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거게임 : 판엠의 불꽃
The Hunger Games, 2012
헝거 게임의 진정한 무서움
아직 미성년에 불과 한 24명의 아이들이 양손에 무기를 들고 서로를 죽인다. 이 엄청난 살육전은 "전쟁"이나 "대학살"도 아닌 "게임"으로 불린다. 이름하여 HAPPY HUNGER GAME! 이 행복한 헝거 게임은 지배자들이 민중을 통제하는 수단이다. 수천에 달하는 사람들을 모아두고 학살하는 것 보다 더 잔인한 방법으로 민중들에게 "두려움"을 각인시킨다. 이 게임의 진정한 무서움은"승자"가있다는 사실이다. 캐피탈의 대통령 스노우(도날드 서덜랜드 분)의 대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는 헝거게임이 왜 승자를 만드느냐에 주목해야한다.
그건 바로 아주 작은 "희망"을 주기 위해서다. 우리의 아들 딸은 살아 남을지도 모른다는 아주 작은 희망이 헝거게임 자체의 부조리를 가려버린다. 1박 2일에서 "나만 아니면 돼!"를 외치던 순간을 기억하는가? 이 복불복 게임을 왜 해야지 생각하기 이전에 내 자식은, 우리 구역 아이는 이길지도 몰라라는 아주 작은 희망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삶과 죽음이 달린 게임에서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24인에 뽑힌 아이들이 무조건 죽는 것이 아니라 우승자는 살아 남는 상황에서 헝거게임 자체의 부조리에 반기를 들 "의지"가 생기기란 쉽지 않다.
특히 영화 처럼 특정 구역내의 일시적 반란이 발생할 수도 있지만, 구역간 경쟁 게임이라는 설정 덕분에 "구역연 대 성격의 반란"이 사실상 형성되기 어렵다. 강제로 뽑힌 아이들은 구역의 대표로 포장되며 이런 이미지는 부지불식간에 구역간 갈등을 형성한다. 이래도 저래도 죽는 다면 힘을 합쳐 죽기살기로 덤비겠지만, 이러면 죽는데 저러면 우리 구역의 아이가 살지도 모른다니... 이 게임은 정말 치밀한 통제 수단임이 분명하다.
연출에 대한 아쉬움
<헝거 게임: 판엠의 불꽃>을 보며 우리는 자연스럽게 켓니스(제니퍼 로렌스 분)의 편이 된다. 켓니스와 피타가 살아남는 마지막 엔딩을 보며 묘한 안도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게임은 24인의 참가자들이 모두가 희생양이다. 이미 게임에 들어온 이상 누구도 죽이지 않겠다고 다짐하든 그 살육전을 즐기며 나라도 살아남겠다고 다짐하든 하나 같이 "삶"을 갈구하는 생명체일 뿐이다. 이미 헝거게임 속에 들어선 이상 살인은 더 이상 죄가 아니다. 우리가 살기 위해 동물을 죽이는 것과 다를게 하나도 없다. 우리 사회에서는 서로를 죽이지 않는 것이 룰이라면 게임 속에서는 죽이는 것이 룰일 뿐.
헝거 게임 속 24인의 아이들은 그 룰의 피해자다. 살기위해서 서로 죽고 죽인다. 진정으로 잘 못 된 것은 헝거게임 자체지 그 속의 아이들이 아니다. 소설은 어땠는지 몰라도, 영화는 이런 점을 상기 시키기엔 약간 부족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아군과 적군이 뚜렷하게 구분되어 있었고 각 참가자들의 죽음의 무게도 서로 다르게 다가온다.가령 루의 죽음은 순결한 최후처럼 그려졌지만 다른 참가자들은 권선징악의 냄새를 풍기는 죽음도 있었고, 죽음이 제대로 다뤄지지 않은 참가자도 많았다. 결과적으로 보면 우리편 처럼 연출된 캣니스도 세 참가자의 목숨을 빼앗았다. 감독이 좀 더 신중하게 24인의 참가자들을 다뤘어야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게임이 시작되자마자 절반가량의 참가자가 죽는 살육전은 이미 등장인물의 대사를 통해 예견된 사태지만 화면을 통해 전달되는 충격이 상당하다. 묘하게 슬픈 음악과 정돈되지 않은 카메라 앵글 그리고 죽은 아이들을 무덤덤하게 바라보는 시선까지. 감독은 어딘가 맞지 않는 음악과 화면 그리고 리듬을 한 씬에 담아서 헝거게임 자체의 부조리를 적나라하게 까발리는 미장센을 구축했다.
그래서 난 게임을 시작하기 이전까지의 연출이나 플롯이 더 좋았다. 같은 구역 출신이지만 서로 싸워야하는 두 남녀사이의 긴장감과 참가자들 사이의 보이지 않는 갈등을 영상언어로 잘 표현했다. 액션 범벅일 것으로 예상했던 영화는 나의 짐작과 달리 진중한 감정 톤을 유지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헝거 게임을 시작한 순간 부터는 그 잔혹성은 <배틀로얄>의 아류정도에 불과했고, 로맨스도 <브래이킹던> 발끝에 겨우 미칠 정도였다. 즉 게임이 시작 된 이후의 영화는 켓니스 한명에게 너무 집중한 나머지 관객들의 감정마저 그녀와 동조하게 만들어버렸다. 조금은 관찰자적인 시선을 유지하며 이 비극을 극대화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리고 또 한 마디 덧붙인다면, 마지막 장면은 뭐지.. 하나의 쇼트를 그냥 잘라버린 느낌이었다.
의외의 수확
<엑스맨: 퍼스트클래스>에서 봤던 그 재니퍼 로랜스가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땐 뭔가 어색하고 목에 감은 스카프까지 완전 최악이라고 생각했는데 <헝거 게임: 판엠의 불꽃>에서는 정말로 배역에 잘 맞는 느낌이었다. 원작을 읽으신 분들은 하나같이 미스 캐스팅을 외쳤지만,소설을 아직 읽어보지 못 한 내 눈에는 캐릭터와 배우의 호흡이 좋았다.
적당히 굳세고 적당히 여린 이미지를 포괄적으로 품고 있는 페이스가 켓니스에 어울리더라. 일단 지금까지 금발을 고수해왔던 그녀가 흑발로 스크린에 등장하니, 이건 정말 괜찮은 신인배우를 만난 기분이었다.
현실은 더 잔인해
<헝거 게임: 판엠의 불꽃>이 현재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연상시키는 것은 당연지사다. 헝거게임은 서로가 죽고 죽인다는 점에서 훨씬 더 잔인해 보이지만 내 눈에는 현실의 오디션 프로그램도 전혀 다를 바가 없다. 자원자들이 참가한다는 점에서 본질부터 다르다고 볼 수도 있지만, 노래도 잘하고 능력도 있는 참가자들이 오디션 SHOW에 참가하는 이유를따지고 보면 사실상 반강제나 다름없다.
현실의 사회는 노래잘하는 사람, 춤 잘추는 사람을 반기지 않는다. 학교 교육은 일단 "지성"을 가장 우선시 하며 예능을 천대한다. 자연스레 노래하고 싶은 사람, 춤추고 싶은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정상적"이라 불리는 교육과정을 거칠 수 없다. 그러니 그들에겐 "최후의 1인=슈퍼스타K=K팝스타=위대한탄생=더 보이스"라는 희망의 타이틀만이 남는다. 그건 지원이라는 이름하에 아이들을 교묘하게 이용할 뿐이다.
수억에 달하는 상금을 주고도 정작 가장 많을 돈을 챙기는 것은 방송사나 주최측임을 생각해보면 오디션 프로그램과 헝거 게임은 거의 쌍둥이나 다름 없다. 장사꾼이 밑지는 장사하겠나? 대부분의 오디션 프로그램이 최후의 몇인을 뽑아놓고 라이브 경쟁을 펼치는데, 이건 정말이지 헝거 게임보다 더 잔인하다. 적어도 헝거 게임은 영화속 가상의 일이지만 오디션 프로그램은 지금 실제로 만들어지고 있는 리얼리티 쇼다. 그 어린 아이들은 함께 연습하고 땀흘리다가도 탈락자 발표의 순간이 오면 경쟁자가 된다.
그건 자의든 타의든 참가자를 죽여야만 하는 헝거 게임과 같다. 누군가가 탈락해야지만 내가 올라갈 수 있다. 참가자들이 그 회차의 탈락자를 선별하는 방식이 아니라 시청자와 심사위원이 그 역할을 대신 맡은 것은 정말 불행 중 다행이다. 그런데 종종 긴장감이나 재미를 조성한답시고 "A와 B중 한명이 떨어져야 한다면 누가 떨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라는 질문이 심사위원들의 입에서 나오는 걸 보면 정말 소름이 돋는다. 스타가 되기 위한 덕목이 경쟁자를 밟는 것이라니... 그 와중에는 정말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참가한 출연자들도 있었다. 악마의 편집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낼 만큼 이미지 메이킹에 능수능란한 사람들이 참가자들의 꿈을 팔아 장사를 하고 책임은 전혀 지지 않는 이 리얼리티 쇼는 헝거 게임만큼 아니, 헝거 게임보다 잔혹하다.
다르다는 착각은 버리자
<헝거 게임: 판엠의 불꽃>속 관중들이 캐피톨에 사는 자본가들이라는 점에서 우리와 다르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우리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참가자들이 탈락과 생존의 줄타기를 하게 끔 만드는 장본인이라는 점에서 캐피톨 시민들과 다를 바 없다.영화 속 게일의 대사가 너무 초반에 나와 쉽게 떠오르지는 않지만 분명히 마음에 남았다.
"모두가 게임을 보지 않으면 더 이상 지속되지 않는 거 아니야? 안보면 되잖아?"
그래 우리는 그것을 보고 즐기는 순간 이미 헝거 게임의 옹호자다.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는 우리는 돈을 가지지 않았더라도 표를 가졌다. 그 점에서 우린 참가자들 보다 자동적으로 우위를 선점하게 되며 어떤 책임도 지지않고 그들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다.나 하나 쯤이야라고 생각했나? 대중은 개인보다 무섭고 거대하며 권력도 무너뜨릴 힘을 가졌다. 가련한 참가자들은 정말이지 시청자의 소비대상에 불과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조차도 오디션 프로그램이 주는 긴장감과 예측불허의 패턴때문에 한번 보기 시작하면 빠져들고 만다. 달콤한 독은 가장 위험한 법이다.
우린 오디션 프로그램의 "이미지"를 자유롭게 소비한다. 편안한 쇼파에 앉아 TV리모컨을 굴리고 문자 한 통을 날리는 것 만으로 이 잔인한 체제는 유지된다. 슈퍼스타K가 참가자수를 무슨 인기의 척도마냥 과대 포장할 때마다 꿈을 잃고 좌절하는 숫자도 많아진다. 그래도 1등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만들어주지 않았냐고 반문한다면 이미 오디션 프로그램의 프레임에 정복당한 것이다.
헝거 게임 역시 1등이 된 사람은 부와 명예를 얻을 수 있다. 정작 필요한 건 20살도 안된 아이들을 수백, 수천명 앞에 세워두고 독설을 퍼붓는 심사위원이 아니다. 경쟁을 통해 1%가 올라갈 99%로 이루어진 계단을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99%가 함께 갈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 재벌이 부의 1%를 갖는건 죽어도 안되고, 슈퍼스타K는 1%도 아니고 오직 1명만 될 수 있는 게임은 어떻게 이리도 재밌는지. 헝거 게임을 즐기는 캐피톨 시민들의 광기를 보며 마음속으로 비난을 쏟아냈겠지만, 그건 우리사회의 모습이다. 오디션은 경쟁과 독설을 지향해야될 가치로 포장한다.
정말 위험하다. 솔직히 그들에게 노래 잘하는 친구 한 명 밀어주는 것은 일도 아니다. 다만 그 친구를 밀어주기 위해서 나머지 희생양들이 필요할 뿐이다. 우승자의 성공을 위해서? 아니지, 우승자의 성공이라는 드라마가 가져다주는 돈을 위해서. 그 돈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고스란히 권력 그 자체가 된다. 이건 전혀 과장이 아닌 작금의 현실이다. 참으로 행복한 헝거 게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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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박원작 소설을 바탕한 영화
제니퍼 로렌스의 신선한 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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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피용99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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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도 가까운 미래. 12개의 구역을 통치하는 독재국가 ‘판엠’은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매년 ‘헝거게임’을 개최한다. 일 년에 한 번 씩 열리는 ‘헝거게임’은 각 구역에서 소년, 소녀 각각 한 명씩 선발, 단 한 명이 살아남을 때까지 싸우는 경기다. 무작위 선발인 게임에 캣니스(제니퍼 로렌스)는 호명된 여동생 대신 자원 참가하고, 같은 구역에 사는 피타(조쉬 허처슨)도 선발된다. 판엠의 수도 ‘케피톨’로 가게 된 이들은 서바이벌 경기를 치루기 위한 훈련에 매진한다. 10대 소년·소녀들이 벌이는 서바이벌 경기가 소재라고 해서 <배틀로얄>처럼 잔인무도하지 않다. 각자 무기를 골라 서로를 죽여야 하는 상황에 놓인 24명의 싸움이 즐비하지만, 영화는 그 광경을 자세하게 들여다보지 않는다. 대신 캣니스의 시선을 통해 언제 죽을지 모르는 두려움과 외로움을 드러낸다. <헝거게임 : 판엠의 불꽃>은 서바이벌 경기보다 그 경기를 준비하는 과정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작품이다. 헝거게임에 참여하는 이들은 원형경기장에서 죽음의 사투를 벌이는 검투사들과 별반 다를 게 없다. 돈 많은 주인들의 마음에 들기 위해 힘과 재능을 보여주는 검투사들처럼 24명도 서포터들과 관중들의 사랑을 받기 위해 노력한다. 생과 사를 넘나드는 경기를 앞두고 있음에도 쇼 프로그램에 나가 자신을 응원해달라고 웃고 떠들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이는 수많은 오디션 프로그램과 오버랩 되는 지점이다. 또한 권력 유지를 위해 매스미디어를 이용하는 판엠의 지도자 스노우(도날드 서덜랜드)의 방법은 현 시대 정치와 별반 다르지 않다. 이런 점들이 공감대를 이루며 흡입력을 더한다. 영화는 중반 이후 캣니스와 피타의 러브라인에 중점을 둔다. 현 사회를 비꼬는 설정들의 묘미는 뒤로 밀리는 셈이다. 의지할 곳 없는 싸움터에서 이들이 가까워지고 사랑의 감정을 나눈다는 건 당연지사. 하지만 너무 급작스럽다는 게 문제다. 게다가 극중 게임운영팀은 이들의 사랑을 이어주기 위해 도와주는 형국을 이루고, 한 순간 서바이벌 경기는 러브 버라이어티로 둔갑한다. 한 술 더 떠 어렸을 적부터 캣니스를 좋아했던 게일은 이들의 사랑을 TV로 시청한 후 질투심를 느낀다. 이정도면 이 영화가 <트와일라잇>처럼 밀당 시리즈로 진행될 것이라는 의도를 파악할 수 있다. 분명 다음 편에서는 캣니스, 피타, 게일의 삼각관계가 주를 이룰 것이다. 물론 이 삼각관계가 시리즈를 계속 봐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겠지만, SF 액션을 선호하는 관객들에게는 매력을 떨어뜨리는 지점이다. 1편에서 비교적 멜로와 액션 그리고 블랙코미디의 요소가 균형을 이뤘지만, 2편에서도 이 균형감이 나올지는 의문이다.
2012년 4월 6일 금요일 | 글_김한규 기자 ( zzack08@movist.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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