쥴 앤 짐
Jules Et Jim, Jules And Jim, 1961

1차 세계대전을 막 앞두고 있던 1910년대의 파리를 배경으로 시작하는 영화 <쥴 앤 짐>은 프랑스의 영화 사조 ‘누벨 바그(새로운 물결, 새로운 시대)’의 중심인물 중 한 명이었던 감독 '프랑수와 트뤼포'의 세 번째 작품이다. 영화는 ‘앙리 피에르 로셰’가 1953년 발표한 자전적 성격의 소설을 원작으로, 작가가 되고자 하는 프랑스인 짐, 수줍고 너그러운 성격의 오스트리아인 쥴의 우정과 그들 사이에 놓인 매력적인 여인 카트린과의 관계가 얽히고 설켜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누벨 바그’란 프랑스 영화계에서 1950년대 후반에서 1960년대 후반에 걸쳐 등장했던 영화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이다. 당시 프랑스 사회는 가치관과 삶, 문화를 소비하는 방식에서 변화를 맞이하고 있었고 이런 분위기 속에서 영화를 단순히 볼거리나 재미있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매체로서만 생각하지 않는 새로운 관객, ‘씨네필’이 등장하였다. 이들은 영화를 새로운 삶의 형태, 자신들의 삶을 표현하는 중요한 도구로 여기며 고르기 시작했고 따라서 영화는 단순 소비재가 아닌 연구하고 비평할 대상으로서의 지위를 획득하게 되었다.

이들은 다양한 영화 잡지들을 만들었고, 영화 비평가가 되었고, 나아가 영화 감독이 되었다. ‘프랑수와 트뤼포’, ‘장 뤽 고다르’, ‘루이 말’, ‘에릭 로메르’, ‘클로드 샤브롤’ 등이 대표 인물들이다. 이들 각자가 가진 스타일은 매우 달랐지만 이들이 영화를 바라보는 관점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영화가 단순히 허구의 이야기에 적당한 의미를 더해 전달하는 매체가 아니라, 현실에 더욱 깊이 접근하여 이를 이해할 수 있는 창구가 되어야 하고 따라서 폭로적, 포착적이며 현재의 환경과 관습에 대항하는 형식을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트뤼포의 ‘쥴 앤 짐’에서도 이런 경향을 확인할 수 있다. 원작 소설이 있었지만 현실적이고 폭로적인 성격이 강한 자전적 소설을 차용했고, 이야기나 캐릭터들은 어떤 의미를 전달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없이 완전히 통제되지 않고 자유분방했다. 영화가 담아낸 사랑의 방식 또한 파격적이어서 여러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영화의 스토리는 다음과 같다. 1912년 파리에서 만나 교양을 나누며 서로 우정을 쌓은 쥴과 짐은 카트린을 만난 뒤 자유분방한 이 여인에게 속절없이 매료된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인해 쥴과 짐은 각자 자신의 나라에서 군인으로 징집되는데, 그 과정에서도 쥴은 카트린에게 계속 구애의 편지를 보낸다. 전쟁 이후 쥴은 카트린과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짐은 작가가 된다. 이후 짐이 이들을 방문하는데, 카트린이 이웃 알베르와 바람을 피고 있지만 쥴은 카트린을 잃고 싶지 않아서 이를 묵인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자신 또한 카트린에게 끌리는 감정을 멈출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사랑하는 여인이 다른 남자를 사랑해도 곁에만 있어 주면 된다는 쥴, 그런 친구의 아내를 탐하는 짐,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개의치 않으면서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여왕 카트린. 이런 인물들을 통해 트뤼포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이들의 행위가 얼마나 도덕적이거나 사회적으로 용인되느냐가 아니었고 이런 내용의 디테일 자체도 아니었다. 다만 관객들이 여태 가지고 있었던 사랑에 대한 관념이나 이상적인 모습, 사회적 관습에 의문을 제기하고, 이로써 사고를 확장하여 새로운 가능성을 바라보게 하려 했다.

트뤼포는 영화를 통해 당시의 여성관에 대해서도 비슷한 시도를 한다. 쥴은 영화의 초반에 짐, 카트린과 연극을 본 뒤 “아내는 정조를 지켜야 하지만 남자의 정조는 부차적이다. 여성은 자연적이다 고로 혐오적이다. 어리석음과 타락의 결정체다”와 같은 말을 한다. 아마도 이것이 당대 남성들이 여성에 대해 가지고 있던 사고 중 하나였던 것 같다. 남성은 여성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우월한 존재이고, 여성은 남편의 정조 따윈 묻지 않고 순종적이어야 한다는 것.
이 말에 반기를 들 듯 카트린은 강으로 뛰어든다. 그녀는 순종과는 거리가 먼 대담하고 자유롭고 야생적인 여인이고, 지적이면서도 섹시하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쥴은 자신이 말한 여성에 대한 생각과는 반대에 있는 그녀에게 사랑을 느끼고, '혐오스럽고 어리석은 존재'에게 어리석게도 마지막까지 휘둘린다. 카트린은 그렇게 쥴 혹은 그와 같이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정신차리라며 뺨이라도 때리는 듯한 역할을 하면서 '관습적 여성상,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여성상'과 같은 '관념'에 갇혀있지 않은 실존의 여인을 인식하게 한다.

이렇게 여러모로 관습과 통념에서 벗어나 있는 <쥴 앤 짐>은 이런 특징을 더욱 부각하고 뒷받침해주는 새로운 영화적 기법들을 사용한다. 쥴과 짐이 만나서 친구가 되는 과정은 마치 역사 뉴스라도 보듯 빠르게 지나가고, 카트린의 표정을 포착하기 위해서 어떤 장면은 마치 사진을 찍는 것처럼 정지된 화면을 사용한다. 또한 캐릭터들이 더욱 현실적이고 가깝게 느껴지도록 스튜디오가 아닌 실제 환경에서 자연광을 사용한다. 카메라를 자전거에 싣고 촬영하거나 핸드헬드를 사용하며 캐릭터들을 따라다니고, 때로는 화면의 비율을 제멋대로 바꿔버리기도 한다.

영화를 통해 현실 속 세계와 사회, 관계가 마치 유기체처럼 살아 숨쉬고 변화해가는 모습을 포착하고, 사람들이 당연히 여기던 낡은 사고와 기법에서 벗어나도록 하면서 영화가 비평할 가치가 있는 지적이고 예술적인 매체가 되게 하는 것이 누벨바그의 방향성이고, <쥴 앤 짐>은 이런 방향성을 포함하면서 사랑과 여성, 삶에 대한 담론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쥴 앤 짐>에서 보여지는 신선한 카메라 기법과 탈 관습적 측면, 독립적 매체로서의 영화의 정체성과 새로움에 대해 고민하게 하는 요소들은 누벨바그가 현재의 영화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시사점이 있음을 증명한다. 따라서 누벨바그는 1960년대 말에 멈춘 과거의 한 사건이 아니라 영화에 대한 탐구심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 여전히 진행 중인 현재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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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벨바그 사조의 감독들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
자유분방한 여주인공과 관습을 답습하지 않는 사랑이야기를 보고 싶은 사람
1960년대 영화에서 신선함과 파격을 발견해보고 싶은 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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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소로우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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