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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과 놀 수 있는 영화 <전설의 주먹> 강우석

2013년 4월 7일 일요일 | 김한규 기자

개봉을 한 달여 앞두고 있다. 후반 작업은 끝났나?
녹음 작업 마무리 단계다.

<전설의 주먹>의 러닝타임은 153분이다. <이끼>(러닝타임 163분)때처럼 러닝타임의 압박을 받았을 것 같다.
러닝타임은 신경 안 썼다. 총 분량을 생각하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찍었다. 스트레스나 압박은 받지 않았다. 대신 투자자들이나 배급사가 걱정을 많이 했지. 배급사는 5분만 줄여도 한 회 차 상영이 가능하니까 줄여달라고 요구했다.

1부, 2부로 나눠서 개봉할 생각은 없었나?
처음에는 4시간 생각했다니까. <이끼> 때와 마찬가지로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로 나눠 1, 2부로 개봉하고 싶었다. 하지만 과거와 현재가 단절된 듯한 느낌이 들 것 같아서 좀 길더라도 한 영화에 모두 집어넣었다.

영화가 길어진 이유는 뭔가?
제목이 <전설의 주먹>이다. 주인공들의 남루한 현실을 보여주는 동시에 전설이었던 과거 시절을 함께 보여줘야 한다. 인물들도 많다. 임덕규, 이상훈, 신재석, 손진호 등 네 주인공을 비롯해 방송국팀, 캐스터와 해설자, 다수의 조연들까지 그려내야 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길어졌다.

<이끼>에 이어 웹툰을 원작으로 한 영화를 만들었다. 당시 인터뷰를 보니 다시는 웹툰 원작 영화를 안 만든다고 했는데 다시 도전한 계기가 있나?
<전설의 주먹>이라는 제목 때문에 했다. 원작 없이 제목만 들어도 직접 시나리오를 만들고 싶을 정도로 확 꽂혔다. 처음 들었을 때는 딱딱했다. 근데 계속 곱씹을수록 뭔가 사연이 있어 보이더라. 제목을 듣고 누가 전설의 주먹이고, 주인공들이 어떻게 해서 전설이 됐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웹툰을 봤다. 묵직한 격투 장면, 남자들의 우정, 미디어의 횡포 등 작가가 감각적으로 잘 살렸더라. 그래서 하게 됐다.
도전해 보니 어땠나? <이끼> 때처럼 연출 고민에 휩싸였나?
초심으로 돌아갔다. <투캅스> <마누라 죽이기> 때처럼 즐겁게 했다. 이번 영화는 후회 없다. 오랜만에 내가 잘 할 수 있는 장르를 했고, 미리 재단하지 않고 멋대로 찍었다. 편집도 마찬가지다. 오랜만에 강우석표 영화를 즐길 거다.

<전설의 주먹>의 흥행은 각색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각색에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가?
원작을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무겁고 잔인하다. 코믹함도 없다. 그래서 대폭 수정했다. 코믹한 장면도 삽입하면서 최대한 밝게 바꿨다. 원작의 오픈 결말도 명확하게 바꿨다.

<이끼>는 원작의 톤을 그대로 살리지 않았나? 이번에 톤의 변화를 준 이유는 무엇인가?
세상도 힘든데, 누가 우울한 영화를 보겠나? 영화가 꼭 현실적일 필요는 없다. 현실은 돈 앞에 고개 숙이지만 영화까지 그렇게 그리고 싶지 않다. 관객들은 국수집 사장, 대기업 홍보 직원이 격투경기를 통해 잊었던 우정을 회복하고 행복을 얻는 걸 보고 싶어 할 거다. 관객들이 내 영화를 보고 우울해 하지 않았으면 한다. 행복함을 주고 싶었다. 그리고 더 이상 우울한 영화하기 싫다(웃음).

인기 원작 만화를 영화로 옮긴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원작 팬들을 무시할 수 없다. <이끼> 때도 정재영 캐스팅을 비롯해 많은 부분에서 힘들었다.
정재영 캐스팅만 그랬나. <이끼>의 강간 장면이 있는데, 윤태호 작가하고 상의해서 표현 수위를 낮췄다. 그 장면을 안 찍었다고 욕을 하는데 어휴. 아니 웹툰 그대로 옮길 거면 내가 왜 연출을 했겠냐고. <이끼> 때 ‘당신에게 맞지도 않은 영화 왜 하냐’ ‘감독이 꽝이다’ ‘강우석 때문에 안 본다’ 이런 댓글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호불호는 있다. 모두 내 영화를 좋아할 수는 없으니까. 최근 웹툰을 영화화하는 작품이 많은데 다들 이런 고충을 겪을 거다.
<이끼> 때 보다 캐스팅 싱크로율은 높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사래를 치며) 임덕규 역에 황정민을 캐스팅했다고 욕 많이 먹었다. 황정민이 격투기 선수에 안 어울린다고 하더라. 네티즌들은 마동석, 안길강이 더 잘 어울린다고 했다. 그런 댓글을 보니까 오기가 생겼다. 내가 황정민을 왜 캐스팅 했는지 꼭 보여주고 싶었다.

황정민을 캐스팅 한 이유는 무엇인가?
딱 봐도 이웃집에 사는 아저씨, 구멍가게 주인처럼 생겼다. 그런 평범한 사람이 웃통 벗고 링 위에 서면 얼마나 강해보일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캐스팅할 때 주변에서 반대가 심했다. 더 강한 이미지를 갖고 있는 배우로 캐스팅하자고 했다. 하지만 밀고 나갔다. 황정민을 캐스팅해 연기를 시켜보니까 역시 연기를 잘하더라. 말이 필요 없었다. 딱 임덕규였다.

이상훈 역에 유준상을 캐스팅했다. 처음에는 분량이 그리 많지 않다고 들었다.
<이끼> 때 진 빚을 갚고 싶었다고나 할까. 준상이 연기를 보고 굉장한 배우가 될 거라 생각했다. 그걸 믿고 준상이를 이상훈 역에 캐스팅 했다. 처음에는 준상이 분량이 크지 않았는데 황정민만 돋보이면 균형이 안 맞을 것 같아서 분량을 늘렸다.

<전설의 주먹>에서 기대되는 부분 중 하나는 액션이다. 특히 링 안에서 펼쳐지는 타격전이 관심을 모은다. 이번에도 정두홍 무술감독과 호흡을 맞췄는데 액션에 관해 어떤 주문을 했나?
주인공들이 전문 격투기 선수들이 아니라 멋있게 가지 말자고 했다. 왕년에 잘 나갔던 싸움꾼들이었지만 어느덧 마흔을 넘은 중년이다. 멋 부린 액션은 필요 없었다. 정감독한테 정확히 합을 가져가지 말자고 했다. 그리고 액션에 드라마를 실었으면 좋겠다고 주문했다. 이들이 링에서 왜 싸우는지, 어떤 싸움을 벌이고 있는지 움직임으로 보여 달라고 했다. 정감독이 기본 합을 짜오면 내가 그 안에서 꼭 필요한 대사나 표정을 집어넣었다. 그걸 자연스럽게 연결하기 위해서 정감독이 노력 많이 했다. 아마 정감독 필모그래피 중 가장 힘든 영화가 아닐까 생각된다.
액션 만큼 영화를 지탱하고 있는 건 미디어, 학원 폭력의 무서움이다.
원작만큼 미디어와 학원 폭력을 심각하게 다루지는 않는다. 대신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 혈안이 된 홍규민(이요원)을 통해 미디어의 횡포를 살며시 드러낸다. 영화에서 링은 조롱의 장이다. 시청자들은 링 안에서 격투를 즐기지만 한편으로 돈을 벌기 위해 싸움을 벌이는 주인공들을 조롱한다. 그런 모습을 담았다. 학원 폭력은 주인공들의 학창시절 보다는 왕따를 당하는 임덕규의 딸 수빈(지우)을 통해 담았다. 주인공들의 학창시절을 통해 학원 폭력을 담지 않은 건 그 시절 주먹들은 지금의 일진처럼 악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제작자와 감독 중 어떤 것이 마음에 드나?
물론 감독이지.

연출은 언제까지 하고 싶나?
마음 같아서는 임권택 감독님처럼 하고 싶다(웃음).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을 때까지 연출할 수는 없다. 관객들이 내 영화를 안 보면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횟수가 줄고 연출의 자리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다. 매번 영화를 찍을 때 마다 생각한다. 내 작품이 관객들과 교감하고 있는지, 관객들이 쉽게 이해하는 영화를 만들고 있는지 자문한다. <전설의 주먹>은 생각이 더 많아졌다. 전작들에서는 링 밖에서 외치는 코치처럼 행동했다면, 이번에는 링 안에 들어가 열심히 싸웠다. 힘들었지만 즐겁게 했다. 영화가 끝나고 나니 오랫동안 연출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에서는 나보다 나이 많은 마틴 스콜세지, 리들리 스콧 감독이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그 나이 때까지 연출하고 싶다.

시네마서비스에서 연출과 제작했던 영화가 많았지만 그간 흥행에서 많이 아쉬웠다.
문 닫을 뻔했다. 어려움이 많았지만 올해 <전설의 주먹>을 시작으로 다시 한 번 일어서보려 한다. <전설의 주먹>을 포함해 유아인 주연의 <깡철이>, 김선아가 출연하는 <더 파이브>가 개봉 대기 중이다.
20년 동안 상업영화를 만들어왔다. 앞으로 어떤 상업영화를 만들고 싶나?
난 영화를 예술이 아닌 상품으로 본다. 최근 상업영화를 보면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다. 그건 감독의 주관적인 생각이 너무 많이 담겨있다는 점이다. 영화를 보는 사람은 관객이다. 관객이 원하는 상품을 팔아야 하는데 감독이 원하는 상품을 팔고 있다. 물론 김기덕, 홍상수 감독의 영화처럼 감독의 주관적인 생각이 깊게 들어간 작품도 있어야 한다. 그건 어디까지나 예술적 완성도가 높은 영화에 해당되는 거다.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관객들과 놀 수 있는 상업영화를 연출하고 싶다. 나를 비롯해 관객이 보고 싶은 걸 생각하면서 영화를 만드는 감독들이 많아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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