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스
La giovinezza, Youth, 2015

<유스>는 수려한 미장센과 함축적인 장면들의 무심한 배치,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방식으로 다채로운 인간군상들의 욕망과 감정, 젊음과 늙음, 삶과 죽음과 같은 명제들을 탐구하는 영화이다. 내용적으로는 은퇴하여 무기력한 삶을 이어가는 왕년의 작곡가이자 지휘자인 프레드 벨린저(마이클 케인)와 백발이 되어서도 새로운 영화를 구상하려고 열성인 영화 감독 믹 보일(하비 케이틀)을 비롯해 그 주변 인물들이 스위스 알프스의 한 호텔에서 휴가를 보내면서 겪는 일상의 단면과 대화들을 흘러가듯 담고 있다.
영화는 관객의 적극적인 몰입과 해석을 요구하는 까다로운 방식으로 전개되지만, 이를 즐길 준비가 된 관객에게는 끝없이 많은 의미를 던질 것이다. <유스>는 28회 유럽 영화상에서 최고 영화상, 최고 감독상을 수상했으며 마이클 케인에게 최고 주연배우상을 안겨주는 등 평단에서 대체로 호의적인 리뷰를 얻었다.

삶 속의 수많은 대치에 대한 물음
눈이 시릴 것 같은 생동감 넘치는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스위스 알프스 한 자락에 위치한 럭셔리한 호텔에는 부유하거나 유명인사인 다양한 사람들이 한 때의 휴가를 보내고 있다. 어느 날 영국 여왕의 특사가 호텔을 방문하여 프레드에게 여왕과 필립 왕자를 위해 ‘심플 송’을 지휘해 달라는 제안을 하지만, 그는 자신은 은퇴했으며 ‘개인적인 이유’로 인해 그 곡은 지휘하지 않을 거라며 이를 거절한다.
한편 프레드의 오랜 친구이자 사돈 관계이기도 한 영화 감독 믹은 호텔에 머물며 젊은 영화 스태프들과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는 새로운 영화의 대본 구상에 열을 올리고 있다. 영화 배우인 지미는 독일에서 촬영할 영화의 크랭크 인을 앞두고 곧 연기할 인물의 캐릭터 연구에 몰두하며, 프레드의 딸 레나는 남편이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졌다며 이혼을 요구하자 그 원망과 분노를 자신에게 무심했던 아버지에게 쏟아낸다.

영화는 대체로 이런 주요 캐릭터들과 호텔에 머무는 다양한 인물들이 각자 처한 상황에서 서로 교류하며 조금씩 변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데 영화 전개를 따라가다 보면 영화가 제목인 <유스> 그 이상을 다루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젊음과 늙음은 물론, 삶과 죽음, 과거와 미래, 자유와 구속, 타인에게 보여지는 정체성과 실존적 정체성 등 영화는 삶 속의 다양한 대치를 마치 저글링을 하듯 던지고 관객들이 그 주제마다 등장 인물과 자신이 어느 지점에 서있는지, 그리고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한다.

육체와 정신의 젊음 VS 늙음
그래도 가장 중심에 있는 주제는 ‘젊음과 늙음’에 대한 단상들이다. 영화 속 젊음과 늙음은 다시 육체적 젊음과 정신적 젊음으로 나뉘고, 따라서 등장인물들은 네 부류중 하나에 속하게 된다. 자신은 음악이나 인생과는 이제 끝났다면서 무기력한 노년을 보내고, 가끔 떠오르는 과거에 후회를 남긴 채 가능성 없는 미래에 절망하는 프레드는 육체도 정신도 늙은 인물이다. 한편 나이는 들었지만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하면서 지금도 새로운 영화의 결말에 골몰하고 있는 믹은 육체는 나이들었지만 정신은 젊은 인물. 그리고 과거에 연기했던 미스터Q에 사로 잡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지미는 육체는 젊지만 정신은 그렇지 못하며, 마지막으로 희망적인 미래를 그리며 성공에 대한 욕망을 드러내는 미스 유니버스는 육체도 정신도 탱탱하게 젊다.

이렇게 인물들이 ‘젊음과 늙음’의 어느 위치에 존재하고 있는지가 드러나면서 관객들은 자기 자신은 어떠한지를 생각하게 된다. 또한 젊거나 늙은 삶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숫자로 매겨지는 나이나 육체적 나이가 아니라, 정신적 젊음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즉 다시 오지 못할 과거에 대한 그리움과 후회를 남기거나,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앞당겨 걱정하고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며 낙담하기 보다는, 지금 현재의 욕망과 감정에 충실하고 미래가 뚜렷하지는 않더라도 긍정적인 기대를 잃지 않는 정신 말이다.

함축과 상징과 수수께끼로 채운 영화
이러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영화의 화법은 툭툭 던지는 대사를 통해 핵심을 관통하는 방식을 취할 때도 있지만, 때로는 인물들의 꿈과 환상을 통해 그들의 내면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거나, 단편적이고 모호해 보이는 장면들을 빌어 인물들의 욕망과 고뇌를 함축적이고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형식으로 나타난다. 또한 호텔 밖 알프스의 선명하고 생동감 넘치는 공간과 호텔 안의 어두침침한 사우나, 엘리베이터 등을 대비시키면서 살아있다면 삶의 좋은 점들, 욕망과 쾌락과 감정을 취해야 하며 살아있지만 죽은 듯한 몸뚱이로 전락해서는 안되겠다는 교훈을 주기도 한다.
덕분에 <유스>는 에세이나 명언집 같다가도, 환상소설, 시선집, 수수께끼 모음집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관객에게 적극적으로 의미를 발견하고 상징을 해석하고 해답을 찾아내기를 요구하면서 관객마다 서로 다른 감동과 깨달음을 얻게 한다. 이러한 적극적 행동에 어느 정도로 참여하는가에 따라서 <유스>는 명작이 되거나 그저 지루한 작품이 되기도 한다. 목마른 자가 되어 우물을 판다면 의미는 장면과 대사마다 화수분처럼 분출되며 해갈의 만족을 주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겐 산발적으로 조각난 거울의 파편을 들여다 보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영화라는 매체의 미학과 매력
분명한 메시지를 오해 없이 전달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랄 판에 감독은 왜 이런 모험이라고 볼 수도 있는 방식을 취했을까? 그 이유는 영화의 한 장면에서 짐작해볼 수 있다. 믹이 대본을 완성하고 나자 여주인공으로 낙점해둔 노년의 디바 브렌다(제인 폰다)가 호텔로 그를 찾아온다. 그녀는 “영화는 과거고 TV는 미래다”라고 말하면서 믹에게 창피당하고 싶지 않으면 새 영화를 찍지 말라고 한다. 파올로 소렌티노 감독의 이런 자기 얼굴에 침 뱉기는 꽤나 놀랍다. 그런데 소렌티노 감독은 그녀의 말을 인정하기 보다 위에서 언급했듯 환상과 꿈을 빌린 함축적 의미전달, 공간과 색채적 대비를 통한 주제 강조, 말없이 상징으로 가득 채운 시적 시퀀스 등을 내세움으로써 TV드라마는 감히 시도하기 힘든 영화만이 가질 수 있는 미학과 매력을 힘껏 피력한다.

즉 TV드라마가 중점을 두는 부분- 예를 들어 다음화로 이어지는 스토리 전달과 인간관계의 자극적 전개, 대중적 입맛 맞추기-이 아닌 독립적 매체로서의 영화의 장점을 취하면서 관객들에게 삶의 중요한 문제들에 대한 적극적 사유와 자기 탐구의 시간을 주고, 일상의 새로운 아름다움에 눈을 뜨게 하는 등 내면에 쉽게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기려는 것이다. 이로써 '영화'가 과거는 물론 현재와 미래에도 존재할 의미와 대체될 수 없는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밝히고 관객들에게 동의를 얻으려는 것 같다.
젊음이란 현재에 있다.
영화 끝 무렵 무기력하게 죽을 날만 기다리던 프레드에게 변화가 찾아온다. 그는 음악에만 몰두하느라 소홀했던 아내와 딸에 대한 후회로 인해 자신에게 스스로 벌이라도 내리고 있는 것처럼 아직 생명력 있는 현재의 삶을 무시해왔다. 또한 '심플 송'을 부를 수 있는 사람은 미래에도 오직 한 사람 뿐이라며, 가망성 없는 미래에 절망하기만 했다. 하지만 이제 그는 아내가 처해있는 현실, 아직 지휘하며 음악을 느끼고 싶다는 자신의 현재의 욕망과 마주한다.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에 대한 후회와 올길 없는 미래에 대한 절망 속의 현재는 참으로 잊혀지기 쉬운 보물이다. 영화는 프레드의 변화를 통해 내가 고개를 들어 보려고만 하면 거기에 존재하고 있는 보물 같은 현재에 집중하라고 하는 듯 하다. 나이가 적건 많건 현재에서 내가 느끼는 감정과 무언가를 하고자 하는 열망을 원동력 삼아 보다 적극적으로 삶에 참여하고, 미래나 과거에 대한 무의미한 집착이나 공포로부터 자유로워진 마음으로 지금 이 순간의 아름다움을 듬뿍 음미하는 것이 젊음이라는 이야기다.
물론 실천하는 게 쉽지는 않을 테고 사랑과 열정의 상실 속에서 극단적 선택을 하고 싶을 때도 있겠지만, 젊음이란 ‘현재에 (제대로) 살아있음’ 그 자체인 간단한 문제이기도 하며 언제나 죽음보다 낫다. 망원경 같은 왜곡된 시야로 미래나 과거를 들여다 보기 보다, 두 눈으로 제대로 현재를 마주하면서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다면 삶의 마지막에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시커먼 죽음이 아니라 만족스런 미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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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생각을 끌어내는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
독립적 매체로서의 영화의 미학에 관심있는 사람
마이클 케인, 하비 케이틀, 조수미의 팬인 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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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소로우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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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 없는 자는 명예를 좇는다. 사랑 잃은 자는 사랑을 좇고 혹자는 돈을 좇기도 한다. 몇 가지 결핍의 굴레에서 인간은 쳇바퀴 돌듯 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죽음을 마주한 노인이 된다. 그렇다면 명예, 사랑, 돈이 있는 노인은 무엇으로 사는가. 이탈리아의 젊은 거장 파올로 소렌티노 감독은 이 질문에 천착한다. 그의 이전작 <그레이트 뷰티>와 <유스>는 모든 것을 쥔 노인이 삶을 바라보는 시선을 다룬다. 앞서 <그레이트 뷰티>가 삶의 아름다움에 새로이 눈 뜨는 노년을 그렸다면 <유스>에서는 진정한 ‘젊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이끌어낸다. 자기를 극복하지 못한 젊은이와 자기를 극복하는 노인을 대조함으로써다. 다시 말해 감독은 진정한 젊음이란 ‘삶의 두려움을 극복해 자기를 실현하는 주체’일 때 쟁취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마이클 케인이 연기한 프레드 벨린저, 그가 지휘하는 ‘심플송’은 영화의 대미를 아름답게 장식하며 메시지를 강화한다. 그러나 영화의 흐름을 따라가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영화의 플롯과 상징적인 대사가 감각적인 이미지들 사이에 흩어져 있는 까닭이다. 또한 여성의 몸이 젊음을 상징하는 성적 대상으로도 그려져 혹자의 불편함을 이끌어낼 수도 있다. 그럼에도 고민할 만한 가치가 있는 물음을 감독만의 독보적인 스타일로 담아내기에 영화의 가치는 충분하다. 더불어 엔딩신에서 ‘심플송’을 노래하는 소프라노 조수미는 무척이나 반갑다.
2016년 1월 4일 월요일 | 글_이지혜 기자 (wisdom@movis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