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꽃 기자]
12일(목) 개막하는 제17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이하 ‘JIMFF’)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OTT 플랫폼 웨이브에서 상영작을 동시 공개한다. 청평호반에서 의림지로 주 야외무대를 변경해 시민들과 보다 긴밀한 접촉을 이어가려던 계획은 코로나19 감염 확산으로 실행이 어렵게 됐다. 현장 행사는 줄어들고, 온라인 상영은 늘어나는 전 세계 모든 영화제의 흐름에서 JIMFF 역시 자유롭기 어려운 현실이다. 그럼에도 맹수진 프로그래머는 “코로나19가 계속된다고 해서 문화적 체험이라는 소중한 경험을 다 폐기하는 방향으로 가서는 안 된다”고 힘주어 말한다. <베이비 드라이버>를 연출한 에드가 라이트 감독의 신작 <더 스팍스 브라더스>와 지난 칸영화제 심사위원장이었던 스파이크 리 감독의 신작 <데이비드 번 아메리칸 유토피아> 등 오직 제천 현장에서만 만나볼 수 있는 미개봉 영화에 대한 소개는 물론, ‘모여서 함께 즐겁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이 ‘축제’이자 ‘네트워킹’의 장인 영화제의 속성과 어떤 식으로 다시 조화를 이루게 될지 그 비전을 슬며시 들여다본다.
12일(목) JIMFF 개막한다. 영화제 개막을 앞둔 1~2주쯤 프로그래머는 무슨 일을 하나.
영화제에 참석하는 감독, 배우, 뮤지션의 참석을 최종 확인한다. (상영작 정보가 수록된) 공식 카탈로그 북의 마지막 교정도 봐야 한다. 올해를 시작으로 매년 포켓북 사이즈의 ‘JIMFF 총서’를 내기로 해서 마지막 원고를 검수한 뒤 인쇄 단계로 넘겼다. 총서를 통해 한국의 음악 영화사를 이야기하는 담론을 축적할 계획이다. 같은 맥락에서 영화제 기간 포럼도 진행한다.
올해 처음 발행하기로 한 JIMFF 총서가 궁금하다. 그 취지와 역할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준다면.
그동안 영화사에 대한 연구는 많았지만 음악 영화사에 대한 연구는 공백과 다름없었다. 한국에 음악 영화라는 게 존재하느냐는 근본적인 질문부터 시작해 지난 음악 영화사를 정리하는 내용이 담길 것이다. 한국 최초의 뮤지컬 코미디 영화 <청춘의 쌍곡선>(1956)을 사례로 들어 ‘한국영화사는 사실 음악 영화사’라는 도발적인 화두도 던지려고 한다. 역사적 가치가 있지만 잊고 있거나 잘 알지 못했던 이야기를 발굴하게 될 것이다.
올해 한국경쟁 부문을 신설했다. 한국에서 만들어진 음악영화만으로도 매년 한 부문의 상영작을 수급할 수 있다고 판단한 건가.
그동안 한국경쟁 부문 신설은 좀 더 기다려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지난해 처음 제천에 프로그래머로 와보니, 출품된 단편영화만으로도 충분히 수급이 가능할 정도로 작품이 많았고 그 질적 수준도 높았다. 장편 영화도 7편이나 출품돼 월드 프리미어로 상영된 작품도 있었다. 이정도 양과 질이라면 올해는 충분히 경쟁 부문을 신설해볼만 하겠더라.
경쟁 부문은 장편과 단편을 합쳐서 상영하던데.
장편은 총 5편 수급됐고 그중에는 지난해 우리 영화제의 제작지원작이 포함돼 있다. 아무래도 코로나19로 제작 편수가 줄어든 여파가 나타나 지난해 7편보다는 장편 수가 적은 게 아닌가 싶지만, 그 와중에도 만듦새의 퀄리티는 상당하다. 코로나19만 아니었으면 장편과 단편을 분리할 정도의 양과 질에 도달했다고 본다.
영화산업 측면에서 영화제의 핵심 역할 중 하나는 방금 언급한 제작 지원 아닌가 싶다. 좋은 기획이 있지만 제작비가 부족한 신진 창작자가 몰려들고, 작품이 완성되면 다음 해 영화제에서 대중과 만날 기회도 얻을 수 있다. 힘을 받아 극장 개봉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여러 여건상 올해 영화제 규모와 예산이 축소됐다. 하지만 제작 지원 프로젝트 규모만큼은 확대했다. 당연히 돈이 많아서 지원을 늘린 게 아니고 허리띠를 졸라맨 거다. 기존에 6천만 원을 지원했던 것을 올해부터는 총 1억 1천만 원을 지원한다. 그게 지난해 제작 지원 피칭 선정작 시상식에서 이상천 제천 시장 겸 조직위원장님이 약속하신 바이기도 했다.
제작 지원에 접수된 작품의 면면은 만족스러운가.
지난해에는 기획 단계 작품이 많이 접수됐다. 올해부터는 프리프로덕션을 거치고 촬영까지 진행해 거의 완성 단계에 접어든 작품만 접수할 수 있도록 요건을 뒀는데 그럼에도 굉장히 많은 작품이 지원을 해줬다. 어떤 걸 지원해도 다 잘 만들어낼 것 같다는 기대치가 생기더라. 음악영화 제작을 지원하고 완성되면 그 작품이 월드 프리미어로 소개될 것이다. 한국 음악영화 산업의 선순환을 만들어내는 플랫폼으로서 JIMFF가 적극 활용되길 바란다.
만반의 준비를 했는데, 안타깝게도 코로나19로 영화제를 대폭 축소했다. 올해부터 의림지 야외무대를 사용하기로 했지만 제천시 문화회관에서 거의 모든 행사를 진행하기로 계획을 축소했는데.
솔직히 말하면 많이 아쉽고 속상하다. 지난 15년 동안의 청풍호반 시대를 마감하고 의림지 쪽으로 야외무대를 옮기기로 하면서 개, 폐막식은 물론이고 JIMFF의 대표 공연인 ‘원 썸머 나잇’같은 볼거리를 모두 준비했는데 코로나19 상황이 엄중해 불가피하게 행사를 축소할 수밖에 없었다. 제천은 영화, 공연, 아름다운 야외 풍경과 밤하늘, 바람이 어우러지는 체험이 가장 중요한데 그 부분을 놓칠 수밖에 없게 됐으니 관객도 아쉬울 것이다.
지난해에 이어 OTT 플랫폼 웨이브에서 온라인 상영을 병행하기로 했다. 부산국제영화제를 제외한 국내의 ‘국제 영화제’들이 필수적으로 선택하는 대안인 것 같다.
지난해에도 딱 한 편만 빼놓고 전부 온라인 상영을 했다. 다만 올해는 제천의 영화관을 찾아야만 관람할 수 있는 해외 미개봉 대작이 유독 많다는 게 특징이다. 개막작 <티나>는 물론이고 <베이비 드라이버>를 연출한 에드가 라이트 감독의 <더 스팍스 브라더스>, 스파이크 리 감독의 <데이비드 번 아메리칸 유토피아>같은 작품은 관리가 굉장히 엄격해 온라인 상영을 절대 허락하지 않는다.(웃음) 관객들이 그저 휴가 삼아 ‘조용히 조용히’ 제천을 찾는다면 그런 좋은 영화를 보고 힐링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감염병의 시대가 2년째 이어지면서 영화제 역시 온라인 상영을 변수가 아닌 상수로 생각하는 것 같다. 영화와 음악 공연이 어우러진다는 특성 때문에 JIMFF는 여느 영화제보다 현장 경험이 중요한 측면도 있는데, 앞으로의 영화제를 어떻게 전망하나.
온라인 상영 방식을 병행해야 한다는 건, 사실은 몇 년 전부터 영화제 일을 하는 누구나 알고 있었다고 본다. ‘4차산업혁명’ 시대를 맞았고(웃음) 영화를 보는 플랫폼도 다변화된 상황인데 온라인 상영을 외면할 수 없는 건 분명하지 않나. 다만 코로나19 때문에 내적으로 충분한 논의를 거치기도 전에 외적인 충격요법처럼 현실을 마주하게 됐을 뿐이다. 도저히 대응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된 상황이 예상보다 3~4년 정도 빠르게 닥친 것 같다.
현재로서는 웨이브, 왓챠 등 OTT 플랫폼에 영화제 출품작을 얹어서 상영하는 방식이다. 앞으로 보완해 나가야 할 지점도 있을 텐데.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SXSW) 영화제 온라인 상영을 지켜보니 관객이 영화 상영 전부터 실시간으로 대화창에 참여해 영화에 대한 기대치를 끌어올리고 있더라. 제작진도 그 대화에 참여할 수 있고 이런저런 피드백도 준다. 우리도 그런 형식이 가능해지면 좀 더 영화제 현장같은 생생함을 전달할 수 있을 것 같다. 영화제 연합으로 공동 상영 플랫폼을 만들자는 논의도 없는 건 아니다. 다만 올해 바로 실행하기는 조심스러운 측면이 있었을 것이다. 내년, 후년에는 논의가 좀 더 구체화되지 않을까 한다.
역설적으로 영화제의 현장 이벤트는 더 분명한 힘을 갖게 될 수도 있다고 본다. 사람은 모여서 함께 즐겁고자 하는 본성을 지녔다고 생각한다.
내 입장도 그렇다. 영화제는 기본적으로 축제이고, 그 본질은 네트워킹이다. 몸의 접촉과 체온의 공유는 당연히 가져가야 할 고유한 본성이다. 어떻게든 현장성을 살릴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1주일간의 영화제가 끝나더라도 연중 내내 계속해서 관객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코로나19가 계속된다고 해서 문화적 체험이라는 소중한 경험을 다 폐기하는 방향으로 가서는 안 된다. 힘들게 쌓아온 음악 영화제의 역사와 전통은 반드시 계속돼야 한다.
그동안 전주국제영화제, DMZ국제다큐영화제 등 다양한 영화제에서 프로그래머직을 맡았다. 지난해 JIMFF 프로그래머 생활을 시작해 2년 차에 접어들었는데 제천에서의 경험을 정리해본다면.
음악 영화제는 처음이라 굉장히 빡셌다.(웃음) 음악에도 얼마나 많은 장르와 뮤지션이 있나. 영화와 음악을 동시에 공부해야 하다 보니 갓 학교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그 모든 어려움이 즐겁게 느껴지기도 했다. 영화제 프로그래머 일을 하면서 사회적 분쟁이나 고통 상황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많이 봐야 했는데, 너무나 중요하고 의미 있는 작품이라는 건 알지만 1년에 몇백 편씩 그런 작품만 보다 보니 나 자신이 우울해지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다.
공감된다. 삶의 질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 같다.
그런데 음악영화제는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신이 나더라. 아무래도 음악이라는 게 흥과 즐거움을 담고 있어서 그런 것 같다. 더 알고 배우고 싶다는 호기심이 생긴다.
음악영화제에서 일하면서 새롭게 매력을 느낀 장르나 가수가 있나.
그동안은 루카스 그레이엄이라는 덴마크 소울밴드를 알지 못했다. 경쟁 부문 상영작 고르다가 새롭게 알게 된 뒤 아들에게 ‘세븐 이얼스’라는 곡을 들어보라고 권했는데 그러더라. “엄마, 여태 그걸 몰랐어?”(웃음)
살짝 뻘쭘(?)했을 수도 있지만, 음악 영화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생긴 재미있는 에피소드 같다.(웃음)
음악이라는 게 꼭 보컬이 등장해야만 하는 건 아니라는 것도 느꼈다. 올해 새롭게 신설한 ‘사운드 앤 비전’ 섹션 출품작을 보면 우리 생각보다 음악이 훨씬 넓은 개념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노이즈 심포니>라는 작품에서는 나무를 툭툭 치거나 하는 자연의 소리를 즉흥 음악으로 만드는 영국 뮤지션 매튜 허버트가 악보를 보고 화음을 연주하는 베를린 필하모닉과 협연을 한다. 가능할까? 그런데 막상 만나보니 굉장히 아름다운 결과물이 나오더라.
이야기를 듣다 보니 새로운 영화를 접하고 즐기는 걸 정말 좋아한다는 느낌이 든다. 1년에 수백 편의 영화를 봐야 할 텐데 때로는 괴로운 직업 아닌가.
누구든 자기 업무를 마냥 즐기고 좋아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관객은 누군가 선별해놓은 영화를 보지만 프로그래머는 선별 과정 자체를 담당한다. 음식으로 치면 때로는 맛없는 것도 먹어야 하니 힘들다. 그 많은 영화를 봤는데도 시쳇말로 ‘건질 게 없는’ 상황이면 힘든 마음이 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느 순간 옥동자같은 결과물을 발견하면 “아, 이런 작품 보려고 내가 이 고생을 하는 거지” 싶다. 음 말해놓고 보니 ‘옥동자’라는 표현이 좀 구닥다리 같긴 한데...(웃음)
어떤 영화가 영화제에서 틀만 한 영화라고 생각하나.
반드시 모두가 좋아하는 웰메이드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각자 작품의 고유한 에너지나 활력이 주는 즐거움이 있으니까. 뭐 하나라도 관객의 어떤 지점을 건드릴 수 있다면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모두가 괜찮다고 말하는 고만고만한 것보다는 누군가는 극단적으로 싫어하더라도 누군가는 큰 매력을 느끼는 작품을 상영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앞으로도 프로그래머 역할을 계속할 건가.
영화제가 ‘넌 능력이 안 돼’라고 말하며 자르지 않는 한.(웃음) 프로그래머는 일의 힘듦과 무관하게 내가 가장 하고싶은 일이다. 영화제와 함께 발전하고 성장하고 싶다.
마지막 질문이다. 최근 소소하게 행복한 순간은.
사무실에서 일하다가 눈이 피곤하면 잠깐 밖으로 나가 하늘을 본다. 붉게 물든 석양을 바라볼 때, 자연과 함께하는 느낌이 들 때 소소하게 행복하다. 제천이 워낙 아름다운 곳이다. 제천 10경 중 하나인 의림지와 탁사정을 보고 있으면 모든 게 힐링 되는 느낌이다. 아, 내가 살아있구나 싶다.(웃음)
사진 제공_JIM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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