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트리뷰션 : 응징의 날
El desconocido , Retribution , 2015
극중 카를로스는 일밖에 모르는 전형적인 워커홀릭 가장으로 묘사된다. 극 초반만 하더라도 카를로스는 아침식사 시간에 가족들과 전혀 대화를 하지 않으며, 일에만 몰두하고 아내나 아이들의 일상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는 은행에서 막대한 돈을 굴리는 지점장으로 자신의 일과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는 냉철한 남자다. 그런데 자녀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기 위해 차를 타고 나선 카를로스에게 뜻밖의 전화가 걸려온다. 그것은 카를로스의 차에 폭탄이 설치되어 있으며, 탑승자가 자리에서 일어날 경우 폭발한다는 내용이었다.
범인은 카를로스에게 돈을 요구한다. 펀드에 있는 그의 전 재산과 그가 일하는 은행에 들어있는 4만 유로에 달하는 거액. 카를로스는 범인의 말을 믿지 않는다. 범인은 카를로스의 눈앞에 있는 다른 차를 폭파시킴으로서 그의 차에 폭탄이 설치되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카를로스의 아들이 파편에 맞아 다치게 되는데, 범인은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는 일을 허락하지 않는다. 카를로스는 아이를 살리기 위해 필사적인 심정이 된다. 대다수의 범인들이 그렇듯이, 범인은 피해자의 필사적인 마음을 이용한다. 상황이 나쁘면 나쁠수록 피해자는 범인의 말을 따르게 된다.
결국 카를로스는 범인의 말에 따르게 된다. 범인의 계좌로 돈을 이체시키는 과정에서 그의 아내 마타에게 도움을 청하게 되는데, 그녀는 이 일을 경찰에 알린다. 공권력이 개입됨에 따라 상황은 또 다른 국면을 맞는다. 경찰과 폭발물 처리반의 의견이 엇갈리면서 언뜻 명확해 보였던 선과 악의 기준이 흐려지기 시작한다. 과연 범인은 누구인가? 왜 이런 짓을 하는가?
<레트리뷰션:응징의 날>을 제작한 토레 감독은 이 영화가 지난 2012년 스페인을 강타한 금융위기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라고 한다. 스페인의 금융부채는 부동산 거품이 빠지고 가계부채가 6천 5백억 유로에 달하면서, 가계부채 비율이 120%를 넘은 사상 최대의 사태였다. 스페인에서 시작된 금융위기는 곧 전 세계 유럽 국가들로 퍼져 나갔다. 이에 국민들의 생활은 빈곤으로 치달았고 사회적인 불만은 쌓여만 갔다.
감독은 이런 금융위기를 겪으며 국민들이 느낀 분노를 표현하고자 했다. 극중 주인공인 카를로스의 직업이 은행 지점장이라는 점,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출동한 공권력이 기관의 입장에 따라 의견이 엇갈린다는 점 등을 미루어 볼 때, <레트리뷰션:응징의 날>은 당시 스페인 사회의 불만과 분노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범인의 협박전화로 시작되는 사건은 특별하지 않다. 사실 최근의 스릴러 영화는 기존의 작품들을 차용하거나 적당히 섞어 만들었다는 생각이 드는 게 보통이다. 이따금 기발한 아이템이 숨어 있기는 하지만, 사실상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낼 만한 소재는 이미 시장에 나와 있다. 때문에 중요한 건 어떤 하나의 ‘사건’을 얼마나 짜임새 있고 현실감이 느껴지도록 전개하느냐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소재라도 개연성이 떨어지면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없다. 반면 흔하고 일반적인 소재라도 등장인물의 ‘존재 이유’가 뚜렷하다면, 그래서 전체적인 스토리에 인과관계가 느껴진다면 좋은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다.
<레트리뷰션:응징의 날>은 그렇게 특별한 장점이 돋보이는 작품은 아니다. 번듯한 직장을 가지고 부유한 생활을 유지하던 피해자, 휴대전화를 매개로 전해지는 범인의 협박, 제3자의 개입으로 벌어지는 여러 상황들은 긴장감이 있긴 하지만, 그 정도는 다른 스릴러/추리/범죄 장르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물론 이 영화만이 가지는 장점도 분명히 있다. 우선 전체적으로 짜임새가 있다. 범인의 범행 동기와 피해자를 선택한 이유, 또 피해자에게 요구한 내용 등에서 전체적인 스토리의 개연성이 드러난다. 무엇보다 스릴러 장르의 경우, 사건이 벌어지고 해결되는 과정에서 다른 인물들이 개입됨에 따라 자칫하면 지루해질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레트리뷰션:응징의 날>에서는 범인의 요구를 따를 수밖에 없는 피해자, 이를 막으려는 가족,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출동했으나 엇갈리는 의견을 내세우는 폭탄처리반과 경찰 등의 활약으로 무게감이 느껴진다. 사건해결이 늦어짐에 따른 지루함보다는 긴장감이 더해진다.
제한된 공간에서의 사건은 당사자가 아닌 외부에 알려지기 어렵다는 점에서 스릴러 작품이 갖춰야 할 가장 기본적인 상황이 완성된다. 주인공의 긴박함을 극대화시키려는 의도일까, 이런 경우에는 대개 어린 아이들이나 평범한 주변인이 사건에 말려들게 됨으로서 비극적인 상황을 예상하게 만든다.
<레트리뷰션:응징의 날>에서도 카를로스의 어린 두 아이가 살인의 위협에 노출되는데, 가부장적인 차가운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줬던 주인공이 아이를 위해 과감히 자신을 포기하는 장면으로 이어지면서 부성애의 뜨거운 온도를 느끼게 한다. 전체적으로 짜임새와 개연성이 있으며 등장인물들의 개성 또한 뚜렷해서 보는 내내 큰 불편함은 없었던 작품이다. 스릴러/추리/범죄 장르를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부담 없이 즐길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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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hmj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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