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버트 그레이프
What"s Eating Gilbert Grape, 1993

<길버트 그레이프>는 피터 헤지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한 짜임새 있는 스토리와 주조연 배우들의 인상적인 연기가 돋보이는 영화이다. 비극적인 가족사와 동생의 정신지체로 인해 고통 받으면서도 끝까지 가족을 지켜내려고 전력을 다하는 청년 길버트의 내적인 갈등과 애증적인 존재인 가족의 무게에 대해 다루고 있다.
막 커리어를 시작했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그해 아카데미상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르게 한 천재적인 연기와 이 영화 이후 필모그래피가 한층 풍성해진 조니 뎁의 풋풋한 시절을 감상하는 재미도 있다.

집과 가족, 그 무게에 대해
집이란 나의 일상 생활과 추억이 점철되어있는 편안하고 안락한 요람인 동시에, 별 볼일 없는 잡동사니들로 한없이 무거워져 아무데도 떠날 수 없도록 붙잡아 두는 거추장스런 등딱지 같은 것이기도 하다. 또한 그 안에서 살고 있는 가족이란 내 모든 것을 받아들여주며 애정과 의지할 언덕을 주는 든든한 존재인 동시에 의지박약과 기이한 행동으로 나를 괴롭히고 아무 대가 없이 내 책임, 돌봄, 희생을 뻔뻔하게 요구하는 지겨운 존재들이기도 하다.
길버트 그레이프에게 집이나 가족은 후자에 가깝다. 17년전 목매달아 자살한 아버지가 손수 지은 집은 녹슬고 낡아빠졌고 그 안에 가치를 영구 보존해야 할 만큼 귀중한 것은 없다. 오랜 세월 동안 그 공간에서 살아온 가족들이 분비해낸 고단하고 초라한 생활의 흔적 말고는. 또한 어머니는 아직 젊은 청년인 길버트에게 의지가 되기는커녕 아버지의 자살 이후 500파운드로 불어나 모든 일을 자식들에게 미루고, 누나 에이미는 얼마 전 직업을 잃었고, 정신지체가 있는 어니는 매일 사고를 치며, 막내동생 엘렌은 외모에만 관심을 보이며 길버트에게 시비를 걸기 일쑤다.

이렇게 길버트의 집과 그 안에 살고 있는 가족들은 그를 엔도라라는 작은 마을 밖으로 옴짝달싹 못하게 한다. 가끔씩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순간들이 덮쳐와 이 모든 것들을 홀연히 떠나 버리고 싶은 욕구가 일게 만들곤 하지만 그는 그런 충동들을 매번 목구멍 아래로 집어 삼킨다. 그는 그렇게 다시 묵묵히 집수리를 하고 어니를 돌보며 하루 하루 조금씩 쪼그라들고 있다. 영화의 섬세한 연출과 조니뎁의 깊이 있는 연기 덕에 문제 많은 가족들과 궁핍한 생활로 인해 길버트가 느끼는 절망, 머물러야 하는 책임감과 떠나고픈 마음 사이에서의 갈등은 관객들에게 담담하지만 절절하게 전달된다.
붙박이 인생, 떠돌이 인생을 만나다
그런데 이처럼 평생을 엔도라 밖으로는 나가본 일도 없이 붙박이처럼 살면서 무슨 일이든 인내해온 그의 일상에 변화가 찾아온다. 이혼한 부모님 사이를 전전하면서 살다가 이제는 할머니와 전국을 캠핑하며 떠돌아 다니는 캠핑족 소녀 벡키가 그 앞에 나타난다. 벡키는 길버트가 일하는 작은 식료품점에서 물건을 사는데, 길버트가 이를 벡키의 캠핑카가 있는 곳까지 배달해주면서 둘은 처음 만나게 된다.

점차 길버트와 친해지게 된 벡키는 그에게 넓은 시각과 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물음을 제시한다. 세상과 하늘이 얼마나 무한한지 감탄하고, 자신이 원하고 하고 싶은 일이 뭔지 묻는 그녀 덕에 길버트는 자기 삶을 돌아보게 된다. 그는 절망과 우울로 가득 찬 채로 자신을 무겁게 짓누르던 집과 그 안의 가족들이, 끝없이 뻗은 수평선과 드넓은 하늘 아래서 얼마나 작고 초라한지 깨닫는다.
그리고 가족이 아닌 본인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이렇게 늘 가족이 우선이었던 그에게 세상의 무한함을 보라며 시야를 열어주고, 자신의 욕구와 갈망을 궁금해하며 이를 받아들여주겠다는 벡키가 나타나자 그의 내면에 조금씩 파문을 일어난다.

그래도 떠날 수 없는 이유
한편 어니의 생일 잔치 전날, 길버트는 말 안 듣는 어니의 뺨을 세게 때린 뒤, 집을 뛰쳐나오고 만다. 갈 곳이 없어 결국 벡키에게 간 길버트는 가정사에 대해 모두 털어 놓고 위로를 받는다. 다음날, 어니의 생일잔치에 길버트는 겸연쩍은 모습으로 쭈뼛거리며 나타난다. 어니는 길버트가 등장하자 나무 위로 올라가고 이를 알아챈 길버트는 평소대로 “어니가 어디갔지?” 놀이를 한다. 어니는 다 용서했다는 듯 웃으며 길버트에게 뛰어든다. 어니의 용서에 길버트도 겨우 미소를 찾는다.
어머니는 길버트에게 왜 다시 돌아 왔냐고 묻고는, 길버트의 수고를 몰랐다며 미안해한다. 그가 엔도라의 언저리까지 뛰쳐나갔다 결국 집으로 돌아오고야 만 이유는 뭘까. 아마도 무책임하게 가족들을 떠났다가 자살하여 이 모든 고된 현실의 원인을 제공한 아버지처럼은 되지 않겠다는 생각이리라. 또한 가족들이란 때로 참을 수 없이 밉고 부끄럽고 짜증나는 한 무더기의 짐짝들이지만, 한편으론 늘 애정과 일상을 나누었던 살가운 이들이며, 내가 잘못하고 부족하더라도 괜찮다며 용서하고 받아들여주는 존재들이므로 결국은 사랑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일 것이다.

짐을 지고도 떠날 수 있다
길버트가 이렇게 집으로 돌아와 아무리 고달프더라도 어쨌든 가족을 지키겠다는 결심을 보이자 마자, 그리고 그의 어머니가 변하겠다는 결심을 하자마자 비극이 닥치는 것이 의미심장하다. 그의 어머니는 새 출발과 변화의 의지를 보여주고는 그간 최선을 다해 가족을 돌보며 ‘좋은 사람’이 되어준 길버트에게 보답하려 한듯하다.
길버트에게 가족이란 짐을 덜어줄 테니, 이제는 네가 원하는 삶을 살아도 좋다는 허락을 내리는 것 같기도 하다. 아버지가 목매달아 자살한 지하실의 축대가 말썽을 일으키며 기울어져가던 집과, 아버지의 죽음으로 자신을 잃어버린 채 자식들에게 짐을 지웠던 어머니. 그 무거웠던 과거의 굴레는 그렇게 불과 함께 정화되고 스러진다.

“내 가족과 삶을 계속 짊어지고 가겠다. 하지만 그렇게 결심했더라도 힘들고 짜증스러울 때가 있다. 그렇더라도 나는 이기적이거나 무책임하기 보다는 좋은 사람이고 싶다.“ 그의 이런 마음은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영화 마지막 장면은 영화 시작의 장면과 비슷하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길버트가 “우린 어디든 우리가 원하면 어디든 갈 수 있다”라고 말한다는 점과 그가 조그마한 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가족은 짐이긴 하지만 이제는 한결 가벼운 짐이다. 여전히 가족들을 돌봐야 할지라도, 그들과 함께 변화하고, 새 출발을 하고, 떠날 수도 있으며, 그 변화를 가족들 또한 돕고 응원하고 결국엔 받아들일 것임을 그는 이제 안다. 인생을 살면서 벗어날 수 없는 짐을 지고 가는 듯한 답답함을 느낄 때가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행복과 변화와 떠날 수 있단 가능성에 사망 선고를 내릴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 짐은 그저 무게가 나가는 물건이나 지겨운 책임에 불과하지 않고 때로는 삶에 의욕을 불어넣어주거나 애정과 기댈 곳을 마련해주거나 행복을 불어넣어 주기도 한다. 또 그 짐에 짓눌릴 것 같다면 다른 소중한 사람이나 가족과 그 짐을 나누면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가볍게 만든 짐을 지고 사는 것은 아무 짐도 목적도 없이 떠돌며 사는 삶의 불안과 허무에 비해 나쁠 게 무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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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조니뎁의 젊은시절을 감상하고 싶은 사람
휴머니즘이 느껴지는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
문제 많은 가족들이 있는 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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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소로우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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