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대본을 보자마자 모방범죄 이야기가 나오겠구나, 행여나 실수한다면 심하게 야단맞겠다, 공개를 앞두고 터진 ‘n번방’ 사태에 부담감은 더욱 커졌다”…
<인간수업> 연출을 맡은 김진민 감독이 털어놓은 솔직한 마음이다. 김 감독은 청소년 드라마를 한다면 웃기면서 밝은 이야기를 하고 싶은 막연한 바람이 있었다. 하지만 평소처럼 역시 센 이야기가 들어왔다. 지상파에서 다루기 힘든 소재를 앞에 두고 김 감독은 고민에 휩싸였지만, 답할 수밖에 없었다. “연출 제안이 왔을 때 사회구성원으로서 역할을 다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성범죄 관련 이슈를 공론화하는데 <인간수업>이 좋은 쪽으로 기여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희망하는 김 감독을 화상으로 만났다.
Q1. 공개 후 반응이 뜨겁다. 인상적인 반응은. 또 작품이 전달하고자 한 메시지는.
스스로 잘 찾아보지는 않는데 지인이 링크를 걸어줘서 좀 봤다. 여러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여지가 큰 데 다행히 좋은 쪽으로 해석하는 것 같아 진심으로 감사하다. 메시지의 경우 작가와 제작진 모두가 전하고자 한 것은 있지만, 해석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수업>의 주제가 사회현상과 맞물려 있다 보니 내가 ‘이러이러한 메시지’라고 특정해 말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시작할 때부터 나쁜 사람에게 이유를 달아 만들어 준다거나 나쁜 사람이 죗값을 피하는 모습을 재미로 이용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확실했다.
Q2. 호불호가 갈리지만 파격적이라는 평이다. 기존 지상파라면 다루지 못할 소재로 넷플릭스라서 가능했다는 게 중론이다.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이지만, 어떤 형태로든 청소년이 접할 수 있다. 모방 범죄의 우려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 같다.
지상파는 불특정 다수가 언제든 시청하는 채널이라 파격적이고 충격적인 소재는 제작단계부터 피하라는 불문율이 있다. 재미나 흥미를 위해서가 아니라 작품상 필요해도 불편할 수 있는 소재는 아예 피해간다. 이번엔 불편하지만, 우리 드라마가 전달하는 메시지가 있기에, 대본을 잘 표현할 수 있는 방식으로 연출했다. 또 그 과정에서 일부러 선정성과 파격성을 보이려 전혀 의도하지 않았다.
처음 대본을 읽자마자 모방범죄 이야기가 나오겠다고 생각했다. 대부분의 학생이 열심히 공부하고, 친구들과 우정을 나누며 살지 이렇게 범죄를 꿈꾸는 친구들은 거의 없을 것이라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우린 어떻게 보면 끝단에 있는 아이들을 다루기에 최대한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말했듯) 악한 행동에 변명거리를 만들어 주는 건 처음부터 지양했다. 범죄 행위나 악행을 한 번쯤 해봐도 되는 실수로 포장하거나 변명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연출자의 생각은 어떤 형태로든 드라마에 드러나기 때문에 자기 검열을 철저하게 했다. 또 (지적했듯이) 미성년이 볼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도 많이 고민했다. 아무리 막는다고 해도 어떤 방법으로든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오해의 소지를 제공해 놓고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이에 깊게 고민했다. 전체적으로 권선징악적인 의미를 담고 있고, 왜곡해 받아들이지 않기를 바랐으나 극 중 그런 요소가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Q3. 흡연, 욕설, 성인용품, 조건만남 등 초반 수위가 높은 편인데 비해 이후 남녀 주인공들 간에 신체 접촉 등 선정성이 전혀 없다. 경계를 잘 지켰다고 본다.
표현 수위는 청각과 시각에 따라 조절했다. 피해갈 수 있는 부분과 없는 부분이 있어 반복적으로 보여주지 않되, 확실하게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필요한 장면은 심플하게 내보이자고 정리했다. 이미지화시켜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려 했다. 그들의 언어와 행동이 정제되지 않았더라도 그대로 표현해 사실감 있게 전달하려 했다. 또 쓸데없이 욕을 남발하지 않으려 했다. 아이들의 일상을 관찰해보면 욕을 항상 하는 게 아니다. 할 때도 많지만 하지 않을 때도 많거든. 그런 면을 적절히 배치하려 했다. 드라마의 색을 만들기 위해 시각적으로 무언가를 가져와 자극하려는 의도는 없었다. 미술팀이 준비한 것 그대로 촬영한 것인데 보는 입장에 따라 불편할 수 있다.
사실 처음 대본을 볼 때 성매매가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선정적인 면이 없어 안심했었다. 남성 감독 입장에서 무의식적으로라도 자칫 왜곡할 수 있기에, 진한새 작가에게 앞으로도 없으면 좋겠다고 하니 없을 거라고 하더라. 만약 있었다면 우리 작품에 전혀 도움도 안 됐을 것이고 연출할 자신도 없었거든. 하지만 소재가 소재다 보니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작가의 행간을 읽어내 적절하게, 즉 드러나지도 사라지지도 않은 수준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시청자(관객)가 너무 불편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지금도 계속 가지고 있다.
Q4. 연출을 맡기까지 부담감이나 결정에 망설임은 없었나.
소재 자체가 민감하고 과연 잘 할 수 있을지 두려웠으나 누군가 해야 할 이야기라 놓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컸다. 만약 청소년 소재를 다룬다면 공부나 그런 것이 아닌 웃기면서도 즐거운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그간 필모 덕분인지 센 작품이 흘러오더라. (웃음) (기자 주 김진민 감독은 <개와 늑대의 시간>, <달콤한 인생>, <로드 넘버원>, <무신>, <결혼 계약> 등을 연출함) 우리 드라마가 지상파에서 하기 힘든 이야기이고, 내게로 흘러왔다면 연출로 답하는 것이 사회구성원의 한명으로서 그 역할을 다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Q5. 공교롭게도 <인간수업>이 공개되기 얼마 전 ‘n번방’ 사태가 터졌다. 연일 성범죄 관련 뉴스를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던가.
흔히 상상력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한다고 하는데, 그 말을 실감했다. 현실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잔인하거나 상상을 뛰어넘거나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으로 흘러간다. 관련 성범죄가 발생하고 있을 거로 막연히 추측했지만, 실제로 밝혀져 보도되는 것을 보니 개인적으로도 충격이 컸다. 또 과연 이것이 끝일까, 또 다른 시작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드라마보다 훨씬 더 망칙하고 희한한 ‘n번방’ 현실에 <인간수업> 공개를 앞두고 한편으로 부담이 많이 됐다. 내가 실수로, 잘못해 메시지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면 심하게 야단맞겠다는 불안감도 있었다. 또 관객의 판단에 따라 이야기에 대한 호불호가 많이 갈리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만들면서 어떤 자극적인 부분에 끌려 시작한 것이 아닌 데다, ‘n번방’과 다르지만 연관된 이야기라 <인간수업>이 관련 이슈를 공론화하는데 좋은 쪽으로 기여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Q6. 진한새 작가와 만남은 어땠나.
내 나이대 연출가에게 송지나 작가는 대한민국 드라마의 역사를 써 내려온, 그야말로 외경의 대상이다. 그분의 아들인 것을 알고 만났지만, 글은 글로만 보려 노력했다. 처음 글을 접하고 단순히 치기 어리게 쓴 글이 아니라 방법적, 표현적으로 치열하게 고민해서 완성한 결과물이라고 느꼈다. 무엇보다 글의 솔직함에서 오는 강한 힘이 좋았고 뭔가를 전달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드라마를 꼰다거나 누군가를 이용하지 않으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이런 소재를 다룸에 있어 일부러 그런다면 위험 요소가 크고, 그랬다면 내 스타일과도 안 맞았기 때문에 연출하기 힘들었을 거다. 실제 만나보니 생각보다 더 재미있는 정신세계를 지닌 친구더라. (웃음)
Q7. ‘지수’(김동희), ‘규리’(박주현), ‘민희’(정다빈), ‘기태’(남윤수) 각기 개성이 뚜렷한 캐릭터인데 모두 신인을 캐스팅했나. 연기 지도는. 또 최민수, 김여진, 박혁권 등 베테랑 연기자가 확실하게 중심을 잡아주는 인상이다.
캐스팅을 진행하면서 오지수 같은 친구가 걸어올 것 같다고 농담했는데 정말 김동희가 우리에게 왔다. 당시 비디오 오디션을 진행 중이었는데 <스카이캐슬>에 출연 중이던 김동희가 영상을 보내왔다. 그 사실 자체로 신기했는데, 직접 보니 ‘지수네!’ 이런 느낌이었다. 무기력해 보이면서도 그 나이대의 에너지를 담고 있는 친구로 내가 상상했던 이미지 그대로였다. 컷과 컷 사이에 숨어 있는 일상의 모습을 보고 (내가) 오히려 지수 캐릭터를 구축해 나갔다. 치열하게 연습하고 집중하는 모습을 보면서 쉬운 역이 아니지만 잘 해내겠다고 확신했다.
감독이란 배우의 연기를 만드는 게 아닌 그들이 지닌 잠재력을 터뜨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조력자일 뿐이다. 모든 것은 배우 개개인의 역량에 달렸다는 게 평소 지론이다. 단지 어린 배우들이라 보통 때 구사하는 목소리보다 좀 더 부드럽게(?) 하기 위해 노력했는데, 실제 그렇게 못한 것 같다. (웃음) 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하는 과정을 통해 연출하는 나나 배우나 모두 스스로 답을 찾아 나가려 했다. 지수, 규리, 민희, 기태 모두 배우들 간에 합과 에너지가 좋았다. 또 주인공 네 인물뿐 아니라 분량이 적은 학생도 전부 내용을 숙지한 후 의사를 확인하고 진행했다. ‘왕철’역의 최민수 선배를 비롯해 다른 배우에게는 아이들이 주도적으로 끌어가는 서사라 그들에게 포커스가 맞춰질 것이라고 얘기했고 그럼에도 기꺼이 참여해 주셨다. 덕분에 지금 같은 모습으로 완성할 수 있었다.
Q8. 말투와 행동 등 비행 고등학생을 날 것 같은 모습을 잘 묘사하는데 참고한 것은. 또 청소년 문화를 접한 한 후 인식의 변화는.
진 작가는 현직 학교 선생님인 친구와 이야기를 많이 나눴고, 아이들이 사용하는 말투는 인터넷을 참고했다고 들었다. 나는 배우들이 20세 이상이면 좋겠다고 미리 고지했고, 그들에게 고등학교 시절이 어땠는지 의견을 물어보곤 했다. 말투나 조사 하나하나에 얽매이기보다 배우들에게 지나온 시간을 떠올려보고, 요즘 일상 대화가 어떤지 편하게 의견을 제시해 달라고 했다. 문서 취재는 아니지만, 오디션을 통해 어린 친구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오디션을 많이 봤는데 그들에게 쪽대본을 준 후, 그 반응을 보는 게 아이들의 현실을 이해하는 데 크게 도움됐다.
Q9. 돈과 성공에 집착하는 부모, 아들이 모은 돈을 훔쳐 달아나는 아버지, 무사안일주의 경찰, 미성년과 조건 만남 하는 남녀 성인 등 기성세대의 치부가 곳곳에서 드러난다.
진 작가가 기성세대를 드라마 속에 곳곳에 정확하게 포진시켰고, 그 역할도 명확하게 부여해 사회현실과 맞닿게 했다. 한때 유행했던 어른들의 책임 방기, 어른들의 무기력함과 이에 대해 무시 등의 시선만을 담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두 부류의 경찰, 노력하나 벽을 허물지 못하는 선생, 아이를 방치하는 아버지 등 그들을 냉소적으로 바라보기보다, 사회에서 책임질 위치에 있는 어른들의 능력에 관한 의문을 내포하고 있다고 파악했다. 일부러 동화를 쓰려 하지도, 일부러 냉소적인 시선을 드리운 것도 아닌 마치 줄타기하듯이 진 작가가 칼날 위에 올라 글을 썼다고 생각한다. 어른들의 잘못이나 무책임을 묻는 데 집중하기보다 어떻게 해야 현재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겠냐는 문제의식을 던진다고 생각했고 나역시 이에 동의했다.
만약 어른의 역할이 더 커졌다면 <인간수업>은 내 친구들의 드라마가 아니라 어른들에 의해 아이들의 세상이 바뀌는 드라마로 남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드라마의 의미가 없어진다. 철저하게 아이들의 드라마이고 싶었고, 어른들이 그 선까지만 역할 해주는 드라마이길 바랐다. 진 작가가 마지막까지 그 부분을 잘 반영했다고 생각한다.
Q10. 결말을 놓고 의견이 다양하게 갈린다. 시즌2를 기대한다는 반응도 많은데 개인적인 견해는. 또 <인간 수업> 공개 후 후련할 것 같은데 요즘 소소하게 행복한 일은.
결말의 해석은 그야말로 관객의 몫이다. 열린 결말이라기보다 보고 난 후 각자의 마음에 남는 감상이 있을 거다. 찜찜, 통쾌, 의문 등등 그대로 온전히 가져가려는 의도가 아닐까. 진 작가는 나름의 결론을 제시했다고 본다. 시즌2 관련해서는 전적으로 넷플릭스와 크리에이터에 달린 것으로 내 몫이 아니다. 만든 지 꽤 됐는데 공개해 후련하다. 행복한 일은 코로나19 공포가 좀 약해진 것, 아이 키우는 입장에서 반갑다.
[mail:eunyoung.park@movist.com]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mail]
무비스트 페이스북(www.facebook.com/imovist)
사진제공. 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