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가정에 헌신하느라 자기는 뒷전인 아내(염정아)와 괴팍하고 속마음을 표현하는 데 서툰 남편(류승룡). <인생은 아름다워>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아내와 남편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새록새록 그립고 애틋한 추억과 만나는 여정을 그린 작품이다. 평범한 이야기일 수 있으나, 이를 풀어낸 방식은 독특하다. 친근한 멜로디와 마음을 울리는 가사의 향연인 대중가요를 활용, 주크박스 뮤직 드라마라는 새로운 장르를 시도했다. <스플릿>(2016), <국가부도의 날>(2018)에 이어 세 번째 작품으로 관객을 찾은 최국희 감독을 만났다. 낯선 장르라 자신 없었지만, 그럼에도 새로운 시도를 즐긴다는 감독. 가보지 않은 길에 끌린다는 그의 말을 들어본다.
추석 시즌에 개봉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명절은 아무래도 엄마들이 고생하는 주간이니, 가족 관람으로 엄마의 수고에 감사하는 시간을 가지면 좋았을 텐데!(웃음)
그럴지도. (웃음) 한데 배급 담당자가 전문가로서 최적의 일정을 정한 거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래서 따로 의견내지는 않았다.
연출을 제안받고 시나리오를 보니 바로 어머니가 떠올랐다고. 어머니는 영화를 보셨나.
오늘 진행하는 특별 시사회에 참석하신다. 언제나 아들 편인 분이라 아무리 못난 영화를 들이밀어도 좋다고 하실 거다. 아마 많이 우실 듯하다.
장편 상업영화 데뷔작 <스플릿>(2016), <국가부도의 날>(2018)에 이어 세 번째 작품이다. 내기 볼링과 IMF 당시를 그린 전작들이 소재 면에서 참신했다면, 이번에는 대중가요를 활용해 주크박스 뮤직드라마라는 형식이 색다르다. 평소 뮤지컬이나 음악 영화에 니즈가 있었나.
그렇지는 않다. 음악 듣는 걸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음악 영화나 뮤지컬을 선호하지는 않는다. 사실 시나리오를 받고 낯선 장르라 나와 맞을지 또 잘 할 수 있을지 고민이 컸다. 그래도 평소 새로운 시도를 즐기는 편이라 도전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택시운전사>(2017), <말모이>(2018)등을 만든 제작사 ‘더 램프’와 박은경 대표에 대한 신뢰가 도전에 일정부분 영향을 미쳤을까.
맞다. 대표님은 정말 열심히 하는 분이고 추진력만큼은 대한민국 1등이 아닌가 한다. 같이 하면 (감독으로서) 무조건 플러스가 될 것 같은 제작자시다. 덕분에 다음 작품 <별빛이 내린다>(기자 주: <인생은 아름다워>에 출연한 옹성우 배우가 출연한다)도 하게 됐다. 이미 촬영은 끝냈고 후반작업이 남았다. 90년대와 현재를 오가는 멜로 드라마인데 사실 멜로 장르도 처음이라 자신 없지만, 역시 해보지 않은 분야라 시도했다!
이번에 뮤직 드라마를 해보니 어떻든가.
나도 스탭도 처음하는 장르라 너무 힘들고 시행착오가 많았다. 뮤지컬이라는 장르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과정을 거쳐 완성되는 거더라. 시간도 공력도 정말 많이 든다. 예를 들면, 군무 씬의 경우 100여 명의 댄스팀이 투입되니 안무를 맞추다 보면 안 틀릴 수가 없어 여러 차례 촬영해야 했다. 매번 퍼펙트한 샷이 나올 때까지 계속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덕분에 좋은 컷이 나올 때의 희열이 남달랐다.
음악과 댄스 분야의 전문가가 당연히 참여했지만, 연출자로서 장르에 관한 이해가 필수인데 참고한 자료나 특별히 준비한 부분이 있다면.
제일 좋은 건 많이 보는 거라는 생각에 유성 영화가 나오기 시작한 50~60년대에 뮤지컬 영화들이 많이 쏟아졌는데, 이 당시 작품을 비롯해 뮤지컬 영화를 거의 놓치지 않고 다 봤다. 공부하는 느낌으로 봤는데 <싱인 인 더 레인>(1952)도 그렇고 유명한 작품은 역시 그 이유가 있더라. 컬러필름과 유성영화 초창기의 작품들이 비주얼적으로 현란하고 현대 뮤지컬의 요소가 이미 다 들어가 있어서 보는 맛이 있더라.
‘부산에 가면’(최백호), ‘아이스크림 사랑’(임병수), ‘조조할일’과 ‘알 수 없는 인생’(이문세), ‘잠도 오지 않는 밤에’(이승철) 등 197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의 주옥같은 대중가요로 극을 꽉 채웠다. 30~40곡 후보를 정하고 제작진과 스탭들이 고심해서 선곡했다고. 당신이 특별히 추천한 곡이 있다면.
가장 마음에 드는 곡은 엔딩 크레딧에 흐르는 ‘세월이 가면’(최호섭)이다. 사실 기술시사를 할 때까지만 해도 이 노래가 아니라 다른 곡이었다. 엔딩의 감흥을 크레딧까지 연결하고 싶었는데 원래 생각했던 곡은 아쉬운 부분이 있더라. 그래서 기술시사를 한 이틀 후에 새롭게 녹음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와중에도 노래를 듣고 있는 관객이 꽤 있는 걸 보면 잘 변경했다는 생각이다. 가장 마음에 드는 선곡이다.
촬영하며 시행착오가 많았다고 했는데 제일 힘들었던 장면은.
후반부 연회장 시퀀스다. 힘들고 고생했지만, 가장 좋아하고 시퀀스이기도 하다. (영화를 봐서 알겠지만) 연회장에서 잔치를 벌이다가 모두 밖으로 나가 춤과 노래를 하지 않나. 촬영 당시 날씨가 너무 추웠다. 파주에서 찍었는데 실제 온도는 영하 14~15도라고 하지만, 체감 온도는 영하 20도가 넘었다. 파티하는 장면이라 모두 양복과 드레스 등의 얇은 의상을 입었고 게다가 밴드 중 한 분은 민소매 티셔츠를(수정) 입고 있기도! 또 화면에는 안 잡히는 동안에도 배우들은 계속해서 춤추고 노래 부르는 중이라… 빨리 오케이하고 싶은데 그렇다고 아닌 걸 됐다고 할 수도 없고 참 미안하고 고맙고 그랬다. 이 시퀀스 중 ‘세연’(염정아)이 문을 열고 나오는 장면을 특히 좋아한다. 그때의 앵글, 세연과 그리고 세연을 쫓아오는 남편 ‘진봉’(류승룡)의 표정 등이 개인적으로 뭉클했다.
추위에 떠는 배우들을 지켜보는 게 고역이었겠다. 촬영하면서 어떤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무엇보다 배우의 연기가 중요하다. 그래서 최선의 연기를 뽑아낼 세팅과 셋업에 관해 많이 고민하는 편이고, 또 배우의 선호점을 최대한 반영하려 한다. 가령 염정아 선배의 경우는 첫 테이크에 좋은 연기가 나온다고 믿는 분이라, 풀샷에서 클로즈업으로 찍는 통상의 순서가 아닌 클로즈업부터 촬영했다. 옹성우 배우는 스스로 연습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자신은 제일 마지막으로 찍었으면 해서 가능한 한 반영하려고 했다. 그래야 좋은 연기가 나오고 이런 좋은 연기가 쌓여 좋은 영화로 완성될 거라 그렇다. 배우들의 개인적인 선호 경향을 적절히 조율해서 최상을 뽑아내는 게 감독의 역량이 아닌가 한다.
그러한 배우 개개인의 선호가 있는지 미처 몰랐다! 류승룡 배우는 어떤가.
선배는 뭐, 워낙 베테랑이라 배려를 많이 하신다. 보통 촬영장에서 암묵적인 룰은 해당 장면에서 비중이 높은 배우를 먼저 촬영하는데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고 다 양보하셨다. 배려와 자신감 덕분에 가능하다고 본다.
고등학생 ‘세연’역의 박세완 배우는 절묘한 캐스팅이라고 생각했다. 어딘가 닮았다.
그렇지? 이목구비 하나하나는 아니라도 큰 눈과 가녀린 모습 등 이미지적으로 비슷한 면이 많다. 시진을 놓고 보니 잘 모르는 외국 관객이 봐도 정말 어린 시절로 보일 것 같더라. 또 원체 연기를 잘하니까 주저 없이 캐스팅했다.
박세완-옹성우, 두 배우가 부르는 ‘아이스크림 사랑’ 시퀀스가 영화에 상큼함과 풋풋함을 더했다고 본다. 노래와 댄스도 훌륭하고, 한 곡이라 아쉽더라.
안무팀이 난이도에 따라 몇 가지 버전을 준비해 오는데 이 둘은 그보다 업그레이드된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전문) 댄스팀과 견주어도 더 잘할 정도라 현장에서 환호받았다.
류승룡과 염정아는 관록 있는 연기로 중심을 꽉 잡아줬다. 연기 베테랑이지만, 노래와 춤을 시도하는 것 자체로 엄청난(?) 도전이었겠다.
언론시사회에서도 말했지만, 두 분이 정말 연습을 많이 했다. 전문 뮤지컬 배우를 따라잡을 수는 없어도 연기로 그 여백을 충분히 커버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고, 예상대로였다.
후반부로 갈수록 왜 그렇게 슬프던지 특히 ‘진봉’의 마지막 독백에서는 눈물나더라.
(류승룡) 선배가 연기를 잘하기도 했지만, 혹시나 하는 어떤 희망이나 기대를 은연중에 품고 있어서일 거다. 거기에 진봉의 독백이 더해지며 상황이 확실해지니, 슬픈 정서가 더 고조되지 않았나 싶다.
한편으로는 ‘진봉’ 캐릭터가 ‘마음은 있는데 표현은 서툰’ 남편이라는 지극히 전형적인 모습이다. 후반부 변모된 모습을 위한 빌드업이겠지만, 납작한 면이 있다. (웃음)
좀 괴팍하지. (웃음) 평균적인 남편보다 더욱 무심하고 아내에게 함부로 하는 편이지만, 무심한 모습이 강조돼야 나중에 아내인 세연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좀더 강하게 다가갈 것 같아서, 고민 끝에 지금 정도로 가져갔다. 사실 시나리오를 모니터링할 때부터 지적이 나왔던 부분이다. 특히 젊은 여성층이 ‘이러면 안 된다’고 했는데 나중에 진봉의 진심이 다 드러날 거로 생각해 밀고 간 부분이다.
영화 외적인 질문이다. 영화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일단 영화 보는 걸 좋아했다. 대학생 때가 한창 VJ가 유행하던 시대로 혼자 카메라를 들고 촬영하고 편집하는 등 1인 연출이 흥한 시기였다. 나 역시 그렇게 인권 관련한 다큐멘터리를 만들었고, 그러다 군대에 갔다. 거기서 진지하게 앞으로 무엇을 할지 진로에 관해 고민해보니 영상과 연관된 일을 하고 싶었고, 영상 업계의 끝판왕을 생각해보니 바로 영화감독이더라. (웃음)
이제 세 번째 작품인데 왠지 중견 감독 같은 느낌이 든다. 데뷔작부터 규모 있는 영화로 시작해서 그런지도. 그사이 좌절은 없었나. (웃음)
당연히 있다. 홍상수 감독님의 영화를 너무 좋아해서, 특히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1996)은 쇼킹해서 충격받았다, 연출부로 들어가서 이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다 느지막이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 들어간 게 2005년 정도다. 2008년 졸업 후 <스플릿>까지는 시나리오 작업을 하면서 계속 문을 두드렸지만, 열리지 않으니 지칠 수밖에 없는 시간이었다. 아이는 커가는데 제대로 가장 노릇을 못 하니 고민도 컸다. 고맙게도 아내가 직장 다니면서 계속 영화를 할 수 있게 도와줬는데 지금도 늘 감사하다.
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장르는.
기본적으로 안 해본 장르를 해보고 싶다. 누아르 장르는 원래 좋아하고, 요새는 SF에 관심이 생겼다. 공부하면서 글을 쓰고 있긴 한데 아직 밝히 정도까지는 아니다. <별빛이 내린다>의 후반 작업을 마무리하면 좀 쉬고 싶다는 마음인데, 일이라는 게 들어올 때 해야 하는 부분이 커서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마지막 질문이다. 최국희는 어떤 사람인가.
소심하고 되게 성격이 급한데 반대급부로 결단이 빠르다. 또 소심해서 눈치를 많이 보는 편인데 역시 반대급부로 배려를 많이 하게 되는 사람인 거 같다.
사진제공. 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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