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코포니아
Francofonia , 2015

세계 2차대전 당시, 나치군은 프랑스를 침공하여 파리를 점령하는 데 성공한다. 당시 많은 프랑스인이 거처를 떠나 남쪽으로 피난했다. 하지만 루브르 박물관의 관장으로 일하는 자크 조자르는 다른 시민들처럼 쉽게 피난을 갈 수 없는 처지다. 관장이 자리를 비운다면,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수많은 예술 작품들이 나치군에 의하여 파괴당할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목숨이냐, 예술작품의 보존이냐를 두고 갈등하는 그의 앞에 한 사람이 나타난다.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나치군의 사령관, 프란츠 메테르니히 백작이다. <프랑코포니아>는 적대 관계 속에서도 예술품을 지켜야 한다는 궁극적인 생각은 일치하는 두 사람이 긴장과 신경전 속에서 어떻게 힘을 합치고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프랑코포니아>는 크게 보자면 세계 2차 대전, 시야를 좁혀보면 루브르 박물관의 역사다. 실제 전쟁을 바탕으로 하는 다큐멘터리 형식이면서도 감독의 시점을 추가하여 관객으로 하여금 지금까지의 다큐멘터리 영화와 전혀 다른 작품이라는 평가를 주게 만든다.
루브르 박물관은 오늘날에도 프랑스의 유명한 관광지로 소개되며, 해외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그 이름은 한번쯤 들어봤을 정도로 유명하다. 격전의 세월을 거치면서, 루브르 박물관이 오늘날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감동을 줄 수 있다는 사실에는 오래전 누군가의 희생과 책임이 따랐을 거라고 감독은 주장한다. 전쟁 중에도 파괴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것을 지키고자 했던 누군가의 노력이 있었다. <프랑코포니아>는 그 누군가의 이야기를 다룬다.

루브르 박물관은 유명하지만, 사실 구체적인 역사나 소장 예술품에 대해서 자세하게 아는 사람은 드물다. 세계적인 미술품 ‘모나리자’를 소장하고 있는 박물관이라는 사실 정도만 널리 알려져 있다. 사실 예술, 특히 박물관은 일반인들이 좀처럼 접하기 어려운 분위기를 풍기기 마련이다. <프랑코포니아>에서는 박물관의 이야기를 다룸으로서 이곳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얼마만큼의 예술적 가치가 있는지 증명한다.
물론 전쟁 상황이라는 시대적 배경 때문에 <프랑코포니아>의 루브르는 그렇게 화사하지 않다. 어둡고 그림자가 진 화면에서, 박물관은 이곳이 언제든지 파괴당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 하지만 그 어두운 분위기에서 우러나는 루브르 박물관의 모습이 <프랑코포니아>만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프랑코포니아>는 기존의 영화와는 굉장히 다른 색채의 작품이다. 주인공과 주인공 주변의 등장인물이 현재형으로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대부분의 작품과는 달리, 감독의 시선으로 과거의 사건을 바라봄으로서 관객의 이해도를 높인다. 물론 처음 접해보는 색다른 시점에 관객은 당황할 수 있다. 어쩌면 이해하기 힘들어 자칫 지루하게 느낄 수도.
하지만 초반의 어색함을 견뎌내면,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의미가 조금씩 와 닿기 시작한다. 낯선 분위기 속에서 친근함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은 좀처럼 많지 않다. 프랑스의 예술 작품들, 그리고 루브르 박물관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적극 추천할 만하다.

루브르 박물관은 처음부터 예술품의 성지가 아니었다. 건설 초기에는 박물관이 아니라 궁궐이었다. 귀족들의 사치를 반영하여 화려하기 그지없었던 이 건축물은 프랑스 혁명을 거치면서 왕과 귀족들의 생활상을 공개하는 일종의 전시관이 된다. 시간이 지나 왕족과 일반인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지금의 루브르 박물관이 되었는데, 이는 오늘날 ‘박물관’이 할 수 있는 역할을 암시한다. 과거 뚜렷하게 나뉘어져 있던 계층이 하나가 되는 공간. 이런 공간을 지키기 위해 입장이 다른 두 사람이 뜻을 합친다는 스토리에도 특별한 의미가 있다.

<프랑코포니아>에서는 픽션과 논픽션을 자주 오버랩시킨다. 자칫하면 관객의 이해도를 떨어뜨릴 수 있는 시도지만, 색다른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냈다는 시도 자체는 인정할 만하다. 박물관을 과거의 기록으로만 생각하지 않는 감독의 애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박물관은 오래된 옛것으로 머물러 있지 않는다. 과거의 기록과 생활상을 통해 현재를, 더 나아가 미래를 가르쳐준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박물관을 찾고, 깨달음을 얻는 것은 그곳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프랑코포니아>에서는 루브르 박물관 안에서 교차되는 과거와 현재를 통해, 미래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가리킨다.

극중 ‘국가와 예술의 목적은 서로 다르다’는 내레이션이 등장한다. <프랑코포니아>의 두 주인공은 분명 서로 적대관계에 있는 인물이지만, 루브르 박물관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만큼은 뚜렷하다. 적이면서도 아군인 두 사람이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아슬아슬하게 나아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국가와 예술,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은 중립을 유지했던 두 사람은 과연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을까? 과거와 현재가 중첩되는 스크린에서 두 사람의 선택을 주목하게 된다.
기존의 다큐멘터리, 역사 장르와는 확연히 다른 색채의 작품이기에 초반에는 어색하고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감독의 새로운 시도는 생각보다 집중력을 높이고, 과거와 현재가 중첩되는 과정에서 보다 생생하게 ‘역사의 현장’을 느끼게 한다. 다큐멘터리, 역사, 드라마 장르를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과감하게 추천할 만하다. 루브르 박물관이나 그곳의 예술작품들에 대해 관심이 있는 관객에게도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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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 드라마, 역사 장르를 좋아하시는 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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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hmj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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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코포니아>는 독특한 구성과 전개로 마치 극영화 같은 다큐멘터리다. 영화 <파우스트>로 제68회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러시아 출신 알렉산더 소쿠로프 감독의 작품으로 감독 자신이 나레이션을 맡았다. 감독은 영화의 일부가 되어 폭풍우 속에서 예술품을 운반하는 배의 선장과 교신을 하고, 안톤 체호프과 톨스토이를 깨우는 등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루브르의 발자취를 좇는다. <프랑코포니아>는 역사 속 인물의 삶을 재현하고, 예술 작품 속 주인공을 불러내며 루브르 박물관의 시작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물음을 던지고 대답한다. 감독이 호출한 주요 인물은 루브르 박물관을 예술품으로 채우는데 크게 한 몫 한 나폴레옹 황제와 들라크루와의 명화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의 주인공 마리안느다. ‘박물관에 전시된 예술품의 기원은 세계 어느 곳이지만 결국은 승리하는 자의 공간에서 전시된다’는 말처럼, 전리품을 자랑스럽게 바라보는 나폴레옹을 통해 루브르가 가지고 있는 방대한 소장품이 어떻게 그 곳에 자리했는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또, 루브르 박물관에 있어 가장 큰 위기였을 2차 대전 중 자크 조라르와 메테르니히 백작이 루브르 박물관을 어떻게 수호했는지에 대해서도 얘기한다. 그들이 루브르 박물관을 지킨 대가는 나치에 대한 암묵적 협력이었다. 물론 감독은 그 행위에 대해 옳다 그르다 판단을 하진 않는다. 하지만 비교적 온전히 지켜진 루브르 박물관과 나치에 의해 파괴된 러시아의 에르미타주 박물관의 처참한 광경을 대비시킨다. 소쿠로프 감독은 예술 수집이라는 명목 하에 타인의 것을 약탈해도 좋은지, 예술 작품을 보호하기 위해 잠시 적과 타협을 하는 것이 옳은지, 이에 대한 판단을 관객들의 몫으로 남긴다. 전리품을 보며 ‘나야(c’est moi)’를 자랑스럽게 되풀이하는 나폴레옹에게 프랑스 혁명 이념인 ‘자유, 평등, 박애’ 를 되뇌는 마리안느와, 이를 조소하듯 쳐다보는 모나리자. 이 삼각구도가 인상적인 <프랑코포니아>는 예술에 관한 독창적인 다큐멘터리다. 프랑코포니아(Francofonia)는 프랑스어 사용자 또는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국가와 지역을 의미한다.
2016년 6월 8일 수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young@movis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