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꽃 기자]
<꽃잎>(1996) 이후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2014) <명량>(2014) <군함도>(2017)로 줄곧 고통과 역경 앞에 선 존재를 연기해온 이정현이 최초로 로맨틱 코미디 장르에 도전한다. 합을 맞춘 상대는 <탐정> 시리즈 등으로 코믹 드라마에도 곧잘 어울리는 얼굴을 보여준 권상우다. 영화 <두번할까요>는 거창한 이혼식을 치른 두 사람이 이별 뒤 벌이는 본격 옥신각신, 설왕설래를 다룬다. 가족 예능으로 수더분하고 귀여운 중년 아빠의 모습을 보여준 이종혁까지 합세해 삼각관계를 형성하고, 취중 연기와 화장실 유머 등 고전적인 코믹 설정을 따른다. 그간 이정현이 선보여온 작품과는 확연히 다른 우스꽝스러운 분위기다. “밝은 작품을 꾸준히 하고 싶다”라며 웃는 이정현은 결혼과 사랑을 이야기하는 작품과 동료 배우의 에너지가 실제 결혼의 촉매가 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필모그래피 중 첫 번째 로맨틱 코미디다. 당신에게는 의미가 있는 작품이겠다.
그동안 어둡고 힘든 역할만 했다. 다양한 역할을 보여드리고 싶었지만, 가수 시절의 이미지가 강해서인지 (처음부터) 센 역할만 들어왔다. <명량>이 잘 된 후에는 비슷한 부류의 영화가 들어오더라. 로맨틱 코미디 장르는 단 한 번도 제안받은 적 없었다. <두번할까요> 시나리오가 들어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제발 내용이 재미있기를 기도했다.(웃음) 글을 읽고 한 시간쯤 지났을 때 바로 출연하겠다고 했다.
여러모로 반가웠겠다.
감독과 배우가 함께 앉아서 모니터하는 영화 촬영 현장을 좋아한다. 그곳에서 재미있게 지내다가도 카메라 앞에 서면 감정을 잡아야 한다는 게 힘들었다. 이번 작품은 (카메라 앞이든 뒤든) 쭉 기분 좋게 지내도 된다는 점이 좋았다. 밝은 작품을 꾸준히 하고 싶다. 정작 첫 촬영에서는 너무 많이 떨었지만 말이다. 설렁탕을 먹는 신에서 숟가락을 덜덜 떠니까 권상우 오빠가 왜 그러냐고 하더라.(웃음) 본래 첫 촬영에서 많이 떠는 편이다.
당신이 연기한 ‘선영’은 남편 ‘현우’(권상우)와 성대하게 이혼식을 치른다. 남편을 여전히 좋아하는 듯 보이지만 다시 합치자고 말하지는 못한다.
나 역시 처음에는 이혼식이라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본 적도 없다.(웃음) 박용집 감독님께 물으니 ‘선영’은 너무나 자존심이 센 여자라서 남편이 이혼하자는 말을 꺼냈을 때 차마 싫다는 답을 못했을 거라고 하더라. 그래서 이혼식으로 일종의 딴지를 건 거라고 말이다. 그 말을 듣고 나니 상황이 이해됐다. 장르가 코미디인 만큼 이 정도 (비현실적인) 설정은 괜찮을 것 같았다. 생각 없이 웃으면서 볼 수 있는 영화인 만큼 (너무 깊은) 분석은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웃음)
감독은 ‘선영’역에 왜 당신을 캐스팅했다고 하던가.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보여준 4차원적이면서도 밝은 이미지가 좋았다고 하시더라. ‘선영’은 자존심이 세고 감정 기복도 심한 인물이지만 밝은 면모가 있기 때문에 나와 잘 맞을 것 같았다고 했다. 권상우 오빠의 연기와 잘 어울리는 톤을 여러 가지로 시도해보던 중 자연스럽게 감독님이 가장 좋아한 (애교스러운) 쪽을 선택하게 됐다. 코미디 장르에 맞게 대중을 웃기는데 충실하려고 했다.
극 중 순수한 동물병원 원장 ‘안상철’(이종혁)이 등장해 일종의 삼각관계를 형성한다.
순진무구한 이종혁 오빠 캐릭터가 너무 좋았다. 저렇게 나만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권상우, 이종혁 둘 다 아내에게 확 잡혀 살고 아이 보는데 충성하는 사람들이니까. 영화를 촬영하면서 두 사람의 아내가 참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들끼리 ‘아재 개그’로 경쟁하는 것도 귀여웠다. 물론 개그 자체는 재미없었지만.(웃음) 그런 모습들이 내가 결혼을 하는 데도 촉진제 역할을 한 것 같다..
이 작품 이후 배필을 만났다.
요즘은 집에 가면 항상 남편이 기다리고 있다. 그게 참 좋다. 결혼 이후 내 자신에게 좀 더 집중하게 됐다. 현장에서도 마음이 편하다.
마음이 편하다는 건…
외로움이 없어지면서 안정이 됐다고 할까. 결혼 전에는 먼저 결혼한 이민정을 엄청나게 괴롭혔다. 나와라, 밥 먹자 하는 식으로.(웃음) 이제는 같이 밥 먹을 사람이 있다. 결혼을 거의 포기했었는데 운이 좋았다. 사람은 역시 마음을 비워야 하나 보다.
작품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두번할까요> 이후 연상호 감독, 강동원과 함께하는 <반도>와 신정원 감독의 SF 코믹 스릴러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을 차례로 선보일 계획이다.
운이 많이 따랐다. 너무나 감사할 뿐이다. <꽃잎> 이후 배우가 다시 하고 싶다는 마음이 너무 커서 작은 독립 영화부터 시작했으니, 연기를 할 수만 있다면 뭐든 좋았던 것 같다. 생각해 보면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도 개봉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상태로 촬영을 했다. 그래도 일단 무엇이든 주어지면 열심히 하려고 노력했다.
가수 활동 당시에는 앨범 콘셉트부터 의상까지 모든 걸 진두지휘한 거로 안다. 영화에서는 자율성이 다소 약해진 부분도 있지 않나. 늘 선택받기를 기다려야 하는 입장이기도 하고.
오히려 그게 너무 편하다. 감독님이 만든 틀에 들어가서 내 의견을 어느 정도 내고 합의 하면 된다. 옷은 의상 전문가가 정해주는 걸 입으면 되고.(웃음) 스태프들이 거의 모든 걸 다 해준다. 가수 생활을 할 때는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다 책임져야 한다는 게 힘들었다. 영화는 나만 잘하면 된다.
최근 개봉하는 영화를 보면 여성 감독, 여성 배우들의 입지가 전보다 단단해진 느낌이다. 이런 변화를 체감하는가.
전보다는 여자 캐릭터가 주인공인 작품이 많아졌다. 옛날에는 정말 없었다. 너무 남자 위주였다. 주연으로 들어온 시나리오에서도 정작 내 역할은 있으나 마나 한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요즘에는 여자들이 작품 안에서 꽤 한몫해내는 것 같다. 여자 주인공 단독인 영화도 많이 제작된다. 그런 영화들이 (흥행까지) 잘 돼서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함께 작업해보고 싶은 영화인이 있다면.
당연히 박찬욱, 봉준호, 연상호 감독님.(웃음) 그리고 윤가은 감독님을 너무나 좋아한다. 그의 단편 영화 <콩나물>(2013)을 보고 정말 깜짝 놀랐다.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연상호 감독님께 윤가은 감독에게 상을 줘야 한다고 제안했을 정도다. 나와 <군함도>에 함께 출연한 (김)수안이도 그 작품을 계기로 연상호 감독님 눈에 띄어 <부산행>(2016)에 캐스팅된 거다.(웃음) 배우 중에서는 하정우, 공효진과 함께 연기해보고 싶다.
앞으로는 쭉 배우 생활에 집중할 계획인 모양이다.
가수를 은퇴하지는 않았다. 음반을 낼 기회가 없기도 했고, 대중의 기대에 못 미칠까봐 부담돼서 못 나온 것도 있다. 하지만 항상 가수 활동에 관한 생각은 품고 있다. 시아버지께서 내 팬이라고 하시더라. 1집부터 CD 전체를 갖고 계셨다. 그동안 차에서는 나, 백지영, 김현정 세 명의 노래만 틀었다고 한다.(웃음) 그런 걸 생각하면 (내가 가수라는 것도) 너무 좋다.
마지막 질문이다. 최근 소소하게 행복한 순간은.
강아지를 키운다. 그 한 마리 덕분에 아무 일도 없을 때마저 너무 바빴다. 우울할 때마다 옆에서 날 즐겁게 해줘서 고맙기도 하고. 최근에는 동물등록증에 적혀있던 강아지 성을 남편 성으로 바꿨다. 남편은 가끔 농담 삼아 <반도> 촬영장에서 강동원을 보고 왔을 텐데 본인은 뱃살이 너무 나와 있어서 미안하다고 말한다.(웃음) 요즘은 모든 게 다 좋다.
사진 제공_k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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