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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스트=박꽃 기자]
폐허가 된 도시에서 도박장을 털던 청춘들의 하이스트 영화가 의문의 추격자와 쫓고 쫓기는 미스터리 스릴러로 변모한다. 바뀐 장르와 마주한 관객의 궁금증은 대개 같은 방향으로 흐른다. 총을 들고 냉담한 얼굴로 청춘을 추격하는 ‘한’은 과연 누구인가. 어떤 목적으로 그토록 가열차게 ‘청춘 사냥’에 집중하는가. 그 총에 정면으로 겨눠진 ‘준석’역을 연기한 이제훈은 한가지 해석을 내어놓는다. ‘한’은 청춘이 맞닥뜨린 녹록지 않은 현실 그 자체를 은유한다. 그렇게 본다면 <사냥의 시간>은 일차원적인 재미와는 또 다른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코로나19 국면의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에 맞춰 화상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사냥의 시간>은 폐허가 된 도시에서 살아가는 청춘들을 다룬다. 넘치는 노숙자, 급락한 화폐가치 등 한국을 디스토피아로 구현한 공간 묘사가 인상적이다.
시나리오를 처음 봤을 때나 현장에서 스토리보드를 봤을 때는 얼마나 가까운 미래의 시점을 다루는 건지 구체적인 배경을 느끼지는 못했다. 다만 총기가 나오는 부분은 우리나라 현실과 맞지 않다 보니 근미래라는 설정이 좋은 선택 아니었나 싶다. (결과물을 보고 나니) 세계관을 이렇게 구축하기 위해서 세트와 미술 작업에 공을 들였고 후반 작업에서 CG를 많이 썼구나 싶더라. 우리나라 영화에서 이런 비주얼을 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한편으로 놀랍고 또 자랑스럽다.
당신이 맡은 ‘준석’역은 교도소에서 출소한 뒤 친구들에게 도박장 털기를 제안한다.
수단과 방법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자기가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과 이 세계를 탈출하기 위해 위험에 동참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동의하지 않는 부분도 있었지만, 그 일을 해내면 자신이 꿈꾸는 곳으로 갈 수 있다는 희망과 목표에 많이 이입하려고 했다. 그것밖에는 답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이스트 무비로 진행되던 영화가 쫓고 쫓기는 미스터리 스릴러로 바뀌면서는 무섭고 두려운 생각, 고통을 내 안에 심으려고 했다.
그때부터 정체를 알 수 없는 추격자 ‘한’이 나타난다. ‘준석’은 그와 끝까지 맞서면서 극한을 경험한다.
‘한’을 직접 만나는 건 지하주차장 신이다. 그가 나에게 총을 겨눌 때, 만약 그 총에 진짜 총알이 들어있고 손가락만 까딱해서 발사된다면 나는 촬영을 하다가 죽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만큼 무방비한 상태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기분을 느끼기 위해 부단히 애썼다. 부끄러운 표현이지만, 이러다가 오줌을 지릴 수도 있겠다… 그러면 스태프들이 나를 놀리겠지…(웃음) 하는 상상까지 했다. 날 극단으로 몰아붙였다.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힘들었다. 촬영 전반부에 아이들(배우들)과 희희낙락하면서 즐거웠던 터라 힘이 많이 됐다면, 후반부에는 계속해서 그만하고 도망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한’은 어떤 존재인가. 끝까지 정체불명이라는 해석도 있다.
‘장호’(안재홍)가 ‘기훈’(최우식)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다. 돌아갈 곳도 없으니 ‘준석’(이제훈)과 함께하고 싶다고. 현실에서 청춘이 느끼는 힘듦을 대변하는 이야기 같아 처연하고 안타까웠다. 그 장면을 보면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진짜 현실에서는 그러면 안 되겠지만 (주인공들은) 무모하고 위험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도망가도 결국은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내 맘대로 되지 않는 녹록지 않은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지 않나. (주인공들이) ‘한’이라는 존재를 만날 때마다 그런 세상 자체를 만나고 있는 거라는 느낌을 받았다. 촬영이 끝난 뒤에도 영화의 은유적인 표현을 곱씹어봤던 것 같다. 해석의 영역일 수도 있지만 일차원적인 재미와는 다룬 여운이 있었다.
‘한’과 마주하는 지하주차장 신 등에서 눈빛이 상당히 좋다고 느꼈다.
스스로 극단까지 연기를 밀어붙여보고 싶었다. 윤성현 감독이 그런 방향을 지지하고 기회를 줘 고맙다. (현장에서) 눈빛만 보면 그가 원하는 장면이 나왔는지 안 나왔는지 알 수 있었고, 그가 만족하지 못한 것 같으면 내가 자처해서 테이크를 여러 번 가기도 했다.
<파수꾼>(2011) 이후 윤성현 감독과 재회했는데.
윤성현 감독과 그동안 굉장히 가깝게 지냈다. 어떤 영화를 만들 건지에 관해서도 깊게 이야기를 나눴다. 작품을 고를 때 시나리오를 쓴 사람과 소통이 잘 되는 걸 선호하는 편이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 반대로 상대가 나에게 원하는 부분을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윤성현 감독은 그런 부분에서는 더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영화적 동지를 얻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파수꾼>에 이어 <사냥의 시간>이라는 그의 두 번째 작품에 출연할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운이 좋은 일이다. 세 번째, 네 번째 작품에도 나오고 싶다. 나중에 안 불러준다면… 이유가 있겠지. 섭섭할 수도 있다.(웃음)
당시 함께 출연했던 박정민과도 다시 만났다.
현장에서 자신을 잘 컨트롤하고 여유도 있더라. <파수꾼> 때는 둘 다 장편 영화도 처음이었고 주인공으로서 극을 이끌어가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다. 연기 열정만으로 그런 것들을 뭉개고 갔던 거다. 9년의 세월이 지나서 <사냥의 시간>으로 만나니 그때는 느끼지 못했던 큰 어른 같은 느낌으로 성장했다. 어디서든 사랑받는 배우가 됐다. 내가 형인데도 불구하고 의지하고 싶은 모습이다.(웃음) 그게 참 기분 좋다. 20대 때 <파수꾼>, 30대 때 <사냥의 시간>을 같이 연기했으니 40대 때 또 만나면 어떨까 하는 기대감도 생긴다.
감독, 배우와 함께 촬영했던 시절 생각도 났겠다.
담배 피우고 거친 욕설을 하며 영화를 찍다 보니 <파수꾼> 때 생각이 많이 났다. 27살 때까지 담배를 피우지 않다가 <파수꾼>이라는 작품을 만나서 담배를 배웠다. 그때 담배 피우는 연기를 하다가 쓰러진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도 (흡연 장면) 테이크를 여러 번 가다 보니 어지러움이 느껴져 촬영을 중단하기도 했다. 다시는 이런 식의 담배 연기는 하지 말자고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웃음)
베를린영화제까지 가는 좋은 결과를 얻어냈는데.
당시 1,600석이 꽉 찼다. 그들의 박수와 환호성을 들을 때는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눈시울에 (눈물이) 차오르기는 했지만 엄청 참았다.(웃음) 이래서 사람들이 영화제에 가고 싶어 하는 구나 싶었다. 한국을 알릴 수 있는 또 다른 좋은 작품을 만나 영화제에 가면 좋을 것 같다. 무엇보다 연기를 하면서 사람을 탐구하는 과정을 거쳐 시야가 넓어졌다는 생각이다. 누군가를 편협하게 바라보기보다는 이해하려고 노력하게 된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열린 마음으로 사람을 만난다. 그들이 내 연기에 영감을 주기 때문이다. 연기로 재미를 느끼는 동시에 사람과 세상을 알아간다는 점이 참 흥미롭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많은 사람과 캐릭터를 만나면서 작품 속에 존재하고 싶다.
앞으로 해보고 싶은 역할은.
예전부터 에너지를 뿜어내는 혈기 왕성한 복싱 영화를 꿈꿨다. 지금 찍고 있는 넷플릭스 오리지널의 캐릭터가 그런 느낌이라 열심히 몸을 만들고 있다. 꿈꿨던 걸 경험하니 좋다. 변호사, 검사, 판사, 의사 같은 전문 직종도 연기하고 싶다. 이번에는 총격 액션을 찍었으니, 나중에는 맨몸 액션이 어떨까. 공포 영화는… 내가 귀신으로 나온다면. (웃음) 그런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사진_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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