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
Pride and Prejudice and Zombies , 2016
원작의 원작이 있는 영화라는 것은 원작의 원작을 알지 못하더라도 원작만 있어도 된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제인 오시틴의 소설 <오만과 편견>을 원작으로 한 세스 그레이엄 스미스의 소설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가 이 영화의 원작이지만 원작과 원작의 원작과 영화는 세박자 모두 한가지 주제로 관통한다. 바로 로맨스이다.
좀비는 이제 과거와 현재와 미래, 어디에나 등장하는 영화 속 존재가 되었다. 영화사에서 좀비가 기여한 파이는 더 이상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절대악보다 더 큰 악의 축으로 반드시 죽여야하고, 아무리 잔인하게 죽여도 별로 상관없고(머리에 총탄을 박아 넣던지, 목을 자르던지, 어떤 잔인한 방법도 다 허용된다.) 좀비도 인간이었다는 과거는 스토리를 방해하는 개념일 뿐이다.
그래서 이 영화도 사실은 좀비보다는 원작의 로맨스를 그대로 따라간다. 대신 여전사로 변신한 베넷가의 딸들은 원작에서처럼 결혼만이 일생일대의 가장 큰 인생의 이슈로 바라보는 처녀들이 아니라 좀비 무리를 퇴치하기 위한 섹시한 전사들로서 임무를 완수하는 캐릭터로 변모했을 뿐이다. 원작과 비슷하게 영화는 배경과 인물을 그대로 따라간다.
19세기 영국, 베넷가에는 다섯 딸이 있는데 좀비들을 퇴치하기 위한 전투력을 기르기 위해서 이들은 모두 무술 실력을 길러왔다. 밖에는 좀비들이 날뛰지만 고운 딸들은 무술을 연마해 오면서 또한 결혼 적령기에 다다른 자신들의 모습에 파티도 참석하고 남성에 대한 의견도 나누며 좀비가 문제가 아니라 인생 진로가 사실 더 중요하다.
마을로 이사온 빙리라는 재력가는 친구 다아시와 파티를 열고 둘째딸 엘리자베스는 다아시를 보면서 오해와 편견을 갖게 된다. 원작에서는 엘리자베스의 눈에 비친 다아시는 오만하고 예의가 없는 인물로 그려지는데 다아시 또한 베넷가의 허영과 어리석음으로 큰 실망을 갖고 있음을 읽을 수 있다.
이 파티는 좀비들의 습격으로 한바탕 난장판이 되버리고 좀비와의 일대 격전으로 영화는 진행된다. 그 와중에 엘리자베스와 다아시의 로맨스가 원작처럼 밀고 당기는 심리전처럼 이어져 좀비도 좀비지만 로맨스까지 섞이는 영화적 재미가 다양한 볼거리와 함께 이어진다.
영화는 두 축으로 갈라지는데, 좀비와의 일대 대전과 엘리자베스와 다아시와의 로맨스, 그리고 원작처럼 이 둘의 갈등을 증폭시키는 인물인 위캄의 등장은 원작을 패러디 하기 보다는 원작에 충실하면서 좀비라는 소재를 끌어들여서 영화적 로맨스를 완성시키는 장치로 활용한다.
따라서 기존에 보아왔던 좀비물들과는 좀 차별화되는 것이 좀비의 위력이 그렇게 강력하지 않아서 베넷가의 딸들이 격전을 위해서 무기를 장착하는 장면들까지만 긴장을 유지하고 이후로는 밋밋하다는 아쉬움을 준다. 원작에서 결혼만이 당시 여성들의 최대 관심사이자 집안의 주요 이슈였는데 이렇게 수동적인 여성들이 주체적 여전사로서 강력한 화력을 발휘하게 되는 지점은 그동안의 여전사 영화들보다도 파급력이 나약한 까닭도 있다.
하지만 19세기를 배경으로 고전 의상들이 어떻게 전투복화 되는지, 무기를 숨기고 장착하는 수려한 모습들 등 볼거리가 가득한 영화의 재미는 헐리우드 신예들인 릴리 제임스나 샘 라일리 등의 변신을 보는 것에도 한몫한다.
화려한 파티복 드레스를 입고 좀비들과 대적하는 딸들의 모습은 일반적으로 단련된 여전사의 이미지보다 더 섹시하게 보여지며 드레스 안에 장착한 단도들이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활용될지에 대한 기대감도 마지막 장면까지 기대하며 보게 하는 요인으로 이끈다.
19세기의 좀비라는 독특한 설정과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명작을 패러디한 현대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는 점에서 영화는 집중해서 볼 수 있는 흡입력을 기본 장착하고, 동양 무술을 접목하여 로맨스로 완성하는 재기발랄함을 갖추고 있다. 액션과 로맨스를 양분한 만큼 볼거리와 스토리는 충분하지만 둘 다를 가져갈 욕심이 과했던 탓인지 액션과 로맨스 모두에서 힘이 빠지는 느낌은 어쩔 수 없다.
느닷없이 나온 좀비물과는 달리 세계 명작을 배경으로 했다는 점에 흥미가 있으나 <링컨 : 밴파이어 헌터>처럼 역사적 인물을 캐릭터로 삼되 완벽하게 액션 스릴러로 가지 못한 어정쩡한 위치는 아무래도 이와 비슷한 패러디물이나 역사오락물에서 기대할 수 밖에 없을 듯 하다. 그래도 소설 원작을 잘 알고 있거나 좀비 액션물을 좋아하는 관객에게는 좋은 선물이 될 듯. 그리고 <월드워Z>의 제작진이 만들었다는 홍보는 불필요하다. 세스 그레이엄 스미스의 원작소설을 영화화했다는 홍보가 더 정확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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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C-Guy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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