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보호종료아동 ‘아영’(김향기)은 집도 생활도 학업도 모두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보육원에서 함께 자란 친구의 소개로 아영은 홀로 아기를 키우는 ‘영채’(류현경)를 소개받고 그 아들 ‘혁’의 베이비시터가 된다. <아이>는 너무 일찍 어른이 돼 버린 아이와 어른이지만 버거운 현실에 지친 초보 엄마의 만남과 관계를 따라가는 이야기다. 따뜻한 정서가 흠뻑 배어 나오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이>가 근거 없는 낙관을 앞세우는 작품은 아니다. 상처를 알기에 상처를 위로한다. 각본과 연출을 맡은 김현탁 감독은 <아이>를 통해 그 쉽지만 어려운 감정의 발현과 실천의 현장을 제시한다. ‘고(苦)’로 대변되는 상처 가득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홀로 발버둥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공감하고 연대해야 조금이나마 살아갈 희망이 있다는, 나아가 또 하나의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김 감독을 만났다.
<아이>가 장편 데뷔작인데, 공개 후 지인들이 뭐라고 하던가. (웃음)
음, 가장 많이 들은 건 ‘고생했다, 수고했다’는 말이었고 ‘평소에는 안 따뜻한 사람이 (용케) 이런 영화를 찍었다’고들 하더라.(웃음) 또 배우의 연기가 좋았다는 칭찬도 많았다.
영화의 감상은 각자의 몫이겠지만, ‘따뜻함’이라는 정서는 확실하게 공유하는 것 같다. <아이>는 보호종료 아동 ‘아영’(김향기)과 싱글 맘 ‘영채’(류현경), 그 아들 ‘혁’이 가족이 돼 가는 과정을 그린다.
사회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인물들과 교과서에는 나오지 않은 가족의 형태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쓸 ‘고(苦)’로 대변되는 상처 가득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홀로 발버둥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공감하고 연대해야 조금이나마 살아갈 희망이 있지 않을까. 동시에 나아가 또 하나의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평범하지 않은 가정에서 아이가 잘 자랄 수 있을지 혹은 잘 키울 수 있을지라는 의문이 <아이>로 이어졌다고 밝힌 바 있다. 그간의 보고 들은 경험을 투영했다고 했는데 좀 더 들려줄 수 있나.
부모님이 어렸을 때 이혼해 어머니와 살았다. 싱글맘인 어머니에게 여자 혼자 키울 수 있겠냐고 이야기하는 것을 종종 듣곤 했었다. 어머니가 대구 시내에서 가게를 해서 주변 장사하는 집의 자녀들과 자주 어울렸고 그러면서 다양한 가족의 형태와 사연을 접했다. 어렸을 때 내 미션은 극 중 ‘아영’처럼 부모 없는 티를 안 내는 것, 즉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것처럼 보이는 거였다. 반듯하게, 잘 사는 것 같이 보여야 한다는 압박감이 어느 정도 있었다. 당시 주변에 어머니를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는데, 영화에서나마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싶었다.
상처를 아는 사람이 그 상처를 이해하고 치유한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보육원에서 자란 ‘아영’은 아동학과를 전공하는데 그 이유는 뭘까.
실제로 보호종료 아동들이 대학교에 진학하는 경우 사회복지나 아동, 유아교육 등 관련 학과를 많이 선택한다고 한다. 몸소 느꼈기에 그 어려움을 알고 도와주고자 하는 경향이 큰 것 같다. 가족과 양육의 의미를 보여주는데 아동학과가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또 아영은 스킨십이나 애착에 부족한 면이 있는데 그런 성격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고자 한 설정이기도 하다.
‘아영’역의 김향기 배우는 보호종료 아동을 ‘세상을 좀 더 빨리 마주한 친구’일 뿐이라고 동정으로 흐를 수 있는 시선을 일축하더라.
취재하면서 보니 보호종료 아동들은 자신들이 너무 어둡고 암울하게 그려지는 것에 대한 우려가 크다는 것을 알았다. 보호종료 아동이라는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게 싫은 거지. 나 역시 누군가가 동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제일 싫었어서 교감이 잘 됐었다. 자란 환경에서 오는 위축감과 어떤 트라우마가 있을 순 있겠지만, <아이>에서는 그런 면을 부각하기보다 아영이라는 캐릭터가 주어진 상황마다 어떻게 대처하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사실 자료 조사한 것을 (향기) 배우가 요청하면 주려고 모아뒀는데, 안 물어보더라. 그래서 캐릭터의 전사를 쌓거나 관련 자료를 참고하지 않고 아영이라는 인물로만 접근했다.
김향기 배우는 아역부터 최근의 <신과함께> 1, 2편과 <증인>까지 장르를 넘나들며 다양한 얼굴을 보이고 있다. 이번엔 그의 어떤 면을 끌어내고 싶었나. 시나리오 단계부터 배우를 염두에 두고 쓴 건가.
주제넘게 끌어내다니! (웃음) 처음 리딩하면서 느낀 점은 (향기) 선생님이 – 나이는 나보다 한참 어리지만, 업계 경력으로는 대선배이니- 정말 멋있는 사람이라는 거였다. 평소에 관객으로 그를 볼 때는 매력적이라고 생각했지, 멋있다는 감정은 없었거든. 근데 작업해보니 정말 멋있더라. 말이 많지 않아도 분위기를 이끌고, 몇 개의 장치만 주면 연기로 끌어가는 분이었다. 사실 글을 쓰는 단계에서 배우를 염두에 두고 쓰진 않는다. 어떤 선입견을 갖지 않기 위해서고 한편으론 이제 첫 장편을 낸 입장에서 글(시나리오)을 쓰는 작업이 부질없는 작업이 될 수도 있기에 그것에 대한 약간의 두려움이 작용해서 일 수도 있다.
류현경-김향기 배우의 연기 호흡이 영화가 지닌 메시지를 한층 깊고 선명하게 만들더라. 류현경 배우는 시나리오가 워낙 촘촘했다고 하던데, 젖먹이 아기를 둔 초보 엄마의 상황을 어떻게 그렇게 디테일하게 묘사할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 (웃음)
오래 쓰다 보니 자료조사가 쌓이고 쌓인 결과라고 할까. 결혼해 아빠가 된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또 여자친구들로부터 출산과 양육에 관한 생생한 경험을 자주 들었다. 시나리오를 써서 보여주면서 조언을 수시로 들었었다. 영채가 아들 ‘혁’이 하도 울어서 숟가락을 던지는 장면이 있는데, 심하지 않냐고 물으니 솔직히 그보다 더할 때도 있다고 하더라.
아영은 감정을 표현하기보다 참고 안으로 삭이는 성향이다. 그런데 후반부 보육원에서 함께 자란 친구 ‘경수’가 극단적인 선택 후 ‘무연고자’로 처리된다고 하자, ‘우리가 가족이니 장례식만 치르게 해달라’면서 차의 앞을 가로막는 등 격렬한 감정을 쏟아낸다. 아영의 심리를 드러내는 것 이상의 의도가 있을 것도 같은데, 어떤가.
극단적 선택과 그와 관련한 시퀀스를 넣는 것에 대해 생각이 많았다. 일차적으로는 아영에게 가족이란 어떤 존재일지 보여주고 이후 아영이 ‘혁’을 데려오기 위해 입양브로커를 찾아가는 동기를 쌓는 게 의도였다. 자료를 조사하면서 10대와 20대 초반의 보호종료 아동의 자살률이 꽤 높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외국에 비해 그 자료나 실태 조사가 부족하고 따라서 사회적으로 인식이 약한 게 우리 현실이다. 보호종료 아동을 소재로 끌어온 이상 그들이 겪는 삶의 어려움도 드러낼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 고민 끝에 넣었다.
가장 좋아하는 장면과 힘들었던 장면을 꼽는다면.
특히 좋아하는 두 장면이 있다. 하나는 영채가 한바탕 울고 난 후 소파에 누워있는 모습이다.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뒷모습을 포착한 건데 당시 쓸쓸한 영채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또 하나는 아영이 경수를 떠나보낸 후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장면이다. 친구가 그렇게 세상을 떠났는데도 불구하고 일상으로 돌아간 아영의 모습이 너무 슬펐다. 촬영하면서 힘들었던 장면은 영채가 ‘혁’에게 소리쳐 아기가 울었을 때다. 나도 스탭들도 가장 힘들어했다. 아기가 우는 데도 달래 줄 수 없다는 게, 우는 아기를 촬영한다는 게 참… 혁을 쌍둥이가 번갈아 연기했는데 항상 부모님이 옆에 계셨거든. 부모님이 집에서는 더 울 때도 있다고, 괜찮다고 오히려 나를 위로하는 데 감사하면서도 참 힘든 감정이었다.
김향기, 류현경 배우 모두 아주 능숙하게 아기를 잘 보던데, 그런 사연이 있었군! 부모님이 현장에 함께해서 정말 편안하게 촬영했다고 이구동성으로 감사를 표하더라.
이상하게 향기 선생님한테 아기가 편안하게 안겨 있었다. 울지도 않고 마치 익숙한 품인 듯한 모습이었다. 현경 선배는 아기를 정말 잘 돌본다. 조카를 본 경험이 원체 많기도 하고 돌보고 놀아주는 게 진짜 능숙하다.
<아이>의 영어 제목이 ‘I’ 다. 타이틀이 의미하는 바를 짚는다면.
시나리오를 다 쓰고 나니 혁, 아영, 영채는 물론 등장 인물들이 다 ‘아이’처럼 느껴졌다. 어른스럽지 못한 세상에서 그들이 잘 커 나갈 수 있도록 세상이 좀 더 어른스러워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어 제목 ‘I’는 영채와 아영 둘 다 자립하려고 노력하는 인물이라 알파벳 형상으로도 한 문자로도 캐릭터를 표현하는 데 잘 어울렸다.
어른스러운 사회란 어떤 사회인가.
음… 사회로부터 소외받는 사람들이 어떤 편견이나 선입견 없이 나설 수 있는 사회 나아가 편견이나 선입견이 그들에게 어려움으로 작용하지 않는 사회가 아닐까 한다.
2015년부터 염두에 뒀던 시나리오로 마침내 첫 장편을 완성했다. 당신에게 영화란 무엇인가.
어떤 때는 영화와 삶을 분리시키기도 했는데 지금은 영화란 삶의 일부분이고, 내가 하고 싶고 만들고 싶은 이야기를 흥미롭게 표현하는 매체다. 비주얼, 사운드, 다양한 미장센으로 흥미롭게 구현하고 싶다. 불을 끈 채로 문을 닫고 누군가 보는 매체인지라 연출자 입장에서는 윤리적으로 조심스러워지고 한편으로 무섭기도 하다. 앞으로 무섭기도 조심스럽기도 하지만 하고자 하는 바는 명확하게 하려고 생각한다.
준비 중인 작품이나 계획이 있다면.
얼마 전 지원프로젝트에서 피칭한 작품이 있다. 6.25 전쟁 당시 민간인 보급 부대 이야기로 어느 정도 원고가 진척된 상황이다.
마지막 질문! 최근 소소하게 행복한 일이 있다면.
코로나 국면이라 누군가를 만나러 집을 나서는 것도 미안한 시기 아닌가. 혼자 있는 시간을 어떻게 덜 외롭게 보낼지 고민하다 집도 청소하고 빨래도 하고 책도 읽고 있다. 미뤄뒀던 집안일을 하나씩 하면서 후련하기도 하고 기분도 좋고 그렇다.
사진제공. 롯데엔터테인먼트
[mail:eunyoung.park@movist.com]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m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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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종료아동 ‘아영’(김향기)은 집도 생활도 학업도 모두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보육원에서 함께 자란 친구의 소개로 아영은 홀로 아기를 키우는 ‘영채’(류현경)를 소개받고 그 아들 ‘혁’의 베이비시터가 된다. <아이>는 너무 일찍 어른이 돼 버린 아이와 어른이지만 버거운 현실에 지친 초보 엄마의 만남과 관계를 따라가는 이야기다. 따뜻한 정서가 흠뻑 배어 나오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이>가 근거 없는 낙관을 앞세우는 작품은 아니다. 상처를 알기에 상처를 위로한다. 각본과 연출을 맡은 김현탁 감독은 <아이>를 통해 그 쉽지만 어려운 감정의 발현과 실천의 현장을 제시한다. ‘고(苦)’로 대변되는 상처 가득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홀로 발버둥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공감하고 연대해야 조금이나마 살아갈 희망이 있다는, 나아가 또 하나의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김 감독을 만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