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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 세계 박물관에 주목받다.. ‘미래에서 온 종이 협회’ ① 김민중 복원가

2020년 1월 16일 목요일 | 박은영 기자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한국인 나아가 세계인들은 ‘미래에서 온 종이’라는 문구를 접하는 순간 무엇을 떠올릴까. 급속도로 진행되는 디지털화에 발맞춰 종이를 대체할 유형 아닌 무형의 무언가 혹은 전자 문서 등을 담을 수 있는 어떤 플랫폼을 떠올릴지 모르겠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복원팀과 협업 중인 김민중 복원가는 확신있게 미래의 종이로 한지를 이야기한다. 종이의 시대가 저물어 간다고 평가되는 시류에서 한지의 존재 의미와 그 가치는 무엇일까.

최근 김민중 복원가는 재정적, 사회적으로 외면 받는 처지에 놓인 한지 장인의 작업 환경을 개선하고 젊은 제지장 육성을 도와 한지 전통이 끊기는 것을 막기 위해 사단법인 ‘미래에서 온 종이 협회’를 출범했다.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는 든든한 조력자이자 후원자인 형 김성중 소믈리에가 있기에 가능한 성과였다. 협회 창립 후 짧은 시간에 한지 관련 국제 컨퍼런스 유치 등 의미 있는 행보를 이어가는 중인 김성중· 김민중 형제를 만났다.

왜 한지인가

한국의 한지, 중국의 선지, 일본의 화지 세 나라 모두 고유의 종이를 보유하고 있다. 문화재 복원에 있어 대부분 일본의 화지를 사용하는 거로 알고 있다. 복원가로서 한지에 주목한 까닭은.

김민중 복원가(이하 김민중) 대부분이 아니라 99.9% 일본 화지를 사용하고 있다. (웃음) 일전에 루브르 박물관에서 테스트를 한 일이 있다. 전통기법으로 제대로 만든 한지의 경우 화지보다 복원력이 높다. 루브르를 비롯한 다른 박물관에서도 한지를 주목하는 이유다.

높은 복원력에 대해 좀 더 설명한다면.

김민중 수치 안정성이라는 게 있다. 안정성이 높을수록 물이 들어왔을 때 축소나 확대 등 크기의 변화가 적다. 세로로만 뜨는 화지에 비해 한지는 가로와 세로 동시에 뜨기에 섬유가 치밀하게 얽힌다. 화지의 경우 물을 젖을 때 세로 변형은 없으나 가로로 퍼지는 등 수치 안정성에 한계를 보인다.

화지와 한지가 시각적으로 구분되나.

김민중 시각적으로 구분된다는 분도 있지만, (웃음) 사실은 감촉과 그 특성을 봐야 한다.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굉장히 다른 종이거든. 종이의 종류나 지역에 상관없이 전세계적인 공통점이라면 좋은 종이는 누구나 알아본다는 거다. 국적 불문 한지의 우수성을 인정하고 있고 문외한이라도 한지를 보고 정말 우아하고 멋진 종이라고 감탄하는 모습을 자주 봤다. 다만 이런 멋진 문화자산인 한지를 일상에서 접할 기회가 점차 사라진다는 게 안타깝다.

정확하게 ‘한지’란. 그 경계가 모호해 보인다.

김민중 좋은 지적이다. 한지를 결정하는 기준이 모호한 것이 문제다. 협회에서는 이에 필요성을 느껴 일반 종이들과 달리 전통 종이만을 한지로 칭하고 있다.

현재 국내 한지 제조 관련 전반적인 상황은.

김민중 사실 한국 내 ‘한지’라는 종이 자체가 사라질 위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한지가 존속하겠지만, 그 안에 담긴 가치나 문화 그리고 전통 공법은 사라질 것이라는 말이다. 현재 한지 장인을 자처하는 이는 많지만 고증된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하는 이는 다섯 명 이내다. 모두 고령인 관계로 그 기술이 전수가 안 된다면 전통적인 의미의 ‘한지’는 사라져버릴 것이다. 협회가 젊은 한지장의 육성을 중요시하는 이유다. 몇 달 배우고 이내 떠나는 이들이 많은데 그들을 붙잡아 둘 만한 환경을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 조성해 나가야 할 것이다.

전세계 복원지 시장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

김민중 복원지 시장은 연 4조가 넘는 아주 큰 시장이다. 그중 한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채 1%도 안 되는 대략 30억 정도다. 국내 복원 작업조차 한지를 이용하지 않는 게 안타깝지만 현실이다. 한지의 우수성이 입증된다면 글로벌 복원팀들이 한지를 찾을 것이다. 선순환될 거로 본다. 향후 협회가 개척해야 할 사업 분야 중 하나다.

한지 관련 국제 컨퍼런스

지난 11월 18일 서울 역사문화박물관에서 ‘한지 관련 국제 컨퍼런스’(주관 전주시, 후원 문경시, 주최 미래에서 온 종이 협회)를 개최했다.

김민중 2017년에 루브르 박물관 내 관장님의 회의실로 사용되던 ‘몰리앙 별관’에서 진행한 한지 관련 컨퍼런스가 발단이 됐다. 전주시가 주관하고 문경시가 후원한 덕분에 루브르 관계자들을 모시게 됐다. 컨퍼런스 끝난 후 전통 종이를 만들 수 있는 그리고 만들고 있는 곳인 괴산, 문경, 안동, 전주(전통 한지 생산지로 확정된 것은 아니고 아직 지켜보고 있다)를 방문해 현지를 체험했다.

루브르 관계자들 반응은.

김민중 단순히 한지를 종이로 접근했던 그들이 한지가 사회와 연관된 문화적 산물이라는 것을 보고 크게 호응했다. 가령 닥나무 섬유를 삶을 때 물을 이용하는데 이때 많은 재가 필요하다. 이 재의 제작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 마을 사람들이 농산물 등을 보탠다. 이렇듯 사회적 연결고리가 형성되는데 이 점을 눈여겨 보더라. 또 종이 생산 공정 과정을 맨눈으로 보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

컨퍼런스를 총평한다면.

김민중 준비한 브로셔가 몇 시간 만에 매진되기도 했고, (웃음) 230석을 준비했으나 500명 이상 참여해 서서 컨퍼런스에 참여하신 분들도 많았다. 컨퍼런스 자체가 관심을 유발하고 대화를 나누기 위해 마련하는 자리인데 그런 면에서는 일단 성공적이었다. 한지에 대해 알릴 수 있었다.

향후 개최 일정은.

김민중 2015년에 루브르 박물관 소장님과 함께 들어간 10년짜리 장기프로젝트에 참여 중이다. 2024년경에 끝날 예정인데, 성과가 좋으면 재 갱신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때까지 2년에 한 번씩 지속적해서 개최할 생각이다. 해외에서 진행하는 복원 작업을 통해 한지의 우수성을 알리는 게 내 역할이다. 루브르가 인정한다면 전세계가 인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지와 인연 맺다

열네 살에 프랑스로 유학 간 김 복원가는 원래 우주 공학 쪽을 전공한 공학도였다. 영 흥미가 안 생기던 시절 예술사를 접했고 푹 빠져들었다. 공학 공부를 계속하길 원했던 부모님의 지원이 끊겨 시작한 아르바이트에서 그의 영원한 멘토인 故 박병선 박사를 만났다. 그는 한국에서 유학 비자를 받은 최초의 여성으로 1967년 동베를린공작단사건(동백림 사건)에 연루돼 프랑스에 귀화했다. ‘직지대모’라고 불리는 그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과 약탈문화재인 외규장각 의궤를 발견해 오랜 기간 반환 운동을 벌였다. 그 결과 한국은 2011년 6월 프랑스 정부로부터 297권의 외규장각 의궤를 145년 만에 대여 형태로 돌려받을 수 있었다. 김 복원가는 스승이 타계한 11월 23일을 잊지 않고 매년 기리고 있다. 지난 11월 18일에 컨퍼런스를 개최한 것도 그 연장선이다.

故 박병선 박사와의 인연이 당신을 복원과 한지 지킴이의 길로 인도한 것 같다.

김민중 박사님을 도우면서 한국 문화의 우수성을 깨달았고 한편으론 복원 분야에 다가갈 수 있었다. 다른 문화와의 차별성을 알게 되면서 한국 문화에 푹 빠졌고 박사님 타계 후 내 나름의 길을 모색한 것이 복원 분야였다. 복원 작업에 일본 종이인 화지를 이용하고 있더라. 한 번은 한지를 가져갔더니 이 멋진 화지는 어디서 났냐고 묻는 거다. 한지를 화지라 부르는 것이 기분 나빴다. 그때 한지로 박사님을 다시 만났구나 싶은 게 이 길로 가라는 계시같이 느껴졌다.

그간 참여한 복원 작업을 소개한다면.

김민중 막시밀리언 2세의 책상, 로스차일드 콜렉션, 9세기 코란 등을 복원했다. 가죽인 코란, 나무로 만든 가구 등 박물관에 있는 모든 예술품 복원에 한지가 이용됐고 이를 통해 한지의 우수성을 알리려 했다. 코란은 양피지로 된 아랍 문화의 성물이다. 이슬람 문화권에서 복원 의뢰가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둔, 어찌 보면 전략적인 선택이라 할 수 있다.

마지막 질문이다. 복원가를 꿈꾸는 후배에게 조언한다면.

김민중 인내심이 필요하다. (웃음) 복원 분야는 인문과 과학의 결합이라고 할 수 있다. 너무 문화, 예술적으로 다가가면 힘들어진다. 이공계적인 논리와 마인드도 갖춰야 한다. 문화재의 가치에 대한 이해와 존경심은 특히 중요한 덕목이다. 실력 없거나 문화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로 섣불리 덤빈다면 그 순간 문화재가 파괴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mail:eunyoung.park@movist.com]글 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m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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