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 전주=박꽃 기자]
미얀마, 홍콩, 성 소수자 등 약자와 연대하는 영화제
2년 연속 코로나19 영향, 영화제 역할은 ‘환대’하는 것
<시> 블랙리스트 문제 해결 안 됐지만… 삶의 고민 다루는 영화 계속할 것
미얀마, 성 소수자, 홍콩 등 약자와 연대하는 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이하 '전주영화제') 기간 국제영화제 단체들과 미얀마 민주화운동 지지 선언을 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영화계에서 단체로 공식적인 목소리를 내는 건 처음이다.
국제영화제 위원장끼리 모인 단체 통신방이 있다. 거기서 이야기가 나왔다. 미얀마 상황이 매일 급박하지 않나. 군인 수십 명이 도망가는 젊은이에게 무차별 사격하는 장면도 봤고. 가장 먼저 열리는 전주영화제에서 성명서를 발표하게 됐다. 우리가 (대표 격으로) 지지를 표시하는 형식이지만 평창, 강릉, 울주 영화제 등이 같이 기획한 거다.
지지 선언 이외의 프로그램도 준비돼 있나.
버마(미얀마)에서 현재 상황을 정리해 보낸 영상을 틀 예정이다. 그런데 그 또한 한 달 전에 찍은 것이다. 한국에서 구할 수 있는 풋티지를 함께 상영할 예정이다. 각자 영화제들이 (그동안 내한했거나 작품 수급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던) 버마 영화인들과 여러 채널로 소통하고 있다. 그쪽에서도 이번 선언에 대한 기대가 큰 거로 들었다.
홍콩의 민주화운동을 다룬 익명의 출품작 <입법회 점령사건> <붉은 벽돌벽 안에서>를 상영한다. 코로나19로 폐쇄된 우한에 남겨진 중국 시민들의 이야기를 다룬 아이웨이웨이 감독의 <코로네이션>도 공식 상영작이다. 전 세계 약자를 향한 연대가 느껴지는 기획이다.
그런 태도가 확실히 있었다고 본다. 약자와 소수자를 주목하는 게 우리 영화제의 역할이다. 개막작은 2년 동안 임금을 받지 못한 아버지가 가족을 되찾기 위해 벌이는 고군분투를 다루고, 폐막작은 선진국이라고 생각했던 스페인, 프랑스가 스페인 내전 당시 난민 문제를 어떻게 다뤘는지 보게 한다.
주목할 만한 추천작을 꼽아준다면.
언급하고 싶은 또 다른 작품은 성 소수자 부모를 다룬 <너에게 가는 길>이다. 그동안은 성 소수자 당사자에 집중한 작품이 많았는데 이 작품은 그들의 부모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보여준다. 굉장히 좋은 영화이니 반드시 주목했으면 한다. (언급한 영화는) 모두 우리가 ‘책임’져야 하는 영화들이다.
책임이라는 건…
전주영화제가 무슨 힘이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웃음), 우리가 주목하면 (영화를 알리는데) ‘요만큼’이라도 힘이 더 생길 거라는 의미에서 하는 이야기다.

2년 연속 코로나19 영향, 영화제 역할은 ‘환대’하는 것
29일(목) 개막을 앞둔 상황에서 개최지인 전주의 코로나19 상황은 어떤가. 수도권은 확진자 수가 700명 안팎을 오가는 위태로운 분위기인데, 지난해와 달리 일정을 연기하지는 않았다.
전북 지역은 확연하게 안정이 돼 2단계에서 1.5단계로 (오히려) 내려갔다. 영화제에 참여하기 위해 타지에서 오는 사람들이 조심을 해줘야 하는 입장이다. 솔직하게 말하면 올해까지 영화제가 코로나19 영향을 받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지난해 전 세계 처음으로 개최한 국제영화제라는 걸 시작으로 올해도 계속해서 레코드(기록)를 세우고 있는 것 같다. 좋은 레코드는 아니지만.
비슷한 위기를 맞은 상황에서 영화제가 지난해와 달리 내세울 수 있는 점은.
코로나19 이후 전주에 대한 기대와 신뢰가 더 높아졌다고 생각한다. 지난해 그런 상황에서도 경쟁작에 선정된 영화 관계자를 다 불러 영화를 상영했다. 밤에는 그들이 모여서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올해는 5인 이상 사적 모임 금지 때문에 그만큼 자유롭지는 않겠지만, (현장에서 직접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흔치 않은) 기회를 얻을 것이다. 온라인 영화 상영도 처음으로 도입했는데 지난해는 반 정도만 상영 허락을 받았다면 올해는 75%에 가까운 허락을 받았다. 이건 영화제에 대한 기대나 신뢰가 없으면 힘든 일이다.
국제영화제의 큰 매력 중 하나는 대중이 해외 영화인을 직접 만날 기회를 얻는다는 점인데, 코로나19로 국가 간 이동이 어려워지면서 대부분의 행사가 화상으로 대체됐다.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사실 ‘국제영화제’라는 정체성을 넘어서, 이런 코로나19 상황에서 ‘영화’의 미래는 어떻게 되는 건지 다들 알고 싶을 거다. 우리가 올해 슬로건을 ‘영화는 계속된다’로 정한 건 그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고, 어떤 의지이기도 하다. 다만 내 나름대로는 영화제가 어떻게 진행돼야 한다는 방향성은 있다.
그 방향성에 대해서 좀 더 이야기해준다면.
흔히 칸, 베니스, 베를린을 세계 3대 영화제라고 하는데 나는 1강 2중이라고 본다. 칸이 ‘탑’이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레드카펫 행사를 아주 압도적으로 해주기 때문일 것이다. 일단 크루아제트 거리는 차가 못 다니게 된다. 그 거리에 꽉 차 있는 사람들은 마제스틱 호텔 로비에 서있는 델리게이션 차량만 쳐다보게 되는 거지. 거기에서 내린 영화인은 왼쪽을 봐라, 오른쪽을 봐라, 뒤를 봐라 하는 소리를 들으며 사진을 찍히느라 10분 이상 서 있어야 한다. 극장까지 향하는 레드카펫의 거리는 짧고, 우리(초청받은 영화인)는 좀 쪽팔리기도 해서 빨리 갔으면 좋겠는데 말이지.(웃음) 그런 과정에서 명백하게 ‘당신들이 이 축제의 주인공’이라는 의식이 생긴다. 한 번 맛을 들이면 비록 그게 허영일지라도 경험해보고 싶다는 욕망이 생긴다. 그런 게 영화제의 역할이다.
전주영화제도 영화인에게 그런 경험을 심어줘야겠다!(웃음)
우리는 독립 영화를 주목하는 영화제다. 그래서 배우든, 감독이든 유명하지 않은 사람일 수도 있는데, 그럴수록 더 격려해줘야 한다. 독립 영화 한 편을 만들고 내가 그렇게까지 환대받을 수 있다는 걸 알면 영화 만드는 보람을 느낄 것이다. 영화제에 대한 가치를 높이는 한 축은 작품 선정이지만 또 한쪽은 축제로서의 면모다. 여건이 되는대로 그런 행사를 만들 것이다.
<시> 블랙리스트 문제 해결 안 됐지만… 삶의 고민 다루는 영화 계속할 것
파인하우스필름 대표로 이창동 감독의 <시>(2010)를 제작할 당시 영화진흥위원회 ‘마스터영화 제작지원’ 사업에서 두 차례 배제된 바 있다. 블랙리스트 관련 후속 조사는 제대로 진행됐나.
영화진흥위원회는 (조사를 위한) ‘과거사 특위’를 만들고도 계속해서 예산 문제만 따지고 ‘어쩌고저쩌고’ 하더라. 언젠가 한 번 <시>에 대해서 제대로 조사가 안 된 것 아느냐고 담당자에게 물으니, 몰랐다고 했다. 사안을 충분히 조사한 뒤에 나를 피해신청인으로 부르라고 했는데 지금까지 한 번도 나를 부르지 않았다. 조사 위원도 여러 번 바뀐 거로 아는데 지난 3년 동안 아무것도 안 했다. 블랙리스트 건으로 징계를 받았던 이가 본부장으로 가 있고, 새로운 문제까지 터져 나오는데 집행부는 문제없다는 식으로 가고 있으니.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쌓여 있는 한편 새로운 작품을 기획, 개발해야 하는 제작자로서는 변화하는 영화계의 분위기 역시 고민스러울 법한데.
제작 환경이 굉장히 나빠졌다. 영화라는 게… 확실히 바뀌어 가고 있는 느낌도 든다. 좋게 말하면 체험 영화라고 할 수 있겠지만 더 정직하게 표현하자면 소위 ‘게임 같은 영화’가 쏟아져 나온다. 주로 디즈니가 주도하는 작품들 말이다. 그 작품들이 극장 전체를 완전히 장악해버리고 여타 영화들끼리 나머지 스크린을 잡기 위해 싸우는 형국이 됐다.
고민을 하게 하는 영화가 있는가 하면, 고민을 잊게 하는 영화도 있다. 최근 몇 년은 확실히 후자의 힘이 센 것처럼 느껴진다. 최근에는 OTT의 영향력도 막강해졌다. 영화제 컨퍼런스에도 관련 논의가 비중 있게 포함돼 있다.
그런 흐름이 아주 강화된 것 같다. OTT는 인디펜던트 시스템을 통해 만들어지는 독립 영화까지 가져간다. 라인업이 필요하니까. 그럼 독립 영화를 만들어 극장에서 관객과 소통하고 싶어 하는 제작자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아시다시피 나처럼 흥행도 잘 못 시키는 제작자는...(웃음) 삶을 성찰할 수 있는 영화에 과연 돈은 누가 댈 것이며, 다 만들었다고 쳐도 어떤 식으로 극장에 걸릴 것인가. 고민스럽다.
그럼에도 영화 제작을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 개발 중인 프로젝트가 여럿일 거라고 본다. 소재나 이야기에 관한 힌트를 줄 수 있나.
전-혀!(웃음) 다만 여러 개의 프로젝트 중에 어떤 것은 시리즈물이 될 거라는 정도, 또 어떤 건은 미국과 합작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말할 수 있다. 아마 어떻게든 영화 안에 삶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단서를 집어넣어보려 애쓸 것이다. 남들은 눈치채지 못하더라도.
사진_박광희(울트라 스튜디오)
[mail:got.park@movist.com]글_박꽃 기자(got.park@movist.com 무비스트)[/m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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