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매치>
‘그랜드 마스터’는 최고의 실력을 가진 체스 선수만이 가질 수 있는 호칭이다. 그 이름을 15세의 어린 나이에 가진 천재소년 바비. 타고난 재능과 끊임없는 노력, 승리를 향한 집착으로 전 미국을 바비 열풍으로 몰아넣는다. 연승을 거두며 더 높은 곳을 향해 가려는 그에게 체스계의 역사를 흔들 거대한 제안이 다가온다. 바로 체스계의 황제, 무패신화를 자랑하는 보리스 스파스키와의 정면 대결이다. 그는 바비의 예상보다 훨씬 강하고 지능적인 플레이를 하는 선수였다. 예상보다 강한 상대의 실력에 긴장한 바비. 그는 승부에 대한 광기에 가까운 열정을 발휘하며 지켜보는 사람의 손에 땀을 쥐게 만든다.
체스의 규칙은 간단하다. 우리나라의 장기와 비슷하게 상대편의 왕(킹)을 잡으면 이기는 경기다. 하지만 말을 한 칸 움직이는 것으로 수십, 수백 개의 경우의 수가 생겨난다는 점에서 예측하기 어려운 게임이다. 지금 당장 무엇을 움직일 것인가가 아니라, 앞으로 상대가 어떤 전략으로 들어올 것이냐를 예측해야 한다는 점에서 치밀한 두뇌 싸움이 예상된다. <세기의 매치>는 어려서부터 체스 천재로 언론의 주목을 받아온 ‘바비 피셔’의 이야기다.
그는 스스로 체스를 배웠다. 그의 기술은 누군가 가르쳐 준 것이 아니며, 어린 나이에 수많은 선수들을 제치고 최고의 타이틀을 움켜쥘 만큼 타고난 재능의 소유자였다. 매년 새로운 도전, 새로운 타이틀 획득에 성공한 바비 피셔는 수많은 팬들을 거느린다. 사람들은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열광한다. 전국의 관심을 끌어모은 그는 세계의 고수들을 모조리 제치겠다는 선언을 한다.
그런 바비에게 커다란 제안이 다가온다. ‘국가를 위해’일해보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바비는 냉소적으로 대답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바비에게 있어서 체스는 재미있는 게임이었다. 목숨을 걸지 않아도 충분히 잘할 수 있는 분야였다. 바비는 자신의 삶을 잃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이 이기기 어려운 상대와 맞붙어보고 싶은 욕망 또한 있었다.
바비의 상대는 ‘체스 천재’로 불리는 보리스 스파스키. 무패신화를 자랑하는 고수는 바비의 예상보다 훨씬 강하고 지능적이었다. 그와의 접촉이 잦아질수록 바비는 예민해진다. 그는 ‘세기의 매치’를 위해 스태프들에게 까다로운 조건들을 제시하는데, 그의 심리상태가 몹시 불안정하다는 것을 증명해준다. 바비는 환청을 듣고, 고함을 지르거나 심지어 스파스키를 상대로 패악을 부리는 등 본래의 자신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주위에서는 그가 미쳤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른다.
그럼에도 바비를 믿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바비 피셔는 미치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왜냐면 그는 천재이기 때문에. 천재의 머릿속을 범인이 어찌 알겠는가? 실제로 바비는 스파스키를 상대로 기상천외한 전략을 펼치며 팽팽한 접전을 펼친다. 체스판을 중심으로 두 선수의 치밀한 두뇌 싸움, 섬세한 심리묘사가 손바닥에 땀을 쥐게 만든다.
두 선수의 경기는 단순한 체스 게임이 아니다. <세기의 매치>의 배경이 된 세계대전 직후는 미국의 자본주의와 소련의 공산주의가 팽팽하게 대립하던 시기였다. 아직 전쟁의 여파가 가시지 않은 때에, 당시 체스계는 러시아가 주름잡고 있었다. 미국은 체스로 러시아를 이길 수 없다는 인식이 전역에 팽배했다. 바비 피셔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뛰어난 재능과 승리를 향한 열망으로 불타는 이 천재에게 쏟아진 미국의 관심은 너무나도 당연했다. 미국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바비 피셔, 그리고 체스계의 황제라고 불리는 스파스키의 대결은 말 그대로 미국과 러시아의 싸움이었다. 그들의 체스판에 국가의 자존심이 걸려 있었다. 어쩌면 체스의 승패에 따라 전쟁의 불씨가 당겨질 수도 있었다.
극중 편집증에 시달리는 바비의 모습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이다. 어려서부터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아온 그는 사람들의 시선에 예민하다. 극중 미국의 ‘워터게이트 사건’이 언급되기도 했는데, 이는 바비 피셔 또한 도청이나 사생활 침해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패배에 대한 두려움과 승리에 대한 집착으로 바비 피셔의 신경은 더욱 날카로워진다.
체스는 전쟁과도 같은 게임이다. 비숍, 폰, 나이트, 룩, 퀸을 이용하여 상대방의 왕을 죽여야 승리하는 게임이다. 우리나라의 바둑과는 사뭇 다르다. 동양의 게임이 상대방의 진영을 포위하여 제거한다면, 서양의 체스는 한 개의 말이라도 우두머리를 잡으면 끝난다. 작은 말 하나라도 왕을 잡으면 이기는 것이다.
천재vs천재의 대립이라는 구조에서부터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또한 치밀한 두뇌 싸움이나, 세밀한 심리묘사를 좋아한다면 적극적으로 추천할 만하다. 다만 장르의 특성상 분위기가 묵직하고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세기의 매치>또한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영화들이 공통적으로 보이는 단점을 완벽하게 피해가지는 못했다. 실화를 표현하려면 사실성을 나열해야 하는데, 그 과정이 자극적으로 드라마틱한 경우는 드물어 관객들에게 지루한 설명으로 느껴질 수 있다.
<세기의 매치>는 두 천재의 두뇌 싸움을 바탕으로 체스=전쟁이라는 공식이 성립되게 한다. 체스의 까다로운 규칙보다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대립이 팽팽하던 당시 시대상이나, 전쟁에 대해 크게 다루고 있으므로 체스를 잘 모르는 관객들도 무난하게 즐길 수 있을 만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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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hmj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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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비 피셔, 이 미국의 체스 천재는 체스 960을 고안하고 자신이 펼친 게임의 모든 수를 기억했다고 한다. 보리스 스파스키는 어떤가. 1974년 41명과 동시 대국을 하고 한 수를 두는데 걸린 시간이 평균 3초에 불과했다는 천재다. 이 두 천재의 흥미진진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세기의 매치>는 재미없으면 오히려 이상할지도 모른다. 또 매카시즘의 광풍과 냉전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대적 배경은 극적인 전개와 스토리에 대한 기대를 높이지만 그다지 풍부한 상상력을 발휘하진 않는다. ‘스파이더맨’ 토비 맥과이어의 불안한 광기를 내보이는 여린 천재로의 변신은 훌륭하지만 그의 인간적 고뇌까지는 느껴지지 않는다. 안정된 연출, 흑백과 컬러로 번갈아 촬영하여 시대적 사실감을 높인 점, 꼼꼼한 고증에 바탕을 둔 의상까지 흠 잡을 곳 없지만 확 다가오는 매력은 없다. 결국 <세기의 매치>는 결정적 한 수가 아쉬운 무난한 영화에 그치고 만다. 단, 바비와 대조적인 평온한 스파스키의 행동을 통해 그들이 받는 스트레스를 보여준 것은 재치있다. <블러드 다이아몬드> <라스트 사무라이>로 연출력을 인정받은 에드워드 즈웍 감독 작품이다.
2016년 1월 21일 목요일 | 글_박은영 기자 ( eyoung@movist.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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