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이전 한국 영화에서 보기 드문 세련미를 갖춘 <접속>(1997)을 시작으로 명필름은 <공동경비구역 JSA>(2000), <바람난 가족>(2003) 등을 연달아 선보이며 2000년대 한국 영화 중흥기를 이끌었다. <마당을 나온 암탉>(2011), <건축학개론>(2012), <카트>(2014) 등을 거쳐 명실 상부한 영화 명가로 자리잡은 명필름은 상업영화이되 오롯이 상업적이지만은 않은, 반 발짝 자본에서 떨어진 40여 편이 넘는 영화를 제작해 왔다. 스크린 규제와 국내 영화 산업 발전 방향에 대해 꾸준히 목소리 내온 이은 대표가 영화의 사회적 책무성을 잊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다. 20대부터 50대까지 30년이 넘는 외길 영화 인생을 걸어오는 그에게 영화란 여전히 매력 넘치고 활력 주는 존재다. 새로운 분야와 장르에 도전하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하는 것이 영화업의 매력이라는 이은 대표를 만났다.
여러 번 느꼈는데 참 친절해 보인다.
그런가.(웃음) 영화 <원더>(2017)를 봤는데 선생님이 올바른 것과 친절한 것 중에 친절한 것을 선택하라는 의미의 말을 던진다. 얼마나 철학적인 대사인가. 깜짝 놀랐고 원래도 딱딱한 게 싫어 친절하게 행동하려는 편인데 영화 본 후 더 노력 중이다.
최근 참석한 ‘한국영화에 대한 객관적 진단과 대안’을 주제로 한 포럼 등 스크린 독과점 방지책에 대해 지속적으로 목소리 내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독과점 현상이 심화됐고 현재 다양성 파괴 등이 심각한 상태로 규제가 시급하다. 이와 관련해 프랑스가 가장 모범적인 사례가 아닌가 한다. 8개 이상 상영관을 지닌 극장을 멀티플렉스로 분류하는 프랑스는 한 영화에 두세 개만의 스크린을 허락한다. 즉 8개 스크린을 보유한 한 경우 최대 6 작품, 24개 스크린이면 최대 16개 영화를 상영할 수 있다. 그렇기에 규모에 상관없이 영화가 극장에 오래 걸릴 기회가 확보된다. 또 프랑스는 홀드백 즉 IPTV나 방송으로 풀릴 때까지 4개월을 보장한다.
규제와 법안 관련 국내 현황은 어떤가.
우상호 의원이 한 영화가 스크린 50% 이상을 차지 못하는 법을 발의했으나 이것으로는 미진하다. 프랑스까지는 못되더라도 한 영화가 30% 이상 점유하지 못하는 정도가 돼야 작은 영화를 보호할 수 있다고 본다. 50%면 가령 외화와 국내 영화 대작 두 편을 내세우면 끝이다. 또 스크린을 독차지하다시피 한 <어벤져스> 시리즈 같은 영화는 사실 1년에 한두 편에 불과한데 이를 막는 것만으로는 영화의 다양성을 보호할 수 없다. 누가 봐도 생색내기에 불과하고 시장이 앓고 있는 몸살에 비해 미미한 처방법이다.
지난봄에 영화진흥위(이하 영진위)가 개최한 ‘영화산업 경제적 민주화 방안’ 세미나에 참석해 관련 논의를 지켜봤었다. 당시 스크린 확보가 관객의 관람으로 이어질 것인가라는 의문이 제기됐었다.
시장 논리를 이야기하는 분들은 영화 잘 만들면 된다고 아주 쉽게 얘기한다. 도서의 경우 예를 들면 대형 서점에 진열돼야 사람들이 보고 사지 않겠나. 현재 작은 영화는 그런 기회조차 없다. 일단 걸릴 기회가 적은데다 그 스크린마저 길게 확보하지 못한다. 알다시피 바로 내림 당하지 않나. 스크린 규제와 홀드백 정책이 시장 상황에 따라 동시에 적절하게 적용돼야 할 것이다. 사실 규제 없이 영화 산업이 돌아간다는 게 쉽지 않다. 프랑스의 경우 약 5,000억 규모의 예산으로 자국 영화 산업을 보호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그 10분의 1일 500억 정도로 영진위가 정책을 수립하고 있는데 그 집행이 영화 시장에 적극적으로 도움이 되는 방향이냐 하면 의문이다.
현장 제작자나 감독 입장에서 영화 시장의 확장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도 있다. 국내 관객은 이미 포화상태라 해외 진출을 노려야 하는데 드라마와 달리 영화 수출은 상대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국내 관객이 증가할 여력이 있다고 본다. 극장을 찾는 젊은 세대가 줄어듦에도 기존 관객 수준이 유지되는 이유가 나이 든 세대의 유입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젊은 층의 유입을 유도한다면 국내 시장 확대 역시 가능하다.
CG나 특수효과 비중과 마케팅 비용 등이 커지고 인건비가 높아지면서 제작비 자체가 높아졌다. 예전처럼 중간 규모의 영화가 드문 데다 투자 대비 수익 실현이 어려운 현실에서 스크린 규제는 가혹한 것 아닌가.
아니, 그렇지 않다. 천만 관객 영화 중 스크린을 50%이상 차지해서 달성한 것은 <어벤져스> 시리즈 밖에 없다. 30%의 스크린만 확보해도 천만 달성이 가능하다. 그런데 스크린 독과점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 어떤 때냐하면 돈은 많이 들었는데 영화는 부실하게 만든 경우다. 극장도 갖고 있겠다 스크린 독점을 하게 되는 거지. 그건 그 순간의 손실을 줄일 수 있겠지만, 결국 자기네도 죽는 거다. 시장이라는 건 공정할 때 건강할 수 있고 또 규제가 자본주의 원리를 무시하는 게 아니다. 작고 다양한 영화는 창작의 수혈이요 큰 영화의 자양분이다. 할리우드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독립 영화가 올라오면서 그 신선함으로 시장이 유지하는 거다. 요즘처럼 돈은 많이 들었지만 식상한 영화에 지친다면 어느 순간 관객이 외면하고 그 결과 일본 영화계처럼 될 수도 있다.
공감한다. 작년부터 기대를 모았던 영화들이 줄줄이 소위 물먹는 것을 지켜보면서 특히 그렇다. 관객의 선택이 예측하기 힘들고 한편으론 참 냉정하다고 느낀다.
그 냉정하고 예측불허한 관객을 만족하기 위해 영화를 하는 모두 이에게 기회가 동등해야 할 것이다. 건강한 산업 환경에서 양질의 작품이 나올 수 있으니 말이다. 말했듯 내 영화의 손실을 줄이기 위해 과하게 스크린을 가져간다면 다른 이의 기회를 빼앗는 것이다. 스크린 규제와 홀드백 기간이 길어진다면 적은 관으로 시작해도 입소문을 타고 관을 늘려 갈 수 있는데 그 기회조차 박탈당하는 것 아닌가. 이 기회를 정부나 영진위가 보장해야 할 것이다.
지적한 대로 개인 혹은 사업자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사회 혹은 정부 차원의 지원과 제도 구비가 필요할 것이다. 발의돼 계류 중인 우상호 법안 외에 영진위 측의 해법은.
이전에는 블랙리스트로 인해 기대도 못 했고 이후 기대를 했으나 아직은 역할을 간과하고 있는 거로 보인다. 현 위원장이 영화인 출신이지만, 이런 부분은 놓치고 있는 것 같다. 사실 우리도 너무 답답한 마음에 프랑스를 비롯한 외국의 사례를 공부하고 연구해 대안으로 제시한 거다. 스크린 규제와 홀드백의 필요성에 대해 누차 이야기하고 있지만 아직은 우상호 법안 정도의 수준으로 낮게 호응하고 있는 점이 아쉽다.
지난 5월 <파업전야>(1990)가 30년 만에 공식 상영됐다. 제작자로서 뿌듯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이후 영화 외길 인생을 걸어오고 있는데 영화 제작 기준이 있다면.
영화는 커뮤니케이션하는 하나의 예술인데 산업적 속성이 있다. 그렇기에 내가 하는 이야기가 부실하거나 거짓되면 안 된다고 본다. 내 기준에서 이야기가 가치 있는가 그리고 그 가치 있는 이야기를 잘 만들 수 있을지가 우선이다. 또 일을 계속 이어나가야 하니 투자한 돈을 회수할 수 있는지 이 세 가지를 원칙으로 영화를 만들어 왔다.
영화업의 매력은 무얼까. (웃음)
20대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가치라는 것은 바뀌니 계속 공부해야 한다. 영화 최고의 매력은 계속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장르와 분야를 접할 때마다 공부해야 하는 게 굉장히 좋다. <파업전야>를 비롯해 독립영화 필름메이커 시절 영화가 지닌 사회적 책임에 대해 크게 느꼈고 이후 목소리 내는 것에 책임을 지려고 노력 중이다.
책임감 있게 목소리 내야 한다는 것에 진심으로 동의한다. 영화가 시각적 매체인지라 그 파급력이 무엇보다 크고 부지불식간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하다.
영화도 하나의 산업이라 경제적으로 접근하는 것을 막을 수도 욕할 수도 없고 돈벌이로 접근하는 것은 자유겠지만, 오로지 돈만을 추구하기보다 어느 정도 도덕적 책임감을 갖기를 바란다.
명필름을 창립한 심재명 대표와는 인생의 동반자이자 영화적 파트너이다. 결과물을 보자면 뛰어난 파트너십이 읽히지만 그래도 때때로 영화적으로 상충되는 지점이 있다면.
영화에 있어서 건강한 견제가 있지 상충됐던 지점은 없었다. 나는 독립영화 쪽에서 연출과 제작으로 아내는 상업영화에서 기획과 마케팅으로 출발점이 달랐는데 이점이 상호 보완으로 작용했다. 또 나는 이성적, 그는 직관적이라 성격적으로도 서로 보충된다. 작업 파트너로서는 환상적인 조화라고 봐야 한다. 단점이라면 늘 같이하다 보니 혼자 하려면 외롭고 불안한 것 정도다.
얼마 전 명필름의 41번째 작품인 <니나 내나>가 개봉했다. 영화가 참 좋더라. 그간 작품 중 개인적으로 기념비적인 작품을 꼽는다면.
의미 있는 네 편을 추려 블루레이를 출시했다. <공동경비 구역 JSA>(2000), <와이키키 브라더스>(2001), <바람난 가족>(2003), <건축학 개론>(2012)이다. 그간 만들었던 영화가 모두 의미가 있지만, 그 네 편이 종합적으로 볼 때 지금 봐도 쑥스러움이 덜한 것 즉 만든 입장에서 지인들과 좀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작품들이다.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제외하고는 상업적으로 성공해 경제적으로 도움 됐었고, 지금 봐도 재미있는 영화들이다.
현재 영화 학교인 명필름 랩을 운영하고 있다. 2년 동안 무료로 숙식부터 영화제작까지를 지원하는 과정이다. 비용 측면을 비롯해 책임감이 없으면 힘든 일이 아닌가 한다.
명필름 자체가 커서 그쪽을 운영하는 게 힘들지 랩을 유지하는 데 그리 큰 예산이 소요되지는 않는다. 일년에 한두 명의 연출자가 데뷔하는 프로그램이라 그들을 먹여주고 재워주는 데 큰돈이 필요하지 않거든. 또 우리 랩에 오는 시나리오 자체가 수준이 높아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을 받기 용이한 것도 크게 도움된다. 제주도에서 운영 중인 카페 수익과 후원회들이 있어 운영 상 어려움은 없다. 짧은 시간이지만, 작품 결과가 좋아 상당히 보람찬 작업이다.
현재 6기 모집 중인데, 각 기당 모집 정원이 정해져 있는 건가. 또 선정 기준은.
1기가 9명이었고 이후 기당 3~4명 정도 뽑았다. 지금까지 선발을 거친 결과 평균적으로 대략 80~90편의 시나리오가 지원한다. 시나리오로 1차 선발한 후 면접을 통해 바로 감독 데뷔 가능할지를 가늠한다. 시나리오 작가도 마찬가지다. 2년 정도 인큐베이팅 과정을 통해 작가 데뷔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본다. 제작과 촬영 부문도 마찬가지다. 지원자가 많지는 않지만, 그들 역시 어느 정도 준비가 된, 과정을 거치면 바로 데뷔할 수 있는 이들을 중심으로 선발한다. 한국영화아카데미가 이론 공부 후 이후 장편제작 과정에 들어간다면, 우린 장편제작과정부터 시작한다고 보면 된다. 남녀노소, 국적 상관없이 누구나 지원할 수 있고 가장 중요한 기준은 시나리오다. 명필름 내부 인력과 20여 년 간 거쳐 간 인력들이 2인 1조로 시나리오를 검토한 후 최종 선발한다. 좋은 시나리오를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시나리오 심사 기준이 다양할 텐데 개인적으로 어떤 지점을 높이 보는지.
나뿐 아니라 심사위원이 모두 훌륭한 시나리오를 뽑으려 노력할 것이고 여러 가지를 고려할 것이다. 기승전결에 따른 이야기 완성도나 메시지 혹은 영화로 만들어졌을 때 모습과 현실성 등을 포함해 무언가 새로움을 발견할 때 제작자로서 행복하다. 그런 새로움이 있는 완성도가 수반된 작품에 끌린다. 예를 들면 소준문 감독의 제주도를 배경으로 한 <빛나는 순간>이 있다. 72세의 해녀와 28세의 청년의 사랑 이야기인데, 정말 기가 막히다. 사랑은 사랑이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설득하면서 동시에 제주도의 정체성과 역사성을 담고 있는 훌륭한 시나리오다. 영진위 지원으로 내년 4~5월 촬영에 들어간다. 랩을 운영하며 미처 몰랐던 것을 발견하고 새로운 시간을 배운다. 기부나 사회사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절실하게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 받는다. 덕분에 영화를 오래 할 수 있는 것 같다.
오! <눈발>(2016), <환절기>(2018), <박화영>(2018) 등의 랩 작품에 이어 또 기대해 보겠다. 꾸준히 좋은 작품의 작업을 이어가는 것에 진심으로 고맙다. 준비 중인 라인업을 소개한다면.
내년과 후년에 준비 중인 영화가 있는데 아주 창의적이라 굉장히 마음에 들고 흥분된다. 하나는 남북한 탁구 단일팀을 그린 다큐멘터리이다. 작년 대전 그랑프리에서 남북 단일팀이 중국팀을 이긴 것을 보고 남북 이야기를 탁구를 통해 접근해 보고 싶었다. 또 멜로 드라마인 <싱글인 서울>, 이건 출판사 편집자와 저자 간의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썸과 로맨스를 다룬다. 명필름이 자리한 출판도시를 배경으로 멋지게 찍어 보려 한다. 또 실화를 배경으로 한 범죄 스릴러를 준비 중이다.
<마당을 나온 암탉>(2011)이후 두 번째 애니메이션 <태일이>도 빼놓을 수 없겠다. 특히 내년 전태일 열사 50주기인데다 열사 이야기를 예전 독립영화로 만들다가 중단했었기에 매우 의미가 큰 작업이다.
마지막 질문! 최근 소소한 행복이 있다면.
요새 탁구 다큐멘터리를 준비하면서 일주일에 20분씩 두 번 레슨받는 중이다. 건강해지고 실력이 느는 것이 느껴져 아주 기분 좋다.
[mail:eunyoung.park@movist.com]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m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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