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이금용 기자]
<박강아름의 가장무도회>(2016)를 연출한 박강아름 감독의 두번째 자전적 다큐멘터리 <박강아름 결혼하다>는 감독 부부의 좌충우돌 결혼생활을 그린 작품이다. 젠더 역할이 전복된 부부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위기를 꾸밈없이 카메라에 담아낸 박강아름 감독은 “자신의 욕망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자신의 한계나 부족한 부분을 발견하는 것에 주저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전한다.
영화 제작 도중 기획이 바뀌었다고 들었다.
처음엔 남편인 성만씨의 ‘외길식당’이란 프로젝트를 영화로 만들려고 했다. 아내를 따라 프랑스에 가게 된 아시안 남자 성만이 홈 식당을 열어 음식을 하고, 또 사람들을 만나면서 갖게 되는 여러 관계와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다. 프랑스를 배경으로 한 <카모메 식당>이라고 할까. (웃음)
그러다가 제작지원을 받기 위한 트레일러를 만드는데 촬영 소스를 보다보니 ‘내가 이렇게 말하는구나’ 하고 놀라게 되는 지점이 있었다. 성만씨를 대하는 내 모습이 굉장히 가부장적인 거다. 가부장제에 반대하던 페미니스트 박강아름이 가부장제를 반복하고 있다는 걸 내 눈으로 직접 보니 충격이 컸다. (웃음) <박강아름의 가장무도회> 때 함께했던 김문경 프로듀서에게 그걸 보여줬더니 당초 기획했던 ‘외길식당’보다 더 재밌다고 하더라.
어떤 점에서?
일단 성만씨와 나의 젠더 역할이 전복된 게 흥미롭고, 또 내가 그렇게 행동하게 된 이유를 더 자세하게 알고 싶다는 게 김문경 피디의 평가였다. 사실 당시엔 더 이상 자전적인 다큐멘터리를 찍지 않겠다고 결심한 상태였는데, 주변의 지지에 용기를 얻어 <박강아름 결혼하다>를 만들게 됐다.
왜 더 이상 자전적인 다큐멘터리를 만들지 않겠다고 생각했나.
<박강아름의 가장무도회>의 제작지원을 받기 위해 피칭에 출품했을 때 심사위원으로부터 좋은 평을 듣지 못했고, 아무런 지원금을 받지 못하게 돼서 위축됐던 게 크다. 당시 내 작품보다 큰 주제의식을 담고 있는 작품들이 지원작으로 선정됐고 자연스레 내 영화가 너무 사적인 이야기라 관객의 공감을 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생겼다.
기획을 바꿨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 성만씨의 반응은 어땠나.
성만씨는 평소에 본인 스스로를 글 쓰는 요리사라고 할 만큼 창작에 대한 욕구가 있었다. 그래서 영화의 방향을 바꾸게 되자 좀 아쉬워하더라. 그래도 내 작업을 존중하기에 출연자로 협조하기로 했다. 하여간 내가 처음부터 성숙하게 성만씨와 협의하거나 합의를 끌어낸 건 아니어서 미안함이 크다.
두 사람의 결혼은 처음부터 순탄하지 않았다. 성만씨는 원래 비혼주의자였다고. (웃음)
나는 그렇게 힘들지 않았는데 아마 성만씨가 힘들었을 거다. (웃음) 내가 결혼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꺼냈을 때, 성만씨는 나도 그처럼 비혼주의자인줄 알았다며 당황하더라. 우리 함께 결혼 제도에 대한 불만을 나누지 않았냐며. (웃음) 그런데 결혼 자체는 의외로 원만하게 진행됐다. 유학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프랑스로 같이 떠나자고 제안했을 때 성만씨도 계획했던 바는 아니었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선뜻 동의했다. 물론 시간이 지날수록 힘겨워하긴 했지만.
임신을 두고도 둘 사이에 갈등이 있었다.
영화에서도 그려지듯, 성만씨는 임신에 대한 계획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예전부터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고 싶었다. 나이에 대한 압박도 있었던 것 같다. 게다가 프랑스는 한국보다 임신과 출산에 대한 지원 시스템이 더 체계적으로 마련돼 있고,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임신하는 게 낫지 않나’하는 막연하고 철없는 생각도 한 몫 했다. 결국 임신을 했고 딸 보리가 태어났다. 그런데 임신과 출산 과정이 그만큼 힘들 줄은 몰랐다. (웃음) 미리 알았더라면 그렇게 쉽게 결정하지는 않았을 거다.
영화는 임신과 출산에 대해 비출산 장려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사실적으로 설명한다. (웃음)
한국이 아닌 프랑스에서 임신했기 때문에 주변에서 육아나 출산과 관련된 정보를 얻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인터넷 커뮤니티를 이용하거나 한국에서 책을 받아 봤는데, 임신과 출산으로 인한 여성의 신체변화 같은 건 나오지 않고 아이 중심의 정보가 전부더라.
임신과 출산 과정을 겪으면서 내 몸은 큰 변화를 겪었다. 제대로 알지 못한 상태에서 맞이한 변화였기에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왜 아무도 이걸 제대로 얘기해주지 않았나’하는 원망까지 들더라. (웃음) 그간 책이나 방송을 통해 본 임신과 출산은 너무 낭만적으로 그려졌던 거 같다. 모유수유를 하는 아름다운 모습, 아이를 품에 안고 느끼는 신비한 감정… 산모가 겪는 고통과 고달픔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래서 임신과 출산에 대한 내 생생한 경험을 얘기하고 싶었다.
특히 임신과 신체의 변화를 묘사한 애니메이션이 인상적인데, 투박하면서도 생동감이 넘치더라.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서부터 애니메이션을 삽입하기로 계획한 건 아니었다. 이야기를 완성해가는 과정 중에 촬영되지 않았던, 혹은 촬영될 수 없었던 부분을 어떤 방식으로 대체할지 고민하던 중 애니메이션이 떠올랐다. 아무래도 내 이야기를 내 목소리로 담는 만큼 너무 짜임새 있고 전문적인 애니메이션보다 손으로 그린 듯한 느낌이 더 잘 어울릴 것 같았다. 간단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은 대학교에서 만들어본 적 있었고, 현실적으로 애니메이션 감독님을 고용할 제작비가 충분하지 않기도 했다. (웃음) 그래서 내가 직접 제작했다.
가수 이랑과 협업한 음악도 독특한데.
나와 성만씨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이랑과 이대봉 아티스트가 가사를 썼다. 모든 노래가 좋다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로 너무 마음에 들었다. 특히 주제곡인 ‘박강아름은 어떤 사람일까’를 가장 좋아한다. 들을 때마다 감상이 바뀌는 곡이다. 내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에 어떨 땐 위로가 되지만 또 어떨 땐 힘든 현실을 상기시켜서 마음이 무거워진다. 몇 달 전 학교를 마치고 귀가하는 길에 그 음악을 들었는데, 마치 제3자가 되어 영화 속 박강아름을 지켜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나더라.
영화에 담긴 본인의 모습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던가.
중간중간 편집을 하면서 본 내 모습이 너무 가부장적이고 독불장군 같더라. (웃음) 그래서 각자가 자기 작업하는 날을 지정하고, 그날엔 상대가 육아와 가사를 담당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물론 요리는 성만씨가 훨씬 잘 하기 때문에 성만씨가 전담했다. (웃음)
잘 지켜졌나. (웃음)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흐지부지됐다. (웃음) 내가 하는 일이 데드라인이 있다보니 차일피일 집안일을 미루게 되더라. 그러면 나는 예민해져서 자꾸만 짜증을 내고, 성만씨가 육아와 가사까지 전부 도맡게 된다. 후반작업이 한창일 땐 성만씨가 보리를 데리고 한국에 가 있었다.
이렇게까지 솔직하게 본인의 단점이나 부부간 갈등을 묘사하는데 어려움은 없었을까.
영화를 만드는 내내 욕망과 혼란에 사로잡혔다. 내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 있는데, 이러다 나만 나쁜 사람처럼 보이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웃음) 하지만 여성과 남성의 역할이 태어날 때부터 고정된 게 아니라 환경에 따라 뒤바뀔 수 있다는 걸 선명하게 보여주고 싶었다. 젠더 역할이 전복된 양상을 더 극명하게 드러내야만 여성들이 가사와 육아를 할 때는 당연하게 여겨졌던 일들이 남자 몫으로 돌아갔을 때 얼마나 이질적인 것으로 취급되는지 나타날 것 같았다.
엔딩 장면을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으로 꼽았는데.
나와 성만씨의 갈등 장면이 영화에 필요했는데 실제로 우리가 다툴 때를 촬영하기가 어려웠다. 감정이 격해졌을 때는 카메라 키기도 어렵고 상대도 촬영을 원하지 않으니까. 그래서 덩케르크의 바다를 무대 삼아서 갈등을 재현하려고 했다.
그런데 막상 촬영을 하러 갔더니 비바람이 너무 심하더라. 촬영은 불가능했고 촬영이 아닌 여행을 온 기분으로 김밥도 먹고 사진도 찍으면서 내가 그려왔던 정상가족의 모습을 구현해보고 싶었다.
당신이 생각하는 정상가족이란.
가족이 해변을 같이 걷고, 아이와 엄마가 손을 잡고 63빌딩 아쿠아리움을 구경하는 것. (웃음)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 일종의 결핍이 있었던 것 같다. 사실 성만씨는 전날부터 몸이 안 좋다고 했는데, 내가 가고 싶으니까 굳이 아프다는 사람을 끌고 해변으로 나섰다. 거센 바람에 몸이 막 비틀거리는데 성만씨 혼자 유모차를 끌고, 그런 성만씨에게 나는 자꾸 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우기고. (웃음) 아마 정상가족에 대한 열망이 그런 식으로 발현된 게 아닐까 싶다.
촬영하고 두어 달 지난 후 어느 새벽, 혼자 덩케르크에서 찍은 영상을 봤는데 내 모습이지만 대면하고 싶지 않더라. 그 찰나가 우리의 결혼생활을 함축해서 보여주는 것 같았다. 남편을 데리고 머나먼 프랑스까지 와서, 이 사람이 힘들건 말건 아이를 낳고. 또 내가 직접 키우지도 않고 그에게 독박육아를 시키고. (웃음) 그 장면을 보면서 웃으면서 울었던 기억이 난다. 아름다운 가족의 모습이 아닌, 박강아름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서 영화에서 가장 사랑하는 장면이다.
두 편의 자전적 다큐를 연달아 찍으면서 스스로를 어떤 사람이라고 정의하게 됐나.
<박강아름의 가장무도회>에선 타인들이 내 외모를 평가하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아 직접 그걸 재현해내는 퍼포먼스를 선보였고, 결국 타인의 시선보단 스스로 그런 요구를 내재화한 게 문제였다는 걸 깨닫게 된다. 이번 영화도 그렇다. 남과 다를 줄 알았는데 내 안의 가부장적 모습을 발견한 거다.
하지만 이런 내 모습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박강아름은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고 하고 싶은 걸 꼭 해내야 하는 사람이다. 일적으로 성공하고 싶고, 그래서 헌신적인 어머니나 좋은 아내가 될 자신도 없다.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있으면서도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어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박강아름 결혼하다>는 그런 82년생 박강아름의 꾸밈없는 결혼생활이 담겼다. 다른 분들도 자신의 욕망을 좀 더 솔직하게 인정하고, 자신의 한계나 부족한 부분을 발견하는 것에 주저하지 않았으면 한다.
차기작 계획은.
영화 홍보 차 한국에 머무는 동안에 화가 나혜석 다큐를 위한 자료 조사 작업을 하고 있다. 나혜석의 작품과 그의 삶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나혜석을 객관적으로 조명하는 작품은 아니다.
또 3∼4개월 전에 다섯 살 난 딸 보리와 8살인 반려견 슈슈를 주인공으로 삼아 <보리와 슈슈>라는 다큐멘터리의 촬영을 시작했다. 점점 성장해가는 보리와 점점 늙어가는 슈슈의 우정과 사랑, 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슈슈의 마지막 날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프랑스로 돌아가 학업과 작업을 함께 이어갈 계획이다.
마지막 질문이다. 최근 소소한 행복이 있다면.
서울에선 아이와 반려동물까지 다 같이 지낼 수 있는 숙소를 찾기 어려워서, 나 혼자 따로 지내고 있다. 그러다보니 보리와는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서 주말에 놀고 하루 재운다. 아이의 손을 잡고 걸을 때, 재울 때 소소하게 행복하다.
사진제공_(주)영화사 진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