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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남자로 바꾸면 투자하겠다는 말도… 부딪히고 싶었다 <걸캅스> 정다원 감독

2019년 5월 15일 수요일 | 박꽃 기자

[무비스트=박꽃 기자]
라미란, 이성경 주연의 형사 오락물을 연출한 정다원 감독은 한때 “주인공을 남자로 바꾸면 투자하겠다”는 말을 들었다. 두 명의 여성 형사가 여성을 대상으로 한 디지털 성범죄를 때려잡는다는 내용의 영화가 과연 얼마나 ‘잘 팔릴’ 것인지 의문을 품는 업계의 시선을 느끼던 시점이었다. 원안 변경과 맞바꾸게 될 투자금은 그의 말마따나 “달콤한 유혹”이었지만, 그는 원안대로 부딪혀 보자는 “고집”을 부렸다. 그 고집이 얼마만큼 유의미한 성과를 남길지는 오직 관객의 손에 달렸다.

장기 대결로 세계 질서를 다잡겠다(!)는 남주인공의 발칙한 독립영화 <장기왕: 가락시장 레볼루션>(2016)으로 관객 앞에 섰던 당신이, 돌연 여성 형사들을 주인공으로 한 상업영화 <걸캅스>로 돌아왔다. 작품 색도, 제작 여건도, 촬영 예산도 전과는 달랐을 것이다. 연출 시작점이 궁금하다.
<장기왕: 가락시장 레볼루션>이 당시 영화를 소개하는 각종 TV 프로그램에 여러 차례 소개됐다. 이준익 감독의 <소원>(2013)과 임찬상 감독의 <나의 사랑 나의 신부>(2014)를 제작한 변봉현 대표님이 그 방송을 우연히 보고는 특이한 애(감독)가 있다고 생각하셨다고 한다. 때마침 자신이 제작한 두 작품 모두에 출연한 (라)미란 선배를 주인공으로 여성 콤비물을 기획하고 있던 차였고, 나에게 시나리오를 쓸 수 있겠냐고 물으셨다.

일종의 스카우트였겠다.
연출은 하고 싶지만 방법은 잘 모르던 차에 연락을 받았다. 나에게는 기회였고, 나이에 비하면 빨리 찾아온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워낙 길이 좁은 업계 아닌가. 시나리오를 완성할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미란 선배를 생각하고 이야기를 쓰면 되는 상황이었다. 영화나 방송에서 그가 보여준 모습이 워낙 많았다. 예능 <언니들의 슬램덩크>에서 걸그룹으로 데뷔했고 또다른 예능 <진짜 사나이>에서 군대 훈련도 받았으니, 몸을 잘 쓸 것도 알고 있었다.

<걸캅스>의 핵심 사건은 디지털 성범죄다. 민원실로 밀려난 왕년의 강력반 형사 ‘미영’(라미란)과 성질 더러운 현직 강력반 형사 ‘지혜’(이성경)가 힘을 합쳐 디지털 성범죄자를 추적한다.
우연히 디지털 섬범죄를 다룬 뉴스 채널의 탐사보도를 봤다. 그런 범죄가 워낙 만연한 데다가 범죄자를 잡기도 어렵고, 설령 잡았다고 해도 벌금형으로 상황이 종결된다고 하더라. 영화에서나마 그런 범죄자를 잡을 수 있다면 관객에게 통쾌함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인물 구현을 위한 실제 취재는 어느 정도 진행했는가.
아는 사람을 통해 강력반 여자 형사를 만날 기회를 얻었다. 강력반에도 여자 형사 꽤 많다고 하시더라. 시험 점수가 높으면 가고 싶은 부서에 지원할 수 있는 체계라고 했다. 다만 워낙 남자들만 있었던 조직이라 일하면서 불편한 점도 있다고 했다. 나는 그런 걸 위주로 물었다. 형사님도 내가 뽑아간 질문을 쭉 듣고는 꽤 재미있어하시더라. <걸캅스> 시사회에도 와 주셨다. 현실적인 내용을 담아서 좋았다는 말을 들었다.

여자 형사는 체격, 체력 조건 등의 차이로 남자 형사보다 업무 능력이 뒤처질 거라는 인식도 있다. 영화를 만들 때 그런 점을 고려했는가.
여러 가지 의견을 이미 알고 있었다. 아무리 형사일지라도 칼을 든 남자 범죄자를 여자 형사가 어떻게 단번에 제압할 수 있느냐는 지적도 가능했다. 최대한 개연성을 높이기 위해 ‘미영’을 레슬링 특채로 뽑힌 형사로 설정했다. 그 정도 운동을 했던 사람이라면 근육도 발달했을 것이다. 그래도 혼자서는 범죄자를 못 이길 것 같아서 ‘지혜’나 ‘장미’(수영)와 힘을 합치는 장면도 연출했다. 허명행 무술감독님께는 최대한 짠해보이는 생활밀착형 액션을 부탁드렸다.

인터넷 일각에서는 영화 개봉 전부터 ‘안 봐도 내용을 다 알겠다’는 류의 이야기가 돌았다. 언론시사회 당일 당신도 그런 현상을 언급하며 “내가 클리셰를 어떻게 빗겨 나가는지 지켜봐 달라”는 취지로 말했다.
내가 건드려서는 안 될 것을 건드린 건가?(웃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영화가 젠더 대결로 비쳐서 안타깝다. 프레임을 끼고 사건을 바라보면 어떤 것도 다 그 프레임대로 보인다. 하지만 상업영화 입봉작을 내놓는데 아무런 관심도 받지 못하고 잊히는 것보다는 여러 뉴스를 통해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는 게 더 좋지 않았나 한다. 그렇지만 배우들에게 악플이 달리는 걸 보면 속이 상한다. 배우가 너무 걱정돼서 제작사 대표에게 술 먹고 전화한 적도 있다.(웃음)

마음이 아프군.(웃음) 하지만 당신 영화가 ‘하필’ 어떤 시류에 맞아떨어졌을 뿐이라고 본다. <캡틴 마블>도 미국에서 개봉하기 전부터 심각한 악플과 평점 테러에 시달렸다. 그 악영향으로 로튼토마토가 평점 수집 방식을 변경했을 정도다.
어떤 면에서는 이런 영화가 기획되고, 영화에 관한 좋지 않은 반응이 나타나는 게 세계적인 흐름인 것 같기도 하다. 나는 그저 서로 사랑하고 연대하고 화합했으면 좋겠다.(웃음)


한국 영화계에서 여성 주인공을 캐스팅하고 여성 중심 서사를 선택하는 건 일종의 모험처럼 받아들여져 왔다. 그런 모험을 굳이 택하고 싶지는 않았을 수도 있을 텐데.
미란 선배가 요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주로 한다. 대한민국 영화판에서 이런 기획의 영화는 정말 드물다고 말이다. 나도 충분히 알고 있었다. 투자단계에서 주인공을 남자로 바꿔오면 돈을 대겠다는 분도 있었다. 하지만 제작자도 나도, 약간의 고집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더 재미있게 만들자고 말이다.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서 원래 하려던 일을 포기할 순 없었다. 그건 내 가치관과도 다른 일이다. 부딪혀보고 싶었다.

그럼에도 CJ엔터테인먼트가 배급을 했다는 건 유의미한 단서다. 여성을 전면에 내세워도 이제는 소위 ‘잘 팔릴 수 있다’는 판단을 했다고 본다. 이미 영화를 본 입장에서 평하자면 아쉬운 점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영화는 기대만큼의 오락성은 줬다고 본다.
철저하게 오락성 중심으로 연출하려고 했다. 연극배우나 개그맨 사이에는 속된 말로 ‘니주’와 ‘오도시’…(웃음)라는 것이 있다. (기자 주: 관객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 소위 밑밥을 잘 깔고 그 바탕에서 큰 웃음을 준다는 뜻. 잘못된 일본식 표현의 잔재다.) 이상한 표현이라는 건 알지만, 배우에게 그런 종류의 기술을 잘 설명해줬다. 웃음 장면은 전반적으로 내 취향에 따른 것이다. 배우가 그런 장면을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열심히 설득했다.(웃음)

‘민원팀장’ 역을 맡은 염혜란의 활약을 지켜보는 맛도 쏠쏠하다. 원래 알던 사이인가. 어떻게 캐스팅했나.
<아이 캔 스피크>(2017)에서 그가 연기하는 걸 보고 오열했다. 저 배우는 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관객을 스크린으로 빨려들게 하나… 싶었다. 변봉현 대표님께 무조건 그 배우를 캐스팅해달라고 했다. 꼭! 데려와 달라고...(웃음) 현장에서도 미란과 혜란 두 배우가 나오면 모니터가 꽉 차는 느낌이었다. 생활 연기의 대가인 여자 배우 두 명이 붙는 신을 볼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다. 두 분도 <걸캅스>로 처음 만나셨을 거다. 서로 캐릭터가 너무 비슷해서 한 영화에 출연하는 게 쉽지 않은데 이런 기회가 생겨 좋다고 하시더라.

결과물에 만족하는가.
언론시사회 전까지는 걱정이 많았다. 내부 시사 때만 해도 웃음이 잘 나오지 않았다. 모두가 이미 내용을 알고 봤기 때문일 것이다. 언론시사회 날 맨 뒷자리에 앉아 영화를 같이 봤는데 다행히 좋아해 주시더라. 코미디 장르는 다른 작품과 달리 영화관에서 관객의 반응을 바로 느낄 수 있다. 만족까지는 아니어도, 안도했다.


영화로 다른 사람을 웃게 한다는 건 꽤 기쁜 일일 것이다.
영화의 장르는 다양하지만 역할은 결국 하나다. 관객에게 어떤 감정을 주느냐다. 나는 멜로 영화를 아주 좋아하는 편인데, 주로 ‘사랑하고 싶다’라거나 ‘내 첫사랑은 뭐 하고 있을까?’ 정도의 생각을 하게 만들면 그 작품은 성공했다고 보는 편이다. <걸캅스> 같은 종류의 형사물은 충분한 재미와 통쾌함을 주면 끝이다.

<장기왕: 가락시장 레볼루션>과 <걸캅스>를 내놓은 당신이 사실은 멜로를 좋아하다니…(웃음) 이번 작품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고 하루빨리 멜로 작품을 연출하길 빌겠다.
코미디 요소가 들어간 통통 튀는 멜로를 연출하면 잘할 것 같다.(웃음) 물론 도전일 것이다. 하지만 <걸캅스>도 마찬가지였다. 나에게 영화를 만드는 일만큼 좋은 일은 없는 것 같다. 영화감독 인터뷰를 많이 찾아보는 편인데, 나이 들어서까지 영화를 연출하는 분들은 다들 자기 색이 명확하더라. 지금은 나만의 색깔을 어떻게 찾아가야 할지 고민을 계속하는 단계인 것 같다.

마지막 질문이다. 최근 소소하게 행복한 순간은.
까만 치와와를 키운다. 다른 사람들이 출근할 때 우리 둘만은 백수처럼 바람을 맞으며 한강을 걸었다. 정말 행복했다.

사진 제공_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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