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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 간 진짜 실력 싸움 시작될 것” 김형석 평창국제평화영화제 부집행위원장

2021년 6월 16일 수요일 | 박꽃 기자

[무비스트=박꽃 기자]


흔히 ‘월간지 스크린 전 편집장’으로 간략히 축약, 소개되는 김형석의 이력은 무척 다채롭다. 영화기자 생활로 시작해 월간지 편집장 자리로 마감한 매체 종사 시절을 넘어 방송에 출연하는 프리랜서 영화평론가로, 국내 대부분의 영화제가 모셔가는 단골 GV 모더레이터로, 각종 공공기관이 믿고 섭외할 수 있는 한국 영화 전문가로 활동해왔다. 그의 폭넓은 행보를 단 한 줄로 요약하기란 쉽지 않지만 숱한 경력을 관통할 만한 키워드가 있다면 단연코 ‘영화에 대한 전문성’일 것이다.

2019년 김형석은 평창국제평화영화제(이하 ‘평창영화제’) 프로그래머로 영화제 일을 시작한다. 3회를 맞는 올해부터는 영화를 수급하고 콘텐츠 행사를 기획하는 프로그래머직을 유지한 채 영화제 행정, 예산까지 책임지는 부집행위원장 자리를 겸하게 됐다. 매년 7~8개 영화제에서 5~60건의 GV를 맡아온 영화제 출장 전문 영화평론가로서 ‘영화제 일은 절대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지만, 그 시절의 비판적 경험은 결국 평창영화제 기반 다지기에 든든하게 소환됐다.

김형석 개인의 역량이 평창영화제의 내실을 다지는데 기여할 무렵은 코로나19의 대유행과도 맞물린다. 지난해와 올해 영화제를 팬데믹 속에서 치르는 그는 감염병을 영화제 안에서 해소할 수 있는 문제로 새롭게 바라봐야 한다고 말한다. 위험이 해소되면, 영화제는 곧장 다시 살아나는가? 그는 “영화제 간 진짜 실력 싸움”을 말한다. 평창영화제를 포함해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한 수많은 영화제가 등장한 지금, ‘영화제 백가쟁명 시대’를 말하는 김형석 부집행위원장의 생각을 들어본다.




▲영화 담당 프로그래머가 행정, 예산까지 책임지다

1회, 2회 영화제에서 프로그래머로 활동하다가 6월 17일(목) 열리는 3회 영화제부터는 부집행위원장이라는 자리를 겸하게 됐다. 업무상 가장 큰 변화를 꼽는다면.
프로그래머는 비상근직이다. 일이 있을 때만 춘천, 평창으로 가면 됐다. 1년 중에 반년 정도를 영화제 준비에 쓴다고들 하는데 실질적으로는 3개월 정도 소요됐다. 프로그램만 잘 신경 쓰면 그 외의 건에 관한 책임도 적은 편이었다. 사무국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모르는 입장이었다고 봐야 한다.

‘사무국이 돌아가는 일’이라면 영화제 행정과 예산 문제 등 전반적인 운영 측면을 의미하는 거겠다.
부집행위원장이 됐다는 건 조직 결재라인의 마지막 란에 이름을 올린다는 걸 의미한다. 돈이 돌아가는 건에 관해 많이 공부해야 했다. 거기에는 노무관리도 포함된다. 예를 들면 주 52시간 근무에 맞도록 스태프 일정을 조율하고 최종 승인해야 한다. 영화제 준비 막판에는 자기 근무 시간이 법정 기준을 넘겼는지 모르는 채로 일하는 스태프도 있는데, 그때도 일정을 잘 계산해줘야 한다.

돈 관련 공부라면 노무 관리 외에도 신경 써야 할 부분이 굉장히 많았을 것이다.
백만 원 단위부터 천만 원 단위까지 (영화제 행사 준비에 관한) 수많은 결재가 올라온다. 대부분은 미리 약속된 내용이지만, 가끔은 알 수 없는 내용도 있다. 모든 걸 꼼꼼히 파악해서 결재해야 한다. 한 해를 그렇게 보내니 이제는 다른 영화제 예산서의 숫자만 봐도 그 조직을 알겠다. 이런 구조라면 사업을 줄여야 하는 것 아닌가, 이런 상황이면 인건비에 심각한 문제가 있을 텐데, 하면서 말이다.


상영작을 결정, 수급하고 콘텐츠 관련 행사를 기획하던 프로그래머의 역할과는 그 내용이 크게 달라졌다. 낯설고 어렵지 않던가.
쉽지는 않았다. 대개의 영화제에서 사무국장이나 기획파트가 도맡아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다만 프로그래머가 이런 일을 겸하게 되면 영화제가 열리는 지역의 언론, 공무원, 시민을 만났을 때 답해줄 수 있는 내용이 많아진다. 영화제가 콘텐츠 중심 이벤트기 때문에 행정이나 예산 문제를 논할 때도 콘텐츠와 함께 얘기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경험 사례를 예로 들어준다면.
강원도지사나 평창군수를 만났을 때, 그쪽에서 꼭 예산 얘기만 하는 건 아니다. 이러이러한 영화가 상영 가능한지 물으면 나는 바로 답변 가능하다. 누군가에게 (협업, 협찬 등) 프로그램 관련 제안을 받았을 때도 아직은 시기상조라든가, 그건 어느 정도의 예산만 확보되면 가능하다든가 하는 식의 리액션을 빠르고 정확하게 줄 수 있다. 기존 영화제처럼 사무국장 역할과 프로그래머 역할이 나누어져 있었다면 아마 예산 얘기만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영화제에도 당신과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나.
무주산골영화제 조지훈 프로그래머가 영화제 최초로 부집행위원장을 겸한 사람이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고 서로 친한 사이이기도 한데, 처음에는 그런 식으로 일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프로그래머 겸 부집행위원장, 뭐가 이렇게 길어?(웃음) 그런데 내가 올해 직접 그런 역할을 해보니 그가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너무나 잘 알겠더라.


영화제 측면에서는 부집행위원장과 프로그래머를 겸할 수 있는 능력 있는 인재가 보배와도 같겠지만, 한 개인이 영화제에서 영원히 일하는 건 아니지 않나. 당신이 영화제에서 빠져나가면 영화제는 어떻게 되는가.(웃음)
영화제는 자기들 특성에 맞게 조직을 끊임없이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화제가 다루는 콘텐츠 특색도 다르고 (예산 구조 등) 조직 특성도 조금씩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의 영화제는 조직 구성이 다 비슷하다. 집행위원장, 사무국장, 프로그래머 체제고 이건 대부분 똑같다. 왜 그럴까? 올해 우리는 콘텐츠를 담당했던 프로그래머가 행정과 예산 문제도 함께 다루는 모델을 실험해본 거다.

당신이 몸담은 동안 평창영화제가 최적의 운영 모델을 찾아가되, 이후에는 또다른 시도가 있을 수 있다고 보는 건가.
올해 모델에 긍정적인 측면이 더 많았다고 평가된다면 당분간은 이렇게 지속될 거다. 반면 문제가 생겨서 바꿔야 한다면 기꺼이 따를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관행적으로 굳어버린) 조직에 의해 영화제가 좌우된다. 외부에서는 이런 문제를 잘 모를 것이다. 하지만 여러 영화제 내부에는 ‘시스템을 바꾸지 않고 있어서 이런 상황이 됐다’는 문제의식이 이미 존재할 것이다.



▲ 코로나19 이후 영화제간 진짜 실력 싸움 시작될 것

영화제를 책임지는 인사에게 코로나19 질문을 안 할 수가 없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코로나19 상황에서 영화제를 열게 됐다.
영화제뿐만 아니라 모든 종류의 축제가 원점에서 자기 정체성을 다시 생각해야 할 때다. 먹거리 축제나 특산물 축제를 생각해보라. 그 지역 특산물에 소주 한 잔을 곁들이고, 트로트 가수가 와서 흥겹게 노래를 불러주던 형식의 행사는 전부 ‘박살’ 났다. 방역에 취약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영화제는 그나마 영향을 덜 받은 거라고 본다.

영화제는 상대적으로 감염 위험으로부터 안전하다고 보는가.
영화제가 열리는 공간에 따라 다를 것이다. 기존 영화제는 도시에 위치한 멀티플렉스 의존도가 굉장히 높았다. 극장 방역은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은 편이지만, 아무리 철저히 방역을 해도 쇼핑몰과 연계된 멀티플렉스 특성상 감염 우려가 생겨나기 시작하면 거의 무방비 상태였다. 지난해에는 그런 상황에서 ‘확진자가 생기면 영화제는 셧다운’이라는 분위기마저 팽배했다.

올해는 좀 다른가.
올해 5월 열린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확진자가 나오지 않았나. 그런데 조치를 너무 잘하더라. 확진자 동선을 빠르게 파악하고, 영화제 곳곳을 돌아다닌 스태프가 자가진단 키트로 검사를 받게 했다. 그 과정에서 확진된 자원봉사자와 영화제를 다녀간 확진자 사이에 감염 연관성이 없다는 것도 확인했다. 그런 이성적인 대처 가운데 영화제를 계속 유지했다. 그걸 보고 우리도 ‘확진자가 생기면 (영화제 중단이 아니라) 동선 확인 후 조치하겠다’는 식으로 방역 매뉴얼을 전부 뜯어고쳤다.


팬데믹 이후 1년 넘는 시간이 지났으니 영화제로서도 확진자가 나오면 일단 무조건 문부터 닫고 본다는 식의 단절적 대처를 넘어설 때가 됐다.
작년에는 영화제들 사이에서도 “거 봐, 일 날 줄 알았어” 같은 식의 비이성적인 공포 분위기가 있었다고 본다. 하지만 이제는 백신을 맞는 때가 오지 않았나. 코로나19는 영화제 안에서 해소될 수 있는 문제로 새롭게 바라봐야 한다. 또 영화제만큼 방역에 대한 고민을 크게 하는 행사도 없다. 우리만 해도 ADT캡스에서 올해 영화제에 필요한 모든 종류의 방역을 지원해주기로 했다.

그럼에도 팬데믹이 영화와 영화제를 즐기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는 생각은 떨칠 수 없다. 극장보다 집을, 지역 기반의 규모 있는 축제보다 소규모 단위의 조용한 여행을 선호하는 흐름이 생겼다고 본다.
코로나19가 영화제를 위축시킬 것이냐는 질문일 텐데, 일반화해 답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상황은 영화제에 따라 다를 것이다. 관객이 가보고 싶은 영화제를 만든다면 전국에서 확진자가 나오더라도 사람들은 ‘조심해서 다녀야지!’라는 생각을 하고 방문할 것이다. 반면 그런 마음이 안 생기는 영화제라면 관객은 괜스레 사회적 거리 두기가 몇 단계인지부터 찾아보게 되겠지. 이제 영화제는 ‘진짜 실력 싸움’의 국면에 접어든 것이다.

동의한다. 김포공항에 가득 찬 제주행 여행객을 봐도 그렇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이라면 사람들은 극도로 조심해서라도 실행한다. 문제는 영화제의 실력이다. 복사 붙여넣기 수준으로 늘어난 지역 기반 영화제들의 진짜 실력은 어디에서 오는가.
영화제 생성 방식은 우리나라의 토목 멘탈리티와 닮았다. 아파트를 지었던 것처럼 영화제를 만든 거다. 그러다 보니 영화제 특성과 무관한 ‘집행위원장, 사무국장, 프로그래머’ 조직이 하나같이 이식됐다. 그 안에서 다뤄지는 영화도 뻔할 수밖에 없다. 대부분 칸, 베를린, 베니스, 토론토, 선댄스 등 몇 군데 정해진 영화제에서 해외 영화를 수급해온다. ‘국제영화제’ 타이틀을 달지 않으면 (정부의) 예산 지원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영화제가 너무 많다’는 말이 나오는 건 부정적인 함의를 지닌 것 아니겠나.


소수의 영화제를 제외하면 콘텐츠 면에서나 운영 면에서나 그들만의 차별점을 꾀하기도 어려운 상황으로 보인다.
구조가 비슷한 아파트가 아닌 개성이 뚜렷한 단독 주택 스타일을 지어야 하는 시점이다. 지역에 맞는 프로그램과 각자 조직의 특성에 맞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영화제가 대한민국 문화에 긍정적인 기여를 한다고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 ‘영화제의 백가쟁명 시대!’(웃음). 그런 시대가 와야 한다.

평창영화제만의 특성은 뭐라고 보나. 1회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평양시네마’ 섹션을 마련했다. 북한에서 제작됐거나 북한과 관련된 영화를 트는데 이 방향성은 앞으로도 유지되나.
1회 영화제 명칭은 ‘남북국제평화영화제’였다. (기자 주: 2회부터 ‘남북’이 빠지고 ‘평창’이 들어갔다) 상영할 수 있는 북한 관련 영화는 1, 2회 때 다 긁어모았다고 봐야 한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런 방식으로 계속 가서는 안 된다는 걸. 북한이 영화 자체를 안 만드는데 무슨 수로 ‘평양시네마’ 섹션을 계속하겠나. 이제는 남북이라는 관계성을 벗어나야 한다. 미국 등 국제 사회 속에서 북한이라는 중요한 존재를 바라보며 맥락을 확장해야 한다. 그 자체로 디아스포라적인 공간이라는 생각도 든다.

고립된 북한을 떠나온 탈북자들이 각국에 많이 퍼져 있는 만큼 디아스포라 정체성과 부합하는 측면이 커 보인다. 새로 수급된 작품의 경향성은 어떤가.
핀란드, 스위스, 영국에 사는 감독이 연출한 단편 4편을 상영하는데 굉장히 흥미롭다. 남북이라는 관계보다는 북한이라는 테마 그 자체를 다룬다. 마이크 비치 감독이 연출한 <사진의 이면>은 북한의 어느 지역에서 온 새터민을 찍던 사진작가 팀 프랑코와 작업한 내용이다. 직접 북한으로 들어가 새터민이 이야기했던 곳을 사진으로 찍고 그들의 지난 여정을 가늠해본다. 이 내용은 책으로도 발간됐다. 우리나라를 거점으로 아시아권에서 활동하는 감독인지라 영화제에 초청할 수 있었다. 스위스에 사는 신해섭 감독이 연출한 <안나동무>, 영국에서 제작된 록시 레즈바니 감독의 <리틀 평양>, 핀란드에서 만든 마이야 블라필드 감독의 <더 판타스틱>도 상영한다.

프리미어(최초) 상영을 고집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대다수 영화제가 ‘월드 프리미어’, ‘아시아 프리미어’ 등의 말머리를 단 상영작 규모로 자신들의 영향력을 과시하지 않나.
영화제라는 건 2차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시작됐다. 칸, 베니스, 베를린 같은 대선배격 영화제들이 그렇다. 그들 정도라면 프리미어를 강요해도 된다. 자기들이 발굴한 감독이 영화사를 변화시킨 거장이 됐으니, 그 권위라는 게 대단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영화제는 그들을 모델 삼아 시작했고, 그래서 가장 오래된 부산국제영화제도 20여 회에 불과하다. 저쪽이 노인급이라면 여기는 아직 청년인 셈이다. (그들을 똑같이 따라 한다고 해서) 될 일이 있고 안될 일이 있는 거다.

유럽 영화제들이 고집하는 프리미어 상영이라는 방식이 국내 영화제에서는 큰 의미가 없다고 보는 것 같다.
국내 영화제가 프리미어 상영에 집착하는 건 영화진흥위원회가 그걸 영화제의 성과 기준으로 파악하기 때문인 측면도 있다. 근본적으로 영화제라는 게 그런 식의 성과주의로 치를 만한 이벤트인지 이제는 생각해봐야 한다. 예를 들어 50억 원 정도의 제작비가 든 영화는 100만 명의 관객 정도는 들어야 손해를 안 본다. 그런데 영화제는 같은 예산을 투입했을 때 그만큼의 관객을 끌어들이지 못한다. (기자 주: 국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부산국제영화제의 최고 관객 수는 20만 명 안팎이다.) 그렇다면 영화제의 가치를 다른 차원에서 생각해봐야 하지 않겠나.

평창영화제에서는 피칭 프로젝트를 통해 작품의 제작을 지원한다. 그런 작품 역시도 평창영화제에서 최초 상영할 필요가 없다는 건가.
그렇다. 우리 영화제의 피칭은 영화 제작에 필요한 종잣돈을 조금 도와주는 정도다. 그 영화의 지분을 가지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영화제가 자꾸 그런 식의 성과주의에 빠지면 돈 천만 원 지원하고 영화를 다 가지려고 하는 일이 생긴다. 제작비를 다 댈 것도 아닌데 너무 간섭하는 것 아닌가. 사실 피칭 프로젝트에 참여한 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건 (상금보다) 멘토링 과정이다. 당락 결정에 앞서 베테랑 심사위원과 진심으로 영화에 관한 대화를 하고, 수상하면 베테랑 멘토가 붙어 하나부터 열까지 알려준다. 피칭에서는 수평적 관계를 통해 감독이 성장하는 과정을 제공하는 게 훨씬 중요하다. 다만 상금 규모는 좀 더 늘어나는 게 좋다고 본다. 내년부터는 협찬을 더 받아와 총액 1억 원 정도는 맞추게 될 거다.


올해 협찬도 많이 늘었다. 신한은행 등 규모 있는 후원을 끌어냈다. 누구의 역량인가.
현금, 현물을 다 합치면 올해 협찬금은 1억 원 정도 된다. 굵직한 건은 내가 나섰지만, 팀별로 각자 유치한 후원이 많다. 예컨대 올해 영화제 전체 방역을 지원하기로 한 ADT캡스 건은 방역팀에서 제안을 넣고 성사시킨 건이다. 피칭 프로젝트를 후원하기로 한 테라로사 건은 해당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김지영 PD가 몸담은 콘텐츠팀에서 해낸 일이다. 우리는 절박했다.(웃음) 지난해보다 예산이 줄었고, 각 파트에서 그 금액으로는 일이 안 된다는 걸 금방 깨달은 것이다. 협찬은 영화제의 한 부분을 구성하는 중요한 지점이다. 단지 돈을 받는 게 아니고, 그 업체와 영화제의 비전을 공유한다는 생각으로 다가가야 한다.

협찬 금액을 최고치로 끌어올리는 게 영화제 운영의 최선인가.
근본적으로는 자부담금을 늘려야 한다. 자부담금은 티켓과 굿즈를 판매해 번 돈 그리고 협찬금을 뜻한다. 그건 강원도에 정산서를 올리지 않아도 되는 돈이기 때문에 우리 자율적으로 써도 된다. 자부담금을 많이 확보해야 영화제에 독립성이 생긴다.

건전한 독립성을 쟁취하는 과정에서 평창영화제가 관객에게 선사할 수 있는 ‘재미’는 뭔가. 올해 영화제에서 어떤 개성을 맛볼 수 있나.
일단 도시에서 열리는 규격화된 영화제에 질린 분들이 새로운 걸 찾고 있다면 평창영화제는 무척 반가운 곳이 될 것이다. 헬리녹스에서 협찬해준 초경량 캠핑 체어에 앉아 감자 창고에서 상영되는 영화를 본다면 기분이 어떻겠는가.(웃음) 영화제에서 할 만한 ‘색다른 경험’이라는 게 딱히 없어진 상황에서 무엇이 더 새로울 수 있는지 궁금한 분들은 와볼 만할 것이다. 상영관과 상영관 사이를 산책하고 공연도 보면서 며칠 쉬시길. 그러다가 우연히 영화 한 편을 봤는데 그게 의외로 너무 재미있을지도 모른다.(웃음)




영화제 품질에 자신 있다는 말로 들린다.
우리는 이제 3회째다. 아직은 관객에게 뭔가를 확인받고 싶은 단계다. 20회쯤 넘어가면 권위 때문에 (잘못된 점이 있어도) 사과를 못 하는데…(웃음) 우리는 비판받는 지점에 대해 충분히 사과할 수 있는 여유가 있다. 그러니 영화제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많이 확인하러 와 달라.


▲ 영화 즐기는 방식 변화 중… ‘맞춤형 서비스’ 고민한다

영화 매체 기자로 시작해 월간지 스크린 편집장을 지냈다. 영화 콘텐츠를 다루는 TV 방송에 꾸준히 출연해오다가 지금은 영화제에 몸담고 있다. 그 시간 동안 영화를 즐기는 방식이 변화한 걸 체감하나. 영화제를 향유하는 방식 면에서도 과거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영화제는 오랫동안 돈을 들여 ‘데일리’라는 걸 만들어왔다. (기자 주: 특별판 형식으로 영화제 기간 배포하는 종이 잡지를 뜻한다.) 그런데 이제는 아무도 데일리를 안 읽는다.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데일리만 읽으면 그 영화제가 엄청나 보이는데 나는 그런 자기 과시를 굉장히 싫어한다.

당신도 종이 잡지에 몸담은 시절이 있지 않나. 그런데 그 세대 영화기자, 영화평론가 특유의 권위적인 면모가 없다는 인상을 받는다.
업계에서 잘 나가는, 파워 있는 매체에 있었으면 그렇게 됐을지도 모르지. 그런데 스크린은 파워는 없었다.(웃음) 영화마케터들에게 무시는 안 당하는 정도의 잡지였다. 편집장을 지낼 때는 최초의 영화대중지 편집장이라는 자부심보다 경비 등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고민으로 힘들었다. 결국 2009년 그만뒀고, 스크린도 시장에서 살아남지 못하고 2010년에 없어졌다. 기자 시절에도 ‘가오’같은 건 별로 없었지만 애당초 그런 곳에서 일하면서 가오를 세운다는 게 좀 이상하지 않나.(웃음)


스크린 편집장을 그만둔 뒤 영화제 일을 시작하기 전까지 10여 년의 시간을 프리랜서로 살았다. 어떻게 보냈나.
매년 7~8개의 영화제를 다니며 GV 모더레이터만 5~60개씩 맡았다. 그러면서 영화제 현장을 많이 목격하게 됐다. 처음엔 행사만 하고 돌아왔다면, 그다음 해부터는 영화제 장소 구석구석을 보고 돌아다니고 사람들을 만나 얘기를 들었다. 자연스럽게 영화제에 대해 비판적인 생각을 하게 됐다. 그때만 해도 내가 영화제 일을 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결국…(웃음)
프리랜서 생활을 그 정도 강도로 하면 사람이 너덜너덜해지기 시작한다.(웃음) 그러다가 4년 전쯤, 그냥 쓰러졌다. 말도 안 되는 당 수치와 염증 수치와 마주했고 그 뒤로 조금 쉬었다. 이제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어야겠구나 할 때쯤 평창영화제로부터 프로그래머 제안이 들어왔다. 안 할 수가 없지 않나.(웃음)

(끄덕끄덕)
그러면서 그동안 영화제를 다니며 느꼈던 많은 것들이 소환됐다. 내가 프로그래머라면 이런 건 절대 안 한다! 라든가, 이런 건 괜찮고 실행도 충분히 가능한데 왜 안 하지? 라든가 했던 지점을 하나씩 시도해본 것 같다. 1회를 지나 2회였던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각성하면서 ‘스펙트럼K’와 ‘클로즈업’ 섹션을 만들었다. 올해도 연장선에 있다고 본다. 일하다 보니 더 정련되는 느낌이다.

그간의 경험과 당신의 성향이 영화제 전반에 은은하게 반영된 것 같다. 예컨대 일반인 중 영화에 관심이 많은 이들을 영화제에 공식적으로 초청하고 숙박과 영화관람배지를 제공한다. 익스트림무비 사이트를 통해 모집된 ‘익무원정단’도 그 중 하나다.
그 외에도 핍스터, 관객심사단 같은 분들이 우리 영화제의 가장 중요한 초청 대상 중 하나다. 그들이 자유롭게 글을 써서 어딘가에 올려주면 그게 바로 데일리다. 초청은 영화제에서 가장 중요한 업무 중 하나다. 숙박을 제공하고 영화를 공짜로 보여드리니 돈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초청을 하는 이유는 우리 영화제를 더 나은 방식으로 알리고 싶기 때문이고,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과 우리 영화제를 함께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들은 영화제를 찾는 영화기자, 영화평론가들과 어떻게 다른가.
‘익무원정단’의 경우는… 솔직히 말하면 초청한 보람이 있다. 일단 맘에 드는 건이 있으면 콘텐츠를 많이 쏟아낸다. 그리고 맘에 안 들 때는 무척 신랄하다.(웃음) 배지를 받았다고 해서 ‘고마워서라도 잘 써야지’하는 태도는 없다. 지난해 익무원정단이 ‘이런 상영관은 안 된다’는 류의 리뷰를 올렸는데, 그 의견을 참고해 실제로 폐지하고 새롭게 만든 상영관이 있을 정도다. 뿐만 아니라 지난해 영화제에 참석하고 블로그에 글을 써주신 분들도 많다. 비판적인 시선을 보낸 분들께 개인적으로 ‘죄송하다’는 메일을 보냈더니, 그들이 더 놀라고 고마워하더라.(웃음)

영화제에 ‘대접’을 받으러 오는 게 아니라, 충분히 즐겨본 뒤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의견을 다양하게 내어놓는다는 의미겠다. 대중 역시 기자의 기사보다 그들 같은 ‘영화를 좋아하는 일반인’의 평을 참고하는 경향이 강해지는 것 같다.
(영화를 좋아하는 일반인은 원고료를 안 받지만) 기자, 평론가는 원고료를 받는다. 누가 그들에게 원고료를 주는가. 그걸 확실히 규정하기 전에는 그와 관련된 질문에 답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씨네버스, 무비위크, 필름2.0, 씨네21 등 주간 종이 잡지 4개 사가 표지 경쟁을 하던 2000년대 초반에는 원고료를 마케팅 회사가 주는 셈이었다. 한국 영화 제작비 상승률보다 마케팅비 상승률이 더 높아지던 시절, (투자배급사 소속) 마케터들은 광고비 집행을 통해 종이잡지를 줄 세울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당시 창인사가 창간한 무비위크에서 1년 정도 일하며 주간지를 처음 맛 봤는데, 우리 광고팀이 싸이더스에서 문전박대당하고 나에게 와서 하소연한 적도 있었다.(웃음) 그쪽에서 1년에 매체광고비로 엄청난 수준의 돈을 쓰고 그게 기자들 월급이 되는 상황이었으니, 당연히 제대로 된 비판 기사가 나오기 쉽지 않았다. 그랬다가는 당장 광고 끊는다는 이야기가 나올 테니까.

이제는 씨네21을 제외하고는 영화 전문 종이 잡지가 남아있지 않고, 영화마케터가 광고비 집행으로 매체를 좌우했던 시절의 논리도 시효를 다했다고 봐야 할 텐데.
오프라인 매체가 소멸하기 시작하고 온라인으로 넘어가면서부터는 자체 콘텐츠가 필요했던 포털이 기사를 다 흡수해갔다. 그러니 포털이 CP사인 매체에 원고료를 주는 개념처럼 된 거다. 한동안 기자, 평론가들이 영화 마케팅 비용이 아닌 네이버의 막대한 광고액에 기생했다. 그러던 게 요즘에는 조금 더 바뀌었다.

어떻게 바뀌었나.
이제 구글이 영화 유투버에게 원고료를 준다. 알 수 없는 알고리즘이 영화평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는 기준이 된 것이다. 결국 AI가 원고료를 주는 거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은, 모호한 상황이 됐다. 그래서 대체 내 원고료는 누가 주고 있는 건가? 내 경우도 마찬가지다. 각종 영화제, 공공기관, 지역자치단체, 사회단체… 글 값을 주는 주체들이 엄청나게 다양해졌다. 종합소득세 신고를 해보면 업총 코드가 37개까지 나올 때도 있다.(웃음) 다시 생각해본다. 나는 누구에게 돈을 받고 누구를 위해서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는가?

영화기자, 영화평론가들이 그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계속해서 자기 영향력을 잃어갈 수밖에 없겠다. 영화제 인사이기 전에 개인 영화평론가로서의 당신은 묘안을 가지고 있나.
이제는 진짜 내 글을 좋아하는 사람이 나에게 직접 원고료를 줄 수 있게 됐다. 코로나19가 그런 변화에 가속도를 붙인 부분도 있다고 본다. 줌 강연이 가능해지지 않았나. 얼마 전 어느 미디어센터 부탁으로 장르 영화에 대한 줌 강의를 했다. 50명 정도를 대상으로 화면을 공유하며 슬랩스틱부터 화장실 유머까지 20여 개 클립을 띄우고, 비디오 코멘터리 형식처럼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랬더니 마지막에 질문 시간에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많은 질문이 들어와 3~40분이 연장됐다.

영화제뿐만 아니라 영화기자, 영화평론가도 ‘진짜 실력 대결’의 시대를 맞게 된 건가.(웃음)
영화광의 시대는 갔다, 진지한 관객이 줄고 있다고 말하지만 우리가 걱정해야 하는 건 그게 아니다. 그 숫자를 대폭 늘릴 수 없는 거라면, 그나마 남아 있는 이들을 어떻게 관리해줘야 하고 어떤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지 그걸 고민해야 한다. 가장 어려운 게 있다면 대부분의 영화기자, 영화평론가들의 성향이 수동적이라서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한다는 거겠지.(웃음)


사진_박광희 실장(울트라 스튜디오)

영화제 사진 제공_평창국제평화영화제


[mail:got.park@movist.com]글_박꽃 기자(got.park@movist.com 무비스트)[/m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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