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꽃 기자] 셀린 시아마 감독의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국내에서 1월 16일 개봉했다. 나흘 뒤 코로나19 국내 1번 확진자가 나타났고 극장을 찾는 관객의 발걸음이 뚝, 끊겼지만 영화는 꺾이지 않는 의지로 살아 숨 쉬며 14만 8천 명의 관객을 모았다. 영화진흥위원회 통계에 따르면 이 작품은 상반기 개봉한 독립, 예술 영화 중 가장 많은 관객과 만났다. 놀라운 흐름을 이어받은 건 지난달 개봉한 제이 로치 감독의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이다. 코로나19로 꽉 막힌 숨통을 찾아 나서려는 한국 상업 영화 <#살아있다> <반도>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가 개봉 일정을 고심하던 치열한 여름 시장을 택한 영화는 개봉 한 달 만에 18만 관객을 눈앞에 뒀다. 어려운 시절을 뚫고 나와 관객의 눈에 콕, 들어박힌 영롱한 두 작품은 그린나래미디어에서 수입했다.
다양성 영화를 즐기는 관객이라면 그린나래미디어는 낯선 이름이 아니다. <프란시스 하> <패터슨> <가버나움> 처럼 제목을 들으면 ‘아, 그 영화!’ 소리가 나올 만한 작품 여러 편을 국내로 들여왔다. 팬데믹 이후 영화계가 전멸에 가까운 위기를 겪는 동안 이들이 보여준 역할 역시 작지 않다. 한국 상업영화와 외국 블록버스터가 어쩔 수 없이 극장의 빈자리를 채우지 못하고 바라만 봐야 했던 순간. 뻔한 손해를 알면서도 동료 수입배급사들과 십시일반 모은 소중한 작품을 선뜻 개봉하며 극장이, 영화가, 살아있음을 관객에게 알린 책임감 있고 성실한 이들이다. 코로나19 이후 콘텐츠 소비 방식은 급격히 변화하고 있고 이 흐름 앞에서 영화 역시 결코 자유롭지 않음을 알지만, 그린나래미디어는 여전히 좋은 영화를 찾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말한다. 그동안 그래왔듯이.
코로나19 발생 이후 극장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과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을 개봉해 관객의 호응을 끌어냈다. 위기 시절 가장 성적이 좋은 수입배급사라고 봐도 될 것 같다.
유현택 대표(이하 ‘유현택’) :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은 곧 18만 관객을 돌파할 것 같다. 외화 부문 1위도 오래 했고 축하 얘기도 심심치 않게 들었다. 물론 내부 기대치에는 좀 못 미쳤고, 돈을 번 숫자는 아니다. 하지만 코로나19 상황에서 낸 굉장히 의미 있는 성과라고 분석하고 있다.
영화제 마켓에서 신작을 선별하고, 구매하고, 국내 극장에 배급하고, 홍보 전략까지 고민하는 게 수입배급사의 일이다. 관객과 외화 사이를 잇는 두터운 다리 역할을 하는 의미 있는 일이지만, 업계 생태계만 보면 ‘잘 살아남기’가 그리 녹록지만은 않다고들 한다.
유현택 : 상업 영화든 예술 영화든 할 것 없이 수입배급사는 대부분 ‘사전 구매’를 한다. 전체의 60~70% 정도가 대본 단계에서 구매 결정이 이루어진다. 한마디로 완성되지 않은 작품을 사는 거고, 개봉 시점에서 보면 대개 1년에서 1년 반 전에 이미 작품 구매가 이루어졌다고 봐야 한다. 우리 구성원들이 전부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건 아니기 때문에 대본만 읽고 작품을 판단하는 것 자체의 위험이 크고, 확신이 없을 때도 많다. 하지만 (수입배급사 간의) 구매 경쟁이 치열한 상황이고 판매자 역시 사전 구매 방식을 권장한다. 촬영이 시작됐거나 후반 작업 단계에 진입한 작품은 그래도 예고편 정도는 보고 살 수 있는데, 그렇다고 해도 시장 상황은 워낙 변화무쌍하기 때문에 (개봉 이후의) 결과는 전혀 예측할 수 없다.
가장 최근 개봉작인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의 구매 결정 과정은 어땠나. 코로나19로 개봉일이 밀린 만큼 배급 일정에도 상당한 고민이 있었을 것 같은데.
유현택 : 일단 <빅쇼트>(2016)의 각본을 쓴 찰스 랜돌프의 각본이라는 게 매력적이었다. 감독은 <트럼보>(2016)라는 재미있는 영화를 연출한 제이 로치인데 (국내에서) 소리소문없이 개봉해 흥행 참패를 맛 봤던(웃음) 작품이다. 샤를리즈 테론, 니콜 키드먼, 마고 로비라는 영향력 있는 여성 배우가 출연해 의미 있는 실화를 영화로 옮긴 프로젝트라는 점도 좋았다. 2018년 아메리칸필름마켓(AFM)에서 처음 접했는데 (우리로서는) 다행히, 한국 수입배급사 사이에서 그다지 큰 인기를 끈 작품은 아니었다. 무거운 소재를 다뤘고 가격도 높았기 때문인 것 같다. 액션이나 스릴러 같은 장르처럼 부가판권 시장의 기대 수익도 높지 않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어쨌든 나름대로 조율을 거쳤지만 우리 기준에는 여전히 비합리적인 가격(웃음)으로 구매를 마치고 올해 3월 초로 개봉일을 정했는데, 코로나19로 그 계획이 무기한 연기된 것이다.
박병규 배급 팀장(이하 ‘박병규’) : 6월 말에서 7월 초 정도로 다시 일정을 짜기로 했다. <테넷>이 공개 일정을 (여러 차례 미루며) 확정하지 하지 못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외화 중에서는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이 독보적인 개봉작이 될 거로 생각했다. 그런데 한국 영화 <#살아있다>가 6월 말(6/24)로 개봉일을 정했다. 과연 <#살아있다>가 개봉 2주 차(7/1)를 맞는 시점에 개봉했을 때 그 작품의 기세를 꺾을 수 있을지, 좀 고민했던 것 같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7월에서 8월(8/5)로 개봉일을 옮긴 상황이었지만 <반도>가 남아있던 만큼 그 개봉일(7/15)이 언제가 될지 실시간으로 확인해야 했다. 여러 가지 고민 끝에 7월 8일로 날짜를 정했다. 이것이 우리처럼 작은 규모의 수입배급사가 상영관을 확보하는 방법 중 하나다. 영화가 별로라서가 아니라, (오히려 좋은 영화이기 때문에) 블록버스터에 묻혀 빛을 발하지 못하는 상황을 막으려는 것이다.
비단 코로나19가 아니더라도 미리 사둔 작품을 제때 개봉하지 못하는 사정은 꽤 있을 것 같다.
임진희 마케팅 팀장(이하 ‘임진희’) : 예컨대 칸영화제에서 어떤 작품이 공개되면, 보통 관객은 곧 국내에서도 개봉할 거로 생각한다. 하지만 칸영화제에서 화제가 된 작품은 미국에서 연말쯤 열리는 아카데미시상식의 국제장편영화상 부문 출품을 준비한다. (기자 주: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그랬다.) 국내 개봉은 12월 말부터 3월 초 정도에 이루어질 수 있다. 이때가 수입배급사에는 가장 중요한 때다. 모두 그때 개봉하려는 (핵심적인) 작품 (매년) 한두 개씩은 있을 것이다. (수입배급사 간 경쟁이 붙기 때문에) 좀 더 좋은 결과를 내놓을 만한 작품을 선택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10편 중 3~4편 정도는 개봉하지만 나머지 6~7편의 일정은 늦어질 수 있다.
유현택 : 구매 욕심을 많이 내기도 했는데, 그렇게 산 작품 4~5편이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동시에 오른 적도 있다. 수입배급사는 매해 일정 규모 이상을 구매해 둬야만 회사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 보니, 가끔은 그렇게 최적의 개봉 시기가 비슷할 수밖에 없는 작품이 여러 편 모이게 된다. 12월, 1월을 거치면서 열심히 개봉하려고 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그보다 먼저 구매한 작품을 사이사이에 선보일 수도 있다. 몇몇 작품은 유독 오래 묵힌 경우가 있는데 (개봉을 기다리는 예비 관객으로부터) 비판도 많이 들었다.(웃음) 날카로운 비판은 겸허하게 받아들인다.
그만큼 그린나래미디어가 선택한 영화의 개봉을 손꼽아 기다리는 사람이 많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시스터>(2012)를 시작으로 <프란시스 하>(2014) <패터슨>(2017) <가버나움>(2019) 등 여러 화제작을 내놓았다.
유현택 : 레아 세이두 주연의 <시스터>가 2012년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됐고 그해 8월 개봉하면서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그린나래미디어의 이름을 알렸다. 업력이 7~8년 정도 이어지다 보니 이제는 팬도 많이 생겼고 ‘굿즈나래’라는 칭찬도 받는다. (코로나19 이후의 상황 역시) 다른 수입배급사보다는 상황이 좋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관점에 따라서는 좀 다른 이야기도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다른 이야기라면, 예컨대…
유현택 : 우리 업계는 이미 더쿱이 수입한 <캐롤>이 만들어낸 30만 정도의 (다양성 영화) 시장을 분명 봤다. 그런데 지금으로서는 그 당시 시장 규모마저도 아쉬운 상황이다. 물론 <캐롤>에 사람들이 너무 좋아하는 배우가 출연하긴 했지만, 어쨌든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이나 <가버나움>이 그보다도 적은 관객을 동원한 건 사실이다. 개인적으로는 <가버나움>의 P&A 비용을 더 투입해서 훨씬 더 큰 규모로 개봉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지금까지도 든다.
다양성 영화를 소비하는 관객층이 이전 5년 대비 더 줄었다고 보는 건가.
유현택 : <프란시스 하>나 <유스>(2016) <본 투 비 블루>(2016)를 개봉하던 시절에는 나름대로 시장을 예측할 수 있었다면, 지금은 힘들다. 지난해 우리가 수입한 <가버나움>과 엣나인필름이 배급한 <벌새>가 15만 명이라는 비슷한 관객을 동원했는데, 다양성 영화는 (그 국적과 상관없이) 100~150개 스크린 정도에서 15만 명 정도를 동원하는 게 현재 상황의 최대치인가 의구심이 들 정도다. 지난해 말 개봉으로 기대했던 우리 작품 <와일드 라이프>(2019)의 결과도 너무 안타까웠다. 이런 상황에서 수입배급사들이 계속해서 사전 구매 방식을 유지해야 한다는 게 위험하게 느껴지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상황이 쉽지 않음에도 당신들을 계속해서 움직이게 하는 힘은 뭘까.
유현택 : 영화 구매자로서 큰 슬럼프였던 때가 있다. 2017~2018년 시장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프란시스 하>를 시작으로 <본투비 블루> <유스>같은 작품이 괜찮은 성과를 냈고(기자 주: 세 작품은 7~9만 명 사이의 관객을 동원했다.) 이 정도 결과라면 우리가 조금 더 자신 있게 구매하고 개봉해서 어느 정도 수익을 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분위기가 2014년, 2015년, 2016년까지 이어졌기 때문에 좀 더 예산 규모를 키워 보다 대중적인 작품으로 확장을 노려보려고 했다. 그런데 (기대보다) 잘 안됐던 것 같다. 예컨대 (<캐롤>을 연출한) 토드 헤인즈의 <원더 스트럭>(2018)이 그랬다. (줄리아 로버츠가 출연한) <원더>(2018)는 27만 명 가까이 모았지만 지불한 금액에 비하면 역시 좋은 스코어는 아니었다. 위험을 감수한 것에 비례하는 성과가 나타나지 않았고, (다양성 영화) 시장도 전반적으로 침체됐다고 느꼈다. 의욕이 안 생겼다.
다시 의지를 불태우게 한 작품의 이야기가 나올 것 같은데.(웃음)
유현택 : 그러다가 2018년 칸 영화제에서 <가버나움>을 봤다. 배급 팀장에게 이야기하지 않고 몰래 구매했다.(웃음)
박병규 : 나는 영화를 못 본 상태였는데 미리 알았으면 분명 반대했을 것이다. 부모 없이 떠도는 난민 아이들 이야기라는데, (냉정하게 말하면) ‘난민’은 한국 사람들이 관심조차 두지 않는 키워드라고 봤다. 게다가 이름 없는 감독이 연출하고 배우는 비전문 어린아이다. 나에게는 일종의 (좋지 않은 의미의) ‘서프라이즈’였다. 당연히 “왜요? 왜 이런 걸 사셨어요?” 물었다.
대답이 궁금하다.
박병규 : 시사를 했다고 하더라. (사전 구매가 아니라) 이미 완성된 버전을 봤다는 의미다. 그러고서는, 이 일을 새롭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울림 같은 걸 느꼈다고 하는데… 그때가 여러모로 힘든 시기였으니 그 말이 납득되더라. 대표가 그렇게까지 영감을 받은 작품이라는데 하는 게 맞지.(웃음) 사실 <토니 에드만>(2017)도 처음에는 반대했지만 보고 나서는 좋아진 작품 중 하나다.
유현택 : 내가 사고 싶은 작품과 배급, 마케팅 담당 입장에서 사고 싶은 작품은 다를 때가 있다. (실무를 담당해야 하는 입장이다 보니) 나보다 그들이 훨씬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다가 <가버나움> 처럼 딱 꽂히는 영화를 만나면, (구매하겠다는) 답을 이미 정해놓고 두 분의 의견을 물어보는 것 같은 상황이 된다. 워낙 함께 오래 일했기 때문에 그럴 때는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하고 지지해주는 것 같다. 물론 각자의 입장에 따라서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 된다고 쳐내는 편이 더 많다.(웃음)
<가버나움> 이후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 같은 라인업으로 여성 서사 작품을 선보였다. 사회적 관심도가 높은 주제를 다룬 작품인 만큼 그에 따른 효과적인 마케팅 전략을 고민했을 텐데.
임진희 :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의 경우에는 스크립트를 읽을 때부터 피해자를 전형적으로 그리지 않는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어찌 보면 (영화적으로) 재미있다는 표현도 어울렸다. 그래서 마케팅 단계에서도 ‘메시지를 주는 영화’라는 선입견(때문에 영화를 선택하지 않는 사람이 생기는 일)을 주의했다. 보고 나서 판단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중점을 뒀고, 영화에 한 번도 나오지 않는 ‘미투’라는 단어는 (굳이 홍보 용도로) 쓰지 않았다. 하지만 영화(홍보) 파급력이 더 컸다면, 그래서 남성 관객이 더 많이 봤다면 상황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지금까지 남는다.
성추행 의혹이 있는 우디 앨런 감독의 <레이니 데이 인 뉴욕>(2019) 처럼 개봉 자체만으로 논란을 불러온 작품도 있었다.
유현택 : 그동안 그린나래미디어는 여성 감독이나 여성주의 작품을 여러 편 다뤘다. 그래서 <레이니 데이 인 뉴욕>은 (고민 끝에) 마케팅 자체를 아예 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개봉한 회사가 그 작품을 개봉한다는 사실 자체가 그런 (논란) 상황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던 것 같다.
임진희 : 저 회사가 왜 이랬다가 저랬다가 하는 거냐는 반응이 있었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그 반응이 다 이해됐다. 그런데 그 영화를 개봉하지 않으면 (경제적인 손실로) 다른 영화 개봉에 피해가 가는 상황이었다. 또 관객으로서는 이 영화를 불과 얼마 전에 수입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레이니 데이 인 뉴욕>은 이미 <원더 휠>(2017)이 개봉 하기도 전인 3년 전에 구매한 작품이었다. (언론과 자주 접촉하는 업계가 아니다 보니) 이런 부분을 일일이 해명하기가 어려웠다.
유현택 : 원색적인 비판이 많았다. 그래서 (구매 시점 등) 사실에 기반하지 않은 정보는 짚고 넘어가는 입장 정리문을 낼까도 고민해봤다. 하지만 그냥 조용히 지나갔다. 대신 사람들이 이런 상황에서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는 걸 알았고, 우리가 놓쳤던 부분을 (섬세하게) 챙겨야 한다는 걸 배웠다.
임진희 : 최근 들어 여성 영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관련 이슈에 대한 민감도도 높아졌다. 내부적으로도 영화 한 편을 개봉할 때마다 공부하고 의견을 나눠야 하는 부분이 많아졌다. 당연히 부족한 부분이 있고, 여전히 어렵고 조심스럽게 느껴지는 부분도 많다. 업계 전반적으로 (관련 문제에) 더 예민해져야 하고 책임감도 느껴야 한다는 분위기인 것 같다.
앞으로의 라인업은. 한국 영화 <남매의 여름밤>을 배급한다고 들었다. 외국 영화에 이어 한국 영화 배급도 병행할 계획인가.
유현택 : 이광국 감독님의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 손님>(2017)으로 처음 한국 영화 배급을 해봤다. 그리고 <남매의 여름밤>에 이어 지난 전주국제영화제를 통해 공개된 작품 <홈리스> <십개월> <정말 먼 곳>을 배급한다. 처음에는 주저했다. 외국 영화는 흥행이 잘 안 되면 우리 회사만 손해 보면 끝인데, 한국 영화는 어려운 상황에서 영화를 만든 감독님과 제작사까지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부채감이 클 것 같았다. 하지만 우리가 외화를 다뤄왔듯이 적극적으로 임하면 도움 될 수 있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싶었고, 그런 면에서 감독님들과 이야기가 잘 됐다. 한국 영화도 배급하고 싶다. 기회만 된다면.
이렇듯 영화산업을 이루는 어엿한 플레이어인데, 코로나19로 업계 상황이 어려울 때 정작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원 정책에서 그린나래미디어를 비롯한 수입배급사가 소외됐다는 느낌을 받았다. 극장으로부터 받을 부금 정산이 지연되는 등 영화계 다른 구성원과 마찬가지로 여러 어려움이 있었는데.
유현택 : 지금까지도 영진위로부터는 전혀 지원을 받지 못했다. (코로나19 지원책 관련) 간담회에도 초대받지 못했으니까. 우리도 업계에 분명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에 따라 (응당한 지원을) 받아야 하는 부분이 있다. 사단법인 수입배급사협회가 생긴 만큼 꾸준히 목소리를 내려고 한다.
지금까지의 그린나래미디어 활동을 정리해본다면. 앞으로의 방향도 알고 싶다.
유현택 : 나를, 그리고 그린나래미디어의 모두를 칭찬해주고 싶다. 그동안 잘 해왔다고. 색깔 있고 취향 있는 수입배급사라는 칭찬을 많이 들었는데 정작 스스로에게는 칭찬을 해준 일이 별로 없는 것 같다.(웃음) 첫 배급작 <시스터>를 시작으로 쉼 없이 달려왔고 곧 10년을 채우게 될 만큼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우리 손을 거쳐 국내에 소개된 영화도 이제는 꽤 된다. 이만큼 자리를 잡고, 앞으로를 고민해 나갈 수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지난 시간은 충분한 의미가 있지 않을까. 코로나19 팬데믹을 기점으로 콘텐츠 소비 환경이 급변했고 영화 산업 안에서 당장 다음 달을 예측하는 것조차 어려워졌지만, 우리는 여전히 좋은 영화를 찾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거다.
마지막 질문이다. 세 분 모두에게 드린다. 최근 소소하게 행복한 순간이 있다면.
임진희 : 상반기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개봉 이후 코로나19를 만났고 그런 중에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까지 개봉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럴 때마다 하늘을 보면, 힐링이 된다. 우리 사무실은 노을이 참 예쁘게 지는 곳이다. 요즘은 비가 많이 와서 좀 그렇지만.
박병규 : 소소하게 행복한 순간… 내가 메마른 건가. 생각해본 적이 없다.(웃음) (잠시 고민하다가) 아침 유산소 운동을 빼먹지 않았을 때. (강아지) ‘루이’가 애교 필 때.
유현택 : ‘루이’를 사무실로 데려오기까지 고민을 많이 했다. 같이 시간을 보내다 보니 삶의 많은 게 바뀌었다. 아침에도 밤에도 서로 눈을 마주친다.(웃음)