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정말 많이 울었어요.” 평소 자신이 출연한 드라마를 반복해서 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옥씨부인전>은 한 씬 한 씬 당시의 기억이 떠올라서 울면서 봤다는 임지연이다. 처음으로 타이틀 롤을 맡아 막중한 책임감 하에서 분투한 덕분에 1화 시청률 4.7%로 출발해, 최고 14%를 찍고 종영하기까지, 드라마의 알파이자 오메가인 주인공 "구덕" 역으로 분해 단단하게 극을 견인한 그이다. 이번 <옥씨부인전>을 통해 사극 트라우마를 극복했다는 임지연을 만났다. 아쉬운 부분도 여럿 있지만, 극 중 정인인 "천승휘"(추영우)와는 실제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꽤 잘 어울린 것 같다며 웃는다. 이번에 처음으로 극 T 성향인 아버지로부터 연기 칭찬을 받았다고 털어놓는 임지연과 나눈 이야기를 공유한다.
드라마의 인기가 뜨거운데 체감하고 있는지, 또 종영 소감은.
식당 같은 곳을 가 보면 아버님, 어머님 등 연령대 있으신 분이 좋아해 주는 것 같더라. 또 모처럼 영화 시사회 갔다가 만난 동료와 선배님들한테 칭찬을 많이 받아서 이때 실감났다. 드라마가 사랑받아서 이렇게 인터뷰할 수도 있어(웃음) 행복하기도 하고, 안 끝났으면 싶기도 하고 시원섭섭한 마음이다.
제작발표회 당시 사극에 트라우마가 있다고 밝힌 바 있는데, 이번을 통해 어떻게 좀 해소가 됐을까.
그때는 하고 싶은 이야기를 너무 축약하다 보니…(웃음) <옥씨부인전>과의 인연을 좀더 풀어 놓자면, 넷플릭스 <더 글로리>가 크게 사랑받고 내 인생에서 캐스팅 제안이 가장 많이 들어온 시기를 맞았는데, 이런 시기에 처음 받은 작품이 <옥씨부인전>이었다. 사극 장르에 자신이 없던 터라 스스로 자격지심이 컸던 것 같다. 그런데 글과 "구덕"이라는 캐릭터가 너무 좋아서 순간 아차 싶더라. 내가 조금 잘되니까 초심을 잃는구나 싶기도 했다. 지금까지 무섭고 두려워도 도전하는 마음으로 연기했는데 왜 스스로 사극이라는 장르에 한계를 두었는지 창피하기도 하고 그러면서 한 번 해보자 했다. 악역인 "연진"(<더 글로리>)도 했으니 제일 자신 없던 사극도 해보자, 이왕 하는 거 스킬적인 부분을 갈고 닦아 임지연표 사극을 만들어 보자 했다. 노력하면 알아봐 주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과감하게 도전했던 것 같다. 하는 과정에서 많이 배우고 칭찬도 많이 받아서, 트라우마는 어느 정도 극복된 것 같다. 개인적으로 무엇보다 다시 도전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자신이 없었던 이유는.
스스로 한복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발성 등도 사극에는 부족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또 20대 때 사극 하면서 고된 경험을 해봐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여튼, 자신 없는 장르 중 하나였다.
노비 구덕에서 양반 아씨 "옥태영"으로 또 외지부로 활약하는 등 내외적으로 큰 변화를 겪는 인물인데 이러한 변화를 어떻게 구축해 나갔나.
말한대로 노비의 신분에서 아씨가 되고 혼례 후 마님으로 외지부로 활약하는 다채로운 인물이다. 영민하고 귀엽기도 하고. 한편으론 처절하게 무너질 때는 무너져야 하는 변화와 감정의 진폭이 큰 캐릭터라 이를 100% 표현하고자 노력했던 것 같다. 극한의 상황에서는 자제하기보다 오히려 더 크게 터뜨리려 했었다. 또 태영과 구덕이 크게 다른 인물이라고 접근하지 않았다. 구덕이 태영으로서의 삶을 사는 것이라 무엇보다 구덕의 피가 중요했다. 특히 첫 1화와 2화에서의 구덕의 캐릭터가 중요했는데 박지숙 작가님이 워낙 잘 써준 덕분에 저절로 몸가짐이 바뀌어 가더라. 외적으로는 노비일 때는 말라 비틀어 보였으면 했다. 날씨가 추운 탓에 내복을 많이 껴입어서 말라보이지 않아 좀 걱정했는데 다행히 얼굴은 마르게 나왔더라. 아씨일 때는 조금 사랑스럽다면 마님일 때는 기품 있어 보이도록, 한복에 잘 어울리는 자태를 위해 몸의 자세에 신경썼다. 생각해 보면 노비, 아씨, 마님, 남장까지 이번에 궁에만 안 들어갔지, 사극으로서 할 수 있는 건 거의 다 한 것 같다. (웃음)
16부작인 데다 구덕이 거의 안 나오는 씬이 없을 정도로 분량이 많고 대사량도 많아서 물리적으로도 힘들었을 것 같더라.
말 그대로 해야 할 양이 많아서 순간 내가 왜 한다고 했지, 하고 후회한 적도 있었다. (웃음) 농담이고 지방 촬영이 대부분에 어느 순간은 한복 입고 좀비처럼 다니기는 했지만, 마음은 행복했다. 현장에서 감독님과 작가님의 케미가 너무 좋았다. 두 분 모두 준비한 것이 많아 척하면 척이었다. 노비즈, 그러니까 노비 식구들을 비롯해 서로 의지하면서 촬영한 즐거운 현장이었다.
<옥씨부인전>의 화룡점정은 외지부 옥태영의 재판씬이 아닌가 한다. 변론 자체로 짜릿하다는 반응이 많다.
신기하게 의상을 입고 그 공간에 들어가면 다른 톤이 되더라. 재판씬은 카리스마가 중요하고, 무엇보다 좌중을 압도해야 한다는 생각에 완벽하게 소화하려는 욕심이 있었다. 대사를 정말 달달 외워가서, 하루 종일 찍는 현장이라 끊어가도 되지만, 한번에 끝내려고 노력했었다. 스스로 "절대 지치지 말자, 나는 옥태영이니까 강인해야 해" 이런 마음이 있었다. 그럼에도 완벽한 씬은 없기에 스스로는 아쉬움이 보이기도 한다. 씬을 너무 잘 만들어준 감독님께 감사할 뿐이다.
처음으로 맡은 타이틀롤이다. 부담감도 상당했겠다.
사실 엄청 컸고 무서웠었다. 전체 리딩할 때 "한 번만 믿어달라고", "처음이고 아직 경험이 부족하지만, 반드시 잘 이끌고 어떤 노력을 해서라도 해내겠다"고 이런 말을 했었다. 또 제작발표회 때도 이전과는 비교가 안 되게 굉장히 많이 떨었었다. 어떻게든 작품을 어필해야 한다는 생각에 그랬던 것 같다. (웃음) 책임감도 남다른 현장이었다. 이 정도 주인공은 처음인지라, 현장에서 지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했었다. 재판씬을 한번에 갔던 이유 중 하나가 현장의 에너지가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옥태영 마님이라는 걸 선배님과 수많은 보조출연자 앞에서 보여주고자 했다.
관전포인트로 "천승휘"와 "성윤겸" 1인 2역을 맡은 추영우 배우와의 호흡을 빼놓을 수 없다. 구덕에겐 하나밖에 없는 정인(천승휘)이자 야속한 서방님(성윤겸) 아닌가. (웃음)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너무 중요한 케미라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오히려, (추) 영우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다. 천승휘를 추영우스럽게 너무 잘 표현하더라. 자기만의 색깔로 표현하는 데 능숙하고, 현장에서 놀라울 정도로 분석력이 뛰어났다. 가끔은 친동생한테 하듯이 잔소리하기도 했다. 항상 조심하라고, 너무 귀여우니까 묵직하게 쓸데없는 말 하지 말라고, 피곤한 티 내지 말라고 등등 지금 생각해보니 누나로서 심하게 잔소리했나 싶다! 너무 사랑해서 그렇다. (웃음)
기억에 남는 씬을 꼽는다면.
제일 좋아하는 씬은 초반에 승휘가 구덕에게 연심을 고백한 후 헤어지는 씬이다. 촬영하면서 정말 많이 울었던 것 같다. 또 초야씬은 감독님이 너무 예쁘게 잘 찍어 주셨다. 둘 사이의 사랑이 그동안 쌓인 후 후반에 가서야 치른 초야라서 더욱더 애틋하게 와닿았던 것 같다. 첫 키스씬을 찍을 때도 그랬고. 평소 내가 나온 작품을 여러 번 반복해서 보는 편이 아닌데 <옥씨부인전>은 울면서 여러 번 봤다. 촬영 당시가 떠올라서 그랬던 것 같다. 그만큼 깊이 빠졌던 작품이 아닌가 한다.
<더 글로리> 연진과 <옥씨부인전> 구덕 중 해외 팬에게 임지연을 알리는 작품을 선택한다면. (웃음)
음… 어려운데(웃음) 해외 팬이라면 <옥씨부인전>이 좋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배우라면 한 번쯤 사극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예쁜 한복을 입고 내가 만든 인물의 서사가 그려진 작품을 꼭 해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컸었거든. <옥씨부인전>은 퓨전사극이지만, 정통 사극의 매력도 어마어마해서, 해외 팬이 사극의 매력을 알고 사랑해 주면 좋겠는 마음이 있다.
최근 드라마 <원경>의 차주영, 영화 <검은 수녀들>의 송혜교 배우를 비롯해 <더 글로리> 팀들이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힘을 많이 받을 것 같다.
정말 그렇다. 주영은 나와 비슷한 시기에 대본을 받고 고민을 공유했었다. 마침 사극이 하고 싶던 차인데, 어떡할지 하더라. 들어간 시기도 또 방영 시기도 가까워서 둘 다 놀라고 있다. <원경> 첫 방영 때는 주영보다 내가 더 떨릴 정도였다. 잘 해낼 거라고 믿었지만, 너무 멋있어서 역시 하면서 감탄했다. 혜교 언니도 응원을 많이 해주셨다.
<더 글로리> 팀과는 자주 만나고 끊임없는 수다를 통해 고민을 나누고 서로를 진심으로 응원해주고 있다. 당시 작가님과 감독님께 "연진이가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어요" 하고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있다. 혜교 언니는 모니터링을 매우 꼼꼼하게 해 주신다. 되게 솔직하고 사적으로 만나면 아주 수다쟁이다. 예전에는 선배님이었다면, 지금은 친한 언니같이 편하면서도 여배우로서 배우는 부분이 정말 많다. <더 글로리> 당시 현장에서 언니가 별말 하지 않아도 우리끼리 대단하다고 느낀 부분이 많았다. 모니터링, 시사회 참석, 맛있는 음식 사주는 것 등 여러모로 챙겨주니 동생들이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나중에 나역시 이런 선배가 돼서, 동생들이 나를 이렇게 생각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인간중독>(2014)으로 상업영화에 화려하게 데뷔했고 어느덧 연기 15년 차다. 새로운 도전을 이어온 원동력이 있다면.
과정을 중요시하는 편이다. 과정 속에서 어떤 것을 배웠고 어떻게 성숙해졌는지 체크를 많이 하고, 하나라도 얻은 부분이 있으면 만족한다. 이번 <옥씨부인전>을 통해 과감하게 사극을 시도했듯이 도전의식이 불타는 작품에 끌리고 하게 되는 것 같다. 이제는 내가 잘할 수 있는 작품의 윤곽이 대략 그려지는데, 이렇게 답이 명확하게 그려진 대본에는 사실 잘 안 끌린다. 이게 뭐지, 뭘까? 하는 의문이 드는 글이 재미있고 이를 수행하면서 하나씩 깨어나가는 것이 배우로서 미션이자 기쁨인 것 같다.
<언니네 산지직송>으로 오랜만에 예능으로 인사한다고.
구덕을 보내며 좀 힘들었다. 반년 넘게 한복 입고 몰두하다가 끝났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공허함이 밀려오더라. 그래서 힐링하고 싶었다. 캐릭터가 아닌 임지연으로 사람들과 어울려서 열심히 일하고 맛있는 것 많이 먹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에 참여하게 됐다. 아직 갔다 오지는 않았는데 벌써부터 기대된다. 체력이 좋은 편이라, 요리 빼고 힘을 써야 하는 분야를 담당하지 않을까 싶다. 임지연으로 힐링하고 오겠다. (웃음)
말한 것처럼 캐릭터에서 빠져나오기 힘들 때는 어떻게 시간을 보내나.
운동한지 오래돼서 그런지 20대 때보다 지금이 체력이 좋을 정도다. 운동을 통해 컨디션을 조절하고 절제하는 등 많은 부분을 몸에 익혔다. 작품이 끝나고 밀려오는 공허함이나 우울감은, 이번이 특히 심하긴 했다, 대체로 운동(복싱 등)으로 해소하는 편이다. 또 새로운 걸 배우면서 힐링하는 부분도 있다. 올해는 나를 위한 멘탈 케어에 신경 쓰려고 한다. 그간 나를 찾는 시간이 많지 않았던 것 같아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되는 영화나 책, 언어 공부 등을 하려 한다.
군복무 중인 이도현 배우와 공개 연애 중이다. 인사 한마디!
<옥씨부인전>을 챙겨보고 있고 좋아하더라. 서로 많이 의지하고 배우로서 고충을 나누고 응원을 주고받고 있지만, 일적인 이야기를 많이 하지는 않는다. 이 자리를 빌려 “새해 복 많이 받기를!” (웃음)
사진제공. ㈜아티스트 컴퍼니
[mail:eunyoung.park@movist.com]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m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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