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 20살 맞은 전주국제영화제, 이런 영화적 표현도 가능하구나! 보여주고 싶어
- ‘뉴트로 전주’, ‘익스펜디드’ 섹션, ‘아카이빙’ 등이 특징적
- 내·외적으로 가장 안정적인 요즘, 호흡 척척
- 영화계의 사이클이 있어, 다양성 예술 영화에 욕구와 수요는 커질 것
- 근거지를 잃어가지만, 그래도 평론은 영화의 필수적인 친구
- 스크린 독점 규제는 필요, 다양성 영화에 길을 터줘야
- 영화는 활력, 가끔 ‘존 포드’의 영화를 꺼내 보며 비언어적 표현이 주는 자유로움에 사로잡혀
#전주국제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가 어느덧 스무살이 됐다. 올해 영화제의 특징을 꼽는다면.
올해는 그 어느 해 보다 프로그래밍에 주안점을 뒀다. 영화계의 흐름이 급변하고 있지 않은가. 넷플릭스를 필두로 극장 위주 플랫폼이 무너지고 있는데 이는 역으로 새로운 재능이 진입할 수 있는 입구가 많아진다고 볼 수 있고 나아가 영화 표현 방법의 다양화로 이어진다고 본다. 예전에 설치 미술 쪽에서 영상을 간헐적으로 활용했다면 이번엔 역으로 영화가 전시를 끌어들였다. ‘익스펜디드 섹션’(익스펜디드 시네마, 익스펜디드 시네마 단편, 익스펜디드 플러스: 유토피안 판톰)과 새로운 표현의 장인 ‘VR 시네마 특별전: 눈 앞에 펼쳐진 미래영화’가 이에 해당된다.
또 그간 전주를 거쳐 간 국내외 젊은 감독이 이후 어떻게 성장했는지를 보여주는 ‘뉴트로 전주’를 마련했다.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전주 이후 세계 영화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는 감독들이 많다.
기존 슬로건 ‘영화표현의 해방구’에서 ‘영화, 표현의 해방구’로 가운데 콤마(,)가 생겼다. 작은 변화지만, 큰 의미가 있을 것 같다.
기존의 슬로건이 다소 식상하게 느껴지기도 해서 좀 잔머리?를 굴려봤다.(웃음) ‘영화 표현의 해방구’라고 하면 정치적 자유가 연상되기에 비단 정치만이 아니라 다양한 표현을 지향한다는 의미를 담아 ‘영화’와 ‘표현’을 분리한 거다. 그렇게 콤마(,) 찍고 영화를 이렇게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끔 앞으로 여러 작품을 포용하고 배치하려고 노력하겠다는 의지다.
이번 영화제 작품 중 ‘다양한 표현’의 예를 든다면.
이번 ‘뉴트로 전주’ 섹션 상영작 중 제임스 베닝의 의 경우, 고정된 것을 계속 촬영한다. 영화가 활동사진인데, 움직이지 않는 피사체를 찍으면 어떻게 될까? 정물같이 놓인 오브제는 비록 움직이지 않지만, 그 안에 풀이 흔들리고 바람이 부는 등 미세한 움직임이 있다. ‘부동성’안에 역설적으로 운동성의 감각이 촉진되고 미세한 변화를 주시하게 되는데 마치 이 세상 움직임 역시 유사하다는 인상을 안긴다.
또 ‘시네마 페스트’ 섹션 중 미야케 쇼의 일본 영화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 역시 인상적이었다. 사랑하는 남녀가 있는데 여자가 남자의 친구와 사랑에 빠진다. 남자는 우정으로 남겠다고 그들의 사랑을 축하해 주고 이후 두 사람이 사랑의 맹세를 하는 순간 여자를 사랑했음을 새삼 깨닫는다는 내용인데 사건은 뻔하지만, 굉장한 활력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젊음이라는 게 참 부럽고 자유롭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상업영화에서 보기 드문 매력을 지녔더라.
지금 소개한 ‘뉴트로 전주’를 비롯해 ‘익스펜디드 시네마’, ‘전주시네마프로젝트’, ‘시네마스케이프’, ‘스타워즈 아카이브’, ‘백년동안의 한국영화’ 등등 타영화제에 비해 유난히 섹션이 세분화된 느낌이다. 아닌가. (웃음)
‘뉴트로 전주’는 신설된 것이고 한국영화 100주년 기념 섹션이 두 개가 있으니.. 그렇게 느껴질 수 있을 것 같다. ‘아카이빙’ 섹션은 보통 영화제에서 다루지 않는 분야인데 우린 작년 ‘디즈니 전작전’을 시작으로 올해 ‘스타워즈’시리즈를 이어 선보이고 있다. 이를 보고 혹자는 전주가 상업적으로 접근한다고 오해하는 분도 있더라. 하지만 그게 아니다.
‘아카이빙’ 섹션 기획 의도는.
디즈니는 아주 작은 비주류 스튜디오로 시작했다. 당시 잘 다루지 않았던 애니메이션을 시도한 후 주류 스튜디오로 올라섰고 이제는 영화계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타워즈’ 시리즈도 마찬가지다. 처음 감독이 개런티를 반환하고 촬영을 감행했을 정도로 도전이었다. 이 같은 일련의 역사를 보여주고자 아카이브 섹션을 마련한 거다. 비주류가 어떻게 주류로 전환됐는지, 그들이 지닌 고유성이 꽃 핀 좋은 사례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지녔던 고유성이 어떤 과정을 거쳐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보편적 가치를 획득했는지를 의식하며 프로그래밍했다. 전주도 향후 유사한 역사를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 전주를 거쳐 간 이들이 언젠가는 영화계의 중요한 축을 형성하고 흐름을 만들 수 있을 거로 기대한다.
‘백년동안의 한국영화’를 20세기와 21세기로 구분했다. 특히 21세기의 부제가 ‘와일드 앳 하트’인 점도 인상적이다.
2000년대 들어서며 중후반까지는 아주 흥미로운 시기였다.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2003)가 흥행이 될 거라고 기대한 시대이니 말이다. (웃음) 여담인데, 당시 <지구를 지켜라>를 보며 기똥찬 영화지만 흥행은 안 될 거라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장준환 감독이나 주연을 맡은 신하균은 될 거로 기대하더라. 상당수는 망했고 흥한 영화 수가 더 적겠지만, 그래도 그런 무모한 시도가 빈번하던 시기였다. 이제는 제작에 통제가 많아졌고 안정지향적이 되다 보니 상대적으로 흥미로운 작품이 적어졌다. 그래서 현재 시도하기 힘든 무모한? 시도를 감행했던 작품들을 상영해보자는 취지다. 부제 ‘와일드 앤 하트’는 국내에는 <광란의 사랑>(1990)으로 소개된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작품 원제목이다.
수석 프로그래머로 영화제의 프로그래밍을 총괄하고 있는데 직접 주관하는 섹션은.
전반적인 방향과 정책을 결정하고, 학교에 적을 두다 보니 주로 아시아를 중심으로 한국 영화를 위주로 프로그래밍하는 편이다. 전주에서 8년 간 일하면서 가장 중점을 두고 싶었던 부분은 한국영화로 개인적 욕심?이라고 할까. 가장 주목받는 한국 독립영화가 전주에서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는데 대부분 부산국제영화제로 가더라. (웃음) 그래서 ‘전주시네마프로젝트’를 마련했고, 다큐멘터리를 부각했다.
규모와 상관없이 대부분의 영화제가 내·외로 진통을 거치는 모습이다. 전주는 어땠나.
처음 전주에 왔을 때가 바로 그런 시기였다. 집행부가 다 싸우고 나간 상태로 무모하게 와서 다시 세팅하기까지 2년 정도 힘들었다. 지금은 집행부와 내부조직간 그리고 영화제와 관과의 관계가 어느 때보다 안정적이다. 프로그램 기획과 선정과 여타 운영 관리 체계가 잘 분리돼 효율적으로 돌아가고 있다. 팀워크라는 게 한 번 다지긴 힘들어도 무너지는 건 순식간이니 방심하지 말아야 겠지만..
다만 단기에 집중해 일하다 보니 다소 힘들고 또 매년 새로운 스태프와 다시 호흡을 맞춰야 하는 부분이 좀 고되다. 영화제 개막 전이 가장 절정이고 일단 개막한 후 4~5일 지나면 안정되고 익숙해지는데 그럼 또 안녕해야 하니 말이다.
전주의 굳건한 지킴이로서 그간 영화제를 치르며 바라본 한국 포함 해외 영화 흐름은 어떤가.
베니스나 베를린, 칸 등 영화제를 통한 예술 영화 시상이 가능했던 건 그만큼 시장이 뒷받침됐기 때문이었다. 즉 칸영화제에서 수상한 작품은 최소한 프랑스에서는 어느 정도 관객 동원이 담보됐는데 전반적으로 그 관객수가 줄었다. 영화의 역사를 놓고 보면 오르막과 내리막의 사이클이 있다. 지금은 아마도 내리막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다시 반등할 거로 본다. 플랫폼이 많아진다면 콘텐츠 수요도 따라서 커지고 대기업에서도 손을 내밀 거다. (개인적으로 콘텐츠라는 표현을 싫어하지만,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그렇다)
작년에 가장 역설적인 작품이 바로 알폰소 쿠아론의 <로마>가 아닌가 한다. <로마>는 영화가 지닌 20세기 전통의 대표격인 비언어성을 탁월하게 보여준 작품으로 동작만으로도 서사를 형성한다. 그런데 넷플릭스를 통해 제공되지 않았나. 언뜻 예술 독립영화의 침체기로 보이지만, 플랫폼이 다양해지는 만큼 다채로운 영화에 대한 욕구가 커질 시대적 흐름이 오고 있다고 본다.
# 김영진
작년 이창동 감독의 <버닝> 관련 평인 ‘무의 몸짓’을 인상 깊게 읽었다. ‘이창동 감독이 자신의 영화 경력에서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는 작품’이라고 평했다.
흥행적인 면에서 <버닝>은 운이 없었다고 본다. 칸에서 상을 탔으면 좀 달라졌을 거다. 요즘엔 칸 진출만으로 흥행하기 힘들고 마케팅 방향도 수상에 초점을 맞췄었다.
이 감독은 영화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렇기 때문에 더군다나 모험적이었다고 본다. 보통 편집할 때 수월하게 작업하기 위해 현장에서 이것저것을 촬영하는데 이 감독은 절대 대체할 수 없는 한컷 한컷을 찍었다. 당연한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의외로 그런 치열함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
<버닝>은 이창동 감독이 모처럼 젊은 세대의 이야기를 하고자 했으나 소통이 잘 안 된 모습이다. 이 감독은 일전에 무비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영화에 대한 호불호가 아닌 화를 내는 것은 당황스럽다고 말한 바 있다. ‘질문을 던졌고 숙제를 받았다’는 표현을 했는데, 이는 현재 관객이 영화를 바라보는 관점과 자세의 변화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소설을 영화화한 <버닝>은 처음 한 시간 이후 ‘종수’(유아인)의 강박감만으로 별다른 사건 없이도 그 시간을 채운다. ‘종수’가 비닐하우스를 찾아다니고 ‘벤’(스티븐 연)을 쫓아다니지만 그 이유가 정확히 제시되진 않는다. 살인에 대한 맥거핀도 등장하고 어딘가를 불 싸지를 것 같은 암시를 하기도 한다. 지금은 예전처럼 자본가와 노동자라는 이분법적인 논리가 아닌 훨씬 복잡해진 사회다. 그렇게 복잡한 계층을 형성하는데 그런 것을 영화적으로 표현한 거다. 이 감독이 일부러 구멍을 만들고 시·청각적으로 표현했는데 그에 동승한다면 감흥이 클 것이고 그렇지 못하다면 화를 낼 수도 있을 것 같다.
예전에는 별도의 오락 공간이 없다 보니 극장이 문학과 예술의 접점 역할과 더불어 오락적 용도로 활용됐으나 요즘에는 점점 가벼워지고 오락적 기능이 커졌다. 영화 주제와 내용도 마찬가지다. 영화라는 게 한 번 보고 끝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전제로, 반복 관람이 가능한 시대이니 시간이 흐른 후 <버닝>을 본다면 다르게 다가갈 수도 있을 거다. 그게 일부러 고전을 만들겠다는 의도가 아니라 이 감독의 개성이고 그런 얘기가 아닌 다른 이야기는 못 하는 거겠지. 질문을 던졌는데 관객에게 통하고 통하지 않고는 다른 문제로 작품으로만 보자면 작년에 나온 영화 중 가장 주목할 만한 시도라고 본다.
SNS가 발달하면서 글을 쓰는 이와 글이 범람하고 평론가와 저널리스트의 정체성조차 모호해지는 시대다. 대표적인 프로그래머이자 평론가로서 현재 ‘비평’의 역할과 의미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기성 저널리즘이 해체되면서 그를 축으로 삼았던 평론가의 근거지가 없어졌고 이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잡지 또는 신문을 근거지로 삼아 글을 생성하고 독자층을 형성해야 하는데, 그 터전을 잃고 있는 거지. 이는 영화뿐만 아니라 대부분 분야에서 마찬가지다. 원리주의적인 입장에서 여전히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사석에선 외롭다고 얘기하곤 한다. (웃음) 시대적 흐름이라면 받아들여야겠지만, 이창동 같은 감독은 비평이라는 친구가 필요하다. 누군가가 자세하게 자기 영화를 읽어주고 기록해주는 친구가 있어야 하고 그게 쌓여 역사의 일부가 되고 기록으로 남을 거로 생각한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비평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정확한 정보를 토대로 해야 하는데, 요즘 영화평은 대부분 기본적인 마케팅 툴로 소비되는 추세다. 개봉 시기엔 자세하게 쓸 수 없으니 나중에 더 보고 탐색하려면 글이 중요한데 점점 그 자리가 작아지고 있으니..어느 정도 냉소적이 되기도..(웃음)
내 자랑을 하자는 게 아니라 나의 목소리에 누군가 정확하게 반응하고 그를 재생산하기도 하는 것을 느낀다. 그게 비평일 거다. 새로운 모습의 평론가 가령 유튜버 등도 충분히 가치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고수가 나올 거로 본다.
최근 <어벤져스: 엔드게임>과 맞물려 스크린 독과점과 규제 이슈가 또다시 쟁점이 될 듯하다.
스크린 독과점은 규제해야 한다. 전 세계를 통틀어 심지어 미국조차도 우리처럼 극단적인 사례는 없다. 자본과 마케팅을 많이 투입하기에 어느 정도 스크린을 다수 확보해가는 건 인정하나, 지금 같은 독점 상황은 공정한 경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를 정책적으로 방향을 잡아주면 되는데 안 해주는 게 문제다. 아마도 여러 이해 관계가 얽히다 보니 정책 수립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거겠지. 재작년 <군함도>가 스크린 독점으로 많은 비난을 받았으나 작년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때는 별반 욕하지 않았는데, 대중의 마음을 읽기가 어렵다는 생각이다.
스크린 규제만이 해법일까. 스크린수를 확보해도 관객이 찾지 않을 수도 있다. 독립 혹은 다양성 영화의 활로는 무얼까.
최근 문제는 빛의 속도로 영화의 흥행 여부가 결판난다는 거다. 몇 년 동안 만들었는데 개봉 후 4일 정도면 그 흥망이 결정된다. 좌판 까는 방식의 문제로 장기적으로 봐도 영화계 독으로 작용할 거다. 소수의 승자와 다수의 루저를 양산하는 시스템 아닌가.
진심으로 동의한다.
우리나라는 스필버그 감독 영화도 심지어 아카데미 수상작도 대부분 다양성 영화로 분류되다 보니 이런 영화를 보려면 극장을 찾아 헤매야 한다. 멀티플렉스의 장점인 편리성이 소수의 대박 영화를 위해 기능한다면 영화계 전체 생태계도 파괴될 거다. 다양한 영화를 극장에 깔수록 관객층은 두터워지게 되는데 이런 식이면 관객을 점점 극장에서 멀어지게 하는 거지. 요즘 꼭 극장을 찾지 않아도 영화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이 얼마나 다양한가 말이다.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2003)을 지금 극장에 건다면 과연 경쟁력이 있겠냐는 생각이 문득 들 때도 있다.
프로그래머가 되고자 하는 후배에게 조언한다면.
일단 프로그래머는 영화를 고르고 평가하고 알려주는 입장이기에 평론의 연장선이라 생각하고 실제로 평론가 출신이 많다. 즉 프로그래머가 되길 희망한다면 평론가의 자질을 갖추기 위한 영화의 역사 공부가 필수일 거다. 다만 평론이 혼자 하는 작업이라면 프로그래머는 조직 즉 네트워크 안에서 활동해야 하니 리더십을 어느 정도 갖춰야 할 거다. 그런 능력을 갈고닦으면 되지 않을까. (웃음)
당신에게 영화란. 또 좋아하는 작품은. 정말 궁금하다. (웃음)
흠..좋아하는 영화는 계속 바뀌는데.. 20세기 영화를 좋아했고 주말의 명화 세대이니만큼 40~50년대 영화, 특히 존 포드의 작품을 좋아한다. 영어로 ‘디그너티’(dignity, 위엄 혹은 품위), 올바른 인간이든 사악한 인간이든 그 ‘디그너티’를 롱 숏으로 보여주는데 비언어적 표현이 주는 매력이 크다. 말로 하는 수많은 활동을 무화시키는 영화의 힘, 그런 것을 볼 때 아름답고 자유로움을 느낀다. 지금도 지칠 때 그런 영화들을 꺼내 보곤 한다.
영화는 한마디로 말하면 활기인 것 같다. 각자 삶 속에 저마다의 의미와 가치가 있지만, 영화를 보다 보면, 컷과 컷이 붙을 때 발생하는 에너지 혹은 극 중 사람들의 움직임에서 오는 활기를 느낀다. 영화마다 각기 다른 종류의 활기가 품고 있으니 마음에 드는 활기를 찾아야지.
마지막 질문! 최근 관심거리와 당신을 웃게 하는 것이 있다면.
마음의 평화가 요즘 관심사다. 그래서 외부에 시선을 돌리기보다 영화제 기간 외에는 고요하게 지내려고 노력한다. 대체로 평화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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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전주국제영화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