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담 스토리
MACADAM STORIES, Asphalte, 2015

<마카담 스토리>는 사무엘 벤체트리트 감독의 자전적 성격의 소설 ‘아스팔트 연대기’를 원작으로, 프랑스 어느 도시의 낡은 공공주택에서 외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타인을 만나 따스함을 형성해 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영화는 등장인물들이 처한 상황에 대해서는 그리 많은 정보를 알려주지 않지만, 대신 그들의 작은 행동과 눈빛, 호흡, 길지 않은 대사들에서 흘러나오는 세밀한 감정들을 읽을 수 있는 즐거움이 있는 영화이다.
영화 속 배우들을 살펴 볼만 한데, 우리에게는 <피아니스트>의 여교수, <엘리노어 릭비>의 매리 릭비 역으로 유명하며, 칸과 베니스, 세자르 영화제 등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던 명배우 이자벨 위페르가 이제는 기억 속에서 잊혀져 가는 여배우를 연기한다. 한편 그 여배우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는 이웃집 소년은 엄마의 부재 속에 자랐던 감독의 실제 아들 ‘쥴스 벤체트리트’가 맡아 눈길을 끈다.

영화의 배경인 아파트 위에 난데없이 불시착하는 우주비행사 역할은 <몽상가들>의 매튜나 <라스트 데이즈>의 블레이크 역으로 인상깊은 연기를 펼쳤던 ‘마이클 피트’가 맡고 있다. 이들을 비롯한 주조연 배우들의 절제되어 있는 동시에 섬세한 연기는 도시 외곽의 어느 버려진 땅에서 살아가는 영화 속 쓸쓸한 사람들이 정말 실재하는 것처럼, 혹은 마치 내 모습인 것처럼 친근하게 다가오게 한다.
외로운 사람들, 낯선 타인과 조우하다
회색 빛 하늘 아래, 다 쓰러져가는 낡은 아파트 한 켠에 둥지를 튼 입주자들 중 첫 번째 인물 ‘스테른코비츠’는 2층에 사는 우울하고 융통성 없는 아저씨이다. 그는 작동을 멈춘 엘리베이터를 새로 교체 하기 위해 주민들 모두가 조금씩 돈을 보태자는 의견에 자신은 엘리베이터를 탈 일이 없다면서 돈을 낼 수 없다고 거절한다. 그러던 중 새로 산 실내 자전거를 타다 정신을 잃는 바람에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되면서, 입주자들이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않는 시간을 살펴 밤마다 몰래 엘리베이터를 사용한다.

한편 그 윗집에 사는 ‘샬리’는 엄마의 돌봄이 아직 필요한 청소년이지만, 엄마는 쪽지 한 장만 덜렁 남겨 두고 집에는 잘 들어오지도 않기 때문에 스스로 알아서 모든걸 해결하고 있다. 그리고 옥상 바로 아래층에 살고 있는 하미다는 감옥에 간 아들을 걱정하면서 매일 무료하게 TV를 시청하는 중년의 알제리인 부인이다.
이들의 별볼일 없이 지루하고 외로운 삶은 어느 순간 낯선 인물들을 만나며 조금씩 변해 간다. 스테른코비츠는 어느 밤중에 병원 밖에서 쉬고 있는 간호사를 만나 대화를 나누다 그녀의 호감을 사기 위해 자신이 사진가라는 거짓말을 하고, 그녀에게 보여줄 사진을 찍기 시작한다. 샬리는 옆집에 이사온 ‘잔 메이어’를 도와주다 그녀가 이제는 한 물간 여배우인 것을 알고 그녀의 영화를 함께 시청하며 가까워진다. 하미다의 문을 두드리는 건 불시착한 나사의 우주비행사 ‘존 매킨지’인데, 그녀는 본부가 존을 데리러 올 때까지 프랑스어라곤 할 줄 모르는 그를 돌봐주게 된다.

혼자서는 충분하지 않다
등장인물들의 평소 삶의 모습은 우선, 살다 보니 어느새 진심을 나누는 것을 두려워하며 소통의 부재 혹은 애정을 나눌 대상의 부재 속에서 고립된 채 외롭게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모습을 공통적으로 대변한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그래도 괜찮다고 되 뇌이며 그럭저럭 살아가지만, 사실 인간은 혼자서는 온전해지기도, 행복해 지기도 힘든 연약한 존재들이다.
영화는 세 입주민들의 일상에 나타난 낯선 타인들을 통해 이런 점을 보여준다. 세상에 단 혼자 뿐이라면 연극 오디션을 위해 카메라를 들고 비디오를 찍어줄 사람도 없고, 양껏 만든 쿠스쿠스를 즐겁게 나눠먹을 사람도 없고, 우주선에서 지상으로의 갑작스런 착륙으로 인한 불안을 잠재워줄 사람도 없는 것이다. 인간이란 그 육체적, 정신적 연약함으로 인해 타인의 존재가 필요한게 당연한데 우리는 그 필요성을 부정하면서 혼자서도 괜찮다고 큰 소리를 쳐온 셈이다.

아파트의 이 입주민들은 낯선 이들과 함께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간을 공유하고, 서로에게 관심을 표현하며 더 알아가고, 도움을 주거나 격려해주면서 가까워지게 된다. 그러면서 무심하고 무감각하고 무표정했던 이들의 얼굴에서 점차 미소가 읽히기 시작하고, 종류는 각자 다르지만 상대방에 대한 따뜻한 애정이 샘솟는 것이 목격된다.
영화는 이렇게 차가운 도시의 한 공간에서 우연 혹은 필연적으로 만난 결핍을 안고 사는 사람들이 서로 관심과 애정을 나누며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로써 세상이 아무리 우리를 절망스럽고 외롭게 살아가도록 내친다 할지라도, 타인과 온기를 나누며 행복과 애정을 키워 나가는 일을 포기하지 말자고 말한다.

유머와 상상력을 더해 균형을 맞추다
이런 주제를 전달하다 보면 사실 영화가 꽤 무거워질 수도 있다. 하지만 등장인물들의 행동들(특히 스테른코비츠의 절박한 행동들)을 따라가다 보면 위트가 넘치는 장면에 웃음이 터지고, 대사 중간 중간 배우들이 호흡과 눈빛, 작은 제스처로 보여주는 연기들은 암울한 영화의 색채 속에서 한줄기 빛나는 순간들을 던진다. 한편 하늘에서 떨어진 우주비행사 존의 존재가 엉뚱한 상상력을 더해주기 때문에 영화는 지나치게 진중한 분위기로 흐르지 않는 균형을 갖추게 된다.

우주비행사 존은 이렇게 영화 분위기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역할도 하고 있지만, 그 이상의 의미도 담고 있는 것 같다. 그는 인류가 우주에도 갈만큼 기술적, 지적으로 발전한 존재이지만, 그 잘난 기술과 지성을 갖고도 여전히 혼자서는 무기력한 존재임을 드러낸다. 그리고 프랑스 아파트에 떨어진 미국인 우주비행사란 설정은 지루하고 고독한 일상 속에 나타난 타인의 존재가 때로 그 일상에 믿기지 않을 만큼의 특별함과 새로움을 더해준다는 것을 암시한다. 또 그는 말도 안통하는 하미다 아주머니와 더 솔직하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타인과 온기를 나누는데 있어서 언어나 나라, 배경은 중요치 않다는 점을 알려주기도 한다.
<마카담 스토리>의 프랑스어 원제는 <아스팔트>이다. 아스팔트는 소통과 애정을 나눌 존재의 부재 속 차갑고 고독한 현대인의 삶을 상징하는 듯하다. 세상이 여러모로 우리를 아스팔트 마냥 온기를 잃은 채 살아가게 만들더라도, 우리는 무심을 가장한 얼굴 뒤에 여전히 따스함을 갈구하거나 이를 나누어 주고 싶은 마음이 남아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별 희망이나 즐거움도 없이 살아가던 공동주택의 입주민들이 타인에게 마음을 열고 다가가면서 애정과 행복이 주는 온기에 몸을 녹이는 것처럼, 우리도 그 한 발짝을 내디디면 어떨까. 이 한걸음의 변화가 아스팔트를 뚫고 민들레가 피어나듯, 회색의 겨울을 끝내고 우리에게 봄을 가져다 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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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영화가 보고 싶은 사람
현실적인 동시에 위트있는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
때때로 외롭다고 느끼는 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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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강소영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 <저작권자 ⓒ 원하는 모든것 파일조 filejo.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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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담 스토리>는 현실에 두 발을 꼭 붙인 채 잠시 유체이탈하여 주변을 둘러보는 듯한 현실 밀착형 판타지다. 도발적 발상을 특별한 인연으로 만들고 그 속에서 무심한 위로를 건네는 영화다. 마카담이란 ‘아스팔트’ 발명가의 이름이자 공법을 지칭한다. 혹은 프랑스 피카소 단지에 있는한 낡은 아파트의 애칭이기도 하다. <마카담 스토리>는 사무엘 벤쉬트리 감독이 어린 시절 변두리 공공 주택에 살았던 경험을 토대로 쓴 ‘아스팔트 연대기’의 두 단편을 이어서 각색한 작품이다. 아파트의 삭막함과 익명성 속에 형성된 기묘한 공생을 블랙 코미디로 만들고 강한 페이소스를 성공적으로 끌어냈다. 신경 안 쓴 듯 하지만 사실은 디테일하게 재현된 빈티지 배경은 영화의 메마르면서 신비한 분위기에 일조한다. 하지만 6명의 주인공이 모두 등장하기까지의 과정이 다소 답답하고, 이들의 접점을 찾으려 골머리 썩을 수도 있고, 시대 배경이 궁금할 수도 있다. 또 불친절한 프랑스 영화라는 선입견이 작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잠깐의 인내로 놀라운 영화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다. <마카담 스토리>는 난해한 문장을 해독하거나 기울여 감상해야 하는 문학이나 음악과 달리 쉽게 다가가서 다양한 경험과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영화의 힘을 보여주는 영화다. 어른스런 소년 샬리로 강한 인상 남긴 쥴 벤쉬트리는 사무엘 벤쉬트리 감독의 친아들이다. 2015년 칸 국제영화제 공식 초청작이다
2015년 12월 17일 목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young@movis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