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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 개척의 선두주자 되고 싶어” < 내 이름은 O90 > 김시연 감독, 박서은 프로듀서

2023년 9월 4일 월요일 | 이금용 기자

[무비스트=이금용 기자] 한국영화아카데미, 스튜디오 메타포가 제작하고 영화진흥위원회가 지원하며 ㈜바른손이 배급하는 VR 애니메이션 < 내 이름은 O90 >이 베니스국제영화제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뤘다. <시티리듬>으로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페스티벌에서 영예상을 수상한 김시연 감독이 연출을 맡고, 그와 오랜 기간 함께 작업해온 박서은 프로듀서가 기획과 각본을 맡은 이번 작품은 버려진 AI 강아지의 여정을 통해 사물에 대한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쉽게 변하는지, 로봇 반려견의 시점에서 다룬다. <내 이름은 오구공>을 통해 한국 VR 영화 시장에 새로운 족적을 남긴 김시연 감독, 박서은 프로듀서와 만나 나눈 다양한 이야기를 공유한다.



제80회 베니스국제영화제 이머시브 부문에 공식 경쟁작으로 초청됐다. 소감이 어떤가.
김시연 지난해 모든 걸 쏟아 부은 < 내 이름은 O90 >이 이렇게 큰 영화제를 통해 관객과 만나게 되어 너무 기쁘고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베니스국제영화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영화제이지만 동시에 최첨단의 영화제라고도 할 수 있다. VR이라는 장르를 2017년도부터 받아들였고 현재는 XR(확장현실) 영화를 비롯해 몰입형 영화를 다루는 이머시브 부문으로 확장해 올해 영화제에서는 25개국 44개 프로젝트, 24개 작품을 선보인다. 칸을 비롯해 여타 영화제와 비교하면 독보적인 수준이다. 베니스영화제는 VR 장르에 있어 확실한 선두주자이고, 그런 영화제의 경쟁 부문에 진출하게 되어 더욱 기쁘다. 특히 올해 영화제에서는 이탈리아 리도 섬 근처의 한 공간을 VR 체험을 할 수 있도록 개조했다고 해서 기대 중이다. (웃음)

이번 작품은 버려진 AI 강아지 ‘오구공’(O90)의 여정을 따른다. ‘오구공’이라는 이름은 무슨 의미인지 궁금하다.
박서은 ‘오구공’이라는 이름은 예브게니 자먀찐의 소설 ‘우리들’ 속 ‘O-90’이라는 캐릭터에서 따왔다. 개개인의 개성과 인간적인 감정이 말살된 소설 속 디스토피아적인 세계관이 우리 작품의 내용과 잘 어울릴 것 같았다.

김시연 그리고 ‘O90’이라는 이름이 대량 생산된 제품의 일련번호 같은 느낌을 주지 않나. 어떠한 특징도, 정체성도 없어 보이는 이름을 통해 상품 같은 느낌을 강조하려고 했다.

VR 영화의 특성상 아직까지는 게임적, 오락적인 측면이 강한데 다소 철학적인 메시지를 선택했다는 게 의외였다.
김시연 사실 대사나 스토리 자체는 어린 아이가 봐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쉽게 구성되어 있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작품을 감상한다 해도 느끼는 감정은 관객마다 다 다르지 않나. 해석의 여지를 열어 두고 싶었고 질문은 쉽지만 그 속에서 관객이 더 생각하게 만들고 싶었다.

그럼 두 사람은 영화를 어떤 내용으로 상정하고 제작에 임했나.
김시연 AI 로봇견에 빗댔지만 결국엔 사랑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인간은 결함이 많고 나약한 존재다. 우리는 살면서 매일매일 크고 작은 상처를 받는다. 사랑도, 마음도 쉽게 변한다. 그래서 변하지 않는 무언가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기계(로봇)를 떠올렸다. 기계야말로 변하지 않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박서은 이게 신기한 게 만드는 사람조차도 이렇게 제각각 해석하지 않나. (웃음) 나는 기억과 영속성에 대한 이야기로 접근했다. 변하지 않고, 변형되지 않는 기억이 신뢰로 연결된다고 봤다. 사람의 마음이 변하는 건 기억의 왜곡이 작용한 결과라고도 생각한다. 반면에 기계의 기억과 마음은 한결같고 일관된다. 숲에서 ‘오공구’와 전 주인의 대화가 이 둘의 대비를 극대화한 장면이다. 인간은 단순한 변심으로 이 로봇을 버릴 수 있지만, 로봇은 그렇지 않다.

방금 언급한 숲 장면이 상당히 강렬했다. 그곳에서의 대화도 인상적이지만 비주얼적으로도 공을 많이 들인 티가 나더라.
박서은 숲은 ‘오구공’의 머릿속에 있는 데이터의 공간이다. 누적된 데이터가 폭포처럼 흘러내리는 장면을 떠올렸고 숲과 우주의 별들을 통해 이를 이미지화했다.

김시연 우선 ‘데이터의 시각화’ 하면 흔히 생각하는 영화 <매트릭스>의 이미지는 피하고 싶었다. (웃음) 작품 속 숲의 실제 모델은 제주도의 사려니숲길, 붉은오름이다. 1억 만 개 정도의 픽셀을 가진 건축용 카메라로 찍었는데, 그렇게 좋은 카메라로 찍어 놓고 그걸 다 해체시켰다. (웃음) 그렇게 픽셀만 성글게 남겨서 숲을 회화적으로 표현하려 했다.

박서은 < 내 이름은 O90 >은 이 숲에서 시작했다고도 할 수 있다. 누적된 데이터로 이루어진 기억의 공간이 등장하는 SF를 만들고 싶었고, VR로 그걸 구현하고 싶었다. 해당 장면에선 VR로 입체화된 공간 안에서 실제 숲이 가진 웅장함과 압도감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VR 작품의 특성상 시선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공간에 대한 느낌이 확실히 달라지는데, 이 장면은 누워서 보기를 추천한다. ‘오구공’이 떠오를 때 나무가 쏟아지는 듯한 느낌과 함께 관람자의 몸 역시 두둥실 떠오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숲을 비롯해서 공간의 변화를 통해 길지 않은 러닝타임 내에서 다양한 이미지를 보여준다.
박서은 작품 속 공간은 크게 지상, 지중, 지하 세 층으로 구분된다. 지상 세계가 인간의 세계라면 맨홀에 떨어지면서 시작되는 지중 세계는 모두가 외면하는 세계이자 단절의 공간이다. 그리고 지하로 나가면 인간과 분리된 또 하나의 자연 세계가 펼쳐진다. 이 세 공간이 전부 다른 특성을 띄고 있지만 사실 거리상으로는 멀지 않은 공간이다. 즉 ‘오구공’이 살고 있는 공간을 도시와 자연의 경계가 모호한 곳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제작 과정은 어땠을까.
김시연 첫 VR 영화가 실사 영화였는데, 2D 영화와는 다른 거리감 때문에 상당히 고생했다. 현실감을 위한 거리 조정이 쉽지 않더라. 그래서 이번엔 애니메이션을 택하게 된 건데 답답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웃음) 실사 영화는 수정하는 게 그렇게 어렵지 않다. 다시 찍으면 되는 거니까. 그런데 애니메이션은 뭐 하나 바꾸려고 하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감독 입장에서는 욕심이 나니까 잘 찍고 싶은데, 여러 단계를 거쳐서 찍다 보니 돈과 시간도 문제이고 스태프끼리 소통하는 것마저 순탄치 않더라. 애니메이터 분들께 아무리 콘티를 그려가며 설명을 해줘도 말로 하면 이해를 못 하겠다고 영상을 달라는 거다. (웃음) 결국에는 그래픽으로 영상 콘티를 만들어야 했다. 원래 애니메이션 VR 작업을 하려면 공간 디자이너, 캐릭터 디자이너, 공간을 설계하는 테크니션, 프로그래머 등 최소 6~7개 영역을 소화할 인원이 필요한데, 우리는 환경이 열악해서 한 명이 세 영역 씩 맡다 보니 더 힘들었다. 그래서 최근에는 보다 원활한 소통을 위해 마야(3D 애니메이션 프로그램)를 배우고 있다. 배운 지 6개월 정도 된 거 같다. (웃음)

박서은 이제와 얘기하는 거지만 애니메이터를 섭외하는 데 우여곡절이 많았다. 프리랜서 분들과는 스케줄 문제로 어그러지고, 게임 VR 작업하시는 분들은 결과물이 예상했던 것보다 너무 투박해서 최종적으로 같이 하지 않기로 했다. 영진위에 약속한 기한이 가까워져 올수록 마음이 너무 조급해지더라. 그러던 찰나 코엑스에서 열린 캐릭터 박람회 기사를 보게 됐다. ‘무조건 최고에게 맡기자’는 마음으로 <뽀로로> 팀을 무작정 찾아갔다. (웃음) 결과적으로 <뽀로로> 기획자 분께서 소개시켜준 사람들과 함께 작업하게 됐다.

그럼 총 제작 기간이 어느 정도인가.
박서은 작년 4월부터 시작해서 올해 3월까지 제작하는 데 꼬박 1년 매달려 있었다. 시나리오 구상은 21년 8월 여름이었다.

베니스에 다녀온 뒤 추후 계획은 어떻게 될까.
김시연 ‘빅브라더’에 관한 장편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 <내 이름은 오구공>에 앞서 썼던 시나리오인데 ‘우리의 눈에 CCTV가 있고, 모든 세계를 감시하는 수단으로 쓰이면 어떨까’라는 상상에서 시작한 작품이다. VR로도 작업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시나리오를 더 보강해서 2D 영화로 준비하고 있다. 아마 내년에는 윤곽이 나올 거 같다. 지금으로서는 장르나 플랫폼에 상관 없이 기억과 사랑, 신뢰에 관한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하고 싶다.

박서은 또 하나 좋은 소식이 있다. (웃음) 우리가 함께 작업한 <각자의 방식>이라는 작품이 올해 9월에 개최되는 제15회 DMZ 다큐멘터리영화제 한국경쟁 단편 부문에 진출하게 됐다. 베니스에 다녀오고 나서도 바쁜 일정이 계속될 거 같다.

마지막 질문이다. VR의 미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김시연 만드는 과정은 험난하지만 크리에이터 입장에서든 관객 입장에서든 VR이 주는 몰입감은 대단하다. 그래서 계속해서 VR 작품에 도전하게 되는 거 같다. (웃음) VR에는 무한한 매력이 있지만 아직까지 널리 대중화되지 않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건 사라지지 않을 미래의 장르이고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VR을 즐기는 시대가 올 거라고 생각한다.

박서은 기술력은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고, 특히 VR 게임의 발달에 따라 전반적인 VR 콘텐츠의 퀄리티도 지속적으로 발전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쩌면 VR 시장은 국가적 경계에 갇히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작업의 성격만 맞다면 크리에이터의 국적, 위치와는 상관 없이 협업할 수 있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다.

김시연 바라는 바가 있다면 이 장르를 개척하는 데 있어 뒤따르는 사람이 아닌, 이끌어가는 사람 중 하나가 되고 싶다.


사진_코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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