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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여자를 돕는다! <우리는 매일매일> 강유가람 감독

2021년 7월 8일 목요일 | 이금용 기자

[무비스트=이금용 기자]<모래>(2011), <시국 페미>(2017), <이태원>(2019)을 연출한 강유가람 감독의 네 번째 다큐멘터리 <우리는 매일매일>은 90년대 페미니즘을 외쳤던 ‘영페미니스트’의 그때와 지금에 대한 이야기다. 여자의 시선으로 여자의 이야기를 그리겠다는 강유가람 감독은 좋아하는 페미니즘 문구로 ‘여자가 여자를 돕는다’라는 말을 꼽는다. 그는 “여자들끼리만 서로 챙기자는 게 아니라 약자끼리 먼저 연대해야 한다는 뜻”이라며 “여성들의 기록이 더 많이, 더 다양한 방식으로 나왔으면 좋겠고 나 또한 보탬이 되고 싶다”고 전한다.

개봉이 순탄하지는 않았다. 텀블벅에서 펀딩을 진행해 개봉 자금을 모았다고.
보통 이런 작은 규모의 독립영화나 예술영화는 영화진흥위원회의 개봉 지원금을 받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 작품은 안타깝게도 선정되지 못했다. 결국 텀블벅을 통해 모금을 했는데 꽤 큰 액수를 단기간에 모아야 해서 걱정이 많았다. 다행스럽게도 입소문을 타서 텀블벅 오픈 5일 만에 목표액의 100%를 넘겼고 최종적으로는 200%을 모아 영화를 개봉할 수 있는 최소한의 비용을 마련했다.

전작 <시국페미>처럼 <우리는 매일매일> 또한 페미니즘을 전면에 내세운다.
국내에는 페미니즘을 기록한 작품이 없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항상 있었다. 원래는 여성들의 운동이나 역사를 글로 남겨보려 했었다. 그러다가 영화 일을 시작하게 됐고 그때부터 이 시기를 어떻게 영상으로 기록할 수 있을지 고민했던 거 같다. 그러던 차에 한 남성이 이화여대 앞에서 해당 학교에 대한 혐오발언이 적힌 피켓을 들고 시위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게 도화선이었다. ‘예전에는 남성이 집단으로 뭉쳐서 여성을 공격했다면 이제는 개인이 나서서 공격할 수 있게 됐구나, 이를 계기로 혐오가 더 가시화될 수 있겠다’ 하는 불안이 들었다. 그래서 우리(여성)에게 힘을 보탤 수 있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아이디어가 구체화된 건 <시국페미>를 만들면서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닫힌 문을 열고>를 보면 역사적인 사건을 아카이빙하지 않나. 작품 구상 초기엔 그 작품처럼 특정 시기에 일어난 주요 사건을 위주로 내용을 구성하려 했다. 그런데 도중에 그것보단 지금 내가 고민하는 걸 실제로 90년대에 활동했던 지인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녹여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결과적으로 초기 컨셉에서 크게 바뀌었다.

영화는 당신의 자전적인 이야기로 시작하는데.
사실 어렸을 때부터 내가 여자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많았다. 여자 혼자 여행하면 위험하다고 많이들 말리지 않나. 그처럼 무언가를 하려고 하면 여자라서 안 되는 게 많았는데 순전히 내가 여자라서 그런 문제가 생기는 거고 남자였다면 자유로울 거라고 믿었다. 그러다 페미니즘을 만나면서 내가 받고 있는 제약이나 차별들이 내게서 기인한 문제가 아니라 외부에 원인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시야가 넓어진 거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완전히 바뀌는 이 신기한 경험을 다른 여성분들과 공유하고 싶었다.

사실 내 이야기가 일종의 ‘추억팔이’처럼만 느껴지면 어떡하나 고민이 있었다. (웃음) 그런데 함께 작업하던 남순아 감독이 당시의 사건을 담는 것만으로도 정보를 제공한다는 의의가 있다고 내 선택을 지지했다. 그러면서 90년대 활동한 ‘영 페미니스트’들이 가졌던, 그리고 시간이 흘러 변화한 그들이 지금 가지고 있는 고민들을 담는 게 좋겠다는 남 감독의 말에 영화의 방향성을 확고하게 굳힐 수 있었다.

남순아 감독은 구성작가로 참여하며 여러 아이디어를 나눴다고 들었다.
남순아 감독과는 나이가 좀 차이가 난다. (웃음) 나보다 젊은 세대의 그로부터 조언을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 구성작가로 영입했다. 나, 남순아 감독 그리고 손경화 촬영감독이 같이 전체적인 구성을 짰는데 두 사람은 영화가 나만의 주관적인 이야기로 편향되지 않도록 중심을 맞춰주는 역할을 했다.

손경화 감독과는 낙태죄에 대해 다룬 <자, 이제 댄스타임>이란 영화를 작업하면서 만났다. 이후 작업실을 공유했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촬영을 부탁하게 됐다. 손경화 감독이 한동안 글을 쓰기 위해서 다큐 작업을 쉬고 있었는데 올해 <계투>라는 소설로 한겨레 문학상을 받으면서 등단하게 됐다. 내가 고급인력을 헐값에 구성작가로 부려먹은 건 아닌지 뒤늦게 걱정되더라. (웃음)

수의사 ‘키라’(허은주), 결혼 후 제주여민회에서 활동 중인 ‘자투리’(김이승현),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에서 일하는 ‘어라’(유여원),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오매’(김혜정), 페미니스트 뮤지션 ‘흐른’(강정임)이 인터뷰이로 등장한다.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는 이들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나.
<우리는 매일매일>을 찍기 전에 내가 한 사람으로서, 페미니스트로서 제대로 살고 있는 지에 대한 의문이 있었고 여기에 대한 답을 얻고 싶었다. 지금 이 시점에서의 내 결론은 내가 제대로 살고 있다기보단 제대로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거다. 100% 완전하고 완벽한 사람은 없다. 내가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만족한다. (웃음) 결과적으로는 이들 다섯 사람의 삶을 통해 사람들에게 ‘느슨하게, 더 천천히 살아도 된다. 한 길만 걸을 필요도 없다. 방향이 바뀌어도 불안해하지 마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사이버 불링이나 물리적인 공격 등 여러 이유로 얼굴을 드러내고 활동하는 페미니스트의 비중이 높지 않은데 인터뷰이 섭외는 어땠을지 궁금하더라.
사실 키라가 1차 인터뷰 후 출연에 대해 고민이 된다고 털어놨다. 알고보니 혼자 출연하는 줄 알아서 그런 거더라. 자기 외에도 여러 명이 등장한다는 걸 알고 나서는 순조롭게 촬영을 진행할 수 있었다. (웃음)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인 오매는 섭외 요청에 응하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누구나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는데 자신처럼 활동가만 페미니스트일 수 있다는 편견을 심어줄까 걱정됐던 거 같다. 그래서 출연을 두고 상담소 직원들과 많이 의논했다고 들었다.

어라는 그런 얘기를 하더라. 자기가 출연을 결정한 이유는 여성이면 누구든지, 어떻게 해서든지 돕고 싶어서라고. (웃음) 좋아하는 페미니즘 문구 중에 ‘여자가 여자를 돕는다’라는 말이 있다. 여자들끼리만 서로 챙기자는 게 아니라 약자끼리 먼저 연대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어라의 말에 공감이 가고 참 고맙더라.

영화를 본 주변의 반응은 어떻던가.
당시 활동하던 페미니스트들은 그 때의 기억들을 소환해주고 지금까지 이어지는 그들의 노력을 짚어줘서 좋았다고 얘기하더라. 또 현재는 페미니즘의 최전방에서 활동하고 있진 않지만, 당시의 기억이 다음 스텝으로 나아가게 하는 추진력이 됐다는 평도 있었다. 얼마전엔 키라에게서 영화를 같이 본 여학생이 “페미니스트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인가봐”라고 말했다는 걸 전해 들었다. 관객들이 페미니스트란 스스로를 긍정하는 존재라는 걸 깨달은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여성들이야 영화에 많이들 공감하겠지만 남성 관객의 생각은 좀 다를 수 있지 않을까.
극장에서 정식으로 개봉하기 전 영화제를 통해 먼저 공개됐다. 당시 여성 관객이 대부분이었고, 깊은 공감과 응원을 많이 보내주셨다. 하지만 솔직히 일부 남성 관객의 반응은 좀 걱정되더라. 실제로 한 남성 위주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내 영화에 대한 정보가 공유되고, 이후 비추천과 별점 댓글 테러 공격이 들어왔다. 원래 정신 건강을 생각해서 댓글은 잘 안 보는 편인데, 우연히 보게 된 댓글창이 정말 가관이더라. (웃음) 그래도 친구들이 SNS를 통해 많이들 도와줬고 댓글창도 정화됐다. 주변의 도움을 지켜보며 <우리는 매일매일>이 우리(여성) 모두의 영화라는 느낌이 들어서 오히려 좋았다.

영화를 볼 남성 관객들이 이 지점은 확실히 알았으면 한다. 페미니즘은 여성만을 위한 움직임이 아니다. 예를 들어 군가산점제에 대한 얘기가 영화에서 나오는데, 이 제도가 군대를 복무한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혜택이 아니다. 일부 국가직 시험을 보는 사람에 한했고, 또 장애나 여타 건강상의 문제로 군 면제를 받은 남성 또한 거기서 배제될 수밖에 없다. 여자가 군대의 문제를 얘기하는 게 불편할 수 있지만, 다양성을 바탕으로 모두가 공평하게 대우받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얘기를 꺼낸 것이다.

이외에도 기혼 페미니스트인 ‘자투리’의 일상 등을 통해서 남성들의 공감도 자연스럽게 이끌어내려 했다. ‘자투리’의 가족을 보면 아빠가 요리를 하고 아들과 함께 페미니즘에 대해 얘기하는데, 이런 단란한 모습을 통해 페미니즘을 강요나 강박이 아닌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받아들였으면 했다. 이미 나이가 든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긴 어렵다는 걸 잘 알고 있지만 어린 사람들은 훨씬 더 열려 있지 않나. 그래서 젊은 남성관객들도 많이 봐줬으면 한다.

차기작 계획은 어떻게 될까.
극영화를 준비하고 있고, 작년 전주에서 피칭됐다. 지금은 시나리오 단계인데 한 레즈비언 커플이 어떤 사건에 휘말리게 되고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편견과 혐오에 맞선다는 내용의 스릴러다.

연출을 시작한 이래 쭉 다큐멘터리만 해왔는데 의외의 선택이다.
한 번쯤 극영화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일전에 단편 극영화를 찍은 적이 있는데 그것도 다큐 같다는 말을 들었다. (웃음) 다큐멘터리를 찍으면서 얻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인물과 스토리를 구상하다보니 그렇게 된 게 아닐까 싶다.

앞서 말했듯 여성들의 기록들이 더 많이, 더 다양한 방식으로 나왔으면 좋겠고 나 또한 보탬이 되고 싶다. 다큐멘터리든 극영화든 여성의 시선에서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 거다. 가장 잘 아는 이야기이고,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니까. 전작 <이태원>이 그랬듯 극영화를 통해서도 일상 속에서의 페미니즘을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싶었다.

마지막 질문이다. 최근 소소하게 행복한 순간이 있다면.
댓글테러 때문에 마음을 졸이고 있었는데, “이 영화를 보는 그날 하루만큼은 정말 행복해진다”라는 댓글을 보는 순간 너무 행복해졌다.

사진제공_필앤플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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