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시선
Senyap , The Look of Silence , 2014

영화 <침묵의 시선>을 보니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의 <액트 오브 킬링>이 기억난다. 1960년대 인도네시아, 군부를 장악한 쿠데타군은 반공이라는 이유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학살했다. 그 시기 학살의 주체였던 사람들은 지금 인도네시아 정부의 핵심이 되어 있었다. 이 작품은 학살에 대한 죗값은커녕, 국민 영웅으로 추대 받으며 호화로운 삶을 누리는 그들을 다시 한 번 찾아가는 이야기다.
감독은 당신의 학살을 스크린에 담아 재현하기를 제안하고, 그들은 우리의 역사를 알려줄 좋은 기회라며 영화 제작을 허락한다. 그러나 촬영이 진행될수록 상황은 극단적으로 치닫고, 이내 영화 촬영은 그들 자신의 죄를 보여주는 속죄의 시간이 된다. 수많은 관객들이 그 모습에 경악하고, 놀라워하고, 슬퍼하며 찬사를 보냈다. <침묵의 시선>은 바로 그 <액트 오브 킬링>의 후속작이다.

<액트 오브 킬링>이 가해자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죄를 느낄 수 있게 했다면, <침묵의 시선>은 가해자와 피해자를 만나게 함으로서도 충격을 선사한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가해자와 피해자의 후손들이다. 대부분의 죄인들이 그렇듯, 가해자들은 자신들의 죄를 과거의 일로 미룬다. 모른다는 말로 일관한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살아 있다. 그들의 후손들이 과거의 비참함을 잊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까 모른다는 말로 피할 수는 없는 것이다.
심지어 인도네시아 공교육에서는 아이들에게 군부독재의 학살이 지극히 합리적이었고, 있어야만 했던 정의로운 일이라고 가르친다. 공산주의로 몰려 죽었던 수백만의 사람들을 그런 식으로 매도해버린다. 때문에 오늘날 피해자들은 침묵할 수밖에 없다. 침묵으로서 견디는 방법밖에는.

영화 <침묵의 시선>을 보니 충격과 더불어 황당함까지 느껴졌다. 과거 학살의 주체자들은 물론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뉘우치기도 하지만, 개중에는 자신이 한 일을 합리화하며 자랑거리로 추억하는 사람도 있었다.
오늘날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이 비단 인도네시아에만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도. 근현대사를 되짚어보면, 지금껏 국가를 막론하고 언제나 있어 왔다. 복잡하게 얽힌 이해관계 속에서 자행된 탄압이 부끄러웠다. 그리고 마음이 아팠다.

주인공 아디는 군부독재 시절에 형을 잃었다. 장이 다 튀어나올 정도로 심한 상처를 입은 채 집까지 도망쳐왔지만, 군인들이 형을 병원에 데려간다며 가족들을 속였다. 형은 다시 끌려갔다. 이번에는 도망칠 수 없었다. 아디는 두 번 다시 형을 보지 못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형처럼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이 수없이 많음을 깨닫게 된다.
물론 가해자들은 뉘우치지 않는다. 자신들의 행위가 지극히 합당하고 정의로웠음을 주장하며 자랑스러워한다. 그들의 힘이 아직까지도 인도네시아 정치에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에, 이 나라에서 살아가는 피해자들은 작은 목소리조차 낼 수 없다.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거나, 책임을 윗선 혹은 국가에게 미루는 그들의 뻔뻔함이 믿어지지 않는다. 학교에서는 백만 국민의 죽음이 있어야만 했었던 일이라고 가르친다. 그런 교육이 끊임없이 되풀이되고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데 아무도 책임이 없다. 아무도 죄를 짓지 않았다. 그러면 그 많은 사람들이 왜 죽었으며, 그들의 가족이 왜 오늘날까지 고통 받아야 하는가?

백만 명이다.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수까지 가늠하면 그보다 더할 테고. 그토록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이 오늘날까지 밝혀지지 못한 채, 가해자들이 호화로운 삶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이 믿을 수 없었다.
진정한 속죄를 원하는 피해자들과 모르쇠로 일관하는 가해자들의 모습이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반복된다. 분노가 켜켜이 쌓여간다. 마지막에는 과연 저들이 제정신인가, 자기들만의 비이상적인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게 된다. 조용한 공간에 울려 퍼지는 그들의 목소리가, 숨소리가, 마음 한 구석을 파고든다.

아들을 죽인 사람과 한 동네에 사는 기분이 어떠냐고 물었다. 나이든 여인은 대답이 없었다. 주름진 얼굴에서는 한 조각의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고통에 무뎌졌다. 그러나 무뎌졌다고 해서 없는 것이 아니다. 없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당시의 학살자들은 있었던 일을 덮으려 하고 있었다. 자라나는 다음 세대에게 사회가, 교육이, 인식이 그러하다고 가르침으로서. 그래서 침묵이다. 힘없는 피해자들은 침묵으로서 그들에게 대응한다.

독재의 그림자는 오늘날까지 걷히지 않았다. 감독을 제외한 대부분의 출연진, 제작진들의 이름이 익명으로 처리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에서조차 진실이 드러나는 것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그들의 힘은 아직도 건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나섰다. 진실이 밝혀지는 데 한 걸음 더 다가갔다. 위험을 무릅쓰고 과거의 현장으로 걸어 들어간 그들의 용기가 놀랍다. 그리고 찬사를 보낸다. 인도네시아의 비극을 세상에 알려준 그들에게 고맙다.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마음 아프고 지켜보기 힘든 이야기지만, 이 이야기가 여기서 끝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더 듣고 싶고, 더 많이 알고 싶다. 비단 인도네시아 한 국가에 한정된 비극이 아니기 때문이다. 잘못된 독재는 오늘날까지 존재한다.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없어지지 않을 비극이기도 하다. 때문에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날, 거기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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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장르를 좋아하는 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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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hmj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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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시선>은 <액트 오브 킬링>에서 파격적인 설정으로 주목 받은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의 후속작이다. 영화는 전작과 마찬가지로 인도네시아 대학살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이번에는 가해자 대신 피해자를 중심으로 역사의 상흔을 되짚는다. 과거에 악행을 저지르고도 자기 합리화에 능한 건 안타깝게도 인류 역사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침묵의 시선>이 특별한 이유는 피해자가 가해자 앞에서 목소리를 낸 순간을 카메라로 직접 기록했다는 데 있다. <침묵의 시선>은 위험을 무릅쓴 피해자의 용기가 빛나고 범행을 덮어두려는 가해자의 회피가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바로 그 순간을 목도한다. 영화는 과오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 왜 희망이 없는지에 관한 어려운 담론을 103분의 짧은 시간 안에 가장 명징한 방법으로 보여준다. 가해자들은 과거를 들추어내려는 아디를 비롯한 피해자의 가족들에게 무조건적인 평화를 강요한다. 그리고 가해자들의 요구는 과거의 피해와 상처를 인정받지 못한 피해자들에게 침묵이라는 또 다른 아픔만 남긴다.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은 녹록지 않은 담론을 쉽게 풀어내는 능력만큼이나 기억에 남을 강렬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탁월한 이야기꾼으로 오프닝부터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시각적으로 흥미로운 순간들을 연출한다.
2015년 8월 27일 목요일 | 글_최정인 기자 (jeongin@movis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