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이금용 기자]
묵묵하게 범죄 조직의 뒤처리를 하며 살아가던 '태인'(유아인)과 '창복'(유재명)은 얼떨결에 유괴된 아이를 맡게 되며 의도치 않게 또다른 범죄에 연루되게 된다. 죄질이 나쁜 흉악범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보다 더 사람냄새가 풀풀 풍길 수가 없다. 범죄를 저지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동네 어르신에게 달걀을 챙겨주고, 시체를 매장할 땐 옷이 더럽혀지지 않게끔 유아용 우비를 입는다. 이렇듯 <소리도 없이>의 ‘창복’은 콕 집어 정의하기 어려운 인물이다. ‘창복’ 역의 배우 유재명은 “<이태원클라쓰>나 <비밀의 숲>과 마찬가지로 이번 작품에서도 전형적인 캐릭터성을 벗어나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각종 촬영 일정으로 바쁜 와중에 <소리도 없이>를 개봉하게 됐다.
꽤 많은 작품을 해왔지만 이번만큼 관객 분들의 반응이 어떨지 궁금한 건 처음이다. 그 어떤 영화보다 호불호가 갈릴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웃음) 촬영을 끝낸 지 1년 정도 지나 다시 보니 마치 새로운 영화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홍의정 감독님은 인물의 감정이나 상황을 상세하게 묘사하기 위해 대본에 지문을 많이 활용하는 편이라 글이 주는 무게감이 묵직했다. 그래서 작품 자체가 무겁고 짙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완성된 영화를 보니 느낌이 전혀 달랐다. 유머러스한 부분도 있고 색감도 다양하더라.
앞서 드라마 <비밀의 숲>과 <이태원클라쓰>로 인지도가 순식간에 높아졌다.
예전에 <이상한 일들의 연속>이라는 연극에 선 적이 있다. 이번 영화도, 그리고 내 삶도 이상한 일들의 연속인 거 같다. (웃음) 동료 배우들 중 나보다 연기 잘하는 사람은 굉장히 많다. 또 방송에 알려지지 않은 실력파 배우들도 많다. 나는 운 때를 잘 타 대중의 눈에 든 게 아닌가 싶다. 또 내게선 사람 냄새가 나지 않나. (웃음) 연기가 아닌 것 같은 연기를 보여주려는 노력이 대중에게 전달된 것 같다.
갑작스러운 관심이 부담스럽진 않나.
전략적으로 흥행할 법한 작품을 선택한 건 아닌데 의도치 않게 주목을 받고 결과가 좋으니 겁이 나면서도 더 열심히 할 수밖에 없다. 요즘은 사람들이 정말 많이 알아본다. 20년 가까이 부산의 연극판에 머물며 연습실과 극장, 술자리만 번갈아 다니던 내가 영화에 진출하고, 대중의 관심을 받게 될 줄은 전혀 몰랐다. 뜻밖의 사랑에 매사 최선을 다해 감사하며 지내고 있다.
두 드라마를 기점으로 찾는 곳이 많아졌을 텐데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이 있다면.
출연 제안을 받을 때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게 시나리오다보니 대본이 지닌 매력을 중시하는 편이다. <소리도 없이>는 익숙하지만 무겁고 어둡기도 한 소재를 다룬다. 동시에 시종일관 상황이 아이러니하게 역전되고 비틀리며 생기는 독특한 매력이 있다. 시나리오를 읽고 나서 이번 영화에 같이 출연한 동료 배우 유성주와 멋진 시나리오라며, 어디서도 보지 못한 특별한 이야기라고 밤새 통화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감독님이 그리는 세계관이 좋았다. 지극히 현실적이지만 영화는 현실보다 더 감각적이고 다양한 매력으로 완성된 거 같다.
홍의정 감독과의 작업은 어땠나.
시나리오만 읽고 막연히 감독님이 고집이 세고 주관이 뚜렷한 사람일 거라고 예상했다. 왠지 무섭고 센 성격일 것 같기도 하고. (웃음) 그러고 나서 감독님이 어떤 사람인지 너무 궁금해서 주변에 물어물어 전작 <서식지>를 찾아보게 됐다. 통일된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 단편인데 그 영화도 만만치 않게 오싹하더라. 그런데 실제로 만난 감독님은 성격도 유하고 소녀 같이 밝은 사람이다. 밤새 얘기를 해도 이야기가 끊이지 않을 정도로 레퍼토리가 다양하고 아는 것이 많다. 나이를 떠나 정말 재밌는 친구를 만난 거 같았다. 연출자로서도 잘 맞았다. 감독님은 수평적인 관계와 소통을 중시해서 대부분의 의견을 수용하려 한다. 그렇게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반영해서 완성된 장면이 마음에 들면 어린아이처럼 좋아하신다. (웃음)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지만 나는 그런 점이 더 좋았고 그래서 현장이 즐거웠다. 
유아인 배우와도 처음 호흡을 맞췄다. 시사회에서 연기를 즐기는 그의 모습이 부럽다고 밝히기도 했다.
위계 없이 사람을 대한다는 게 유아인의 가장 큰 특징이 아닐까 싶다. 자유분방하고 주체적이다. 남의 말을 열린 마음으로 수용할 줄도 안다. 그래서 그런 연기를 할 수 있는 거 같다. 그의 젊음과 태도가 멋있고 부럽다. 아무래도 나는 나이도 있고, 연극을 오래하다보니 보수적으로 변한 것 같다.
그렇다면 그가 연기한 ‘태인’은 ‘창복’에게 어떤 존재인가.
없으면 심심한 존재다. (웃음) 먹고 살기 바빠 곁에 사람을 둘 여유가 없는 ‘창복’에게 ‘태인’은 아들 같기도, 동생 같기도 한 유일한 동반자다.
두 사람은 피가 섞이진 않았지만 가족처럼 그려진다. ‘태인’이 말이 없고 반항적인 아들 같다면 ‘창복’은 잔소리쟁이 아빠 같다. (웃음)
어둡고 무거운 소재와 배경인지라, ‘창복’이라는 인물을 통해서 영화가 관객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노력했다. 창복’은 태인에 비해 스스로를 더 자유롭게 드러내지만 그다지 의미 있는 말을 하지는 않는다. 중요하지 않은 말을 중요하게 하는 게 포인트다. (웃음)
대사가 전혀 없는 상대 배역과 합을 맞추는 게 어렵진 않았나.
작업자 입장에서 쉬운 작품은 아니었다. ‘태인’이 말이 전혀 없으니 내 대사가 자연스레 많아질 수밖에 없었고 전체적인 완급을 혼자 조율해야 했다. 게다가 리액션이 조금만 늦어져도 흐름이 끊겨서 대사를 치는 타이밍도 잘 맞춰야 했다. 아마 전문용어가 많거나 냉철하고 이성적인 내용의 대사였다면 부담이 많았을 거다. 대사량이 많긴 했지만 이성이나 논리가 아니라 생활형 대사들이라 아무 말을 해도 감독님이 좋아하시더라. (웃음)
그런 지점은 바로 직전에 맡았던 두 드라마의 ‘장 회장’, ‘이창준’ 역과는 정반대로 보인다.
꼭 그런 것 만은 아니다. <이태원클라쓰>에서 ‘장 회장’ 역할에 도전했던 건 천편일률적인 회장 이미지를 벗어나 그 사람이 지닌 색다른 면모를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장 회장’이나 <비밀의 숲>의 ‘이창준’이나 겉으로는 분명하고 뚜렷한 캐릭터지만 나는 거기에 그 사람만의 사연과 외로움, 속내를 알 수 없는 복잡미묘한 감정 같은 것들을 더 넣고 싶었다.
이번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로 캐릭터의 다양한 면을 선보이고 싶었다. ‘창복’은 비록 비루하고 남루한 삶을 사는 데다 신체적인 결함이 있는 사회적 약자의 위치지만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 또 범죄를 저지르지만 그 안에 악의는 없다. ‘태인’과 라면을 끓여 먹으며 나누는 대화나 ‘초희’(문승아)에게 하는 행동을 보면 은근히 밝고 귀여운 면모도 있다. 이 모든 걸 종합해 그 역시도 평범한 사람이라는 게 드러나길 바랐다. 연기뿐만 아니라 분장, 말투, 의상까지 복합적인 방식으로 부조화를 표현하는 데 중점을 뒀다. 아이러니한 인물이고 배경이나 동기가 많이 생략돼 불친절하다고 느껴질 수 있지만 흐름을 따라가다보면 자연스럽게 이해될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이 이해한 ‘창복’은 어떤가.
한마디로 죄책감 덩어리인 인간이 아닐까. 범죄를 짓고 죄책감을 털어놓을 곳이 없다보니 종교에 더더욱 의존하게 되기도 하고. 극 중 “감사하다.”, “미안하다.”는 말을 달고 다니는 것도 그의 약하고 인간적인 모습을 잘 드러내는 설정이다. 또 마냥 사람 좋은 구석이 있어서 사기를 당하기도 하고 하는 일마다 번번히 실패한다. 그런데 ‘태인’과 청소부 일을 하게 되며 일이 좀 잘 풀린다고 생각한 거 같다. (웃음) 
방금 언급한 ‘창복’의 전사는 극 중에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삶의 이력이 사람의 습관을 만들고 배우는 그런 디테일을 잡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인물의 전사가 없으면 본능적으로 불안하다. 중간에 여러 설정을 마련하긴 했지만 최종적으로는 모두 빠졌다. 감독님과 미팅을 하고나서 여기선 전사를 보여주는 게 중요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어째서일까.
그게 홍의정 감독님의 색깔이다. 무엇보다 현재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거 같다. 상징과 이미지가 많아도 이야기 자체는 건조하고 담백하지 않나. 그래서 나 또한 시나리오에 따라 지나간 과거보단 감각, 육감, 직감으로 현재를 이해하고, 지금을 열심히 살아가는 인물을 보여주려고 했다.
상징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창복’에게 신앙은 어떤 의미라고 생각하나.
이런 말하긴 조심스럽지만 신실한 신앙인이라고 다 선한 사람은 아니라고 본다. 반대로 종교가 없다고 악인인 것도 아니다. ‘창복’은 그저 자신의 죄책감을 덜고 의지를 할 곳이 필요한 나약한 인간이었고 그게 종교가 됐을 뿐이다. 그러니까 일종의 자기합리화를 위한 수단인 거다.
마음에 드는 장면을 꼽는다면.
여러 장면이 떠오르지만 ‘창복’의 엔딩이 인상 깊다. 인생을 살다보면 작은 선택 하나가 불행의 씨앗이 될 때가 있지 않나. 그런 의미에서 그의 엔딩은 완벽하다. 남의 것을 탐하면 불구덩이에 빠진다는 것을 몸소 보여준 셈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영화가 말하는 지점과도 완벽하게 일치한다고 생각한다.
구체적으로 영화가 전하고자 한 메시지는 무엇일까.
감독님은 매일매일 선택을 내리고 그를 합리화하는 우리를 ‘창복’과 ‘태인’에 빗대 선과 악의 모호함을 애기한 것 같다. 매일 뉴스를 확인하지만 요즘은 내가 믿고 있는 것이 틀렸을 수도 있다는 의심이 든다. 내가 보는 것만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 그래서 일방적인 선택을 하지 말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
마지막 질문이다. 최근 소소하게 행복한 순간이 있다면.
가족들이 일어나기 전에 아침 일찍 일어나서 청소를 한 뒤 산책 나가는 걸 좋아한다. 가족이 깨면 또 전쟁 같은 일상이 시작되기에 유일하게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좋다. (웃음) 천원짜리 편의점 커피를 마시며 혼자 있을 때, 그때가 좋다.
사진제공_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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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묵하게 범죄 조직의 뒤처리를 하며 살아가던 '태인'(유아인)과 '창복'(유재명)은 얼떨결에 유괴된 아이를 맡게 되며 의도치 않게 또다른 범죄에 연루되게 된다. 죄질이 나쁜 흉악범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보다 더 사람냄새가 풀풀 풍길 수가 없다. 범죄를 저지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동네 어르신에게 달걀을 챙겨주고, 시체를 매장할 땐 옷이 더럽혀지지 않게끔 유아용 우비를 입는다. 이렇듯 <소리도 없이>의 ‘창복’은 콕 집어 정의하기 어려운 인물이다. ‘창복’ 역의 배우 유재명은 “<이태원클라쓰>나 <비밀의 숲>과 마찬가지로 이번 작품에서도 전형적인 캐릭터성을 벗어나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유아인 배우와도 처음 호흡을 맞췄다. 시사회에서 연기를 즐기는 그의 모습이 부럽다고 밝히기도 했다. 
방금 언급한 ‘창복’의 전사는 극 중에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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