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자극적인 장면을 찍고 나면 그게 마음에 무의식적으로 남는 것 같다. 그래서 빨리 내 삶을 다시 아름답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배우 노재원이 <타짜: 벨제붑의 노래>로 첫 상업영화 주연에 나섰다. 20년 동안 이어진 <타짜> 시리즈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작품에서 그가 맡은 "박태영"은 친구 "장태영"(변요한)을 향한 동경과 열등감, 질투와 애증을 품은 인물이다. 누구보다 장태를 닮고 싶어 하면서도 그의 그늘에서 벗어나려 하고,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선택으로 치닫는다.
스크린 속 박태는 광기 어린 얼굴을 강하게 드러내지만, 노재원은 그를 단순한 악역으로 바라보지 않았다. “제가 맡았던 캐릭터 중 가장 순수하고, 누구보다 사랑받기를 원했던 사람”이라는 말처럼 극단적인 행동 뒤에 숨은 결핍과 외로움까지 이해하며 인물을 품었다. 그만큼 박태를 떠나보내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자극적이고 부정적인 장면을 촬영한 뒤 남은 감정을 털어내며 “빨리 내 삶을 다시 아름답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는 그다. 마침 요즘 준비 중인 1인극 <내게 빛나는 모든 것>을 통해 일상의 작고 빛나는 순간들을 하나씩 찾아가고 있다.
“너무 감사하고 꿈만 같은 일”이라고 첫 주연의 벅찬 마음을 드러내면서도 “이게 당연한 일은 아니구나 싶었다. 특별한 기회라고 생각한다”며 마음을 다잡는 노재원이다. 첫 주연의 무게부터 박태를 통해 돌아본 자신의 삶, 그리고 다시 무대로 향하는 지금까지,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익숙한 <타짜>,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
<타짜: 벨제붑의 노래>는 노재원에게 여러모로 부담스러울 법한 작품이었다. 오랜 시간 사랑받은 시리즈의 종결작인 데다 첫 상업영화 주연작이다. 하지만 대본을 읽었을 때 오히려 기존 시리즈와 다른 새로운 이야기에 마음이 움직였다. “<타짜> 1편이 너무 훌륭한 작품이지만 그 그늘에 가려질 작품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대본을 읽으면서 이건 단순히 <타짜>가 아니라 장태와 박태의 또 다른 하나의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나 특별하고 한 번도 보지 못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은 열망이 있는데, 이 이야기는 <타짜> 시리즈 중에서도 가장 새로운 이야기겠구나 싶었다.”
그중에서도 박태에게 강하게 끌렸다. 완성된 영화에서는 광기와 질투가 도드라지지만 애초 대본에는 그의 감정을 이해할 단서가 훨씬 많았다. 장태의 당구 자세와 야구 배트를 잡는 모습까지 따라 하고, 옷차림을 흉내 내며 그를 닮고 싶어 하는 모습도 담겼다. 장태가 여러 여자친구를 만나는 동안 자신은 한 번도 연애하지 못했다는 대사도 있었다. 장태의 누나 "태희"(임세미)와 입을 맞추는 장면 역시 노재원은 박태의 "첫 키스"라고 생각하고 연기했다.
박태를 이해하기 위해 자신의 경험도 끌어왔다. 가장 친한 친구를 떠올렸다. 지금도 많은 부분을 부러워하고 존경하며, 삶을 대하는 태도를 닮고 싶은 친구다. “그 친구 덕분에 제가 올바르게,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며 “그 친구와 저의 관계에서 박태를 시작했다”고 돌아봤다. 이후 그 시선을 장태 역의 변요한에게 옮겼다. 변요한이 입는 옷과 브랜드까지 몰래 살펴보고 따라 사며 장태를 동경하는 박태를 만들어갔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홀덤이었다. “박태에게 홀덤은 자신이 유일하게 증명받는 하나의 도구라고 생각했다.” 늘 사랑받지 못했다고 느끼며 살아온 박태에게 학창 시절 처음 접한 카드에서 재능을 발견한 것은 어쩌면 생애 첫 행운이었다. 노재원은 이를 “나를 증명할 수 있고, 사랑받을 수 있는” 수단으로 받아들였고, 실제 카드 장면을 위해 많은 시간 훈련했다.
그렇게 접근하고 나니 장태를 배신하는 선택 역시 단순한 악의로만 읽히지 않았다. 원래 촬영분에는 공동대표임에도 직원들이 장태와 박태를 미묘하게 다르게 대하며 박태를 무시하는 장면도 있었다. 노재원은 “늘 장태의 그늘에서 살았다면 이제는 나를 위해, 나를 더 사랑하기 위해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짚었다. 처음부터 장태를 죽이려 한 것이 아니라 돌아오지 못하게 하려던 선택이 점차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전사도 스스로 만들었다.

◆ 변요한이 아니기에, 나만의 길로
장태와 박태의 관계를 완성하는 데는 변요한의 존재가 결정적이었다. 노재원에게 장태는 박태의 동경과 질투를 동시에 끌어내는 대상이었다.
“요한 선배님에게 정말 많이 의지했다. 선배님이 장태 그 자체였으니까. 박태는 장태가 없으면 삶의 동력을 잃는다. 카메라 앞에서 너무 믿어지는 장태였고, 그 모든 게 부러웠다. 저를 불쌍하게 쳐다보기만 해도 질투가 나고 복합적인 감정이 들었다.”
멋있고 여유로운 장태와 미워 보이고 어설픈 박태. 두 인물의 극명한 차이가 오히려 좋은 합을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노재원 역시 배우로서 “좀 더 멋있게 나오고 싶은 욕망”이 없지 않았지만, 그 차이를 인정하면서 답을 찾았다. “저는 변요한이 될 수 없기에 그런 다른 점도 인정하게 됐다. 오히려 저만의 길을 더 생각하고 찾았던 것 같다.”
두 사람의 인연은 이번 작품이 처음은 아니다. 디즈니+ <삼식이 삼촌>에서 함께했고, 변요한은 이전부터 노재원의 연기를 믿고 응원해준 선배였다. <타짜: 벨제붑의 노래>를 만나기 한참 전에는 직접 전화를 걸어 “언젠가 꼭 네가 주연하는 걸 보고 싶다”고 격려하기도 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실제로 한 작품의 두 주연으로 다시 만났다.
촬영 전에는 술 한 잔 없이 커피와 물만 놓고 밤새 이야기를 나눴다. 길바닥에 앉아 “이건 어떠냐, 저건 어떠냐”며 장태와 박태를 함께 만들어갔다. 감독 역시 “대본은 하나의 가이드일 뿐이다. 너희가 원하는 대로 해봐라. 나는 믿는다”며 두 배우에게 상당한 자유를 줬다. 촬영에 들어간 뒤에는 오히려 친분을 잠시 접어두고 장태와 박태로 적당한 긴장감을 유지했다. 지금은 변요한의 연락처를 아예 "장태"라고 저장해둘 만큼 가까워졌다며 웃었다.
그 자유는 애드리브로도 이어졌다. 마지막 카드 게임에서 장태가 박태에게 진짜 운이 좋은 사람은 오히려 너였을지 모른다는 취지의 말을 건네자 박태가 쏘아붙이는 “네가 뭘 알아?”는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튀어나온 대사다. 일본어 대사도 자연스러운 표현을 위해 따로 공부하고 상대 배우 미요시 아야카와 다양한 표현을 연습했다. 그렇게 준비한 말들이 실제 촬영에서 애드리브로 이어졌다.
◆ 악인보다, 사랑받고 싶었던 인물
완성된 영화에는 박태의 광기가 상대적으로 강하게 남았다. 가편집본이 4시간을 넘길 만큼 많은 장면을 촬영했고, 그 과정에서 인간적인 면과 연민을 보여주는 대목 상당수가 덜어졌다. 하지만 노재원은 영화의 속도와 장태·박태의 균형을 위한 선택이라며 감독의 판단을 존중했다.
오히려 흥미로운 건 노재원이 박태에게 이전의 어떤 악역보다 깊이 공감했다는 점이다.
“여태까지 센 캐릭터를 많이 했지만 제가 "악역이다"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박태는 제가 맡았던 캐릭터 중 어떻게 보면 가장 순수한 사람이었다. 어떤 캐릭터보다 사랑받기를 원했다. 다른 악역을 맡았을 때는 공감대를 찾으려고 노력했다면 박태는 가장 공감되는 지점이 많았다.”
그렇다고 관객에게 박태를 이해해달라고 강요하고 싶지는 않다. “배우로서는 많은 분이 박태의 행동에 공감해주길 바라는 욕심이 있지만 지금은 그런 기대를 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바람은 하나다. “악역으로만 보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얼마나 밉고 못나 보이겠나. 하지만 조금이나마 인물에 대한 연민이 보이길 바랄 뿐이다.”
박태를 연기하며 얻은 것도 적지 않다. 첫 주연을 맡고서야 “영화는 절대 혼자 할 수 없고, 나를 위해 많은 사람이 애써주고 있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캐릭터를 통해서는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의 태도까지 돌아보게 됐다. 스스로를 불운하다고 여기며 장태에게 질투와 자격지심을 느끼는 박태를 보며 “과연 박태가 정말 불운한 사람인가”라는 질문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냥 자신의 착각이고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꼬여 있었던 거구나 싶었다. 내 삶이 힘들거나 지칠 때도 "이게 나만의 착각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한 번 더 생각할 수 있는 힘을 박태에게서 얻었다. 캐릭터를 통해 뭔가를 배우는 게 쉽지 않은데, 연기를 잘했다는 것보다 그게 더 뿌듯했다.”

◆ 박태를 떠나, 다시 빛나는 일상으로
극한으로 치닫는 박태를 오래 품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특히 자극적이고 부정적인 장면을 찍은 뒤에는 그 감정이 무의식적으로 남았다. “사람이라면 자극적인 걸 마주했을 때 마음에 무의식적으로 남는 것 같다”며 “그래서 빨리 내 삶을 다시 아름답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공교롭게도 요즘 그 방법을 새 작품에서 찾고 있다. 1인극 <내게 빛나는 모든 것>(10월 17일부터, 홍익아트센터)을 준비 중이다. 삶에서 빛나는 것들의 목록을 적어나가는 인물을 연기하면서 실제 자신의 일상에서도 그런 순간들을 찾아 적기 시작했다.
“오늘 이렇게 인터뷰를 할 수 있다는 것, 아침에 눈이 금방 떠졌다는 것, 가을이 왔다는 것. 제 삶에서 빛나는 리스트를 채워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제 태도도 조금 달라지더라.”
그 목록에는 가족과 반려견, 그리고 자신보다 자신을 더 믿어주는 사람들이 있다. 살다 보면 마음이 쪼그라들고 자신이 작아지는 순간도 있지만 이제는 무조건 극복하려 애쓰기보다 “그냥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을 조금씩 기르고 있다고 했다.
첫 상업영화 주연에 이어 다시 연극 무대로 향한 이유도 거창하지 않다. 무엇보다 연극이 하고 싶었고, 자신에게 큰 영향을 준 대본이었기 때문이다. 역할의 크기에 따라 작품을 대하는 마음까지 달라지는 것도 아니라고 강조했다.
“주연이든 조연이든 캐릭터를 고민하고 준비하는 시간과 애정은 똑같았다. 다만 주연은 물리적인 촬영 시간이 길기 때문에 자기 관리와 좋은 컨디션을 유지해야 한다는 차이가 있었다.”
첫 주연작의 개봉을 앞두고는 여전히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잘돼야 한다는 욕심보다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으려 한다.
“잠을 못 자겠다. "잘 안 되면 어떡하지, 더 잘됐으면 좋겠다"보다 애초에 이 일은 너무 감사하고 당연한 일이 아니었다. "어떻게 나를 주연으로?"라는 생각이 든다. 이 모든 걸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지 말자는 마음이다.”
사진제공. CJ ENM
[mail:eunyoung.park@movist.com]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m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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