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불법 동영상에 대해 평소 경각심이 없던 ‘동주’(박선호), 우연히 전달된 링크를 타고 들어가 보니 ‘젠틀맨’(박성웅)이 주도하는 몰카 라이브 방송이 진행 중이다. 경악할 일은 오늘의 몰카 희생자는 바로 동주의 여자 친구 ‘수진’(김희정)! 피가 거꾸로 솟는 상황에 직면한 동주의 여친 구출 고군분투가 시작된다! 어느새 30대에 들어선 배우 박선호가 사이버 성범죄에 경종을 울리는 메시지를 장르적으로 풀어낸 <라방>으로 관객을 찾는다. 기승전결결결로 이어지는 감정의 소프라노를 박진감 있게 이어간다. 매년 목표를 세운다는 그의 올해 목표는 예나 지금이나 신인상, 몸과 마음이 건강한 배우가 되고 싶다는 박선호를 만났다.
첫 주연작인데 영화는 어떻게 봤나. 소감 한마디!
아주 긴장한 상태로 떨면서 봤다. 주연으로 참여한 작품이 처음이라 기대했고, 한편으로는 큰 스크린 속 모습이 어떨지 설레기도 했는데 막상 보니 훨씬 더 긴장되더라. 개봉하면 편안하게 혼자 다시 봐야 할 것 같다.(웃음) <라방>은 감정의 낙폭이 큰 연기를 해보고 싶던 차에 만난 도전적인 작품이었다. 연기적으로 당연히 아쉽고 보완하고 싶은 부분이 있지만, 주인공으로 극을 끌고 간 데다 다이내믹하게 감정을 표출했기에 얻은 것이 많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노트북 모니터를 통해 맞대결을 펼치는 ‘젠틀맨’ 역의 박성웅 배우와 친분이 두터운가 보다. 그가 참여한 이유 중 하나로 당신을 꼽았다.
선배님과 드라마 <루갈>을 같이 한 적이 있다. 선배는 악당, 나는 경찰 팀 막내로 분량이 많지는 않지만 둘이 붙는 장면이 종종 있었는데 이때 감정을 끌어올리는 데 도움을 많이 주셨다. 촬영 중간중간 쉬는 시간에 배드민턴 치고 있으면 같이 가서 치고, 또 배울 부분이 많다는 생각에 따로 연락드리곤 했는데 이번에 ‘젠틀맨’을 맡았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듣기로 시나리오가 좋고 (최주연) 감독님에 대한 믿음도 있었지만, ‘박선호가 ‘동주’ 역이냐고, 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고 말씀했다고. 후배로서 감사하고 더욱더 선배님의 팬이 됐다. 정말 본받고 싶은 분이다.
사이버 성범죄라는 민감한 소재를 다룬다. 오해와 왜곡의 소지가 있을 수 있는데 참여에 망설임은 없었나.
소재에 대한 망설임은 하나도 없었고, 다만 ‘동주’라는 인물을 온전히 잘 표현할 수 있을지 스스로에 대해 의심이 들었다. 감정선의 폭이 넓은 캐릭터라, 어떻게 하면 지루하거나 단조롭지 않게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매번 화내거나 분노에 가득한 상태일 수는 없으니 말이다. 기승전까지 감정이 치고 올랐다가 결에서도 계속 고조되는 감정을 어떻게 잘 표현할지 걱정했는데 다행히 감독님이 손을 내밀어 주셨다. 감독님이 ‘대화를 나눠보니 충분히 잘할 수 있겠다’고 이렇게 힘이 되는 말을 자주 해줘서 나와 감독님, 그리고 작품을 믿고 갔던 것 같다.
감독님과 나눈 대화를 구체적으로 소개한다면.
먼저 ‘동주’라는 인물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선호 씨가 갖고 있는 마음과 여자친구를 구하려는 동주의 마음이 맞닿는 부분이 있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동주의 캐스팅에 따라 관객의 시선이 달라질 것이고, 내가 연기한다면 (관객이) 동주의 마음을 따라 갈 수 있을 거라고 해서 용기를 얻었다.
작품을 준비하며 사이버 성범죄 관련 자료는 좀 찾아봤나.
시나리오를 읽은 후 관련한 온라인 사건을 다룬 유튜브 영상이나 다큐멘터리 등을 찾아봤었다. 생각한 것 이상으로 심각한 상황이라 마음이 정말 불편하고 좋지 않더라. 중요한 건 누구나 그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영화를 통해 이러한 사이버 성범죄 실태와 그 심각성이 많이 알려지고 조금이라도 없어지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동주와 친구들은 불법으로 유통되는 영상물을 보고 공유하는 행위 역시 범죄라는 자각이 없어 보인다.
그 또한 영화의 메시지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동주 같은 방관자나 좀 더 적극적으로 영상을 소비하는 친구들이나 모두 직접적인 행위를 하지 않았더라도 가해자라는 사실 말이다. 불법 영상물을 희희낙락하며 보고 공유하는 그 친구들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접할 법한 평범한 사람들이다. 자기들이 범죄를 행한다는 자각조차 없다. 동주 역시 비슷하지만, 본질적으로 선한 인물이라 자기 인생에 흠집이 생기더라도 여자 친구를 구하기 위해 노력한다.
동주와 젠틀맨은 모니터를 통해 감정적인 격돌을 이어가는데, 촬영은 각자 따로 했다고.
다른 공간과 시간에서 각자 진행했다. 내 경우 원래는 노트북 블루스크린을 앞에 두고 상상에 의존해 연기해야 했는데 선배님이 ‘젠틀맨’ 같이 스타일링한 후 테스트 영상을 찍어 주셨다.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분위기와 정서가 끌어올려지고, 동주가 처한 사태의 심각성이 확 다가오더라. 매번 노트북을 켜 놓고 그 앞에서 혼자 연기하다가 친구들이 오는 씬을 찍을 때는 아주 반갑기도. 또 동주-젠틀맨 간의 액팅과 리액팅이 어떻게 나왔을지 궁금했는데 완성본을 보니 과연 대단했다! 선배의 웃고 울고 소리치고 또 박수치고 춤추는 등 다양한 연기와 동주의 증폭하는 감정 연기가 극과 극의 조화를 이루며 영화를 한층 풍성하게 이끈 것 같다.
동주가 관여하지 않은 씬이 없을 정도로 분량이 많고 더불어 감정을 폭발적으로 표출하는 장면의 연속이라 연기하며 지친다고 할지, 상당히 힘들었겠다.
확실히 중반부쯤 되니까 쉽지 않더라. 이미 감정이 오른 상태에서 컷하고 다시 또 끌어올려야 해서 이때부터는 일부러 호흡을 빨리 쉬면서 긴박감을 전달하려 했다. 이런 부분은 촬영 전부터 테크닉적으로 트레이닝 받기도 했었고, 또 현장에서 바로 도움받은 부분도 있다. 액팅과 리액팅을 여러 버전으로 생각하고 들어가서 하나씩 꺼내고 시도했던 것 같다.
감정의 낙폭이 큰 연기는 이번에 실컷 한 것 같고 (웃음) 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장르와 역할이 있다면.
안 해본 장르와 역할이 너무 많은 만큼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 우선 사극은 잠깐 해 봤는데 꼭 제대로 다시 도전하고 싶다. 그 시대만의 풍경과 의상, 말투 등 극에 녹아 있는 문화상이 너무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구체적으로 조선시대, 그중에서도 갓을 꼭 써보고 싶다! 누아르 액션물도 하고 싶다. 연습생 시절 춤을 췄기 때문에 몸이 민첩하고 시원시원한 나름의 긴 팔다리를 이용한 몸 연기가 액션에 도움되고 깊이를 더하지 않을까 한다. 또 로맨스도 하고 싶다. 가볍게 보는 와중에 웃기고 설레고 감동을 줄 수 있는 로코라면 좋겠고 한편으로는 굉장히 진하고 가슴 아픈 멜로라도 좋을 것 같다. 스스로 감정이 깊다고 생각하고 생각이 많은 편이라 내 이런 면을 투영할 캐릭터를 연기한다면 좋겠다. 입대하기 전까지 주로 명랑한 막내나 귀여운 캐릭터를 해와서 이와는 상반된 말 한마디에 감정이 실리고, 눈빛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연기를 하고 싶다.
귀여운 막내가 전역 후 어느새 30대에 들어섰다!
군대 다녀오니 곧 30대더라. (웃음) 자연스럽게 새로운 출발선에 선 것 같다. 어릴 때부터 매년 목표를 잡으며 활동했고, 그해 완전히 달성하지 못해도 근접하는 것만으로도 스스로를 칭찬하며 성장해 왔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연기에 대한 마음, 욕심이 더 커졌고 따라서 준비하는 마음도 한층 더 커졌다. 연기 훈련만이 아닌 다양한 경험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다. 그래야 내 안에서 감정을 끌어올릴 수 있겠더라.
입대 전에 도전한 오디션 프로(프로듀스X101)가 내 안에 있던 춤과 노래에 대한 어떤 응어리를 모두 풀어버린 것 같다. 사실 오디션에 나간다고 했을 때 회사를 비롯해 나를 아는 모든 사람이 말렸었다. 설득해서 굳이 참가한 이유는 무대에서 춤추고 노래할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에서였다. 어린 친구들과 팀을 이루어 같이 밤새 연습해서 무대에 섰다는 게 정말 고마운 경험이 됐고 힘을 많이 받았다. 가수 데뷔에 대한 (조금의) 미련이 완전히 해소된 덕분에 연기에 더욱더 집중할 계기가 됐다.
올해의 목표는 뭔가. (웃음) 또 다양한 경험을 쌓기 위한 버킷 리스트가 있다면.
연기를 시작할 때부터 목표는 신인상이었다. 후보에 오른 적은 있지만, 수상하지 못해서 올해 역시 목표는 신인상이다. 요즘에는 혼자 하는 취미를 만들려고 한다. 이전까지는 혼자 있는 시간이 지루하고 따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처음으로 혼여(혼자 여행)해보니 그렇지 않더라. 고속버스를 타고 군산에 가서 혼자 걷고, 걷다가 가끔 춤도 추고, 카페에서 책 읽고 음악 듣고 하면서 보낸 시간이 너무 행복했다. 그 이후로 혼자 카페에 가고 가끔 노래방에 가서 노래도 부르고 있다. 요즘에는 밤에 한강을 자주 뛴다. 하루에 7~10km 정도 뛰는데 너무 행복해서 저절로 웃게 된다. 달리기 전에는 고민이 있다 가도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과 풍경을 보면 매 순간 새롭다. 얼마 전에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나무 냄새가 향기롭게 다가오더라.
마지막 질문이다.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가.
몸도 마음도 건강한 배우가 되고 싶다. 요즘 마음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게 됐고 마음운동도 하고 있다. 덕분에 순간 나를 몰아붙여 채찍질하다 가도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자고, 서두르지 말자고 한다. 마음이 건강한 배우가 되고자 스스로 되새기게 된다.
사진제공. 트리플픽쳐스
[mail:eunyoung.park@movist.com]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m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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