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란방
Forever Enthralled , 2008

아마 매란방이라는 이름 자체가 생소하게 느껴지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는 20세기 중국의 가장 유명한 경극 예술가 중 한 명으로, 전통의 틀을 바꾸지 않고 경극 예술을 시대에 맞게 혁신하려고 했던 사람이다. 오늘 소개 할 영화는 그의 찬란한 인생을 담은 영화 <매란방>이다.
매란방은 생소해도 영화 팬들 중에 <패왕별희>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영화 <패왕별희>는 현대의 중국을 살아가는 두 경극배우의 인생을 그린 작품으로, 이미 세상을 떠난 배우 장국영이 주인공을 맡아 국내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영화에 등장하는 작품인 패왕별희는 초나라의 패왕인 항우와 그의 연인인 우희가 마지막으로 이별을하는 장면을 그린 작품이다. 이 경극 작품은 영화 <패왕별희>에서도 중요한 소재로 사용되었는데, 영화 속에서 장국영이 맡았던 역할의 모델이 된 것이 바로 매란방이다.
1894년 태어난 매란방은 중국에서 경극을 융성하게 한 4대 명단에 들 정도로 유명한 경극배우이다. 명망있는 경극 가문에서 태어나 자신이 가진 천부적인 재능과 아름다운 외모를 활용해 많은 중국인들의 가슴을 울리는 연기를 보여줬던 그는 결국 최고의 스타로 우뚝 서게 된다. 하지만 스승과의 갈등, 특별한 사랑을 겪으며 자신이 받은 사랑을 누군가에게 돌려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결국 그는 누구나 꿈꾸는 평범한 삶을 꿈꾸게 된다.
매란방의 조부와 부친은 모두 유명한 경극 배우였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매란방은 8살부터 연기를 배우기 시작해 11살에 무대에 나가기 시작했으며, 20살 무렵에는 이미 명배우로서 자신의 이름을 떨쳤다. 미국과 소련 등의 외국을 순회하며 공연함으로서 중국의 중요한 문화 유산인 경극의 존재와 진가를 널리 알리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또한 그는 중일전쟁 중에는 홍콩에 은거하면서 잠시 무대를 떠나있었지만, 항일투쟁의 선두에서 활약한 바가 있다. 이후 다시 무대에 복귀하여 경극의 전통을 지키면서도 개혁에도 힘쓰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영화는 매란방의 일생을 보여준다. 뛰어난 재능과 아름다운 외모, 목소리를 갖춘 채 태어났고, 어린시절부터의 연습으로 섬세한 손짓과 디테일한 연기를 보여준 그는 자신의 재능을 발휘해 스타로 발돋움하게 된다. 그리고 그의 인생은 남장 전문배우인 맹소동이 나타나면서 조금씩 바뀌게 된다. 무대 위에서 매란방과 맹소동이 나눈 교감은 사랑으로 점점 발전하게 된다. 어린 시절부터 주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살았던 매란방은 받기만한 사랑에 익숙해진 자신을 조금씩 바꿔나가기 시작한다. 사랑을 주는 것 또한 아름다운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그는 맹소동에게 사랑을 주는 평범한 삶을 꿈꾸기에 이른다.
하지만 그의 운명은 경극으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경극을 위해 살아야만 하는 운명을 타고난 그는 브로드웨이 진출을 통해 더 넓은 세계 무대로의 도약의 길에 서게 된다. 운명이라고 생각했던 사랑과 경극 배우로서의 삶 사이에서 결국 매란방이 선택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펼쳐지게 된 것이다.
장국영이 주연을 맡은 영화 <패왕별희>와 여명이 주연을 맡은 영화 <매란방>은 똑같이 천카이거 감독의 영화이지만 조금은 다른 모습을 보인다. 영화 <패왕별희>는 격변하는 시대 속에서 그 소용돌이에 휩쓸리는 예술가들의 비극적인 삶과 그 안에서도 꺾이지 않는 예술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영화 <매란방>은 조금 더 매란방의 인생에 집중하는 영화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 <패왕별희>와 비교해보면 매란방을 중심으로 그의 주위에서 벌어지는 여러가지 사건들을 나열해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패왕별희>를 인상깊게 본 사람이라면 조금은 아쉬움이 남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영화 <매란방>자체도 의미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여명의 아역을 맡은 배우의 연기, 매란방의 스승역인 손홍뢰의 훌륭한 연기나 전체 영화를 관통하는 매란방의 백부의 편지는 영화를 흥미롭게 이어가는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천재로 살아간 경극배우 매란방의 삶과 영화 속에 담겨있는 메시지를 찬찬히 읽어가다보면 영화를 통해 잔잔한 감동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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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의 팬 이라면...
<패왕별희>를 인상깊게 본 영화 팬이라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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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이현아(파일조 패널 리뷰어)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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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부는 경극 배우였다. 그는 배우로서 명성을 누렸고, 최고의 명예를 얻었다. 하지만 백부는 광대였다. 광대란 명예를 쌓아 올려도 한 줌 바람에 허물어지기 좋은 운명에 불과했다. “경극배우로 성공해도 멸시를 벗어날 수 없다. 무대를 떠나라.” 백부의 유언장을 읽어 내려가던 어린 원화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린다. 연기를 가르칠 선생님이 왔다. 백부는 원화에게 무대를 떠나라 했지만 운명은 원화를 무대 위로 올려 보낸다. <매란방>은 배우로서의 삶을 면치 못했던 어느 한 사람의 운명을 담아내기 위한 그릇이 된 이름이다. 중국의 전설적인 경극 배우 ‘매란방’의 실존적 삶을 영화화했다는 <매란방>은 한 인물의 인생 속에서 격정적인 사건을 추출해 서사적으로 나열한다. 페이드 인과 페이드 아웃의 반복으로 진전되는 상황은 3번의 점프컷을 통해 크게 분할된다. 유년시절 스승으로 모시던 대배우와의 대결, 성장한 매란방(여명)과 맹소동(장쯔이)의 만남과 이별, 그리고 미국 진출 이후 일본과의 전쟁에 휘말린 매란방의 역경. 3조각으로 나뉜 서사엔 저마다 극적인 사연이 존재하며 이는 <매란방>이란 스토리텔링을 분할하는 카테고리처럼 질서정연하게 나열된다. 그 중심엔 어김없이 ‘매란방’이 있다. 그러나 그는 사건의 근원이 되는 주체라기 보단 모든 사건에 연루된 객체로서 그 자리를 지킨다. 사건의 배경이 되어 병풍처럼 존재한다. 물론 유년 시절의 서사는 매란방이라는 인물의 기초적인 서사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흥미를 자극한다. 서양연극을 공부했다는 구여백(손홍뢰)은 원화를 만난 뒤 관료직을 버리고 원화의 정신적 지주가 된다. 결국 타성에 젖은 경극 배우들의 전통적 관념에 대항하고자 하는 구여백에게 감화된 매란방은 자신의 스승과 대결을 펼친다. 물론 그 대결의 주체는 매란방이 아니다. 진보적인 구여백과 ‘경극의 대왕(伶界大王)’이라 지칭되던 보수적인 대배우의 대립 안에서 매란방은 승부를 결정짓는 도구로서 존재할 뿐이다. 하지만 적어도 그 국면 안에서 매란방이 느끼는 정서적 애환이 백부의 유언을 환기시키며 일종의 감흥을 부른다. 대배우의 쓸쓸한 몰락과 이를 지켜보는 매란방의 부채와 자신의 미래에 대한 어떤 예감이 매란방의 감정을 주체적으로 해석하게 만든다.그러나 실질적으로 <매란방>에서 묘사되는 ‘매란방’은 전반적으로 반사율이 낮은 인물이다. 공허하며 한편으로 단조롭다. 인물 자체에 대한 매력을 느낄만한 여지가 많지 않다. 흥미로운 건 매란방의 주변부를 차지하는 서사이며 그 서사에 참여하는 주변인들이다. 씬의 감정을 지배하는 건 대배우이거나 맹소동이거나, 일본군 장교다. <매란방>에서 ‘매란방’은 주체의 위치를 선점하면서도 주체적인 감정을 야기시키지 못한다. 실제 인물의 서사가 그러했는지 알 길이 없지만 적어도 영화상에서는 그렇다. 좀 더 엄밀히 말하자면 유년 시절 이후 여명이 연기하는 매란방의 서사가 이에 해당한다. 유년 시절을 지나 성인이 된 시점부터 매란방이란 인물의 관점은 흐리멍텅해진다. 매란방은 대단한 사연 속에서 감정을 지배하는 역할을 선점하지 못한 채 그저 존재한다. 유년 시절 이후로 나열되는 두 번의 큰 사건 속에서 매란방은 무색무취의 형태로 그저 늙어갈 뿐이다. <매란방>은 주인공을 날려버린 배경 사진과 같다. 그 여백에서 발견되는 이미지나 주변부에서 고조되는 감정에 흥미를 느낀다면 다행이겠지만 매란방에게 흥미를 느낄 수 없는 매란방 이야기라는 점에 의문을 품기 시작한다면 감상 자체가 텅 비는 꼴을 면치 못할 가능성이 크다. 다만 찰리 채플린도 영감을 얻었다는 매란방의 실제연기는 확인할 길이 없더라도 경극이 소리를 절제한 무대극으로서 무성영화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지 정도는 가늠할만하다. 그런 한편으로 영화는 매란방의 삶이 관객에게 어떤 영감을 주지 못할 정도로 심심하다는 것을 확신하게 만든다. ‘매란방’이 <패왕별희>의 데이(장국영)가 연기한 실존인물이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두 인물이 경극배우라는 점에서, <매란방>과 <패왕별희>는 누군가에게 비교하고 싶어지는 영화가 될지 모른다. 물론 그것이 필요한 수순일지는 의문이다. 단지 두 영화가 평행선에 놓기 좋은 비교군의 조건을 지닌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경극을 소재로 한 첸 카이거 감독의 작품이란 공통분모가 선명한 까닭이다. 하지만 단순히 여명과 장국영의 연기력을 비교한다거나 두 작품의 우열을 논한다는 건 사실상 부질없는 일이다. 어떤 면에서 <매란방>은 <패왕별희>보다도 훌륭한 기능적 완성도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실존적 재현과 허구적 창작의 너비만큼이나 두 작품은 엄밀히 전혀 다른 이야기다. 애초에 타고난 환경과 천성이 다른 두 인물의 서사에 우열의 잣대를 부여한다는 건 어딘가 무지막지한 태도다. 사실 118분 가량의 상영시간으로 국내에서 개봉될 <매란방>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어떤 면에서 무색한 일처럼 느껴진다. 국내 수입사에서 가위질 했다는 30분의 서사를 확인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첸 카이거 감독의 승인을 얻었다지만 감독 스스로도 편집본을 확인하지 못했다는 결과물을 놓고 이야기한다는 건 어딘가 무색한 일이다. 실질적으로 영화상에서도 무성의한 편집의 결과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매란방>은 위대한 경극배우, 좀 더 포괄적으로 한 시대를 풍미하던 예술가가 인생과 세월의 풍파 속에서 어떻게 견뎌내는가를 재현하는 드라마다. 30분이 잘려나간 국내개봉판의 모습에서 매란방의 수난이 오버랩된다. 마치 그것은 문화적인 정서나 이해 차이로 경극의 묘미를 느끼지 못하고 이를 멸시하는 타지인들의 무지한 태도와 다름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2009년 4월 2일 목요일 | 글_민용준 기자 (kharismania@movis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