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번의 구타
Les 400 Coups , The 400 Blows , 1959

아이들에게 세상은 모든것이 궁금한 곳이다. 꿈이나 미래라는 단어가 어린이에게 어울리는 이유는 세상을 향한 그들의 호기심 가득한 시선 때문이고 행여 세상에 나가 깨어지고 부서지더라도 겁잆이 도전한다.
이런 아이들을 바라보는 어른들의 시선은 불안 할수밖에 없다. 성공과 실패라는 양갈래 길에서 가늠질을 하며 신중을 기하고 성공의 확률을 중요시 하는 어른들이 보기에는 아이들의 겁 없는 돌진이 걱정스러울수 밖에 없는것이다.
소개할 영화 <400번의 구타>는 무관심한 부모와 억압적인 학교로 부터 벗어나기 위해 영화와 문학에 흠취했던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의 유년시절을 바탕으로 한 영화로, 1950년대 후반 프랑스 영화계에 불었던 '누벨바그'의 기법과 기술적인 시도가 영화 전반에 담겨져 있는 작품이다.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해 스토리에 다양한 오마주를 넣은점 또한 이 영화만의 독특한 구성이라고 할수있는데 주인공 앙트완(장 피에르 레오)과 르네가 담배를 피우다 부모님이 들어오시자 냄새를 없애기 위해 베개로 휘젓는 장면이나 선생님을 따라가던 아이들이 대열에서 하나둘씩 도망치는 장면들은 1933년 '장 비고'감독의 고전단편 '품행제로' 를 오마주하여 감독이 존경하는 작가들에 대해 경의를 표한 대표적인 장면들이다.
고압적인 태도로 학생을 대하는 선생님과 자식에게 무관심한 부모님은 앙트완을 점점 삐뚫어지게 만든다. 호기심이 한창 많을때인 앙트완은 수업중 야한 사진을 보다 선생님에게 걸려 야단을 맞기도 하고 숙제를 못한날은 혼날것이 두려워 학교를 빼먹고 영화를 보면서 시간을 때우기도 한다.
어느날 친구 르네와 함께 영화를 보러 가던 도중 길가에서 어머니와 낮선 남자가 키스를 하고있는것을 목격하게 되는데 어머니 또한 앙트완을 발견하게 되지만 둘은 서로의 잘못을 묵인한채 집에서는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는다.
학교에 결석을 하고도 무사히 넘어갈수 있었던 이유는 어머니가 돌아가셧다고 선생님에게 거짓말을 한것 때문인데 이것마저도 학교를 방문한 부모님으로 인해 들통이나 결국 가출까지 경험하게 된다. 이같은 앙트완의 마음을 잡기위해서 어머니는 채찍을 사용하기 보다 성적이 오르면 상당한 액수의 용돈을 주겠다고 제시하는데 앙트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은 표절을 했다며 되려 정학처분을 내리게 된다.
또 다시 집을 나와 친구 르네의 집에서 지내다 그것도 힘들어져 도둑질까지 하게 되는데 이로인해 소년원에 가게된 앙트완은 부모님의 동의가 있으면 풀려날수 있음에도 자신의 치부를 감추려는 어머니의 반대로 인해 소년원에 머물게 된다.
절도죄로 소년원에 갇힌 앙트완을 구제할수 있었지만 어머니는 불륜사실이 드러나는것이 두려워 그대로 방치하고 홀로남겨져 있던 앙트완은 소년원 탈출하여 보고싶었던 바다를 향하게 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으로 바다를 바라보는 앙트완의 얼굴이 클로즈업 되면서 정지된 장면은 영화의 대미를 장식하며 반항적인 소년의 영혼을 보여주는듯 하는데 강렬한 이 장면은 수 많은 영화속에 오마주된 명장면 이기도 하다.
<400번의 구타>라는 영화의 제목은 아이들은 400번은 맞아야 제대로 큰다는 프랑스 격언에서 따온것인데 방황기의 아이들을 구타로 다스리려는 부모가 얼마나 되겠는가만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은 이같은 기성세대의 교육방식을 우회적으로 꼬집으며 유머러스한 방법으로 영화를 이끌어나간다.
어릴적 가출과 결석을 하며 영화관을 들락거렸던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들은 앙뜨완을 통해 투영되 어린시절을 추억하고, 촬영방식이나 엔딩에 대한 새로운 시도로 영화로 표현할수 있는 범주를 넓혔다는 사실은 누벨바그의 시금석 이라고 할수있는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의 역량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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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벨바그 사조의 특징을 볼수있는 영화.
◈담담하게 그려낸 인생영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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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KANG ME JU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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