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평양
Goodbye, Pyeongyang , 2009
재일교포 2세 양영희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굿바이, 평양>은 1970년대 북한을 지상낙원으로 생각하고 북송선에 오른 세 오빠 중 북한에서 태어난 둘째 오빠의 딸 선화를 중심으로 양영희 감독의 가족사를 선화의 어린 시절부터 조명하는 영화이다.
가족을 만나기 위해 13년간 북한을 왕래하면서 홈비디오로 촬영한 영상들을 편집하여 영화를 완성한 만큼 기존의 다큐멘터리 방식과는 조금 차별화된 영상을 선보이는데, 감독이 직접 영상 속에 얼굴을 내미는가 하면 가족과 질문을 주고받으며 교감을 나누는 것 까지 주도적인 관찰자 시점으로 그들을 바라본다는 것이다. 민감할 수 있는 북한의 내부적인 문제에 접근하여 이데올로기를 자극하기 보다는 가족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초점을 맞추며 북한에 있는 가족들의 안전까지도 생각하는 감독의 세심함이 엿보인다.
양영희 감독의 오빠들이 북한행을 선택한 것은 당시 군수산업을 바탕으로 한 북한의 경제력이 한국보다 조금 우위에 있었다는 점이 작용하기도 하였지만 무엇보다 감독의 아버지가 일본 오사카에서 살며 조총련 간부로 활동했다는 이력이 가장 큰 원인이 된듯하다.
일제 강점기를 경험하며 탄압을 견디지 못한 제주도민들과 제주 4.3항쟁을 피해 이주한 사람들로 인해 오사카에 거주하는 제일동포 중 80%가 제주도민 이라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한국의 근대사와 깊이 연관되어 이념논쟁까지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가족의 아픔이 담겨져 있다.
영화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선화는 오사카에서 살다가 북한으로 넘어간 둘째 오빠의 딸로 일본에 사는 할머니가 보내주신 일제물건을 쓰는 평양의 소녀이다. 제주도에서 일본으로 건너온 아버지, 일본에서 북한으로 온 선화의 아버지, 비틀즈의 음악과 연극에 심취했던 어린시절까지 자신과 닮아있는 선화를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은 따뜻하다.
양영희 감독의 어머니는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자전거에 짐을 가득 싣고 어디론가 분주하게 달려가신다. 북한에 있는 아들 셋에게 보내줄 생필품과 손주들이 먹을 과자를 우편으로 보내기 위함인데 30여년간 해온 일이라 익숙한 듯 수월하게 일을 마치고 만족한 표정을 지으신다.
영상에 담긴 북한에 모습은 당시 우리나라 거리풍경보다 훨씬 깨끗하고 정돈된 모습인데 주민들의 생활을 들여다보면 전기는 하루에 두 시간 정도밖에 사용할 수 없을 만큼 전력난에 시달리고 있고 상점에 과자는 있지만 비싼 가격으로 인해서 일반주민들은 사먹을 엄두도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김일성 부자 우상화에만 혈안이 되어 장난감을 가지고 놀아야할 아이들은 총칼을 들고 주민들을 선동하는데 앞장서는가 하면 극중 선화의 모습처럼 김일성 부자를 찬양하는 문구를 암기해야만 하는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재일교포2세로 일본에 살며 조총련교육을 받으며 자랐던 양영희 감독은 자신이 겪었던 혼란스러운 감정들을 선화의 성장과정을 통해 보여주며 이념과 사상, 정치와 같은 거대한 장벽들을 교묘하게 뛰어넘는 드라마적인 연출방법을 선택하였다. 재롱을 부리던 6살 꼬마의 모습부터 민감한 부분을 이야기하기 위해 잠시 카메라를 꺼줄 것을 요구하는 섬세한 사춘기 소녀의 모습까지 감독의 분신과도 같은 선화의 모습은 남과 북으로 갈라져 이념의 갈등을 겪고 있는 기성세대들을 향해 안타까움을 전하는 듯하다.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국가로 존재하는 북한은 양영희 감독이 전작인 <디어 평양>을 국내에 개봉하자 양 감독의 출입국을 거부하며 해맑은 선화의 모습도 세 명의 오빠와 조카들까지 다시는 볼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버린다.
북송선에 자식들을 떠나보내야만 했던 아버지는 다시는 세 명의 자식과 손주들을 보지 못하고 오사카에서 외롭게 세상을 등지고, 오사카에서 보내준 약에 의존해 살아가던 둘째 아들도 세상을 떠나며 영화는 마무리 된다. "영광스럽게 정전이 되었습니다." 전기가 끈긴 암흑 속에서 선화가 한 말은 걱정스러운 그들의 미래를 예견하듯 아프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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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잔잔한 감동을 주는 다큐멘터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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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JC PARK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 <저작권자 ⓒ 원하는 모든것 파일조 filejo.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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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평양>은 홈 비디오 형식으로, 한 가족의 일상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딸의 생일, 가족들의 여행 등 한 가족의 대소사라는 일상이 카메라에 대한 이질감 없이 얼굴을 내민다. 이 다큐멘터리가 보통 홈 비디오와 극명한 차별화가 되는 지점은 재일교포라는 것에서 비롯된다. 북한과 일본, 한국을 조망하자는 거창한 이념이 있는 것은 아니다. 북으로 건너간 세 오빠와 조카들을 만나러 평양을 방문할 때마다 찍어뒀던 13년의 기록은 이산가족 상봉 특집드라마보다 진실하다.재일교포 3세대 양영희의 전작 <디어 평양>은 기술적 기교도 허심탄회한 눈물도 없이 담담했다. 이 목소리가 와 닿았던 이유는 북한과 일본 사이에서 숨 쉬던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서였다. 10년의 기록이었던 <디어 평양>에 3년이 보태진 <굿바이, 평양>은 세대가 바뀐 후일담이다. 전작이 조총련 열혈 간부였던 아버지와 젊은 2세대 상징 같은 감독 본인에게 집중한다면, <굿바이, 평양>은 오빠의 어린 막내 딸 선화라는 새로운 세대를 축으로 돌아간다. 북한의 허가 없이 촬영하고 공개된 전작과 비교해 정치성에 대한 조심스러운 발걸음은 그대로다. 하지만 몇몇 장면에서는 내레이션을 통해 솔직한 입장을 내비치는 데 적극적인 순간이 존재한다. 어린이 예술단의 공연 ‘평양성의 소녀’는 20년 동안 변함이 없다. 공연을 볼 때마다 좋아하는 어머니와 달리 감독은 기분이 우울해진다고 소회한다. 아이들의 완벽한 공연은 언제 봐도 그로테스크하고 감독은 좀 더 피부에 와 닿는 복잡다단함을 내비친다. <디어 평양>을 본 관객들의 반응은 ‘저 곳도 사람이 사는 곳이구나’라는 단순하지만 당연한 진리였다. 두 나라 사이를 오가는 괴리와 담담한 관찰은 극적인 장치 없이 이야기를 변화무쌍하게 만든다. 전작에서 정전으로 암흑이 된 방 한 켠에서 쇼팽을 연주하던 어린 소년은 짧은 순간 어떤 전율을 선사했다. 그 쇼팽의 피아노는 <굿바이, 평양>에서는 교정기를 한 선화의 얼굴로 대체된다. 절도 있는 매스 게임과 평양예술단 혹은 광대뼈가 튀어나온 북한 어린이들의 비참한 모습 등 단편적으로 각인되어 있던 북한은 훨씬 다채롭다. 제목에서 대구를 이루는 <디어 평양>과 <굿바이, 평양>은 진귀한 역사적 기록이 된다. 양영희 감독은 전작 상영 탓에 북한 입국이 금지되었고, 이 진귀한 기록이 이어질지는 알 수 없다. 영화 공개를 앞두고 말을 아끼던 감독의 말처럼 말해지는 것보다 말해지지 못한 여백을 더 많이 살피며 봐야 한다는 것은 옳다.
| 글_양현주 ( siwoorain@movist.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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