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민용준 영화 칼럼니스트]
엉뚱하고 희한한 감각의 나열 끝에서 예민하고 묵직하게 떨어지는 여운. <메기>는 지금껏 등장한 수많은 한국영화 속에서 보지 못했던 감각의 미장센을 선사하는 작품인 동시에 예민하게 현실을 환기시키는, 판타지와 리얼리티의 절묘한 콜라주 같은 영화다. 그래서 누군가에게는 다소 생소한 풍경으로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그래서 누군가에게는 마냥 익숙한 일상으로 다가올 수도 있을 것이다.
제목부터 수상한 <메기>라는 작품은 언어 그대로 메기가 등장하는 영화이지만 메기에 관한 영화는 아니다. 이름 상으로 익숙한 메기의 음성을 통해 낯설어지는 이 영화는 우리에게 익숙한 이 세계의 풍경 기저에 잠재된 심리들을 낯설게 들여다보도록 이끈다. 엉뚱한 발상을 기발한 착상으로 앉히고, 익숙한 형상을 생소한 감상으로 이끄는, 특별한 영화적 체험을 선사하는 작품이다. 동시에 그 특이성을 토대로 지극히 현실적인 고민을 안겨주는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남다른 성취감을 겨냥한 작품으로서 평가돼야 마땅한 작품이다.
미장센의 감각과 사운드의 리듬이 공감각적으로 어울리는 <메기>는 감각적인 재미만으로도 흥미로운 동시에 좀처럼 연결성이 희박해 보이는 서사적인 흐름을 느슨하게 연결하면서도 그 연결을 위한 고리 역할을 하는 소재의 일관성과 변환성을 지켜보는 재미가 상당한 작품이기도 하다. 특히 결말부의 카타르시스는 <메기>가 감각적인 소품 이상의 선언임을 일깨운다. 그야말로 2019년의 발견, <메기>를 연출한 이옥섭 감독으로부터 직접 그 세계의 시작과 끝을 전해 들었다. 차분하면서도 단호하게, 조심스럽지만 주저하는 법이 없었다.
지난 9월 26일에 <메기>가 개봉한 직후부터 꾸준히 무대인사나 GV를 이어가며 관객과 직접 소통해왔다. 관객의 반응을 직접 보고, 듣는 기분이 어땠는지 궁금하다.
요즘은 SNS로 바로바로 올라오는 반응을 접하는 경우도 많은데 매일 같이 새로운 리액션을 확인하게 된다는 게 좀 신기했다. 단편영화는 영화제에서 두세 번 정도 상영하면 잠잠해지니까. 무엇보다도 내가 누군가에게 말을 걸었다는 건 확실히 느껴졌다. 심지어 N차 관람을 해주시는 것도 놀라웠고. 영화는 여러 번 봤으니 GV만 보러 온다는 관객도 있더라. 요즘은 영화를 만든 사람과 생각을 교환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기는 관객이 좀 더 많아진 거 같다.
혹시 관객의 질문이나 감상 중에서 기억에 남은 게 있을까?
항상 기회가 되면 말하고 싶었던 게 있는데, <메기>를 보고 극장을 나와 걷다가 마주치는 아파트나 공사현장이 그 전과는 다르게 다가온다는 관객이 있었다. 실재하는 서울의 풍경을 담아낸 영화인데 영화상에서 본 서울의 풍경을 색다르게 느꼈다는 게 흥미로웠다. 메기라는 물고기를 더 이상 먹지 못할 거 같다는 리뷰도 봤는데 메기를 캐릭터로 받아들인 것 같아서 좋았다. 내가 만든 영화가 그런 영향을 미쳤다는 것도 신기하고.
<메기>라는 영화의 출발선은 어디였을까? 제목 그대로 메기인가? 아니면 다른 곳에서 출발한 뒤 메기를 만난 걸까?
내가 처음 떠올린 이미지는 어둑어둑한 병원 로비에서 어항을 바라보는 어떤 여자였다. 그때에는 윤영(이주영)이라는 이름도 없었고, 여자 간호사 정도의 이미지만 있었다. 그런데 여자의 표정이 어둡게 느껴져서 무슨 일이 있나 의문이 생겼고, 여자가 바라보는 어항 속 물고기도 익숙한 종이 아닐 거 같았다. 그러다 단편영화 <연애다큐>에 출연한 배우 중에서 어항에 뱀장어를 키우던 분이 생각났다. 그때 이게 뭐냐고 물어보기도 했는데 만약 열대어나 금붕어가 있었다면 그런 질문을 하지 않았을 거다. 뱀장어가 낯설었던 거지. 그게 새삼 놀라웠다. 어항에 갇힌 게 익숙한 물고기가 어디 있다고, 다 자유롭게 헤엄치고 싶을 텐데, 이런 생각이 들어서. 그래서 메기를 떠올리게 됐다.
왜 메기였을까?
메기는 수염으로 지진을 감지한다더라. 그만큼 예민하다는 건데, 앞으로 윤영이에게 일어날 일을 예견하는 존재라면 좋을 거 같았다. 그리고 ‘가만히 있는 저를 보면 마음이 편해진대요’라는 대사처럼 메기는 낮에 움직이지 않고 조용히 있는 편이라 점점 불신과 혼란에 빠져드는 윤영이 입장에서는 그런 메기에게 위로를 받을 거라 생각했다. 단편영화 <걸스온탑>도 선인장을 키우는 여자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말하지 못하는 식물이나 동물과 교감하며 위로받았다고 믿는 내 경험이 영화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을지도 모르겠다. 동물이나 식물에게는 의심을 품을 필요도 없고.
메기가 내레이션을 한다는 설정을 하게 된 계기도 궁금하다.
윤영이 겪게 될 일이 좀 가혹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윤영이 옆에 누군가 있길 바랬고, 이런 존재라면 좋겠다는 소망이 투영된 결과인 것 같다. 그리고 트위터에서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는데, 내가 키운 동물에게 어떤 말 하나만 가르칠 수 있다면 ‘나 아파’를 가르치고 싶다는 글. 말하지 못하는 존재에게 위로를 받는 사람들은 그 존재가 말을 걸어 주길 바라는 마음도 있는 것 같다. 동시에 조용한 존재이면서도 자연스러운 관계이길 바라는 것이고. 학교에서도 조용한 애들이 대체로 관찰을 잘하지 않나. 대체로 말은 없고 가만히 있는 편이지만 반의 동태를 가장 잘 아는, 그런 친구를 떠올린 거 같기도 하다.
<메기>에 등장하는 마리아사랑병원은 실제로 2017년까지 운영했던 마리아수녀회 도티기념병원을 촬영한 것으로 알고 있다. 병원의 오래된 외관이 시대로부터 동떨어진 느낌을 주기도 하는데 그런 공간을 찾아내고 설정한 이유가 궁금하다.
일단 병원 신은 총 세 곳에서 촬영했는데 마리아수녀회 도티기념병원에서는 외관만 촬영했다. 병원이라는 공간이 부조리한 태도를 대변하는 공간처럼 보이길 원했고, 시간이 멈춘 듯한 곳이 필요했다. 그래서 21세기에도 80년대에나 입을 듯한 간호사복을 입고, 지문인식이 가능한 시대에 종이로 만든 출퇴근 카드를 찍고, 심지어 체력 증진이라는 명목으로 점프해서 카드를 찍어야 하는, 억압과 강요가 여전한 집단이 있는 공간으로 연출했다. 어떤 단체에서 입는 옷이 그 단체의 성격을 말해주기도 하니까, 억압적인 측면이 복장에서도 보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이경진 부원장(문소리)은 어떤 사건이 발생했는지 잘 모르면서 윤영에게 일방적으로 그만두라고 통보한다. 결정 권한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피해자일 수도 있는 사람에게 무조건 사직하라고 말하는 태도는 지금의 한국사회가 피해자를 다룰 때 심심찮게 보여주는 태도와 비슷한 측면이 있다. 편집 과정에서 삭제한 병원 신 중에선 유리관에 덮인 전시물품이 나오는 신이 있는데 가까이 가서 보면 유리관에 지문이 잔뜩 묻어 있다. 다들 조금씩 어떤 잘못을 저지르면서 막상 타인의 잘못에는 스스로 일말의 잘못도 없는 사람처럼 구는 집단의 모순된 심리를 공간에 비춰 보여주고 싶었다.
그 장면을 삭제하기로 한 이유가 궁금하다.
병원에 이미 너무 많은 메시지를 배치했다고 생각해서 과잉처럼 느껴졌다. 이미지가 너무 많아지면 병원만 설명하다 끝나는 것처럼 보일 거 같고. 병원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은 윤영이가 선택하는 행동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했으니까 그런 면에 더 집중하고자 했다.
이경진 부원장은 윤영이 직접적으로 대면하는 부조리한 대상이다. 특히 파리지옥에 무당벌레를 집어넣는 장면에서 잔인한 내면을 노출하는 것 같기도 한데.
심지어 ‘아~’하면서 넣어준다.(웃음) 그 순간은 이경진 부원장의 민낯이 등장하기 직전의 모습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이 나쁜 사람들’ 운운하면서 문제의 엑스레이 사진을 떼어내고 윤영이를 도와줄 것처럼 등장하지 않나. 본모습이 나타나기 전에 어떤 조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경진 부원장이 자신의 진료실에서 윤영과 대화를 할 때 파란 벽의 색감이 눈길을 끈다. 자신의 책상이 아니라 환자 침대에 앉아서 윤영과 대화하기 때문에 그 벽이 눈에 띄는 건데, 구도적으로 두 사람을 분리시켜서 리액션 숏으로 두 사람을 보여주는 방식이 흥미로웠다.
학교 다닐 때 대화 장면이 가장 찍기 어렵다고 말하는 교수님이 계셨는데 사실 대화 장면이 뭐가 어렵다는 건지, 그냥 대화하는 걸 찍으면 되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어렵더라. 어떤 위치에서, 어떻게 시선을 주고받는지에 따라 신의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다. 이경진 부원장과 윤영이 대화를 할 때, 부원장이 앉은 위치는 환자의 진료를 보는 침대이고, 윤영이 앉은 위치는 책상 근처다. 이경진 부원장이 부조리한 얘기를 하는 상황에서 부원장을 책상에 앉혀 두고 싶지 않았다. 환자를 진찰하고 진료하는 위치에서 옳지 않은 말을 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두 사람의 위치가 뒤바뀐 듯한, 주객이 전도된 느낌을 주고 싶었다. 관계의 거리감을 보여주고 싶기도 했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부원장실의 푸른 벽이 이경진 부원장의 배경으로 잡혔다. 반대로 윤영이 앉은자리의 배경은 나무색 위주라 좀 더 무겁게 느껴지고.
병원에 유난히 해골 형상이 많이 등장한다. 심지어 데스크 뒤에는 해골이 돼서 원형으로 춤을 추는 사람들의 그림도 있고, 여러 모로 기이한 역설처럼 보인다. 사람을 살리는 목적을 가진 병원이 죽음을 발랄하게 즐기는 느낌이랄까.
실제로 뼈를 다루는 병원이긴 하니까.(웃음) 내가 <반지의 제왕> 같은 완전한 판타지 영화는 잘 못 보는 편이다. 지극히 현실적인데 약간 이질감이 느껴지는 상황을 좋아하는 것 같다. 그 정도 이질감 위에서 살짝 이상하면서도 그럴 법하게 흘러가는 이야기가 마음에 든다. 그리고 데스크 뒤 배경의 해골 그림은 CG로 만든 건데, 병원 정문에 있는 ‘환자의, 환자를 위한, 환자에 의한’이라는 글자도 CG로 쓴 거다.
싱크홀 이미지를 비롯해 후반 작업에 들어가는 노고가 상당한 작품이었을 거 같다.
천우희(천우희)가 이주영(이주영) 어깨에 올라서서 함께 외발자전거를 타는 <걸스온탑>의 장면에서 처음으로 CG를 썼는데 너무 재미있었다. 상상했던 것을 이미지로 옮겨주니까. 기본적으로 영화는 말이 안 되는 걸 되게 해주는 작업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CG, 정말 너무 좋다.(웃음)
극 초반에 류시화 시인의 인터뷰 답변을 인용한 ‘우리가 구덩이에 빠졌을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구덩이를 더 파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얼른 빠져나오는 일이다’라는 문구가 등장한다. 이는 중반부에 등장하는 싱크홀의 이미지와 연결되면서 일종의 복선 노릇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결말부에서는 일종의 대구 역할을 하는 인상이기도 한데, 싱크홀을 구상한 계기가 궁금하다.
싱크홀은 시나리오를 쓰는 단계에서 구상한 이미지는 아니었다. 내 시나리오를 본 아카데미 동기 언니가 보여준 사진에서 비롯된 것인데 편의점 바로 앞 도로가 완전히 내려앉은 사진이었다. 건물이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위험해 보였고 편의점 안에 있을 어떤 사람이 떠올랐다. 아침에 출근한 아르바이트생이 집에 못 가고 갇혀 있진 않을지, 편의점 문을 열면 낭떠러지인데, 그 사람이 걱정됐다. 그리고 그게 우리 모습처럼 느껴졌다. 다행히 떨어지진 않았지만 문을 열고 나갈 수도 없고, 그렇게 갇혀버렸다는 기분. 그렇게 싱크홀이 자연스럽게 들어왔다.
역설적이지만 <메기>의 싱크홀은 성원(구교환)에게는 좋은 기회가 됐는데.
세상은 늘 아이러니하니까.
싱크홀로 인한 인과는 청년실업에 대한 은유나 풍자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결과적으로 영화의 태도는 거대한 메시지를 전하거나 주장을 펼치려는 것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사회적인 문제를 건드리는 것 같지만 개인적인 서사를 둘러싼 풍경이나 정보 이상의 범위로 확장되는 것을 경계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청년실업에 관한 질문은 많이 받았다. 푸른 천막 위에서 시위하는 건 재개발 문제에 관해 말하는 거냐고 묻는 분들도 많고. 일단 그런 문제들을 깊숙하게 다루려 한 건 절대 아니다. 그저 윤영이라는 여자를 다루기 위해서는 이 여자를 둘러싼 세계를 그려야 한다고 생각했고, 지금 사는 세계를 다루는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이미지라고 느껴지는 걸 담아냈을 뿐이다. 서울 어디에서나 공사를 하고 있고, 주변에 직업이 변변치 않은 친구들이 있다 보니, 공사할 문제가 생겨서 직업이 생긴다는 아이러니 같은 게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주변에서 보고, 듣는 것을 통해 얻어낸 아이디어가 많은 것 같다. 어쩌면 사소하게 넘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좀처럼 사소하게 넘기지 않는 편인 거 같기도 하고, 그런 것들을 비틀어서 남다른 인상의 무언가로 소화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런 거 같다. 예를 들어 지하철에서 찍은 불법 촬영 사진이 돌아다닌다는 말을 듣게 되면 지하철에서 누군가의 카메라가 나를 향한 것만 봐도 위축된다. 내가 머무르던 곳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고 해도 마음이 복잡해지고. 생각 자체가 내 삶으로 들어와 버린다. <메기>의 중요한 테마인 오해도 마찬가지다. 풀릴 수 있다면 오해도 아니다. <메기>와 무관하지만 개를 키우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 키우는 개가 베란다를 내다보길 좋아하는데 사람이 곁에 있어야만 본다. 그래서 거실에 있더라도 베란다가 있는 안방 문을 닫지 않고 지켜보는데 한 번은 바람 때문에 문이 확 닫혔다. 그래서 개가 문을 긁고 난리가 났다. 그래서 문을 열어줬지만 얘는 평생 내가 닫았다고 생각할 거 같았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해명할 기회도 없고. 그래서 어쩔 수 없겠구나 싶었다. 그러니까 오해는 견뎌야 하는 일 같다. 이렇듯 직간접적인 경험을 통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쓴다.(웃음) 무언가를 보고 느낀 인상이나 직접 들은 이야기를 통해 생각하게 된 것들이 이야기로 나오는 거 같다. 다만 이야기를 쓰겠다는 의도로 이런 경험에 접근하는 건 아니다. 그저 쓰게 됐을 때 뭐든 써야 하니까 그물망을 펴듯이 예민하게 기억을 열고 잡히는 경험을 꺼내 쓴다고 할까.
<메기>에서 개인적인 경험이 반영된 부분은 또 어떤 게 있을까?
윤영이가 성원이와 어디를 지나다녀야 할지, 이들이 집으로 갈 때의 거리는 어떤 인상으로 다가와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그냥 이수 교차로를 지나가는 거라고 알면 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잠깐이라도 내가 느낀 인상을 관객들도 느끼게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구교환 선배와 스크립터가 로케이션 헌팅을 통해 푸른 천막이 덮인 길을 찾아왔을 때 반가웠다. 20대 초반에 살던 아현동이 재개발 지역이라 집회가 잦았는데 나도 종종 참여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집회가 끝나도 돌아가지 않았다. 함께 대화하고, 기타 치며 노래하고, 먹을 걸 나눠 먹는데 그 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집회에서 이렇게 아름답게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이 집회가 실패한다 해도 그런 기억을 가진 이들은 다시 목소리를 내고자 하는 힘이 생겼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 기억을 떠올리면서 푸른 천막이 덮인 길에서 시위하는 신을 연출했다. 물론 그 당시 집회에 수영복을 입고 나온 분들은 없었지만.(웃음) 어쨌든 윤영이가 병원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안고 집으로 가는 길목에서 그런 위안을 받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비롯 스치듯 지나가는 풍경이라 해도.
<메기>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공간들이 시각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이를 테면 공간 자체가 하나의 캐릭터처럼 다뤄지는 느낌이랄까.
이야기를 쓸 때 공간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장소 자체가 이야기의 시작일 때도 있고. <걸스온탑>도 서교동에 살면서 오가던 길에서 시작됐다. 천우희 배우와 이주영 배우가 등장하는, 노랗고, 빨간 벽이 있는 길. 동네 목욕탕 뒤편에 있던 길인데 서커스장 같다고 생각하며 벽 앞에서 외줄타기 같은 걸 해도 좋겠다고 생각한 게 <걸스온탑>으로 이어졌다. 가끔은 시나리오가 풀리지 않을 때 어떤 캐릭터를 전혀 다른 장소에 가져다 놓기도 하는데 그럼 이야기가 풀리더라. 낯설고 익숙하지 않은 공간에서 색다른 기운을 느낀다. 그렇게 공간은 이야기의 시작이 되기도 하고, 해답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그런 공간을 물색하는 과정의 노고도 있었을 거 같은데.
적은 예산으로 세트장을 만들 수 없으니 있는 공간에 들어가서 영화를 찍어야 하는 입장이었고, 이재우 촬영감독과 구교환 선배 그리고 김이지 미술감독과 그에 관한 논의를 자주 했다. 단편 작업을 해왔던 입장에서는 그게 익숙하기도 하고. 한 번도 세트장을 만들 여건이 안됐으니까 그런 방식이 체화된 편이다. 마치 일상 같다고 할까. 최소한 과제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다. 최근에 한국영화 100주년을 기념하는 기획으로 <로미오: 눈을 가진 죄>라는 100초짜리 단편영화를 찍었는데 대만에서 열리는 타이베이 국제영화제에 초대받았을 때 찍은 작품이다. 예전에 대만을 놀러 갔다가 지하철 안에서 테라스를 가득 채울 정도로 많은 자전거가 놓인 공간을 지나치듯 본 적 있는데 나중에 저기서 자전거를 찾는 장면을 찍으면 되게 재미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에 타이베이에서 100초짜리 단편영화를 찍어야 되는 상황이 돼서 통역해주시는 스태프 분에게 예전에 봤던 그 공간을 설명하면서 위치를 물어보고 찾아가 영화를 찍었다. 공간만 있어도 이야기가 풀리는 것 같다.
<메기>에서 동명이인인 두 이주영 배우가 만나는 신은 캐릭터의 상황과 무관하게 의도된 장면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렇지 않다. 일단 이름 때문에 캐스팅한 건 아니니까. 그리고 이름이라는 게 언어이기 전에 그 사람 고유의 느낌으로 다가온다고 생각하는데 둘은 정말 다른 사람이라서 두 사람의 이름이 같다는 걸 한 번도 의식하지 못했다.
두 사람이 만나는 그 장면은 황량한 공간감과 인물 간의 거리감 때문인지 웨스턴 무비의 한 장면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나의 남자를 두고 과거와 현재의 여자 친구 두 사람이 만난다는 설정도 대결적인 구도처럼 느껴지고.
일단 그 장면은 윤영이가 성원이의 전 여자 친구인 지현이(이주영)의 공간에 윤영이가 들어간 것이라고 생각했다. 윤영이 입장에서는 낯설게 느껴지는 곳에 있기 때문에 그 순간에 듣게 되는 진실 또한 온전히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상황인 셈이다. 하지만 어찌 됐건 지현이는 피해자이기 때문에 피해자로서의 지현이를 어떻게 그려야 할지 연출팀끼리 회의를 많이 했다. 그 과정에서 우리 모두가 갖고 있던 편견이 깨지기도 했는데, 사람들은 보통 어떤 큰 피해를 당한 누군가가 조금 웃기만 해도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일종의 피해자다움을 강요한다. 그래서 지현이가 잘 살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영화를 자세히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지현이가 들고 있는 게 채소다. 음식을 잘해 먹고, 잘 자고, 잘 살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느끼게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윤영이한테 밤도 선물하고, 추워 보이니까 목도리도 매어주고. 그렇게 지현이가 일반적인 피해자들처럼 움츠러든 느낌으로 보이지 않길 바랬다. 그리고 윤영이를 위해서 말하는 것이 결국 자신을 위한 것이 됐을 거다. 지현이도 그 말을 한 뒤에 분명 더 나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메기>는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기획한 14번째 영화다. 그런 의미에서 데이트 폭력이라는 소재는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기획한 영화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떠올린 소재였던 것인지 궁금하다.
그건 아니다. 작품마다 크고 작은 차이는 있지만 어떤 주제를 다루고 싶다는 생각으로부터 접근한 영화는 없었다. 이 인물이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듣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연결되는 거 같다. <메기>도 내가 연상한 간호사가 겪게 된 일을 써 내려가 보니까 결국 만나게 된 영화였고.
결국 인물의 상황과 감정에 공감하는 과정이 이야기를 만드는 과정과 같은 것이라는 말처럼 들린다. 그런 의미에서 <메기>는 윤영이라는 여성이 겪는 다양한 상황에 깊게 공감한 이야기인 셈인데, 윤영은 직접적인 경험이 아닌 간접적인 증언을 통해서라는 점에서 폭력을 경험하고 징후를 예견한다. 그런 면에서 싱크홀을 동원한 결말부에서 진실을 드러내는 방식에서 전해지는 충격이나 쾌감이 상당한데 그런 결말부를 구상하게 된 과정이 궁금하다.
사실 결말부는 가장 마지막에 쓰게 됐는데 아무래도 그게 나를 둘러싼 어떤 현실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펜이 움직인 게 아닐까 생각한다. 지금도 한국에서 많은 여성들이 남성에게 죽지 않나. <메기> 전에 아카데미에 다니던 시절에 썼던 장편 시나리오는 새로 만난 남자 친구가 살인범일지도 모른다는 의혹을 갖게 되는 여성의 이야기이기도 했는데 아무래도 이런 불안이 항상 내 안에 자리하는 것 같다. 결국 윤영이가 알게 되는 진실이 윤영이를 조금이라도 더 안전하고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만드는 것이길 바랬다. 윤영이 스스로 용기를 낼 수 있도록 만드는 진실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결말부에서 마주한 윤영이의 마지막 얼굴을 보는 관객들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길 바랬다. 윤영이 입장에서 싱크홀 아래를 바라보는 심정을, 그 이후에 갖게 될 자기 정리를 관객들도 자기 방식대로 상상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 입장에서는 딱 그 정도였던 거 같다.
윤영이는 심지가 굳어서 쉽게 흔들릴 사람처럼 느껴지진 않는다. 나름의 고뇌와 갈등을 겪지만 결국 자신이 믿는 대로 나아가는 인물처럼 보인다. 그래서 윤영을 흔드는 계기가 예사롭지 않게 느껴지는 측면이 있다. 그만큼 결말이 남기는 여운도 상당히 강렬하고, 혼란스러운 느낌을 갖는 관객도 적지 않을 거 같다. 그만큼 결말에 대한 질문도 많이 받을 수밖에 없을 거 같고. 그런데 그 결말은 윤영이와 관객들을 향하기 전에 감독 자신의 다짐이나 변화를 반영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확실히 <메기>를 쓰고 만들기 시작할 때의 나와 <메기>를 다 만들고 관객들과 이야기할 때의 나 사이의 달라진 간극을 느낀다. 시나리오를 쓰는 초반에는 윤영이가 성원을 의심하게 되는 과정에서 함께 갈등했다. 알 수 없었던 진실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놓지 못하겠더라. 나름 사랑하고, 믿는 사람이니까. 그래서 윤영이가 ‘나는 어떻게 해요?’라는 표정을 짓고 있는 게 느껴졌다. 그런데 영화를 완성하고 관객을 만난 뒤부터는 생각이 더 단단해진 것 같다. 내가 만든 윤영이는 결코 불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안전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더 확실하게 느껴졌다. 더 이상 ‘나는 어떻게 해요?’가 아니라 ‘마음 단단히 먹어야 돼’로, 마음이 정리됐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윤영이가 자신에게 행복한 선택을 할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 그래서 관객들도 이런 생각에 공감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생각할 수 있다면 행동으로 이어질 테니까.
<메기>에서 메기가 처음 등장하는 병실의 입원환자들에 관한 장면은 메기의 존재를 알려주는 정보적 장치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전체적인 영화 흐름상 꼭 필요한 장면처럼 보이진 않는다. 그 장면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이유가 궁금하다.
관객들은 극 초반부부터 윤영이가 범인이 아닌 걸 알기 때문에 그 이후에 벌어지는 상황을 윤영이의 입장으로 지켜본다. 그런데 윤영이가 없는 상황을 맞이하면 그때 등장한 사람들끼리 주고받는 말을 들으면서 누구를 믿어야 할지 헷갈릴 거다. 마치 처음 들어서는 문과 같은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윤영이가 모르는 일을 관객들만 알면서 이제 관객들만의 데이터가 쌓이는 거지. 그러면서 관객 나름대로 선택하게 된다. 저 말을 믿을 것인가, 믿지 않을 것인가. 그런 선택 이후부터 윤영이의 마음에 진정으로 동참해보는 과정이 시작된다고 생각했다. 믿을 수 있는 일인지 스스로 의문을 갖게 된 이후로 결과를 받아들이는 방식은 분명 그 전과 달라질 수밖에 없을 테니까. 그리고 윤영이가 자리하지 않은 상황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 역시 윤영이와 마주치지 않은 순간이 있을 뿐, 윤영이의 세계 속에 존재하는 사람들이다. 결국 윤영이가 등장하지 않는 사건들도 단편적인 사건의 나열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거지. 그런 경험을 통해 윤영이가 나아가는 삶 또한 그렇게 지켜보게 될 거라고, 그래서 꼭 필요한 장면들이라고 생각했다.
종종 굉장히 기발하면서도 엉뚱한 유머감각이 느껴지는데, 개인적으로 <메기>에서 가장 좋아했던 유머는 현관문을 따주는 아주머니가 ‘결제는 스위스 계좌로 해줘’라는 대사를 칠 때였다. 영화가 관객에게 이상한 농담을 거는 기분인데 가끔씩은 취향에 따라 상대방이 정색하게 될 수도 있는 유머감각이 될 수도 있겠다. 그런 면에서 관객이 이런 유머를 받아들일 수 있을지 의심하는 순간들이 있지 않았을까 궁금했다.
맞다. 유머라는 게 유머로 받아들여져야 유머인 거니까. 사실 유머에 집착하는 편이다. 슬픈 장면을 써서 친구에게 보여줬는데 별로 슬프지 않다고 하면 ‘그런가?’ 정도로 넘기지만 웃기다고 생각한 장면을 보여줬는데 재미없다고 하면 스트레스받는다. 말하고 보니 좀 이상한 거 같긴 한데,(웃음) 유머란 내게 삶을 견디게 해주는 장치 같다. 어릴 때 고모들과 함께 살면서 고모들이 어떤 상황에서도 유머감각을 잃지 않고 나를 웃겨주는 것을 보고 자라서 여전히 그 시절이 나쁘지 않았다고 느껴진다. 생각해보면 그리 좋은 상황이었던 거 같진 않은데 말이다. 그래서 지금도 코미디 영화를 제일 좋아한다. 언제나 긴장이나 불안을 이완시켜주고 싶다. 그래서 웃음을 유발할 수 있는 시도를 끊임없이 하게 된다.
복부에 피를 흘리고 병원에 찾아오는 남자가 분명 ‘사과를 깎다가’ 다쳤다고 하는데 치료 중 배에서 총알이 나오니까 ‘사슴을 잡다가’라고 자기 말을 번복한다. <메기>의 병원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토끼굴처럼 이상한 사람이나 사건을 자꾸 끌어들이는 것 같기도 한데, 그런 면에서는 윤영의 믿음을 시험하는 상황이 거듭 펼쳐지는 공간 같기도 한다.
그 장면이 병원에 출근하지 않은 직원을 찾아간 장면 이후에 이어지는데 그때 윤영도, 부원장도 이미 의심하지 말자고 다짐한 뒤다. 그런데 막상 그런 상황이 눈 앞에 닥치니까 다시 한번 믿음이 흔들린다. 그리고 결국 믿지 않아서 불미스러운 일을 겪지 않게 된다. 그러니까 믿음이라는 게 규칙적으로 쌓일 수 없는 것이기에 필요한 시험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일을 겪은 뒤에 만나게 될 상황 속에서 꾸준히 진실을 판단해야 할 윤영이를 위해 마련한 준비운동 같은 것이기도 하고. 그래서 부원장과 윤영이 함께 ‘믿음 교육’을 하는 과정도 등장하고. 마치 실제 시험을 보기 전에 푸는 문제집 같은 상황이라고 할까.
방금 말한 그 장면 이후로 성원이 손가락에 낀 반지를 손에 쥔 배트에 손가락에 낀 반지를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그 이후에 그 반지 소리를 재활용하듯 음악적으로 연결해 리드미컬한 감각으로 재활용하는 듯한 신이 등장한다. 음악과 이미지를 연결해서 독특한 감각적 재미를 주는 장면인데, 전반적으로 이미지와 사운드의 조화가 탁월하게 어울린다는 점에서 공감각적인 영화처럼 느껴진다.
내게 음악이란 영화의 온도 조절을 위한 장치에 가깝다. 음악이 강요처럼 느껴지지 않는 수준에서 관객들의 감상에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장치가 돼 주길 바란다. 이 장면의 온도가 좀 차게 느껴지면 음악은 좀 더 따듯하게 쓰는 식으로. 무겁게 느껴지는 장면에서는 찬물을 끼얹듯이 분위기를 깨는 음악을 쓰고 싶고. 특히 슬픈 장면에서 슬픈 음악이 나오는 게 제일 싫다. 계속 그런 방식으로 균형을 잡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뮤직비디오 연출을 해봐도 좋을 거 같다고 생각했다.
한 번은 촬영팀과 어떤 장면을 놓고 상의하는데 내가 원하는 걸 이야기하니까 이거 뮤직비디오 같다고, 뮤직비디오 연출을 해봐도 잘할 거 같다고 하더라. 개인적으로 이건 뮤직비디오 앵글이다, CF 영상 앵글이다, 이런 선입견이 없다. 그냥 매번 적절한 걸 선택하면 된다는 생각이다.
뮤직비디오나 CF 영상은 단시간에 시청자의 뇌리에 강렬한 감각을 주입하는 작업에 가깝기 때문에 매 순간마다 인상적인 색감이나 앵글을 만들어내는 재능이 중요하기도 하지만 그러한 컷들을 연속적으로 이어 나가는 내러티브의 순발력도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걸스온탑>에서 선인장의 성장을 보여주는 점프컷의 감각도 굉장히 흥미롭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 장면은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된 거다. 집에 강아지를 들였을 때 가족 모두가 반대했다. 강아지를 키울 형편이 안되고, 돌볼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그런데 막무가내로 데려와서 키우게 됐는데 몇 개월 만에 엄청 커져서 더 버거워졌다. 지금은 결국 내가 키우는 상황인데 그 당시의 고민이 반영된 거 같다. 그 당시의 버거웠던 내 마음이 소극적이지만 그런 시각적인 방식으로 표현된 걸까? 그래서 그 장면은 그 당시 내 심리상태를 반영한 결과처럼 보인다.
<메기> 이후에 공개한 단편 <로미오: 눈을 가진 죄>를 보면서 셰익스피어가 이 작품을 보면 어떤 기분일까 잠깐 생각했다.(웃음) 대부분이 그렇다고 믿고 있었던 것을 배반하는 쾌감이 큰 작품이라고 할까. 어떤 면에서는 <메기>를 포함해 지금까지 꾸준히 발표해온 단편들을 관통하는 것이 그런 아이러니를 일관성 있는 발견하는 작업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장르적인 공식에 끼워 넣는 데 흥미를 못 느낀다. 약간 비틀어보는 것을 좋아한다. 지금 구상 중인 작품도 로맨스물인데 일반적인 로맨스물 느낌은 아니다. 과거에 준비했다고 했던, 남자 친구가 살인범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갖게 된 여자의 이야기도 스릴러의 내면을 갖고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로맨스물이기도 했고. 나는 그런 게 재미있다. 아무래도 낯선 걸 좋아하는 편인데, 낯설어야 써내려 갈 힘이 생긴다. 예를 들어 <로미오: 눈을 가진 죄>가 아름다운 구애를 하는 로미오를 그려야 하는 작품이었다면 전혀 관심 없었을 거다. 그 작품을 구상할 때 누군가를 정말 좋아한다는 게 조금 징그럽다고 생각하던 시기였다. 그즈음에 찍은 단편 <세 마리>에서 “짝사랑은 좀 징그러운 거 같아요”라는 대사가 나오기도 했고, 짝사랑이라는 게 스스로를 너무 초라하게 만드는 징그러운 감정 같다고 생각하던 때라 그런 것들이 다 <로미오: 눈을 가진 죄>에 반영된 것 같다. 아름답다고 믿으며 살았는데 깊숙이 들여다보면 치졸하고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나는 그런 데 흥미가 생긴다.
극 초반부에서 세탁소 아저씨가 윤영에게 줄 음료를 고르던 중 요구르트와 좀 더 비싼 요구르트 사이에서 잠시 망설이는 장면이 나온다. 그 이후로도 끊임없이 무언가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 앞에서 크고 작은 고민을 이어 나가는 인물들의 심리가 느껴진다. 결국 고민과 선택, 의심과 확인의 연속으로 이어지는 세계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게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거 같기도 하고.
우리에게 진실이라고 툭 던져진 것들이 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런 것들을 다 당연하다고 반응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왜냐면 그게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들일 수도 있으니까. 누군가는 진실이라고 믿어지는 것에 상처 받을 수도 있고, 그렇다면 그 상처가 내게 올 수도 있는 거니까 좀 더 지켜보면서 그것이 믿을 수 있는 진실인지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영화 속 인물들이 진실을 알게 됐을 때 관객 역시 함께 진실을 알게 되는 셈인데 시나리오를 쓰고 나서 그게 용기를 주는 진실이 되면 좋겠다는 마음이 가장 컸다.
성원이 윤영에게 빌린 돈을 갚기 위해 엄마에게 돈을 빌렸다는 것이 드러날 때 윤영이 성원을 약간 경멸하는 듯한 태도가 드러난다. 그래서 문득 성원의 개인사가 문득 궁금했다. 후반부에 아파트 단지에서 등장할 때도 그렇고.
개인적으로 궁금하게 여겨주면 좋아하는 부분이다. 아무래도 성원은 윤영이 집에 얹혀사는 남자이고, 그 남자가 돌아갈 수 있는 곳이란 부모님이 계신 집인 거 같은데, 그걸 아는 윤영이 입장에서 자연스럽게 뱉을 수 있는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혐오까진 아니지만 일종의 한심함? 그리고 윤영이 돈을 달라고 한 게 정말 달라고 한 것일 수도 있지만 다른 의도도 있었을 거라 생각하는데 결국 그 돈을 보내는 것도 참 그렇고. 결국 어디에 서있느냐가 그 사람이 누구인지 말해주는 것 같다. 그래서 <메기>에서도 윤영을 둘러싼 세계를 그리는 데 많은 할애를 한 거 같고. 빠져도 상관없어 보이는 모든 것들도 윤영이 사는 세계에 자리한 것들이니까 꼭 넣고, 보여주고 싶었던 거 같다.
성원이 사직서를 한자로 쓰는 장면에서 “사직서를 내지 말라고 사직서의 획이 이렇게 많나 봐”라는 대사가 정말 재미있었다. 그리고 글씨를 정말 잘 쓴다고 생각했다.
계속 연습시켰다. 보고 쓰지 말고, 외워서 쓰라고. 사실 성원이 글씨를 못쓸 거 같이 생겼으니까 글씨를 엄청 잘 쓰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리고 성원이와 함께 싱크홀 공사를 하는 팀원들이 공부나 토익 얘기를 할 때 그들의 겉모습을 보고 그게 일종의 유머라고 생각하고 웃는 사람도 있었을 거라 생각하는데 그런 편견을 계속 건드리고 싶었다. 그러니까 저 사람은 공부를 못했을 거라 생각하니까 웃었을 텐데 모두가 다 자신이 보고 싶은 대로 보는 셈이니까, 계속 그런 지점을 짚어주고 싶었다. 당연하다 생각하는 게 사실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이를 테면 메기가 어항에 있는 것과 열대어가 어항에 있는 건 다를 게 없다. 둘 다 물고기니까. 그런데 사람들은 어떤 건 식용이고, 어떤 건 관상용이라 구별한다. 사실 그들 스스로가 그렇게 규정하지 않은 이상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일 텐데. 그런 것들에 관심이 많다.
던밀스 씨는 어떤 인연으로 영화에 출연시킨 건가?
특별한 인연이 없었다. 힙합을 좋아하지만 힙합 가수들과 어떠한 친분도 없었고. 그런데 유튜브에서 어떤 콘텐츠에 출연한 걸 봤는데 그걸 보니까 왠지 연기를 잘할 거 같다는 느낌을 받았고 연이 전혀 없었음에도 연락을 드렸다.
배우가 할 수도 있는 역할을 굳이 왜 힙합 뮤지션에게 맡긴 것인가?
원래 다른 일을 하는 사람이 공사현장에 투입된 거니까 연기를 꾸준히 하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일을 하는 사람이 그 역할을 맡으면 갑자기 일시적으로 투입된 사람의 인상을 더 잘 보여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공사현장의 인부들도 다들 갑자기 모인 집단인 거니까. 그런 이질감을 풍기는 사람이 연기를 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구교환 씨와 함께 수많은 단편 작업을 해왔다. 두 사람이 일종의 듀오처럼 활동하는 느낌인데 어떤 면에서 잘 맞다고 생각하나?
우리가 워낙 변덕이 심하다. 그래서 스태프들과 있을 때 뭔가를 상의하고 결정해 놓고 실제 촬영 때에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해도 서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편이다. 그렇게 변덕을 부리는 게 작품에 걸맞은 걸 찾아가는 과정이라 생각하는 바가 비슷해서 그런 면에서는 서로 자유롭다. 잘 맞지 않아서 서로에게 스트레스를 주고받는 것도 일종의 에너지 소모인데, 그런 소모가 없는 관계라는 점에서 너무 좋은 동료라고 느낀다. 내가 하려는 것을 너무 좋아해 주니까 믿고 함께 가고 싶기도 하고. 반면 의견이 엇갈리면 서로 납득이 되지 않을 때까진 타협하지 않는 편이라 끝까지 설득해낸 사람이 선택권을 갖는다. 모든 사람과 이렇게 하기는 어렵다. 그런 면에서 이질감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다. 보통 영화를 찍게 되면 수많은 낯선 사람들을 만나 작업해야 하니까 그런 면에서 어려움을 느낄 때가 있는데 구교환 씨와는 그런 어려움이 전혀 없고, 모든 걸 이야기할 수 있는 편이라 늘 좋은 거 같다.
앞서 말한 바에 따르면 로맨스물이지만 로맨스물은 아니라고 했던, 이미 준비 중인 차기작이 있는 것 같은데.
<사랑의 카운슬링>이라는 제목의 영화를 생각하고 있다. 어떤 인물에게 연애 카운슬링을 받는 이야기다. ‘저런 공간에서 이런 사람에게 연애상담을 하는 게 말이 돼?’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황당해 보일 수는 있는데 영화를 보면 동화돼서 따라갈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물론 결국에는 말이 되지 않을 거 같긴 한데,(웃음) 어차피 세상에는 말이 안 되는 일이 많으니까. 나는 그래서 이런 이야기에 매혹되는 거 같고.
우주선을 타지 않고 우주로 나가는 방법을 찾는 것처럼.
그렇다.(웃음)
사진_장성용(studio beewave / studio greenb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