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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타주의자를 위한 제주 영화 <오버 데어> 장민승 감독

2019년 5월 8일 수요일 | 박꽃 기자

[무비스트=박꽃 기자]
<오버 데어>는 우리가 상상하는 그런 제주 영화가 아니다. 따뜻한 햇살도 옥색 바다도 오밀조밀한 돌담길도 없다. 맺힌 무언가를 쏟아내려는 사람들의 아우성이나 제 뜻을 전하지 못해 안타까운 동물의 움직임도 없다. 45분간의 영화가 비추는 것은 오직, 제주의 거친 풍경일 뿐이다. 눈발이 몰아치는 산 중턱, 빗방울이 내려치는 호수, 파도가 들이치는 바위 틈바구니에서 자기만의 시간과 이치로 움직임을 반복하는 자연은 평범한 자들의 시공간을 초월한 듯 보이고, 때로 예상치 못한 감흥으로 관객의 심정을 압도한다.

그런 까닭에 <오버 데어>는 특정한 서사나 메시지를 읽어내기 어려운 작품이고, 인물과 갈등이 이야기의 주된 힘이라고 믿는 관객에게는 썩 생경할 수 있는 예술품이다. 다만 거칠고 춥고 음울한 제주 풍경에 한 서린 여인의 목소리로 토해내는 진혼곡이 곁들여지는 순간, 각자의 경험과 역사에 따라 어떤 장면들을 떠올릴지 모른다. 누군가는 세월호를 누군가는 4.3을 연관 짓겠지만, 무관하다. 장민승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어떤 상태에 공감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한다. 이 영화는, 나 아닌 모든 것에 공감하려는 모든 이타주의자를 위한 제주 영화다.




<오버 데어>는 등장인물도, 대사도, 사건도 없이 오롯이 제주의 눈, 바람, 물을 바라본 45분 간의 작품이다. 제14회 제주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됐던 이 작품을 접한 제주 도민들의 생경한 표정을 기억한다.(웃음) 이 특별한 영화의 시작점을 공유해줬으면 한다.
제주는 한국 사람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아름다운 섬이자, 세계적인 기준에 비춰봐도 압도적으로 많은 항공편을 자랑하는 곳이다. 그만큼 자연과 민속, 풍습도 아주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오버 데어>는 그런 제주의 모습을 기록해달라는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의 의뢰로 시작한 작업이다. 아모레퍼시픽은 제주에서 화장품 원료를 얻고 차를 생산하는 만큼 지역과 각별한 관계를 맺고 있다. 다만 처음에는 영화가 아니라 사진을 찍어 전시하고 출판하는 형태를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화면의 움직임이 거의 없고 구도도 고정돼 있다. 오로지 제주의 풍경만 비출 뿐이다.
일정이 변경되면서 전시가 아닌 영화로 먼저 선보이게 됐다. 처음에는 1년 6개월 정도면 의뢰 받은 작품을 충분히 완성할 줄 알았다. 아버지가 제주에 계셨기 때문에 그곳을 여러 번 찾았고, 당연히 남보다 야무지게 작업해낼 줄 알았다. 그 생각이 어리석었다는 건 6개월쯤 뒤에 바로 알아챘다.(웃음) 제주의 날씨는 계획대로 되는 게 아니더라. 제주의 날씨를 쫓아가는 방향으로 기획을 바꿨고 스태프 수를 두 세 명으로 최소화했다. 반대로 작업 기간은 4년가량으로 크게 늘렸다.

영화는 흔히 제주하면 떠올리는 아름답고 따뜻한 풍경과는 거리가 멀다. 눈발이 몰아치는 산 중턱, 빗방울이 내려치는 호수, 파도가 들이치는 바위틈까지… 영상이 담아낸 세계는 인간의 시공간을 초월한 듯 보인다. 자기만의 시간과 이치로 움직이는 자연은 때로 관객을 압도한다.
한라산 중턱에서 경험한 제주는 생과 사가 뒤엉켜 사투를 벌이는 강렬하고 원초적인 공간이었다. 제주를 왜 신화의 섬이라고 부르는지 알 것 같았다. 그 자체로 하나의 시공간을 형성하는 우주였다. 개발과 반개발, 외부인과 내부인, 나이 든 사람과 젊은 사람 사이의 갈등으로 가득한 해안선 아래의 세계와는 너무나도 다른 초자연적인 모습이었다. 한라산 중턱으로 올라가 촬영을 한 건, 그런 갈등을 화면에 담고 싶지 않아서다. 마치 4.3때 토벌 떼를 피해서 한라산으로 올라간 사람들의 심정 같았다.(웃음)

<오버 데어>의 이미지는 인간이 버텨내기에는 지나치게 가혹하다. 거칠고, 춥고, 음울한 장면의 연속이다. 바라보다 보면 이게 ‘진짜 제주’인 건가 싶을 정도로 낯선 느낌이다.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에서도 기겁을 했다.(웃음) 촬영한 영상 중 일부는 기업 홍보 활동에 활용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예상과 달리 너무나 어둡고, 무섭고, 슬프고, 우울했던 거다. 하지만 나와 정재일 음악감독이 그동안 협업을 통해 보여준 작품의 분위기는 계속 이런 식이었다. 우리 둘 다 일종의 어두운 면에 매료되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 기쁜 노래는 위로가 되지 않지만, 한바탕 속상해하고 함께 슬퍼한 뒤에는 뭔가 달라지는 게 있지 않은가. 제주에서도 마찬가지 생각이었다. 그래서 날씨가 좋은 날은 쉬는 날이었고, 교통이 통제될 정도로 악천후인 날이 촬영하는 날이었다.


그런 촬영 일정은… 정말 희한하다!(웃음)
제주 하면 많은 사람들이 동화 같은 아름다운 장면을 떠올린다. 하지만 제주를 포함한 모든 생사의 현장은 근본적으로 힘겹고, 처절할 수밖에 없다. 촬영을 위해 한라산 중턱에 누워 잠을 정할 때면 나무 사이로 부는 바람 소리가 마치 유령 소리처럼 들렸다. 먼저 떠나간 무수한 선인을 생각하게 하는 소리다. 그럴 때면 겨울 제주에서 의복도, 신발도 변변치 않은 상태로 한라산으로 도망쳐 굶주림과 추위에 떨었던 사람들을 떠올리곤 했다. 제주의 아름다운 장소는 결국 모두 슬픔이 담긴 장소다. 그런 정서를 드러내고 싶었다.

그런 화면에 맞물린 정재일 음악감독의 음악은 마치 진혼곡 같다. 한이 가득 서린 여인의 구슬픈 곡소리처럼 들린다. 그에게 음악에 관한 구체적인 의견을 미리 전했는가.
거짓말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그에게는 편집하지 않은 무수한 촬영 영상을 줬을 뿐이다. 그걸 보고 떠오르는 심상을 음악적으로 정리해달라고 했다. 다만 상업영화 음악처럼 장면마다 어울리는 음악을 조각조각 따로 쓰지 말고, 통으로 이어지는 45분짜리 음악을 써달라고 했다. 그동안 쉽게 하지 못했던 작업을 마음껏 하자고 말이다. 놀랍게도 그의 음악과 내가 준비한 45분간의 영상은 소름이 돋을 정도로 탁탁 맞아떨어졌다. 작업 자체가 거의 손볼 데 없이 한 방에 끝났다.

영화는 직접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지는 않다. 연속하는 자연과 음악이 맞물려 약간의 서사성을 띨 수도 있겠지만, 개인의 역사에 따라 전혀 다른 기억을 떠올려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광대한 느낌이다.
사실 이 작업은 2014년 4월 16일의 사회적 슬픔 이후에 시작했다. 4.3 생존자와 희생자 가족을 만나고 인터뷰하는 데도 어느 정도 시간을 들였던 터였다. 그런 시간을 경험했으니 당연히 하고 싶은 말도 있었고, 전하고 싶은 메시지도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같은 사건을 대하는 각자의 기억이 너무나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예상했던 증언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도 많았다. 알면 알수록,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 되는 주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작품에서는 구체적인 이야기를 잠시 묵혀둔 거라고 봐야겠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근원적인 생명의 모습을 담고 싶었다. 사람이나 짐승은 배제했다. 그것들이 등장하는 순간 은유하는 바가 너무 클 것 같았다. 대신 눈, 바람, 물이 순환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생겨나고 다시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풍경을 보여주려고 했다. 채색된 종이가 아니라 빈 종이 같은 느낌을 원했다. 마치 제주의 토속 마을이 음력 정월 보름이면 본향당에서 소원을 비는 모습처럼 말이다.

그 장면을 조금 더 설명해준다면.
마을 사람들은 저마다의 소원을 빌기 위해 나무에 종이를 매단다. 그런데 정작 그곳에 아무 글씨도 쓰지 않는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신과 소원을 비는 사람 사이에는 언어가 필요 없다고 했다. 마음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한 밤에 바라본 본향당 나무에는 글씨 없는 종이가 잔뜩 매달려있었다. 영화가 그 장면이 안긴 미학적인 완벽함마저 닮았으면 했다.

그렇지만, 한 장면쯤에는 쨍한 태양이 등장해 관객을 비춰 주길 바랐다. 너무 상투적인 서사인가.(웃음)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다.(웃음) 빛 그 자체를 피사체로 쓰지 않았을 뿐, 이 영화는 이미 해와 달에 의해 기록된 것이다. 그것들이 내뿜는 빛이 없었다면 그만큼 다채로운 색을 만들어낼 수 없었을 테니까. 사실 ‘포토그래피’(Photography)라는 말의 어원도 그와 비슷하다. 빛에 의해 기록된 무언가를 바라보면서 누군가를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것 말이다.

빛을 통해 화면에 담아낸 제주를 바라보며 무언가를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게 <오버 데어>인 셈인가.(웃음) 관객이 당신 설명을 곁들여 들을 기회를 얻었으면 한다. 영화의 진의가 더 잘 드러난다는 생각이다.
이 경험을 통해 어떤 분위기를 전달받고, 어떤 상태에 공감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본다. 개봉 전 제주에서 팔십 넘은 할머니들을 마을회관에 모시고 시사를 한 적이 있다. 전 세계 최고의 물질 실력을 보유했지만, 잠수병 때문에 물 밖에서는 시들시들할 수밖에 없는 분들이었다.

반응은, 어땠는지...
처음에는 그저 맛있는 걸 만들어드리고 노래방 기계를 틀어주는 게 맞을 것을, 괜히 어려운 작품을 보여드리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영화를 틀어드리니 다들 넋을 놓고 보시더라. 먼발치에서밖에 볼 수 없는 한라산을 이렇게라도 볼 수 있어서 좋다고 하셨다. 그때 알았다. 영화적 경험이 풍부하고 관련 지식이 많아야만 이런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다소 거친 질문일 수 있지만, 이쯤에서는 물어야 할 것만 같다.(웃음) 당신에게 예술이란 뭔가.
사람의 삶은 늘 흔들린다. 서로 다른 시간을 살던 사람들이 세월호에서, 구의역 스크린도어에서,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유사한 궤적을 그릴 때마다 나는 너무나 슬프다. 예술가로서 내가 뭘 할 수 있을지, 어떻게 행동하는 게 옳을지 늘 고민한다. 그런 고민이 결과물로 드러날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지만, 사회를 바라보고 내 삶을 성찰할 때마다 예술이라는 도구로 나를 조율하려고 한다.

흠…(웃음)
미술(예술)을 하다 보면, 물론 장점도 많지만 단점도 있다. 대표적인 단점은 내 작품을 거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예술가인 나도 물질적인 속성을 갖게 된다. 나는 그런 부분에는 관심이 많지 않은 편이다. 그래서 이렇게 돈을 못 버는 건가 싶기도 하지만…(웃음) 개인의 예술이 완전한 공공재는 아닐지라도 어느 정도는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 작품을 영화가 아닌 전시 형태로 공개할 계획도 있다고 들었다.
극장에서는 이 작품을 오직 단면 스크린으로만 봐야 한다. 그리고 내가 임의로 정해놓은 순서대로만 접해야 한다. 하지만 모든 일은 다면적이고 다중적으로 진행된다. 한 풍경 안에 등장하는 나무, 돌, 새의 시간이 모두 다르고, 하루살이의 1년과 사람의 1년이 다르지 않은가. 전시에서는 보는 사람이 순서를 정해 그 모든 장면과 소리를 입체적으로 관람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질문이다. 최근 소소하게 행복한 순간은.
큰 개 두 마리와 뒷산을 매일 산책한다. 무수한 생명을 품은 계절의 풍경은 매번 다르다. 그걸 바라보며 걸을 때 소소하게 행복하다. 정재일 음악감독과 낮술을 마실 때도 좋다.(웃음)

사진_이종훈 실장(스튜디오 레일라)



무비스트 페이스북 (www.facebook.com/imov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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