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제20회 전주국제영화제를 통해 처음 공개되는 <국도극장>의 전지희 감독, <불숨>의 고희영 감독, <아무도 없는 곳>의 김종관 감독을 무비스트가 만났다. 전주시네마프로젝트를 통해 제작한 작품을 대중 앞에 선보이는 세 감독 중 고희영 감독과의 서면인터뷰를 전한다.
<불숨>은 조선 막사발을 완성하기 위해 한평생 불과의 사투를 벌인 도공 '천한봉'과 그의 제자이자 딸의 시간을 기록한 다큐멘터리입니다. 이 소재에 주목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20여 년 전, 그를 처음 만났습니다. 일간지 취재기자 시절, 기삿거리를 찾아 헤매던 시기의 일이었어요. 그때 기사를 썼는지 기억은 가물가물해요. 분명한 것은 그때 그가 어떤 그릇을 굽고 있었는데 맘에 드는 그릇을 못 만드셨다고 했어요.
20여 년 후, 우연히 그 앞을 지나다가 안부 인사차 들렀는데, 마치 시간이 정지된 듯이
그는 그 자리에서 똑같은 그릇을 굽고 있었습니다. 제가 물었어요. ‘이제 원하는 그릇을 얻으셨는지요?’ 그러자 그가 큰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습니다. ’아니요. 아직도 멀었어요. 아직도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때 비로소 제 눈에 그 그릇이 들어왔어요. 보기엔 그저 투박한 그릇 한 점일 뿐인 저 그릇을 명장인 그가 50여 년 동안 만들었는데도 아직도 멀었다니!
알고 보니 그 그릇은 우리 서민들이 사용하던 막사발을 임진왜란 때 일본이 가져가 찻사발로 애지중지하며 국보 26호로 삼은 ‘기자에몬’이라고 불리는 이도다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개밥그릇이라고 불리며 천대받았던 그릇,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그릇, 남의 나라의 국보가 된 비운의 그릇, 그 그릇을 똑같이 재현해보겠다고 일생을 바쳐 열정을 불태우고 있는 한 장인의 이야기가 불길처럼 내 마음속에 타올랐습니다.
다큐멘터리는 만드는 게 아니라 발견한다는 말이 있는데요, 어떤 방식으로 촬영했나요.
<불숨>이 ‘한평생 도자기를 만들어온 장인의 이야기’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의 눈빛에 불이 꺼지는 것을 봅니다. ‘이미 다 아는 이야기..’라는 선입견이 그 눈빛에 담겨있습니다.
우리는 안다고 착각할 뿐, 제대로 아는 게 없는 것이 참 많습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전작인 <물숨>을 만들 때 저는 해녀에 대해서 다 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해녀들이 어떻게 바다에서 해산물을 잡는지, 바닷속에서의 생활은 어떠한지 제대로 아는 게 하나도 없더라고요.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얕은 지식들이 우리의 눈을 가려버리는 것이죠.
그래서 정보의 홍수 속에서 보석 같은 진실을 숨은그림찾기 하듯이 발견하는 것이 저의 다큐멘터리 작업의 핵심입니다. 제가 무엇을 분명히 봤는데 사람들은 못 보는 거예요. 정확히 이야기하면 보려고 하지 않는 거예요. 그런데 제가 본 감동을 말하지 않고는 못 배기겠는 거예요. 그런 순간들이 올 때마다 영화를 만들게 됐어요. 그러니까 소재를 찾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발견해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도자 가마가 있는 지역인 문경 현지에서 얼마나 머물렀고, 그들의 작업 동선을 어떤 식으로 카메라가 좇았는지요.
50여 년 동안 한 점의 그릇을 빚는 도공의 이야기에 마음에 불길이 일어 2013년 6월부터 촬영을 시작했고, 햇수로 7년. 촬영 기간은 5년이 걸렸어요. 처음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단계에서 촬영을 시작했는데 서서히 그 아버지의 옆에서 아버지가 불을 물려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딸이자, 전수자인 딸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아버지는 아직 자신의 그릇을 완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불을 넘겨줄 수 없고, 딸은 이미 27년이나 조수 노릇을 했는데 아버지가 불을 물려주시지 않기 때문에 더 욕망이 불타오르고, 결국 아버지가 조는 틈에 몰래 가마에 장작을 던지는 일을 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그녀가 그렇게 불을 받고 싶어 하는 이유는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천한봉명장의 외아들이자, 천경희씨의 남동생의 자리를 대신하려는 그 마음이 숨어있었죠. 그것은 오래, 가까이서 지켜보지 않으면 볼 수 없는 ‘발견’들이었죠. 또한 다큐멘터리의 매력이기도 하구요.
개인적으로 제주 해녀의 모습을 담은 전작 <물숨>을 매우 인상 깊게 봤습니다. 전작이 어머니 이야기였다면, 이번 <불숨>은 아버지 이야기입니다. 물과 불은 정반대에 위치하면서 그 속성은 비슷하다고 여겨지는데요. 감독님이 생각하는 '숨', 물의 숨과 불의 숨, 그 의미는 무엇인가요.
정말 감사합니다. 다큐멘터리 영화가 워낙 지난한 작업이라, 그만 때려치우고 싶을 때마다 이런 말씀들이 저를 붙들어줍니다.(웃음) 제가 농담처럼 ‘나는 물불 안 가리는 감독이야. 나 건들지 마!’라고 말하는데요.
제가 <물숨>, <불숨>을 만드니까 그다음 ‘숨’은 뭐냐고 물어보시는 분들이 많은데요. 제 나이 마흔 살에 암 진단을 받고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수술대에 오르면서 산소 호흡기를 씌워주는데 ‘산다는 것은 참 별것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들숨과 날숨이 멈추면 그것이 죽음이고, 숨을 쉬는 것이 산다는 것이구나..라는 깊은 깨달음. 그래서 저에게 ‘숨’은 ‘산다’는 의미에요. 그리고 저의 영화작업은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에 천착 돼 있어요. 그래서 평생 한길을 걸어온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아요.
음...
<물숨>과 <불숨>의 주제는 ‘인간의 슬픈 욕망에 대한 이야기’라는 공통점이 있어요.
물과 불은 인간을 한없이 겸손하게 만들어요. ‘욕심내지 말고 너의 숨만큼만 있다 오거라’라는 <물숨>의 메시지, 그리고 <불숨>의 주인공 천한봉 명장이 50여 년 동안 그 한 점 그릇을 만들어도 완성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 그릇이 ‘우연히 불이 만든 그릇’이기 때문이에요. 그러니까 욕심이 들어가면 안 되는 그릇인데 인간이기 때문에 자꾸 욕심을 내게 되지요. 결국 번번이 좌절하고, 물과 불로 대변되는 자연은 우리의 욕망을 덜어내라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던져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그러지 못하고... 그 속에서 저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되는 것 같아요.
관객의 관람포인트, 즉 관객이 어느 부분에 집중하면 좋을까요.
우선 영화는 영상 언어이기 때문에 영상에 많은 힘을 쏟았어요. 아마도 최초로 불을 제대로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가 될 것입니다. 한 장인의 불과의 교감을 그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1300도까지 올라가는 불을 잘 담아내야 했습니다. 불을 잘 찍을 수 있는 카메라와 방법을 연구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불이 1000도가 넘어서면 카메라에는 그저 ‘하얗게’ 보이는 상태가 되기 때문입니다. 특히 불을 촬영하다 보면 렌즈를 태워 먹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 첨단장비도 불 앞에서는 무용지물이구나. 불을 위력을 다시 한 번 느꼈고 그럴수록 더더욱 다양한 방법을 연구해서 그나마 현존하는 카메라로서는 가장 불을 잘 담아낼 수 있는 RED Dragon 시리즈의 6K과 8K의 촬영을 했어요. 온도별로 변화하는 불의 색깔, 특히 살아 숨 쉬는 불을 기록했어요. ‘와아, 불이 저렇게 아름다웠어!’라는 감탄들을 많이 하십니다.
감탄한 1인 추가입니다.(웃음) 단순히 뜨거움을 넘은 불이 지닌 아름다움에 어떤 경외감을 느꼈습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결국 메시지의 전달인데요, <불숨>은 도자기가 중요한 매개체이지만, 도자기 이야기 이면에 ‘사람 그릇’이라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장식이 많은 그릇은 쉽게 깨지고, 큰 그릇도 불을 잘 견디지 못하고, 결국 끝까지 불길을 견디어내는 그릇(사람)이어야 완성된다는 것, 명작과 실패작의 그릇(사람)의 차이는 무조건 1300도의 불을 견뎌내야만 합니다. 시련의 불길 앞에서 ‘견디어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중의법처럼 말하고 싶었어요.
저 역시 <불숨>을 만들면서 힘든 순간이 참 많았지만, 저는 불길을 견디는 그릇들을 보면서 참아냈거든요. ‘저 작은 그릇들도 견디어 내는구나. 눈물처럼 유약이 녹아내려도 참아내는구나. 그 시간을 견디어내야 비로소 명작(名作)이 되는 것이구나’라는 위안을 받았어요, 바로 그런 이야기까지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잊어버린 그릇, 조선 막사발에 대한 아름다움도 발견해 보시기를 꼭 부탁드립니다.
작업 시간이 길었던 만큼 에피소드가 많았을 텐데요. 기쁘고 보람? 찼던 순간 혹은 작업 도중 힘들었던 일 등등 말이죠.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다면요.
두 욕망의 충돌이라고 할까요? 가마에 장작을 던지는 타이밍이 1분 30초에서 2분 간격인데 저희가 불을 제대로 촬영하려고 세팅을 하면 꼭 장작을 던져야 하는 타이밍이 되는 거예요.
저희는 촬영해야 하는데 천한봉 명장은 장작을 넣어야 하고, 결국 가마의 불을 놓치면 가마 전체의 그릇을 망치게 되니까(가마 안에는 보통 700~800개의 그릇이 들어가고, 가마 한번 망치면 2천만원 정도가 날아간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번번이 저희가 양보를 했는데 맘껏 촬영을 못 해서 아쉬웠죠.
또 가마를 때면 초벌구이 재벌구이까지 3박4일을 때는데, 불의 변화를 놓치면 안 되니까 밤새 선 상태로 촬영을 해야 해요. 한번은 저희 메인 촬영감독이신 김성미 감독이 잠시 휴식을 취하려고 앉다가 그 상태로 무릎이 굳어버려서 119가 출동하고 난리가 났었어요.
구급차에 실려 응급실로 달려가면서 참 많은 생각이 교차했죠. 그래도 우리는 끝까지 이 시련을 견뎌냈고, 영화를 잘 구워냈답니다. 마치 가마 안에서 잘 익어가는 그릇처럼..
완성된 <불숨>에 대한 개인적인 만족도는 어느 정도인가요. 그리고 감독님에게 <불숨>은 어떤 작품으로 기억될까요.
제가 만드는 영화들이 좀 오래 찍고 오래 관찰하는 작품이 많아요. 제가 워낙 느린 사람이기도 하고, 삶의 진실 혹은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는 어린왕자의 말의 뜻을 저는 잘 알 것 같아요.
이 영화를 만드는 만 5년 세월 동안 <불숨> 주인공인 천한봉 명장은 자신의 마음속에 간직한 그 <명작 그릇 한 점>을 만들기 위해 열정을 불태우셨다면, 저는 제 마음에 품은 <명작 영화 한 편>을 만들기 위해 욕망을 불태웠던 것 같아요.
이제 막 가마에서 꺼내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이게 되는 것인데, 천한봉 선생님이 육십 평생 도자기를 만드셨음에도 ‘아직 맘에 드는 그릇이 한 점도 안 나왔어요’ 하듯이 아마 저도 한평생 ‘아직 맘에 드는 작품이 한 편도 안 나왔어요’ 하지 않을까 싶어요.
제17회 전주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물숨>으로 한국경쟁 특별 언급, CGV아트하우스 배급지원상을 수상했습니다. 전주영화제와 인연이 깊다고 할 수 있는데, 감독님에게 전주국제영화제란? (웃음) 그리고 개막을 앞두고 성원한 말씀!
영화를 만들다 보면 ‘독해졌다’ ‘약해졌다’를 반복하게 되는데요, 제 마음이 한없이 약해져 있을 때 전주국제영화제가 저에게 준 힘이 굉장했어요. 3년 전 <물숨>을 초청해 주었을 때도 ‘내가 이 길을 계속 가야 하나? 가도 될까?’ 혼란스러운 시점에 큰 상을 두 개나 주셨고, 요즘처럼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계의 최악의 불황에 <불숨>같은 비상업적 영화를 만들어도 되는지 스스로 반문하며 위축돼있던 순간에도 전주시네마프로젝트(JCP)상을 주시면서 ‘이 세상에는 존재해야 할 영화가 있다’는 말씀을 해 주셨을 때 정말 큰 감동을 받았어요. 그래서 저에겐 전주국제영화제는 ‘숨통’같은 존재입니다.
영화제만큼 순수하게 작품만 봐주고 감독들의 성장을 지지해주는 곳은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아요. 관객들이 많이 찾아주시고 성원해 주시면 그 힘으로 감독들은 또 영화를 만들 힘을 얻을 것입니다.
영화 외적 질문입니다. <물숨> 제작 당시 중국 북경에 거주 중이었던 거로 알고 있습니다. <불숨>의 작업 역시 북경에 주거지를 둔 상태에서 해외 로케이션(한국 촬영이니)을 진행한 건지요. 또 건강은 괜찮으신가요.
베이징에서 15년을 살았고, 작년에 보따리 짐 몇 개만 남겨두고 거의 철수를 했어요. 특히 후반 작업 할 때는 베이징에서 하기가 어려워서 한국에 나와 있는 시간이 많아요. 베이징은 저에겐 ‘숨어있기 좋은 방(房)’이기 때문에 언제든 힘들면 그곳으로 숨어들 것입니다.
건강은 일 년에 한 번씩 병원에 가서 검진을 받고 있는데요, 병원에 들어갈 때는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미워했던 사람도 다 용서하면서 겸허한 마음으로 들어갔다가 ‘괜찮습니다’라는 진단을 받고 병원 문을 나서는 순간, 수많은 욕망의 불길에 사로잡혀 달려가는 저 자신을 발견하곤 합니다. ‘이것이 인간의 욕망이죠...’ (<불숨>의 장면에 들어있는 대사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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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전주국제영화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