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다드 카페 : 디렉터스컷
Out Of Rosenheim, Bagdad Cafe, 1987

독일 감독 ‘퍼시 애들론'이 1987년에 제작한 <바그다드 카페>는 한국에서는 이미 1993년 개봉한 경력이 있다. 남편과 싸우고 길에 내쳐진 독일인 관광객 ‘야스민’과, 어느 사막의 도로 위에서 다 쓰러져가는 ‘바그다드 카페’를 운영하는 미국인 ‘브렌다’가 서로에게 공감하며 점차 가까워지는 이야기를 담은 이 영화는 개봉 당시에는 별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하지만 영화가 비디오로 출시 된 이후 영화 마니아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계속해서 사랑 받아왔고 제작 후 약 30년이 흐른 2016년 7월, 17분이 추가된 감독판이 재개봉 되었다. CG가 난무하는 요새 영화가 가진 화려한 맛은 없지만, 아날로그 필름으로 찍은 영화의 그리운 감성과 원색의 필터를 사용해 만들어낸 독특한 색채감이 시선을 사로 잡는다. 또한 블루스, 클래식, 뮤지컬을 아우르는 사운드, 서로 너무 다른 캐릭터들의 조화가 돋보이는 쉽게 잊혀지지 않을 영화이다.

주제가 “콜링 유”의 힘
영화의 시작, 어느 황량한 도로 한복판에서 중년의 독일인 관광객 부부가 한바탕 싸움을 벌인다. 화가 난 부인은 차 트렁크에서 짐을 꺼내 내리고 남편은 그런 부인을 놔두고 차를 돌려 쌩하니 떠나버린다. 잠시 고민하던 부인은 푸짐한 몸매와 그에 못지 않은 묵직한 짐을 끌고, 땀을 뻘뻘 흘리며 사막에 난 도로를 따라 무작정 걷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서 들려오는 노래는 그 시퀀스에 너무나 잘 맞아 떨어지는 가사를 담은 영화의 주제가 “콜링 유”이다.
‘제베타 스틸’이 건조한 듯 절절한 목소리로 부르는 이 노래는 머릿속을 직접 울리고 마음을 관통하며 ‘시각’으로만 느껴졌던 사막의 뜨거운 모래바람을 갑작스레 피부에 와 닿게 한다. 노래 덕분에 관객은 어느 새 영화 배경인 캘리포니아 모하비 사막을 가로지르는 국도 66번 도로에 초대된다. 그리고 주인공 ‘야스민’과 나란히 걸으며 누군가가 나를 부르는 것 같은, 누군가를 마음속에서 부르는 것 같은 갈망을 느끼게 된다. 이렇게 이 노래는 단숨에 관객과 주인공들간의 거리감을 무너뜨리고 영화가 끝난 후에도 진한 각인과 여운을 남긴다.

별볼 일 없는 우울한 인생들의 집합소, 바그다드 카페
강렬한 사운드로 시작하는 영화는 이후 다채로운 캐릭터들을 등장시킨다. 독특한 모자에 두꺼운 수트를 입고 짐을 질질 끌고 길을 걷던 야스민은 ‘브렌다’가 운영하는 ‘바그다드 카페’에 당도한다. 고장 난 커피 기계 덕분에 커피조차 팔지 않는 허름한 카페는 모텔에 주유소까지 겸하고 있지만 하루에 트럭 운전사 한 둘이 방문하는 게 전부다.
‘브렌다’는 작은 심부름 조차 해주지 않는 야속하고 철없는 남편 ‘살’과, 하루 종일 피아노 건반만 두드리며 시끄럽게 하는 아들 ‘살라모’, 한껏 꾸미고 길에서 만난 남자들과 놀러 다니기 바쁜 딸 ‘필리스’의 뒷바라지에 카페에 모텔까지 운영하느라 지칠 대로 지쳐있다. 덕분에 그녀는 툭하면 불같이 화를 내고 인상을 찌푸린 채 잔소리를 쏟아낸다. 한편 모텔의 장기 투숙객이자 객식구들로는 헐리우드에서 영화 세트를 칠하던 늙은 화가 루디 콕스, 트럭 운전사들에게 문신을 해주며 돈을 버는 데비가 등장한다.

바람 불면 무너질 것 같은 카페에 모여 사는 것은 이렇듯 고된 삶 밖에는 겪은 바가 없어 악만 남은 불행한 여인과 여기저기 부서지고 낡아빠진 카페만큼이나 별볼일 없는 인생들이다. 그런데 불행과 분노, 무기력과 우울이 감돌던 바그다드 카페에 길 잃은 관광객 야스민이 도착하면서 변화가 시작된다. 아기 울음소리와 살라모가 치던 우울한 바흐, 브렌다의 호통소리만 가득했던 이곳에 어느 새 사람들의 웃음 소리와 경쾌한 행복의 선율이 흐르게 된 것이다.
모든 것을 바꾸는 단순한 마법
이런 변화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야스민은 바그다드에 머물기로 결정한 뒤 서툰 영어를 대신해 그들의 일상을 조용히 관찰하고, 그들을 기쁘게 만들만한 작은 행동들을 한다. 예를 들어 브렌다가 집 떠난 남편은 물론 가족들 중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모든걸 혼자 감당하고 있다는 걸 알아채고는 먼지가 수북하게 쌓인 브렌다의 모텔 사무실을 깨끗하게 청소한다. 무슨 꿍꿍이냐며 의심하며 불같이 화를 내는 브렌다에게 그저 그녀를 기쁘게 해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누군가가 자신을 위해 호의를 베푸는 게 전혀 익숙하지 않은 브렌다는 처음엔 야스민을 경계하지만, 야스민 또한 외국의 사막 한가운데서 남편도 자식도 없이 혼자 남은 쓸쓸한 인생임을 깨닫고는 그녀를 점차 자신의 인생 속에 받아들인다. 야스민은 남편의 짐 가방에 들어있던 마술세트 상자를 가지고 마술을 연습해 사람들에게 선보이고, 살라모, 필리스, 루디 콕스에게도 브렌다에게 그랬듯 작은 호의를 보여주며 점차 가까워져 간다.
불행을 행복으로, 울음 소리를 웃음 소리로 만든 마법은 이토록 단순하다. 타인을 이해, 공감하고, 그를 토대로 그 사람을 기쁘게 해줄 작은 친절을 베푸는 것. 영화가 만들어 진지 3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불행한 사람들이 많은 현 사회에 필요한 것 또한 이런 단순한 마법이다. 공감과 이해 속에서 싹트는 관용과 유대 말이다. 이로써 분노와 짜증만 가득했던 얼굴에 꽃처럼 피어난 미소를 되찾아 주면 그 미소가 수많은 사람들에게 연쇄작용을 일으키고, 결국 시작은 미약했지만 끝은 창대한 마법이 완성된다.

사막에는 오아시스가 필요하다
<바그다드 카페>는 이런 메시지를 구구절절 대사나 내레이션으로 설명하지 않고 인물들의 행동과 표정의 변화, 영화 속에서 들려오는 소리와 음악의 변화, 세피아 톤의 우울한 색채가 점차 경쾌하게 바뀌어가는 색채의 변화로써 전달한다. 감독은 서로 전혀 다른 브렌다와 야스민을 친구로 만들 듯, 이런 함축적 화법과 사막이란 배경, OST와 색채감이 모두 적절한 하모니를 이루게 하며 관객들의 마음과 감각을 사로잡는 영화를 탄생시켰다.
영화 속 브렌다와 야스민처럼 누구나 인생이란 사막에 혼자 내버려진 것같은 외롭고 절망적인 기분을 느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한 채 내 인생을 바꿔줄 누군가가 나타나기만을 막연히 기다린다. 그런데 뜨거운 태양아래서 옴짝달싹 못하다 재가 되어 버릴 듯한 그 기분을 혼자만 느끼고 있는 건 아니다. 그러니 일어서지도 못할 정도로 지쳐버리기 전에 나처럼 괴로워하는 누군가에게 먼저 다가가 브렌다의 ‘야스민’이 되어주는 건 어떨까. 인생을 살다 아픔을 겪는 인간이라는 공통점 속에서 공감하며 쌓아 올린 우정과 미소가, 두 사람은 물론 그 주변 사람들에게도 쉽게 메마르지 않는 오아시스를 만들어 줄테니 말이다.

영화의 배경이 된 장소에 대하여
영화를 본 후 영화의 배경이 실재하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을 위해 참고로 적어 본다. 캘리포니아주 바그다드는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 과거의 공간이다. 예전에는 미국 국도 66호선이 지나는 ‘바그다드’라는 마을에 ‘바그다드 카페’가 실제로 영업을 했었으나, 주간 고속도로 40호선이 새로 개통되면서 점차 가게들이 문을 닫게 되었고, 1960년대에 결국 마을도 완전히 사라져 버린다.
영화는 이후 바그다드 마을이 있던 자리에서 서쪽으로 50마일 떨어진 ‘뉴베리 스프링스’라는 곳의 한 카페에서 촬영되었다. 1950년대에 지어진 이 카페는 현재도 영화 속 ‘바그다드 카페’의 모습을 지키며 같은 자리에 남아 영업을 하고 있으며, 루디 콕스가 야스민의 누드화를 그렸던 트레일러도 카페 옆에 놓여있다. 영화를 인상 깊게 본 관객이나 미국 국도 66번을 따라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누군가라면 한번쯤 들러 영화의 여운을 되새겨 봐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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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장센과 사운드를 중시하는 사람
감각적이면서도 마음에 울림이 있는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
따뜻한 공감속에서 주인공들이 변해가는 모습을 보고 싶은 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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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소로우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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