하여 차별과 노동착취라는 것에 직면하여 살아가고 있고 영화의 장면처럼 100미터 전방에서 들려오는 경찰차 사이렌 소리에도 숨을 죽인다. 처음으로 장편영화를 연출한 ‘파트리샤 리겐’ 감독은 온전하지 못한 이민자들의 현실에 소년과 엄마라는 애틋한 존재를 등장시켜 더욱 쓰린 마음으로 그들을 보게 하고, 어린아이의 순수함을 통해 아픈 현실을 투명하게 정화시킨다. 그리고 여정을 통해 겪게 되는 소년의 성장은 ‘지금보다 좀 더 나아질 수 있다’는 우리 삶의 희망 통로가 되어준다. 영화는 우리에게 낯선 멕시코 영화를 충분히 대중적인 방식으로 선보인다. 멕시코를 대표하는 배우들이 총 출동하고, 익숙하지 않았던 멕시코 음악과 소통할 수 있다. 특히 멕시코에서 가장 인기 있는 밴드인 ‘로스타이거스 델 노테’의 음악과 유쾌한 까메오 출연은 영화에 활기와 웃음을 안겨준다. 여기에 영화 중간 삽입된 ‘슈퍼맨은 불법체류자’라는 노래의 가사는 영주권도, 운전면허증도 없는 슈퍼맨은 자유롭게 하늘을 날고 당당히 미국에 살지만, 자신들은 인간임에도 자유로울 수 없는 현실을 이야기하며, 흥겹고 중독성 있는 멜로디 안에 그들의 삶이 얼마나 소외되고 있는지를 들려준다. 그리고 이런 모든 것들의 집합은 배우들의 연기력과 결합하여 정서적으로 공감할 수 있고 감동적이기까지 한 멕시코 영화가 된다. 영화 제목인 <언더 더 쎄임 문>은 소년과 엄마가 같은 달빛 아래 함께하고 있음을 표현한다. 애처로운 달빛은 그들이 함께 할 수 없던 4년의 시간을 버텨내는 존재이며, 서로의 부재를 위로하고 그리움을 이겨내는 수단이 된다. 그리고 멕시코와 미국의 달이 서로 다르지 않음은, 나아가 멕시코인과 미국인이 인간이라는 틀 속에서 다른 존재가 아님을 일깨운다.
2008년 10월 10일 금요일 | 글_김선영 기자 (firstwriterk@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