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꽃 기자]
이렇게 많은 리뷰를 받을 줄 몰랐다. 그렇게 좋은 반응일 줄도 몰랐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무브 투 헤븐: 나는 유품정리사입니다>를 연출한 김성호 감독은 세계 각국에서 SNS를 타고 전달되는 리뷰에 기쁜 비명을 지르는 중이다. <거울 속으로>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엄마의 공책> 등 오랜 시간 극장 개봉 영화 연출에 집중해왔던 그에게 개봉관 규모와 관객 수를 알 수 없는 넷플릭스와의 협업은 새로운 도전이었고, 그 끝에 거둔 결실은 국적을 넘나드는 시청자들로부터 쏟아지는 간결하지만 강렬한 리뷰들이다. ‘마스터 피스’를 언급한 해외 시청자의 반응을 전하며 미소 짓던 김성호 감독은 연일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웃고 있는 자신을 보고 딸이 읊조렸다는 귀여운 언사를 전한다. “아빠가 지금 ‘칭찬 감옥’에 갇힌 거야.”
죽은 이들의 유품을 정리하며 그 사연을 들여다보는 <무브 투 헤븐: 나는 유품정리사입니다>는 윤지련 작가가 기획하고 집필한 작품이다. 연출자로 합류하게 된 계기는.
각본이 4부까지 나왔을 때 그 내용을 받아봤다. 2019년 여름쯤이다. 원작(김새별 작가의 에세이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과 각본을 모두 읽어보고 내가 잘 연출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합류하게 됐다. 2020년 3월 코로나19 속에서 힘들게 촬영을 시작했고, 팬데믹으로 두어 번 촬영이 중단되기도 했다. 지난 해 가을 촬영을 끝냈고 연말, 올해 초까지 편집 작업을 거쳐 5월 공개하게 됐다.
어떤 지점에서 연출해볼만 하다고 판단했나.
가장 매력적이었던 건 이미 돌아가셔서 이야기될 수 없는 누군가의 사연을 전한다는 것이다. 그런 방향성 안에서 ‘좋은 이야기’를 할 수 있겠다는 희망적인 느낌을 받았다. 주변을 돌아보게 하자는 게 처음의 의도였다. 코로나19로 많은 분이 힘들어하면서 현실을 잠시 떠나거나 잊게 하는 드라마가 많아졌는데, <무브 투 헤븐: 나는 유품정리사입니다>로 평소 무심했던 아는 사람들에게 시선을 돌릴 수 있는 역할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2시간 내외의 영화만 연출하다가 50분 내외의 시리즈물 10편을 연출했다. 극의 호흡이 다른 건 물론이고 이전 화에서 다음 화로 넘어가는 구간의 적절한 편집점을 찾는 등 여러 새로운 경험을 했을 텐데.
프리프로덕션 단계부터 그동안 나와 영화 작업을 함께 했던 스태프가 대거 들어왔다. 호흡이 굉장히 긴 500분짜리 영화라고 생각하고 일해보자고 서로 이야기했다. 그야말로 영화 같은 드라마를 만들겠다는 욕심이 있었던 것 같다. 다만 극장에서 보는 영화와 달리 집 거실에서 TV로 보거나 핸드폰을 이용해 시청하는 드라마인 만큼, 시청자의 집중력을 유지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 이렇게도 편집해보고 저렇게도 순서를 바꿔보면서 의견을 많이 주고받았는데, 가장 중요한 건 보는 사람의 감정을 이입하게 하는 에너지였다. 이야기 개연성을 중요하게 두고 최적의 편집지점을 찾았다.
비정규직 청년의 사망, 치매 노인의 고독사 등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죽음이 여러 차례 등장한다. 자칫 자극적으로 보일 수 있는 소재를 연출하면서 가장 염두에 둔 점은.
너무 신파로 연출하거나 자극적인 부분을 강조하기보다는 담담하게 우리 주변 현실을 이야기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었다. 무엇보다, 시청자에게 진심으로 다가가고 싶었다. 자칫하면 오해나 편견만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돌아가신 분들의 사연도 있지만 남아 있는 사람의 사연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작품 기획상) 남아 있는 분들의 사연은 길게 그리지 못한다. 시청자가 나름대로 그분들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도록 신경을 썼다. 예컨대 (치매 걸린) 할머니가 홀로 외롭게 돌아가실 때, 나는 자기 어머니에게 무심했던 그 아들의 마음이 신경 쓰였다. 누가 잘했다, 잘못했다를 말하기 전에 현대 사회와 대도시가 지닌 소통의 단절이라는 폐해를 이야기하고, 서로에게 관심을 두는 게 어떻겠냐는 말을 하고 싶었다.
여섯 명의 고인이 등장하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잘 전달하고 싶었던 에피소드가 있다면.
편집할 때까지 가장 힘들게 고민했던 부분이 5, 6부의 경비아저씨 이야기다. (노부부의) 동반 자살이라는 게 다루기에 굉장히 어렵고 힘든 일이라, 어떻게 표현을 해야 하고 시청자가 그 부분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등 여러 논의가 있었다. 편집 면에서도 굉장히 많은 시도를 했다. 자칫하면 (경비원에 대한 갑질이라는) 소재로만 끝나버릴 수 있어서, 장례식으로 이어지는 상황으로 이야기를 끌고 나가면서 최대한 진심으로 시청자에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고 했다.
그 모든 고인의 터전을 찾아 유품 정리를 주도적으로 진행해 나가는 건 아스퍼거 증후군에 시달리는 주인공 ‘한그루’(탕준상)다. 한국의 영화 혹은 영상 콘텐츠에서 장애 있는 인물 묘사를 전형적으로 묘사해온 경향성이 있는 만큼, ‘한그루’ 캐릭터를 묘사할 때 여러 지점을 고려했을 것 같은데.
우리가 흔히 (장애 하면) 떠올리는 관습적인 형태들이 있다. ‘한그루’를 그렇게 그리기는 싫었다. 내 딸도 어릴 적 (넓게 봤을 때) 자폐 스펙트럼 안에 해당된다는 진단을 받고 여러 기관을 다니며 치료를 받은 경험이 있다. 그래서 자폐 스펙트럼 안에 속하는 다양한 형태를 자주 지켜볼 수 있었다. 그 중 ‘한그루’와 가장 잘 맞는 증상이 무엇일지, 탕준상 씨와 여러 차례 리허설을 해가며 그 모습을 찾아냈다.
죽은 이들의 애틋한 사연을 알아가며 인간적으로 변화하고 성장하는 삼촌 ‘조상구’(이제훈)에 비하면 ‘한그루’는 처음부터 끝까지 큰 변화 없는 태도를 유지한다.
그래서 어려운 캐릭터다. ‘조상구’가 전체 과정을 통해 변화하고 성장하는 지점을 그래프로 그릴 수 있을 정도의 인물이라면, ‘한그루’는 그 그래프의 모양을 꾸준히 유지하는 인물이다. 그럼에도 그 안에서 아주 미세한 변화를 보여주는 부분은 있다. 배우 눈동자의 위치, 눈빛의 변화, 미세한 미소가 굉장히 중요했다. 아주 자세히 보지 않으면 힘들 정도의 변화인데 탕준상 씨가 그야말로 ’ 한그루’화 돼 줬다. 카메라가 꺼진 뒤에도 ‘한그루’의 상태를 유지해준 덕에 좋은 장면을 얻을 수 있었다.
<거울 속으로>를 생각하면 호러, 스릴러물 연출에 일가견이 있는데 비교적 최근 선보인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엄마의 공책> <무브 투 헤븐: 나는 유품정리사입니다>를 보면 전혀 다른 휴먼 드라마 장르에서도 강점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장르라는 건 일종의 장치다. 그걸 잘 변주하면 여러 시도를 해볼 수 있다. 그런데 (같은 이유로) 일종의 패턴이 생기면서 뻔해지는 부분도 있다. 그래서 항상 새로운 걸 추구하려고 노력한다. 어떤 장르를 시도한다고 하더라도 결국 중요한 건 메시지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의 본심과 진실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 그래서 연출자로서 (장르 구분보다는) 배우의 얼굴이나 몸짓 하나가 굉장히 위대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는 거다.
직접 경험한 ‘위대한 순간’이 있다면.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의 마지막에서 이레가 “제가 개를 훔쳤어요”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그때 (메시지를 표현할 수 있는 건) 이레의 얼굴 하나밖에는 없다. <무브 투 헤븐: 나는 유품정리사입니다>에서도 마찬가지다. 상황을 감당하거나 받아들여야 하는 배우들의 연기 그리고 눈빛. 그 디테일 하나 하나가 창작자의 진심 그리고 이야기의 주제를 전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가른다고 본다. 연출자로서 그런 지점을 확보할 수만 있다면 어떤 장르 안에서든 이야기해볼 수 있을 것이다.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의 이레는 어느덧 성장해 <무브 투 헤븐: 나는 유품정리사입니다>의에피소드 마지막 편에 짧게 출연한다. ‘한그루’에게 중요한 말을 건네는데 이게 시즌 2의 힌트가 될까.
시즌 2를 위해 궁금증을 남겨 둔 부분 맞다.(웃음) 나도 시리즈가 잘 돼서 시즌2가 만들어지길 바란다.
엄청난 깜짝 출연진도 빼놓을 수 없다. 이주실, 강애심, 정동환, 이얼 등 중년 배우의 활약이 특히 작품의 온도를 따뜻하게 만든다. 지진희, 이문식, 정영주, 정애연, 임원희, 수영 등 얼굴이 낯익은 배우들도 여러 차례 등장한다. 섭외에 정성이 느껴지는데, 직접 연락을 드리기도 했나.
그동안 나와 작업한 배우들, 앞으로 내가 작업하고 싶은 배우들에게 전부 부탁드렸다.(웃음) 부탁 자체는 별로 어렵지 않다. 승낙해 주는 게 어렵지. 그런데 다들 흔쾌하게 받아들여 줬다. 프로듀서가 “감독님, (출연 성사)됐습니다! 하신대요!”라고 말할 때마다 너무 고마웠다.(웃음) 취지가 좋아서 참여하고 싶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힘이 됐다. 에피소드별로 진행되는 이야기 특성상 분량이 많지 않고 역할도 작은데 열심히 임해 주셨다. 내가 감정 이입을 하는 데 오히려 도움을 많이 받았다.
작품을 관람한 관객의 좋은 반응이 SNS를 통해 업로드되고 있다. 해외 시청자의 호평을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일 텐데.
처음에는 관객 수도 모르고 시청률이 나오는 것도 아니니까 (작품의 인기를) 체감할 수 있는 기준이 별로 없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엄청나게 많은 리뷰를 받고 있다. 각국 언어로 작성된 걸 일일이 번역해서 봐야 할 정도다. 가장 고마웠던 건 드라마가 끝나자마자 옆에 있는 가족, 친구, 아이에게 포옹을 해줬다는 내용이다. 돌아가신 엄마, 아버지, 친척이 많이 생각났다는 얘기도 있었다. 마음이 짠했다.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는 아이를 둔 부모님들이 우리 아이와 많이 닮았다고 공감하는 관점도 있었다. 이 드라마를 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심이 전달된 것 같다.
가장 기억에 남는 리뷰는.
끊을 수 없어서 정주행 했다. ‘마스터 피스’! 명작이다. 그런 이야기를 가장 많이 봤다.(웃음) 지난 해와 올 해를 지나면서 코로나19로 힘들었던 만큼 현실을 까맣게 잊게 하는 자극적인 복수 얘기나 좀비 얘기가 많았던 것 같은데, <무브 투 헤븐: 나는 유품정리사입니다>는 오히려 현실을 둘러보면서도 희망을 갖고 위안을 받을 수 있는 드라마였던 게 아닐까.
마지막 질문이다. 최근 소소하게 행복한 순간이 있다면.
리뷰를 볼 때마다 참 뿌듯하다. 이렇게 많은 리뷰를 받을 줄 몰랐고, 이렇게 좋은 내용일 줄도 몰랐다. 집에서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면서 미소 짓고 있으면 딸이 뒤로 와서 말한다. “아빠가 지금 칭찬 감옥에 갇힌 거야.”라고 말이다. 빨리 빠져나오라고 그런다.(웃음)
사진 제공_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