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어 애프터
Efterskalv, The Here After, 2015

스웨덴, 폴란드, 프랑스의 합작 영화인 <히어 애프터>는 1983년생 신예 감독 ‘매그너스 본 혼’의 첫 장편 데뷔작으로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이 창립한 북유럽 최대의 영화 제작사 ‘젠트로파’가 제작에 참여했다. 스웨덴 출신의 감독은 영화 학교를 다니기 위해 폴란드에 도착한 후 심한 강도를 당하게 되면서 인간의 본성, 폭력성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다.
<히어애프터> 또한 이런 감독의 관심 주제 선상에 놓여있는 작품으로, 작은 마을에 사는 한 소년이 저지른 심각한 죄를 통해 사람들이 범죄자를 대하는 방식에서 보여지는 또다른 폭력성, 범죄자의 인권 문제, 화해와 용서의 가능성 등을 탐구하게 한다.

고등학생 욘은 소년원에서 출소한 뒤 아버지와 함께 한 시골의 작은 마을에 위치한 집으로 돌아온다. 마을 사람들은 돌아온 그를 차가운 시선으로 흘겨본다. 그를 반기는 이들은 집에서 키우는 개와 어린 동생 필립 뿐이다. 욘은 원래 다니던 학교에 다시 다니기로 하는데, 욘이 다시 학교에 간 첫 날, 같은 반 아이들은 그를 냉대하고 몇몇은 수업도중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린다.
그런 와중에 그의 옆에서 같이 이야기를 나눠주는 사람은 욘이 범죄를 저질렀을 때 마을에 없었던 전학생 마린 뿐이다. 하지만 학생들의 자잘한 괴롭힘은 점차 심한 폭력으로 바뀐다.

영화는 이런 스토리 속에서 범죄자의 사회 복귀에 대해 그 범죄가 벌어진 공동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철저히 관찰자적이고 관조적인 태도로 전달한다. 주인공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조차 영화 중반 이후까지 명확히 설명되는 바가 없고, 주인공을 비롯한 주변인물들의 감정상태가 어떠한지 등 중요한 질문에 대해 답을 내어주지 않은 채 조용히 그들의 일상을 응시한다.
답답함을 느낄 수도 있는 방식이지만 덕분에 관객들은 감정이나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은 객관적인 태도로 욘이 겪는 비난과 폭력, 고립과 고통의 목격자가 된다. 그러면서 범죄자라면 형을 살고 나왔다 하더라도 마땅히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감수하면서 묵묵히 참고 그냥 살아야하는지, 순간의 행복도 미소도 용납 되는 일 없이 영원한 세월을 고통 속에서 헤매야 하는지, 폭력성을 드러낸 범죄자를 사회적으로 처벌하기 위한 집단적 폭력성은 정당한지 등을 묻고 답을 생각해보게 된다.

영화의 그 밖의 특징은 약간 푸른 빛을 띠는, 왜곡이나 미화없는 리얼하고 차가운 화면으로 욘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담아낸다는 점이다. 이런 차가움은 욘에게 보내는 냉소와 경멸, 비난이 섞인 사람들의 시선을 현실적으로 다가오게 하면서 그 아픔을 제대로 느껴보게 하는 역할을 한다. 한편 아름답고 평화로워 보이는 시골 마을의 밝은 풍경과 순수한 자연의 모습을 담은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환한 빛이 있을 때 그림자가 더 짙어지듯, 이런 장면들은 욘이 저지른 범죄의 무거움, 그와 가족들이 느끼는 고통과 대비되며 이를 더욱 부각하는 장치가 된다.

이렇게 영화 초반부에서 관객은 욘이 저지른 구체적 범죄에 대한 가치판단을 배제한 채 그가 소년원에서 출소한 후에 겪는 녹록지 않은 상황들을 보여주는데 집중한다. 이후 중반을 지나면서 전학생 마린과 욘이 나누는 대화로 인해 욘이 무슨 범죄를 저질렀는지가 밝혀진다. 이때 관객들은 추가적인 질문에 봉착한다.
어떤 종류, 의도의 범죄는 사람들에게 용서받을 수 있고 어떤 범죄는 용서받을 수 없는가? 그런 심정적, 주관적, 자의적 기준이 합리적인가? 그렇다고 믿으면서 다른 사람에게서 새로운 삶의 기회를 모두 빼앗는 것은 옳은 일인가?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 범죄자가 다시 폭력성을 드러내지 않도록 교화하는 것은 아닌가?

감독은 영화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이런 물음에 대한 대답을 내리지 않으며, 욘이나 마을 사람들, 욘의 가족들 중 누구도 두둔하지 않는다. 그러나 관객들은 영화의 불친절함 때문에 욘과 마을사람들의 대립에 있어서 마린보다도 완전한 제 3자의 지위를 획득하며 그가 겪는 리얼한 상황들을 목격한다.
사람들은 보통 TV에서 나오는 흉악범의 범죄 이야기를 들으면 범죄자를 비난하고 피해자에 공감한다. 또한 범죄자는 법률적으로는 물론 사회적으로도 처벌받고 엄청난 고통을 느껴봐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이렇게 한 구체적 인물이 범죄 이후 주변에서 받는 취급을 아프게 느끼고, 괴로움에 절규하는 모습을 보고 나서는 충분히 범죄를 뉘우치며 변하고자 하는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주어질 필요도 있다는 생각이 들게 될 것 같다.

이렇듯 가해자나 가해자의 가족, 피해자나 피해자의 가족 및 그 주변의 관련 인물 등 어느 쪽에도 연민과 공감을 배제하려고 노력하는 게 영화가 취할 수 있었던 최선의 방식이었을 것이다. 어설프게 편을 들다간 관객들에게 거부감을 일으켰을 테니 말이다. 관조를 미학으로 여긴 영화 덕분에 피해자나 가해자의 부모, 가해자 본인의 심정과 괴로움은 각각 차갑고도 묵직하게 관객을 흔들면서 범죄자에 대해 원래 가지고 있던 단순하고 단정적인 생각에 변화를 일으킨다.
그렇지만 관객들이 영화를 보며 갖게 되는 여러 질문에 대해 구체적인 답을 내리는데 중요한 문제들-예를 들어 욘은 정말로 죄책감을 느끼며 변하려고 하는가, 욘이 이야기한 범죄의 정황이 진실인가-조차 명쾌하지 않았다는 것에는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 어쩌면 감독은 이를 의도함으로써 어쨌거나 이런 질문엔 여전히 답이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 모두 틀릴 수 있다는 점에 주의하라고 말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사실상 화해와 용서까지는 바라지도 않는 이런 요구는 욘이 저지른 범죄의 중함을 생각해 봤을 때 꽤나 납득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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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소로우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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